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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6 <우리시대의 노래>

1.

군대를 가면서부터 소위 '민가', 민중가요를 들을 일도 부를 일도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민중가요는 듣는 음악이 아니라 부르는 노래이고, 그 노래를 부를 때에는 집회/시위 현장이나 술자리에서였던 만큼 부르던 노래는 다소 '센' 노래였다. 후배들은 세대가 그러하다 보니 그런 센 노래보다는 내 기준으로 말랑한, 서정성 짙은 노래[각주:1]를 좋아했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 노래들은 민중가요일지는 몰라도 '민가'는 아니었다.

복학생 시절에는 예전만큼 집회/시위에 나갈 일도 그리 많지 않았고, 때마침 유행(?)한 촛불집회에서는 일전에 부르던 민가를 부를 일이 거의 없었다.[각주:2] 그리고 직장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부터는 아예 집회/시위에 나갈 일은 거의 없었으니 민중가요와는 그야말로 빠이빠이.


2.

불렀던 것과는 달리 '듣는' 음악으로서 민중가요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천지인'과 '노래마을'를 꼽을 수 있다. 노찾사, 안치환, 정태춘은 좀 애매... '천지인'은 아직 테이프를 가지고 있고, 더럽게 비싸긴 하지만 중고 시디를 수배할 수 있는 데 반해, '노래마을'은 시디는커녕 테이프도 좀체 구경을 할 수가 없다.[각주:3]

사정이 그러다 보니 듣는 음악으로서 또는 서정적인 민중가요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한줌 햇볕이 될 수 있다면'을 듣기란 힘들다. 물론 피엘송 등을 통해 mp3파일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시디든 테이프든 실재하는 미디어로 들어야 음악 같은 내 관점에선 아쉽기 그지 없다.


3.

그러다 발견한 게 노래마을을 비롯해 노찾사, 정태춘, 안치환 등의 다소 서정적인 민중가요를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우리시대의 노래>이다. 솔직히 수록곡 면모를 보면 '우리 시대'라기보다는 '그 시대'이겠지만, 내가 그토록 찾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한줌 햇볕이 될 수 있다면'이 수록되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지만, 발견했을 때에는 그마저도 이미 품절 상태. 그 후 꽤 시간이 지나서 중고라도 겨우 구할 수 있었으니 다행.

노찾사의 '그날이 오면'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시디를 들으니 가물했던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집시 판의 유일한 승리의 기억이었던 95년 가을에 정말 질리게 불렀고 그 후로도 꽤 불러 댔던 '오월의 노래', 민중의례 때마다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 노동자 집회의 페이버릿 송 '철의 노동자', 진뱀형의 절규가 기억에 박혀 있는 '잠들지 않는 남도' 등 익숙한 노래가 이어진다. 의외의 발견은 정말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백두산'. 예전에는 지나치게 경쾌하다고, 감상적인 통일 타령은 별로다고 불러야 할 때 부르긴 해도 좋아하지 않았던 곡이었지만, 간만에 들어보니 무척 신선하다. 부를 때마다 함께하던 율동이 기억 날 리는 만무하지만...


4.

운동권이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지금은 더더욱 동떨어진 채 살고 있지만, 남들 보기에는 운동권 티 팔팔 나는 내 모습을 보건대 <우리시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더더욱 티 낼 것만 같다. 하지만 응4를 보면서 열광했듯이 <우리시대의 노래>는 술자리 뒷담화처럼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90년대를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매개체이다. 물론 단절의[각주:4]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우리 시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민망하지만... 



덧.

'백만년'만의 블로그 포스팅. 계정도 휴면 상태였고, 웹서점의 서지 정보 가져오는 것도 까먹었다.

페북에 올릴까 하다가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1. 예를 들면 조국과청춘의 '우산'이라든가... [본문으로]
  2. '아침이슬'이 어찌 민중가요던가? [본문으로]
  3. 테이프는 아직도 개인 소장하는 사람이 있긴 할 테지만 1, 2집 시디는 발매나 되었나? [본문으로]
  4. 사실 한때 좋았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맥락의 '리즈시절'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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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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