1.

타인의 죽음을 말하며 문어로 '유명을 달리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이제껏 '남긴 수명'이라는 뜻의 遺命으로 알고 있던 유명은 '어둠과 밝음', '저승과 이승'을 뜻하는 幽明이었다. '달리하다'遺命에 얽매여 '다르게 가지다'라는 원 뜻이 아닌 '닳다'의 파생형으로만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무지했던 것.

 

2.

어제 우연히 키스 에머슨(3/10 사망)과 그렉 레이크(12/7 사망)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올해 참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떴구나 싶었다. 예년에 비해 좀 많다 싶어 한국어 위키와 영어 위키의 사망자 목록을 정리하니 대략 서른한 명 정도가 눈에 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아놀드 파머, 하퍼 리처럼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상은 잘 모르는 이부터 낸시 레이건과 시몬 페레스처럼 정치적으로 (내겐) 유명세만 있을 뿐인 사람도 있지만, 데이빗 보위라든지 신영복이라든지 이래저래 많이 접하고 적잖은 영향을 준 이도 들어 있다.

세상에 있는 생명만큼 죽음 또한 늘 곁에 있다. 어떠한 이유라든지 내게 영향을 준 이들이 대체로 50-70대인 것을 감안하면 이즈음이 그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특히 60-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음악인들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 수는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늘면 늘었지 수 년 간은 줄어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3.

영화 클로저를 볼 때 생경했던 게 부고 전문 기자의 존재였다. 신문 한 귀퉁이에서 누가 향년 몇 세로 죽었다, 어디에서 발인하며 유족으로는 누구 누구가 있다, 라는 식의 단신 부고 기사만 접해 본지라 고인의 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부고 전문 기자의 존재는 낯설었다. 공과 과를 평가할 만한 여유는 없다지만 고인에 대해 (뉴스답게) 늦지 않게 후루룩 정리해야 하고 언제 어디서 가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나 스탠바이 상태여야 하는 부고 전문 기자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도 그랬고 최근 몇 년 동안 유명을 달리하는 인물에 대해 나에 끼친 영향이 큰 사람은 페북 담벼락에 ‘RIP’을 달면서 추모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길어지기도 했고 간단히 추모만 하기도 했다. 이번 그렉 레이크의 부고를 접하면서 문득 좀 더 제대로 된 부고문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부고는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테고 점점 내게 끼친 영향이 큰 사람의 비중도 커질 테니까.

사실 고인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다. 과거 신해철의 죽음, 올해 백남기의 죽음처럼 충격에 뭘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불현듯 닥치는 죽음 앞에서 마냥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추모하는 것 이상의 글을 쓸 수 있는 깜냥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추모라는 본질을 넘어 글을 쓴다는 강박에 휩싸일 수도 있다. 부고의 본질은 추모다.

 

4.

그래도 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추모의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게다. 본말이 전도되지 않는 한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택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는 여전히 미생이지만 그래도 블로그질을 할 때부터 끼적끼적 글줄 날리는 게 그래도 가장 쉬웠다. 그런 맥락에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유효한 추모의 수단이 부고문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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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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