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미래도 없는 이주노동자라니요? 그럼 난 뭔데요? 나는 미래가 있엉? 선생님 친구처럼 이주노동자를 돕는 활동가는 괜찮고, 이주노동자를 사랑하고 그 사람의 아이을 갖는 건 안 된다는 게 말이 돼요? 도대체 뭐가 달라요? 선생님도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손바닥 뒤집듯이 그렇게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거예요? 선생님은 저랑 자히드 관계를 이해할 줄 알았어요."
저 구절을 읽으면서 숨이 턱 막혔다. 그것은 단순히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를 사랑하는 정아가 자신의 편이 되어 주던 정원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다를' 뿐일 사람을 끝까지 '틀린' 사람이라고 우겨대는 한국사회의 단일민족에게 하는 말이었다. 특히나 이해하는 척하면서도 속은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들의 이중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유명해진 김중미가 오늘의 이주노동자 문제와 과거의 기지촌 혼혈아 문제를 날줄과 씨줄로 엮어 가며 쓴 장편소설 <거대한 뿌리>를 출간했다.
음... 여기가지는 너무 기사틱하군... ^^;
마감 후 휴무 3일째, 세 번째 짐 실으러 간 룸메이트 녀석이 소식도 없고 다소 지루하기에 이전 직장에 갔다가 신간소개 좀 해달라며 건네받은 <거대한 뿌리>를 꺼내들었다. 최근 10여 년 동안 그닥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는데, 그냥 시간때우기처럼 꺼내든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한달음에 다 읽어 버렸다. 글 초반 정아의 항변이나, 혼혈인 재민이 그렇게 미제 좋아하는 인간들이 절반인 자신은 왜 싫어하냐고 토로하던 장면 등에서 에일리언 마냥 속에서 꿈틀거리는 쪽팔림에 잠시 책장을 덮기도 했지만, 공선옥이 추천사에서 말한 것처럼 "아픈 가슴 위로 눈물이 흐르고 눈물 흐른 자리에 새살을 돋게 하는" 느낌에 묵묵히 가슴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장까지 간신히 내달릴 수 있었다.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 제3 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김중미는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에서 제목을 빌어왔다. 아마도 한국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타자에 대한 결벽증 같은 차별을 '거대한 뿌리'로 봤고, 그는 그것을 동두천을 비롯한 곳에 자리 잡은 기지촌 사람들의 삶, 좀 더 나아가 미군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혹은 그들의 원조로 먹고살아야만 했던 한국현대사의 아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 듯하다.
아픔은 오래간다. 아픔은 상처를 바꿔 가며 통증을 준다. 아직도 잔존하지만 혼혈 문제는 하인즈 워드가 이름을 떨치기 전에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했던 과거의 유산이었다. 하지만 그 아픔은 이주노동자와 가족 문제로 변태해 여전히 살 속을 파고들며 통증을 가져다준다. 피부를 뚫고 살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 "넌 우리와 달라"라는 이름의 거대한 뿌리. 그런데 눈물은 그 상처로 파고들며 뿌리를 거둬 내 줄 수 있지 않을까?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도끼와 돋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념의 정의가 아닌 이미지를 추구하다 (0) | 2008.07.16 |
---|---|
역사의 씨줄에 공간의 날줄을 걸다 (0) | 2008.07.16 |
시장의 신화를 벗겨 내다 (0) | 2008.07.16 |
오늘은 닭털 같은 나날 중 하루 (0) | 2008.07.16 |
간디학교에서 학생들은 정말 행복할까 (0) | 2008.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