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없이 10시와 12시 사이에 퇴근하는 초바쁜 와중에 하루 휴가를 내고 이사했다. 한 동네에서 이사한 것이긴 하지만 이사 그 자체는 피로 또는 피곤이다. 이사하고나서 아내와 나는 그냥 뻗어 버렸다. 사실 포장 이사를 해도 따로 챙겨야 하는 것은 언제든 있기 마련이다. 며칠 동안 없는 시간을 쪼개어 아내와 둘이서 또는 아내 혼자서 힘겹게 버릴 것과 따로 챙길 것을 구분했지만 시간은 항상 빠듯했다. 그래도 하게는 되더라. 이삿날 새벽 그럭저럭 이사갈 태세를 갖추었다.

본 이사의 관건은 사다리차 기사가 여태 날라 본 가장 무거웠다던 냉장고도 아니고 65센티미터 좁은 틈에 63.5센티미터 폭의 세탁기를 넣는 것도 아닌, 대략 천 권 정도로 추산되는 책과 오백 장쯤 되는 시디였다. 100장 정도 되는 디비디는 일도 아니다. 애당초 포장 이사를 선택한 것은 바빠서가 아니라 이제는 책 싸는 일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포장 이사를 한다 해도 책은 있던 그대로에 배치될 수 없다. 하자면 원 위치대로 센터에서는 할 수 있다지만 그러면서 추가되는 시간에 그냥 포기하기 마련이다. 결국 책은 내 책과 아내 책의 구분 없이 분야와 크기에 상관없이 일단 마구 꽂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늘 내에 이사가 안 끝날지도 몰라서였다.

이러했음에도 보통 4시쯤 끝난다는 이사는 6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책상 유리가 깨진 게 있어도 인지상정상 이삿짐 센터에 처음 계약한 금액보다 조금 더 챙겨 줘야 했다. 정말 센터 사람들에게 책은 괴물단지일 게다. 사실 나보고 저 책을 싸고 나르고 집어 넣으라 하면 돈을 더 쳐 준다고 해도 진저리칠 듯싶다. 센터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교수와 목사라는데 젊은 사람이 웬만한 교수만큼 책이 있으니 놀라긴 놀랐을 게다. 이 꼴 안 보고 사려면 빨리 집 사서 이사 안 다니며 사는 수밖에 없지만 언감생심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다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는 책과 시디를 분류해 분야와 크기 등을 고려해 재배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일찌감치 재배치를 포기하고 책과 시디의 위치를 기억하는 것. 성질머리상 전자를 택해야겠디만 겁나게 바쁜 상황이다 보니 11월이나 되어야 가능하다. 사실 이전 집에 이사 오면서도 책을 정리하는 데 몇 달 걸렸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책이 더 늘었다. 심지어 회사에 쟁여 둔 책도 적지 않게 있다. 속히 후자를 택하는 게 마음에 여유를 줄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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