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된 지 오래된, 그런데 최근에 재쇄를 찍은 책의 경우 읽다 보면 낯선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대부분 타이포의 문제인데 컴퓨터에 만들어진 서체가 아닌 예전 활판에서 찍어 나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책을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보면 활판 인쇄 특유의 요철감은 없이 밋밋하다. 따라서 활판 인쇄에 대한 향수에 왜 그런 요철감이 없냐고 출판사에 항의 전화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한다.
현재 출판단지에 있는 활판 공방을 제외하곤 국내에서 활판 인쇄하는 곳은 없다. 즉 요철감을 느끼는 인쇄는 그러한 느낌을 구현할 수 있는 인쇄기를 사용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며, 그런 인쇄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왜 그런 활판 인쇄 느낌의 타이포로 인쇄되었냐 하면, 옛날 책을 촬영해 새로 인쇄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쿽익스프레스이든 인디자인이든 컴퓨터로 책을 조판하기 전에는 전산조판이라는 입력기를 쓰던 때도 있었고, 아예 활판 인쇄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의 자료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 즉 예전 책을 다시 찍으려면 직원이든 알바이든 책의 텍스트를 타이핑한 뒤 북디자이너가 새로 레이아웃을 잡은 뒤에 조판해야 한다. 즉 오래된 책 새로 만드려면 생고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옛날 책을 촬영하거나 스캔해 디지털 파일을 만들고 이것을 바탕으로 정해진 판형에 그냥 앉히는 작업을 거쳐 책을 인쇄한다. 따라서 예전의 타이포가 느껴지는데 요철감은 없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경우 오타 수정이 곤란하다. 최대한 예전 타이포의 느낌을 살리는 서체를 고르고 장평과 자간도 그에 맞게 조절해 수정자를 만들고 그것을 사진이나 필름에 덧붙여야 한다. 이거 역시 생고생이다. 따라서 생산자의 윤리 따위는 눈 찔금 감고 독자의 원성 따위는 휴지통에 구겨 넣고 그냥 배째라 인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표지 정도만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 개정판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 양심적이면 판형이라도 교체하는데, 이 경우 여백의 미를 좀 더 살리거나 사진을 약간 확대하면 된다. 뭐 양심적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외려 더 사기치는 느낌이 든다.
범우사에서 나온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011년 개정판. 판형은 조금 커졌는데 쪽수는 93년 초판과 일치한다. 여태까지 말한 것에 의해 새로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 관계자에게는 새로 교정 봤다고 하는데... 글쎄... 과연 그 생고생을 했을까? 뭐 품절된 채로 있는 것보단 그래도 이게 낫다. 이게 현실이다.
내가 보유한 책 가운데 모 인터넷서점에서 품절 또는 절판이라 뜨는 책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사실 구매 버튼 대신 '품절' '절판'이라는 문구가 뜨면 왠지 뿌듯해지면서 안도의 한숨이 내쉬게 된다.
책이 품절 또는 절판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출판사가 망해 절판된 경우, 둘째, 출판사 측에서 책이 팔리지 않아 재고 보유로 인한 손실을 줄이고자 절판시키는 경우, 셋째 개정판을 내거나 출판사가 바뀌면서 재출간되는 경우, 넷째 출판사가 피인수되면서 새 주인이 기존의 책을 털어 버리려는 경우이다. 첫째는 어쩔 수 없다치지만, 둘째와 세째, 그리고 네째는 출판사가 돈벌이에 혈안이 돼 그리 된 걸 종종 보아 왔다. 그런 책을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 하지만 책이 잘 팔리면 그런 일은 대체로 없으니 역시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이다.
몇 가지 절판 사유를 더 알게 되어 추가한다. 그중 하나는 타국과 자국의 출판 환경의 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외서를 계약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예컨데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시장이 다른 미국에서는 별개의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그런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섣불리 계약했다가 피눈물 쏟는 경우가 있다. 계약은 페이퍼백으로 해놓고 하드커버로 책을 내놓으면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바다출판사가 <역사의 원전>과 <지식의 원전>이 양장본을 절판하고 반양장을 다시 내놓은 게 이에 해당하는 사례인 듯. (이 페이지에 따르면 잘못 알았던 사실.)
그리고 저자 스스로 지나간 책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절판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공저자와 다툼을 벌인 끝에 의절해 둘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고, 스스로 졸저라 생각하거나 자신의 책이 지금 시일에 맞지 않는다 판단해 책이 사라지기를 원하기도 한다. 심지어 저자가 출판사(정확히는 사장)가 마음에 안 들어 절판하는 경우도 있다.
추가. 번역서의 경우 외국 에이전트들이 판권료를 무자비하게 올리는 바람에 대박으로 나가는 책이 아닌 양 군소 출판사가 감당하지 못하고 판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바다출판사에 나온 원전 시리즈는 둘 다 원전의 일부를 발췌하고 편집자가 코멘트를 단 책으로 나름 괜찮은 구성이라 생각되는데, 아마 팔리지 않아 절판시킨 책일 듯하다. (확인해 보니 둘 다 재발간되었다.) 둘 중 <지식의 원전>은 <비잔티움 연대기> 박스 세트를 사면서 덤으로 준 것이다. 아마 출판사에서는 책 떨이를 할 목적으로 3만원짜리 책을 박스 세트에 끼어 준 듯. 심히 안타깝다.
[추가] 알라딘에서 연계가 안 되었지만 반양장본이 따로 있다. 아마 양장과 페이퍼백 간의 판권 문제로 기존 양장을 절판시켜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출판사 '생각의나무'는 '생각없는나무'나 '생각있나뭐'로 불리는 대표적인 악덕 출판사이다. 제법 괜찮은(또는 괜찮아 보이는) 책을 내면서도 이리 욕먹는 이유는 가오 지향형 책을 비싸게 만든 뒤 안 팔리면 헐값으로 땡처리를 자주 하기 때문이다. 두 책의 정가는 95,000원으로 현재 30% 할인해 판다. 그러나 나는 저 책을 특별할인가라는 명목으로 권당 35,000원에 샀다. 같은 시리즈인 <유네스코 세계 고대문명>을 함께 사지 않은 게 후회된다.
세 책 모두 가오 선생의 사이트에서 언급돼 낼름 산 책인데 <유럽 근현대 지성사>는 사자마자 품절됐고, <철학용어집>는 절판된 상태에서 우연히 인터넷 헌책방에서 발견해 낼름 샀다. <철학 용어 용례 사전>은 품절됐다가 재쇄를 찍었는지 구할 수 있었는데 1년 정도 지나니 다시 품절이다. 셋 다 아주 당연하게도 펴 보지도 않았다. 허나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흐믓하다.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은 구매자 40자 서평에서 "품절되기 전에 반드시 사 둘 것"이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품절됐다. 미처 못 산 사람들은 몹시 배 아파해야 한다. 하지만 출판사에 밝혔듯 매년 개정판을 내는 책이므로 절판의 의미는 크지 않다. 실제로 2009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아마 매년 나올 것이다.
다른 두 권도 재미있는 책이지만 별로 인기는 없었나 보다.
전자는 지인이 번역한 책인데 아마 증정받았던 듯하다. 하지만 출판사가 상태가 안 좋은지 절판해 버렸다. 공들여 번역된 책이 절판됐을 때 역자의 심정은 어떨까? 차마 물어 보지 못했다. 후자는 정말 안 팔리고 출판사도 상황이 안 좋아 절판한 듯. 한국 생태학 쪽의 상황이 대충 이 책들로부터 드러난다.
황우석 파동 때 군중의 이상 심리를 알아보고자 샀는데 한 줄 못 읽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품절됐다. 고전의 반열에 드는 책인데 대우는 이렇다. 그래서 그런 파동이 생겼는지 모른다.
[추가] 판형과 쪽수가 살짝 바뀐 반양장본으로 개정판이 나왔다. 하지만 무엇이 개정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개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른 출판사에서 <한가한 무리들>이라는 생뚱맞은 제목으로 나왔건만 이 책은 원 제목을 유지했다. 하지만 똑같이 안 팔렸고 똑같이 절판됐다. 사람들은 책이 후져도 베스트셀러만 산다. 책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책이 있다. 이것도 베블렌 효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같은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와 절판됐는데, 새 표지는 정말 후지다. 아 출판사가 정말 생각 없는 출판사이구나. 마지막 것은 안 팔려 절판시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목과 표지를 갈고선 새 판본이 나왔다. 다른 책과 달리 구판과 신판이 링크되지 않았다. 이 뭥미? 그런데 후진 도판은 신판에서 좀 개선됐을까?
생각있나뭐가 산하 브랜드인 구운몽에서 내었지만 이거 하나 내고 접어 버렸다. 그런데 그
출판사의 이름으로 똑같이 나오다가 품절되었는데, 웬걸 개정판이라는 이름 아래 <비엔나 천재들의 붉은 노을>이라는 '새끈한' 소설(?)로 새로 내놓았다. 쪽수는 똑같으나 판형은 작아졌다.
지인이 "난세에는 칼 만하임을 읽자"라고 메신저에 대화명으로 남기기에 무턱대고 헌책방을 뒤져 산 책. 칼 만하임은 주목 받을 만한 사람이지만 한국에서 대우는 현찮다. 그의 책은 이 책 이후로 나왔던가? 그런데 인터넷서점에는 청하신서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출간처가 청아출판사라 나온다. 뭐가 맞는 걸까? 만약 후자가 맞다면... 그 출판사는 실용서 내는 출판서로 변모했다.
지호출판사는 좋은 책을 내는 대신 안 팔릴 책을 골라 내는 걸까? 첫 번째 책이나 두 번째 책이나 꽤 인정받는 책인데 품절이다. 두 번째 책의 필자인 제임스 버크는 다른 출판사에서 낸 두 권의 책마저 절판되어 버렸다. 가혹한 운명이다. 우주가~는 다행히도 재발매되었다. 정말 다행히다.
칼 폴라니는 한국에서는 '빨갱이'의 수괴 칼 마르크스보다 더 대우 못 받는 경제학자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그의 대표작이 모두 품절된 데서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20세기 경제학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개인적으로 평한다. 그의 책은 경제와 경제학을 바라보는 시각은 180도 회전시킨다. <거대한 변환>은 8천원짜리 책을 헌책방에서 무려 2만원 주고 샀을 만큼 레어템인데 안타깝게도(물론 내게만) 홍기빈이 근자에 새 번역본을 내놓았다.
아마 나 보고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꼽으라 물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이면우를 꼽는다. 다만 그의 책은 메이저인 창비에서 나온
책을 제외하곤 다 품절이다. 이 시집은 그의 첫 시집의 증보판이라 생각하면 되지만, 나는 아직도 대전 소재 출판사에서 나왔던 그의
첫 시집을 수배 중이다.
현존하는 경제학자 가운데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폴 그루그먼도 있지만 아무래도 로버트 하일브로너를
가정 먼저 꼽지 않을까 한다. 인터넷서점의 서지 사항에는 하일브로너의 이름 대신 역자의 이름만 기재된 책인데, 오래 전에 절판된
책인 듯싶다. 한마디로 저자 이름 하나와 절판이라는 이유로 헌책방에서 발굴해 질렀다.
중학생 즈음에 어머니가 책 대여점에서 빌려 오신 걸 함께 읽었던 12세기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책 4권에 서너
번 나오는 정사신만 골라 보기도 했지만, 소설 자체를 무척 재미있게 봤었다. 하지만 '오프라의 북클럽'에 소개돼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절판본으로 남은 채 동명의 판타지 소설만 검색될 뿐이다. 1권을 나중에 따로 구매해 네 권을 모두 구매했다.
헌책방에서 <사나운 새벽>을 사면서 배송료가 아까워 절판된 책을 좀 더 찾아본 끝에 발굴한 나름 역작. 둘 다
아르마리우스에서 이래저래 추천은 됐으나 절판된 책이다. 특히 테다 스코치폴의 <국가와 사회혁명>은 알라딘에도 서지
사항이 없으며, 저자의 다른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테디'라고 오기돼 있다.
예전에 해문에서 나온 <세계의 명탐정>을 생각하고 샀다. 해문의 다른 브랜드에서 나온 책이 있지만 너무 아동틱해서 대신
고른 게 이것인데, 아스라한 기억을 다져 보면 이 책이나 해문의 것이나 대동소이하다. 아마 일본의 원본을 둘 다 적절하게 번역
편집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일본의 탐정들이 종종 나오는데, 해문의 것도 초판에는 일본인들이 나온다 한다. 이래저래
절판이다. 추리소설 인기가 예전만 못한가 보다. 아니면 이 책은 도저히 봐줄 만하지 않든지(이때 봐주다는 붙여 써야 할까 띄어
써야 할까? ㅋㅋ)
자본주의의 역사
알라딘에도 등록 안 됐는데... 올해 도서출판 길에서 개정판이 나온다 한다. 보관용으로 비치된 책을 훔쳐 온 게 무색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요새는 논술 시장에서만 유명한 슘페터의 대표작으로 취급되는 책이지만, 역시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았다. 뭐 슘페터에게 '기업가 정신 빼면 남는 게 뭐 있던가?
세 권 다 명목상 아내의 책으로 분류돼 있지만, 실상 아내가 아닌 내 의지로 산 책들이다. 물론 김진태는 아내가 최고의 만화가로
칭송하는 인물이며,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는 아내가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한자왕국>는
한자에 약한 아내보고 공부하라고 산 책이지만 실상 나만 보고 말았다.
나도 구입했던 책인데 책이 겹쳐 결혼 기념으로 누군가에게 입양 보냈다. 누구에게 보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평은 좋았지만 할인
판매를 남발하고 결국 품절됐다. 그런데 반전.<파리, 모더니티>라는 원제를 훼손한 제목에 1쪽만 늘리고 판형은 작게
하는 신공을 살린 개정판이 나왔다.
강렬한 흑백의 대비, 중세 풍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인상적인 책이다. 다소 이야기가 무겁고 재미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덕에 만화가 아닌 그래픽 노블의 범주에 넣어야 할 듯. 불문학자 김정란의 해설도 문학동네라는 출간처도 뜬금없지만, 그만큼 문학의
범주에 있다는 것일 게다.
아르마리우스에서 추천되는 책이라 낼름 구매해 두었는데 오래지 않아 품절되었다. 아르마리우스나 후신인 알레스텔레에서 추천되는 책은 곧
품절 또는 절판의 운명에 처한다. 그것이 한국 인문학의 현실일 게다. 수요가 있어도 한정되어 소수에게는 혜택이 돌아가고 재쇄를
찍지 못해 나머지는 손만 빨아야 하는.
자기계발서 전문 출판사에서 조금은 무모하게 내놓은 인문학(?)이다 보니 안 팔릴 게 뻔하여 책을 보관함에 두면서 "신간 판매
기한이 지나면 반값된다" 했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 기한이 완료되기 전에 절판되어 버렸다. 그래도 책이 조금 나갔나 보다. 중고로
아슬아슬하게 구매했다.
[아내 책] 아내의 보관함에 담겨 있던 책인데 초판 나가고 그냥 품절 상태로 있던 책이다. 말 그대로 일개 개인의 여행 에세이이다
보니 초판만 팔고 털어 버린 듯. 뭐 이거 자비 출판도 아니고. 그래도 건축물 중심으로 바라본 유럽 여행기인지라 털어 버릴 책은
아니라 보지만 그렇다고 썩 팔릴 책은 또 아니다. 알라딘 중고 알림 서비스의 수혜자이다.
'내가 읽는 것이 바로 나'라는 패러디성 문구도 있지만, 무슨 자랑질 하는 것도 아니고 내/아내가 보유한 책의 목록을 공개한다는 게 다소 추잡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 구매 도서 목록도 그런 맥락에서 비공개로 돌려놓았다. 이 글 또한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목록 부분만 떼로 떼어낼까 하다가 일단 두기로 했다. 이는 이러한 품절/절판 도서가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 장만하라는 뜻이다. 품절/절판 도서 구매는 손품이든 발품이든 열심히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목록을 보면서 미리 품절된 만한 책을 장만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덧.
1.
품절/절판된 책 구하는 방법으로 검색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각종 헌책방을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발품을 파는 것. 다른 하나는 해당 출판사에 연락해 사정하는 것이다. 대개 품절된 지 얼마 안 된 책은 출판사에 보관용으로 남아 있는 게 좀 있다. 잘 보이면 득템할 수 있다. 책 구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유입이 많아 헌책을 구하는 방법에 관한 포스팅을 따로 했다. http://camelian.tistory.com/288
2.
내가 보유한 품절/절판된 책의 권 수를 세어 보니 모두 90권이다. 흐믓하기보다는 씁쓸하다.
3.
품절과 절판의 차이를 검색어로 들어오는 유입이 좀 있다. 나도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선배에게 물으니 공식적으로 출판사에서는 절판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설사 앞으로 책을 찍어 낼 일이 없다고 해도 출판사에서는 체면치레 겸 책임 소재로부터 도망갈 요량으로 절판했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품절이라고 한단다.
다만 출판권을 소멸한 경우에는 어쩔 수 절판이라고 한단다. 예를 들면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녹색평론사에서 나오다 현재는 중앙북스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럴 경우에나 절판되었다고 한단다. 아니면 출판사가 아예 망하거나 꽤 오랫동안 품절 상태로 있던 경우나 새 판본을 내놓으려 구판을 폐기했을 경우 절판이라 한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으로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 몇몇 출판사는 앞으로 출간할 의사가 없을 경우 절판이라고도 선언하는 듯 보인다. 예컨대 세미콜론의 신시티 시리즈 중 몇 권은 절판 딱지가 붙어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슬쩍 일시품절 같은 면피를 붙였다가 슬쩍 품절로 바꿔 놓는데, 재고가 떨어지자마자 아예 절판 딱지를 붙여 버렸다. 이럴 때 책을 애타게 찾던 독자의 슬픔은... 에휴...
업무상 사야 할 책들이 많은데 찾다 보면 품절된 책이 많다. 이럴 때에는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헌책을 사야 하는데, 전자로 가능한 책은 별로 없기도 한데다 피차 다 아는 판에 아쉬운 소리 싫어 헌책을 사기 마련이다. 그런데 헌책을 사는 것은 정말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요새는 거의 대부분 온라인으로 검색이 가능해 예전처럼 정말 발품 파는 일은 없지만 숱하게 많은 헌책방들 뒤져 원하는 책을 찾는 것은 손품을 팔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손품 파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테면 헌책방 통합검색 또는 개인 판매자 중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일단 후자에는 알라딘 중고샵과 북코아가 있다. 시작은 북코아가 먼저 했지만 알라딘이라는 거대(?) 인터넷 서점이 서비스를 시작하니 대부분 이쪽에서 거래되는 느낌이다. 전문 헌책 판매자도 많이 입점했다. 특히 숨책처럼 웹사이트가 없던 헌책방도 입점해 책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북코아는 오늘 처음 이용해 봐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하루에 5천 권 이상씩 거래되는 것을 보니 만만치 않다 싶다.
헌책방 통합 검색은 더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이용하는 것은 헌책사랑, 북아일랜드, 고고북 3곳이다. 헌책사랑은 사실 말만 통합 검색이지 일일이 헌책방 버튼을 눌러야 하기에 이용이 꺼려지지만, 알짜배기 개인 판매자를 중계해 주기도 한다. 알라딘 중고샵이 생기기 전에는 꽤 이용했다. 말만 개인 판매자이지 전문 헌책 판매자로 보이는 사람이 많다. 북아일랜드는 헌책사랑에 비해 확연히 통합검색 능력을 잘 보여 준다. 오늘 알게 된 고고북은 북코아를 함께 검색해 주기에 검색 결과가 북아일랜드보다 좀 더 많다. 북아일랜드와 고고북에 얼마나 많은 헌책방이 링크되어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북코아 검색 분을 제외하면 북아일랜드에서 검색 결과가 좀 더 많은 것으로 보아 느낌상 링크는 북아일랜드에 더 많이 되어 있는 듯하다.
대충 이 다섯 사이트에서 헌책을 검색해 보면 어지간한 책은 구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모두 놓치는 책을 구글을 뒤져 미처 링크되지 않은 헌책방에서 책을 찾기도 한다. 그러한 일은 드물 듯하니 결국 이 다섯 곳에서 책을 찾지 못하면 남은 방법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수밖에 없다. 복사나 제본을 하는 것은 개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다. / 2009/09/16 14:51
추가
1. 인터넷 교보문고와 예스24가 중고 서적 중개를 시작했다. 대체로 알라딘과 비슷해 보이는데, 광화문 교보문고 한켠에 헌책방에 들어선 꼴이다.
한때 취미를 (안 팔리는) 영화 표 사주기[각주:1]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안 팔리는 영화는 요즘 같은 와이드 개봉 시대에 단관 내지는 전국 다섯 관 이하 수준으로 개봉하는 마이너 영화를 말하는데, 소위 마니아 영화라고도 하며 예술영화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니아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마니아가 아니면 그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없는 마니아가 볼 수밖에 없는 영화이다. 또한 마이너 영화는 예술영화를 포괄하지만 상업 영화, 대중 영화임에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말 그대로 마이너 영화이다. 일 년에 50-70편 정도 보면서 이런 영화를 절반 정도 봐 주었으니 마이너 영화 표 사 주기라는 표현은 그다지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하지만 출산과 함께 일 년에 영화 한두 편 보는 상태로 전락했지만 몇 년 안 남았다. 과연?
원래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요즘 취미는 품절, 절판된 책 사 모으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집이나 컬렉팅이라는 용어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희귀한 책, 고서처럼 값이 비싼 책을 사지는 않는다. 원가 대비 가장 비싸게 주고 산 게 정가 1.2만 원짜리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민음사 본을 2만 원에 주고 산 게 가장 비싸게 산 책이다. 나머지는 여러 헌책방 또는 아직 재고가 남아 있는 서점을 두루 훑어서 산다. 그리고 품절, 절판된 책을 예측(?)[각주:2]해서 미리 사 두면 알아서 품절, 절판된다. 알라딘에 만들어 놓은 리스트를 보니 126권이다. 세트로 묶인 책도 있고, 결혼 전 아내의 책을 아직 리스트에 넣지 못해 대략 20여 권 정도 더 추가될 수 있다. 적지 않은 숫자인데 그만큼 뿌듯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간혹 리스트에서 빠져야 할 이들이 있으면 왠지 일시보호 하던 아이를 입양 보내는 느낌이며, 행여나 재출간되면 죽었던 아이가 살아오는 느낌이다. 반면 이따금 구매 리스트를 훑다가 품절된 책을 발견하면 정말 안타깝다.
이래저래 괜찮은 취미 같기는 한데, '품절 절판된 책 사 모으기, 하지만 수집이나 컬렉팅은 아님'이라는 말은 너무 길다. 뭐 좋은 말 없을까?
본의 아니게 품절/절판된 책을 수집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좋은 책임에도 시중에서 구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을 접하게 된다. 그들의 애타는 심정을 얼마나 알겠냐 싶지만 그래도 인지상정인지라 나 또한 안타깝기 마련이다. 내 책이라도 내 주고 싶은 마음이 0.01초 정도 들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사 모으는 게 아닌가.
이런 일을 대비하여 e북의 효용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책을 원하는 사람들은 자본마냥 허구의 상품인 e북이 아닌 자신의 손때를 묻히며 책장을 넘길 책을 원할 게다. 이런 이들을 위해서는 예전에 소개된 적 있는 에스프레소 북 머신 같은 게 유용할 듯싶다. 물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 실제로 이 기계를 운영하는 미시간 대학에서는 저작권이 소멸된 책만 제작이 가능하다. 뭐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아무도 총대를 메고 돈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을 듯하니 이 획기적인 시스템을 보고도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