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설가 류진운의 쓴 중편 <一地鷄毛:닭털 같은 나날><官人:관리들 만세><溫故一九四二:1942년을 생각하다>을 모은 책이다.
류진운은 중국의 관료제와 소시민의 일상을 예리한 블랙유머로 풀곤 한다. 그는 중국 [평론전선]에서 '20세기 20대 작가'로, [도서일보]에서 <一地鷄毛>가 '20세기 100대 세계 명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중국에선 유명한 작가이다.
<一地鷄毛:닭털 같은 나날>은 틀에 박힌 관료제 속에서 예전엔 지성인이라고 불렸던 소시민이 비루한 일상 속에서 얼마나 쪼잔해질 수 있는 지를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한탄스럽게 풀어간다.
닭털, 닭털로 만든 파카도 있지만, 아무래도 오리털보다는 못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비루함을 닭털은 우리에게 던져 준다. 그런데 '닭털 같은 나날'이라니.. 일상 또한 닭털 만큼이나 비루하다는 뜻인데, 임씨와 그의 부인의 일상은 그야말로 비루하기 짝이 없다.
상한 두부 한 모를 가지고 티격태격하고, 수도 검침원은 물도둑질한다고 그러고, 아내의 이직을 위해 뇌물을 바치려다 면박이나 당하고, 고향한테 온 손님에게 푸대접을 하고, 딸아이는 겨우 고급 유치원에 보내 놨더니 이웃집 아이의 수행원 노릇을 해야 한다. 대학까지 나와서 중앙 부처에서 관리로 일하는 부부의 행색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비루하다 못해 쪼잔하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구질구질함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은 가정부를 내보내고, 아이를 고급 유치원에 보내고, 그들도 청탁을 받을 위치에 서지만, 그 동시에 체면 집어 던지고 오리 장사 알바를 하고, 배정된 이유가 배배 꼬이지만 통근버스를 좋다고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일상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네 일상은 임씨 부부의 것과 뭐가 다를까? 병원비 아까워 병원 안 가고, 안경 새로 맞추기 싫어 안 쓰고 다니고, 택시비가 아까워 찜질방에서 자고.. 단지 구질구질, 비루, 쪼잔의 정도와 스타일 차이일뿐이다. 결국 나도 우리도 모두 닭털 위에서 뒹굴고 있다. 임씨 부부가 안타까워 보이는 건, 공산당 치하 틀에 박힌 관료제와 어설픈 시장 경제가 뒤섞인 오늘의 중국은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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