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연중에 나를 교도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은 교주가 된 선배가 책을 냈다. 교주께서 교도에게 30% DC해 줄 테니 20권을 팔아 오시라 계시를 내리셨다. (저자가 현재 한국에 없는 관계로 복잡하게 꼬여 일단 저자 할인 구매는 보류입니다. --;) 버는 돈을 온전히 기저귀 사는 데 쏟아 부어야 하는 교도는 대신 블로그에 광고성 포스트를 남기기로 했다. 참고로 서문에는 교주의 가장 충성스런 교도였던 내 이름도 나온다
프롤로그: 낡은 투쟁과 연대가 무너지다 청년실업: 24시간 직업을 구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난민: 하루짜리 비자가 평생이 되다. 이주노동: 내일 또 누군가의 하인이 된다 성노동: 산업은 있지만 노동자는 없다 슬럼과 성채도시: 웅크리고 앉아 다음 재난을 기다린다 해방신학과 빛나는길: 국가가 사람을 악마로 만든다 공정무역과 혁명세: 그래도 마오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교육권:그들을 가르치고 싶다 식량주권: 내 이웃에게 닭을 팔고 싶다 건강권: 이윤보다 생명이다 에필로그: 다만 싸움이 충분하지 않다...
국
제연대운동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미련 없이 보따리를 싸서 비행기를 탄지 10여년이 되어간다. 그때는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영국으로 유학을 준비하려던 때였다. 마침 한국 사회는 IMF 금융위기가 터져 그동안의 성장에 대한 낙관적인 분위기는
일거에 사라지고 패닉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접해왔던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하는 단어가 한순간에 책속에서 기어
나와 모든 사람들의 삶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길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넘쳐나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보도되었다. 대학생들도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대거 하고 있었고, 취직을 할 수 없게 된 졸업생들은 도피형으로 대학원을 오거나 졸업을 일부로 미루고
있었다.
이즈음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 아시아 태평양 사무국의 활동가들이 서울을 방문하였다.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 연합회(서가대연)의 교육간사를 자원으로 맡고 있던 터라 이들을 따라다니면서 일정도 짜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세계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어나서 외국이라고는 일본을 달랑 두주정도 갔다 온 경험밖에 없는 나에게
그들이 전하는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에 불을
지폈다. 그들이 떠날 때 혹시 내가 유학을 ‘포기’하고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사무국에 와서 일을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다.
그때 ‘하늘’인지 ‘마음’속인지 모르겠지만 소리가 들렸다. 이게 내 길이라고. 당시 서가대연의 지도신부였던 나승구 신부도
유학보다 백배 낫다고 격려했다. 미련 없이 보따리를 쌌다.
처음 IMCS 선배들을 만나 ‘아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뭐라고 한동안 대답을 해야할지를 몰랐다. 60이 넘은 스리랑카 출신의 신부인 그에게 ‘나에게 아시아는
어불성설’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지금까지 나에게 스리랑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해봤자 달나라보다 더 먼 나라인데,
아시아라는 말이 그 스리랑카를 포함하고 있다면 나는 아시아를 모른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였다. 선배들은 껄껄
웃으면서 IMCS 사무국에 있는 동안 많이 배우라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아시아의 가톨릭대학생들을 연결하고 행사를 치르고 유엔과
같은 곳에서 그들을 대표하는 역할이지만 사실은 아시아를 배우고 세계에 대한 나의 이해를 넓히며 그 후에 전문적인 국제연대활동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제일 잘하는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엄청난 격려였다.
그
후 유엔 인권위원회(지금은 유엔인권이사회로 격상된)에서부터 세계사회포럼까지, 아프리카의 빈민가에서부터 엄격한 불교식 실천으로
대안을 실천하고 있는 태국의 산티아속 불교공동체까지, 전후 최대라고 한 2006년 청년실업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백만 시위에서부터
초국적제약회사의 선전물을 급습한 에이즈감염인들의 시위까지, 하루하루가 ‘세계’를 경험하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경험뿐만이
아니다. 이 시간은 또한 내 눈앞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사건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언어를 필사적으로
만들어가는 공부의 시간이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책을 읽고, 마이클 하트, 사이드 아민, 월든 벨로 등 저명한 학자들부터
풀뿌리활동가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세계를 설명하는 그들의 ‘언어’속에서 헤엄치며 내 언어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아래로부터의 경험과 백가쟁명식 논쟁에 참여하며 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수 있었다. 흔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가장 핵심에는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가 있다고 말을 한다.
공식적으로는 신념에 가득 차서 이것이 대안이다고 외치는 사람들조차 돌아서서는 대안은 없어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그래서 많은
좌파들이, 특히 지식인들이 가장 과격한 언어로, 그러나 패배주의에 가득찬 태도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하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한 것처럼 인간이 만든 체제인 자본주의의 끝은 상상할 줄 모르면서 차라리 손쉽게 지구의 종말을 상상해버리고 마는
불쌍한 존재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바닥에서부터 지금까지 관리되고 통제되기만 하던 사람들이 직접 싸움에 나서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싸움을 하며 희망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에이즈에 감염되어 사회에서도 완전히 배제되어 자기하나도 못
챙기고 죽는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태고적부터 농노이기만 하였던 사람들이 싸우며 희망을 만드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도저히 싸움이 가능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세상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고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조차 활동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대안마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념에 대한 엄격한 실천으로 삶의 가능성에
대한 강렬한 영감을 주었다. 이들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세계는 냉소와 패배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여전히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대안은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이런 점에서 맑스의 말을 뒤집어보면 우리는 세계를 변혁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에 내가 쓴 글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세계를 바꾸어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계를 바꾸어내고 있는 그들이 말하는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것을 보고 듣고, 참여하며 내가 얻은 영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 나는 세계화를 세 가지의 얼굴을 가진
과정으로 나누었다. ‘세계화의 망명객’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노동의 세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이주노동, 성노동을 중심으로 한 주변부 노동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노동의 세계의 변화는 사랑과 연애,가족과
친밀성의 구조, 심지어는 사람의 마음도 바꾸어 내고 있다. 삶, 인간 자체가 구조변동을 겪고 있다.
두 번째
장인 ‘국가의 경계와 새로운 중세’는 세계화가 밀어내고 있는 경계 밖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근대 국가가 형식적으로라도
세계를 빈틈없이 국가로 분할하고 국가 안에서는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이들을 통치하고 ‘보호’하려고 하였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국가안에 성채를 치고 성채밖의 사람들을 비국민으로 몰아내고 있다. 부르조아-성안의 사람들-과 성밖의 사람들로 국민들이
이분화되고 있는 셈이다. 싸센이나 하우만 등의 개념을 빌리면 글로벌 엘리트라는 새로운 부재지주들과 글로벌 하인들Global
Servants로 인류가 이분화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슬럼가의 도시빈민들과 안데스산맥의 인디오들의 해방신학과 빛나는 길,
그리고 필리핀 플렌테이션 농업노동자들과 그들을 둘러싼 필리핀 공산당의 마오주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중세의
풍경을 전하려고 하였다.
마지막 장은 근대의 시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근대의 시민들은 국가에 복속하는 댓가로
‘권리’라는 것을 보장받았다. 누구나 교육을 받을 권리, 교육을 통해서 스스로의 사회적 신분을 이동시킬 수 있는 권리, 누구나
최소한의 의료보장을 통하여 생명을 지킬 권리, 그리고 굶어죽지 않을 권리는 근대 시민의 권리중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이다. 이
장에서는 교육권과 의약품접근권, 그리고 식량주권이 어떻게 세계화에 의해 공격을 받고 시민들의 삶이 파괴되고 있으며 아래부터 어떤
저항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스케치하였다.
나는 내가 태어나서 받은 소명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저곳으로, 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곳의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하는 것. 때로는
저곳과 이곳을 하나의 맥락으로 묶고 이어주는 이야기꾼의 역할이 내가 잘 할 수 있고, 잘 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이건 한
선배의 말처럼 배운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이다. 이 책을 통해 얼마만큼 이 의무에 충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나누는 첫 걸음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데 선동적인 제목에 비해 표지 디자인이 약하다. 저래서 책 좀 팔 수 있을까 싶다. 천 권 팔아야 인세로 백만 원 번다는, 사회과학 책 1천 권 팔면 대박이라는 한국사회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