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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7 석양의 갱들... 20세기에 되살려내는 서부의 향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전기현의 시네뮤직'에서 '석양의 갱들'이 나온다. 10년 전쯤 본 영화. 엄청나게 반복되는 영화의 테마곡도 무척 아름답고, 멕시코 혁명의 상황 맥락이나 두 주인공의 우정도 멋있게 묘사된 영화다. 후일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나오는 바람에 나중 가서는 '그냥 영화'가 되어 버린 영화. 어쩌면 민중 혁명을 본격 다루는 바람에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려서인지 '갱들'이라는 번역명이 붙고 영화 자체도 평가절하 당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신 세 개가 떠오른다. 출발비디오 여행의 씬세개를 베낀 것 같아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냥 우연이다.

첫 번째 신은 혁명군 캠프에서 존과 후안이 혁명에 관해서 토론하는 장면. 존은 폭파라는 전문 기술과 형색으로 보아선 부르주아 출신 인물. 반면 후안은 좀도둑 출신의 말 그대로 가진 거 두 쪽밖에 없는 극빈 프롤레타리아. 후안은 혁명을 이야기하는 존에게 혁명은 가난한 이들은 총알받이로 내놓는다며 일갈한다. 압권인 장면은 후안의 일갈에 존은 데꿀멍하고선 읽고 있던 책을 집어던진다. 아나키스트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의 책.

두 번째 신은 존의 회상 장면. 존은 아일랜드공화군(IRA) 출신으로 멕시코로 망명온 혁명객. 그가 멕시코로 넘어온 것은 고문 끝에 밀고한 절친과 그를 앞세웠던 영국 군인을 사살해서다. 영국군이 바를 수색하는 동안 존의 절친은 IRA 당원을 한 명 한 명 찍었고 존은 뒤돌아선 채로 거울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존과 절친은 거울을 통해 눈길이 마주치고 둘 간에 복잡한 시선이 오간다. 그리고 존은 영국군을 사살하고 밀고자마저 처단한다.

세 번째 신은 영화의 오프닝. 황무지 한가운데서 부자와 성직자가 탄 고급 마차에 올라탄 후안은 가난한 이들과 혁명을 조롱하는 기득권 세력의 조롱을 한 몸으로 받는다. 이때 감독은 음식을 먹으면서 후안을 모욕하는 가진 자들의 입을 노골적으로 클로즈업해 보여 준다.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면 상당히 불쾌감을 주는데 정말 '처묵처묵'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세 신을 관통하는 것은 좌빨 감독으로 알려진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혁명에 대한 시선이다. 멕시코 혁명은 반쪼가리 혁명으로 끝났고, 그 후로 이어진 10월혁명을 위시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역시 서구 지성인들이 보기에는 그리 탐탁지 않은 결과만 낳았을 뿐임을 레오네 감독은 이 영화에 반영했다. 냉소적 시선으로 혁명의 낭만성을 제거한 감독이 영화에 불어넣은 낭만성은 황무지를 달리는 오토바이로 상징되는 서부의 추억이다. 전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태평양까지 잇는 철도를 통해 서부의 시대를 종결시켰지만, 황무지를 말 달리던 서부의 향수를 존의 오토바이로 되살려 냈다. 사실 영화에 나오는 지금과 같은 스타일의 오토바이는 멕시코 혁명이 끝난 한참 후인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야 실용화되었다. 하지만 다시 말을 태울 수는 없으니 고증보다는 간지!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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