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반야 님의 글과 그 전의 댓글에 대해 보충과 해명을 위해 쓴 글이지만, 이북과 디지털 콘텐츠에 관한 기본적인 제 생각을 담았습니다. 일단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아 깁니다. 하지만 스압에는 스압으로! 입니다. ^^;
1.
똑똑샘의 어중간함은 출판 업계와 IT 업계, 정확히는 이북/디지털 콘텐츠 업계 사이의 간극 사이에서 나온 절충안입니다. 애당초 절충은 어정쩡합니다. 이 솔루션은 콘텐츠를 만드는 출판사도 전자펜을 만드는 IT업체도 아닌 PDF 솔루션 업체에서 고안한 것입니다. 사실 PDF 자체가 어정쩡하죠. 문서를 디지털화했지만 양쪽 다 속하는 듯하면서도 속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출판업계에 발을 디밀고 있는 이 PDF 업체는 정밀한 스케치 도구로밖에 쓰이지 않던 전자펜을 이용해 멀티미디어 파일을 구동하는 초보적인 디지털 교과서를 고안했습니다. 정부의 디지털 교과서 사업이 잘 진행됐으면 이것은 아마 저렴한 비용 이외에는 장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학생에게 태블릿PC는커녕 넷북조차 공급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출판업계가 등돌리고 있는 마당에 IT업체가 디지털 교과서만을 위한 별다른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이것은 그 나름의 돌파구를 찾은 것입니다.
2.
출판업체와 IT업체가 반목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북토피아의 파산입니다. 한국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여기서 터진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컨텐츠를 다루는 관점이 두 업체 간에 너무 달랐죠. "10년 전의 음반기획사/제작사"와 다를 바 없는 출판계의 정저지와성 시각을 탓하기에는 종이 책에서 텍스트만 긁으면 이북이 될 거라고 생각한 이북 업체 역시 개구리이긴 매한가지였습니다. 저작권 문제, 수익 정산 문제, 결제 문제, 디바이스 문제 등 숱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에도 둘 다 안이하게 대처했고, 결론은 북토피아의 파산이었습니다. 그 후로 출판계에서는 이북을 백안시하고, 이북 업체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놈들 어디 두고 보자 식으로 일관하고 있죠. 누군가를 이 간극을 좁혀야 할 텐데 별로 하려는 사람 없습니다. 출판계는 더 심합니다. 최근에 책을 낸 모 출판사의 사장조차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언급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신국판이든 사륙배판이든 그 틀 안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못하죠. 출판에 대해서 한목소리하는 이런 이도 이런 마당에 말단 편집자들이 뭔 생각을 하겠습니까? 저조차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게 6개월이 안 됩니다. 강의를 들으며 고민을 시작한 찰라에 저 어정쩡한 솔루션을 접하고선 그나마 생각이 한 발짝이라도 나간 것이죠.
3.
사실 할 만한 이야기는 다 했지만 조금도 끼적거려 봅니다. 마하반야 님과 제가 공유하는 지점은 디바이스 중심의 관점을 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로 자리 하는 위치가 달라 발생하는 다소 사소한 차이를 빼놓고 한 가지를 더 말해 보면 플랫폼의 통일, 그리고 저작권의 보호입니다. 디바이스는 표준화할 필요가 없다치더라도 플랫폼은 통일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여타의 포맷을 어느 디바이스에서나 가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이 책은 문서의 코덱스라는 동일한 플랫폼이 존재합니다. 때문에 구입만 하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죠. 디바이스는 마하반야 님의 말처럼 태블릿피시로 하든 이북 리더로 하든 하물며 휴대 전화로 하든 자기 능력껏 편한 대로 하면 될 듯합니다. (물론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쓰는 것은 능력껏 구비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콘텐츠는 어느 디바이스에서 구동이 되어야겠죠. 컬러와 흑백은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어느 장치에서나 읽을 만한 가독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미지도 차이나지 않게 보여야 합니다. 여기에 멀티미디어 파일도 동일하게 재생되어야겟지요. 뭐 이런 부분은 마하반야 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4.
저작권 보호도 마찬가지일 수 있으나 그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비교할 만한 게 음반 업계일 텐데 디지털 음원의 판매 수익의 배분을 볼 때 출판사 입장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서점 공급가와 비교할 때 음반 내지는 음원 공급가는 터무니없이 낮죠. 또한 동일하게 무한 복제가 가능해 공급가를 상당히 낮출 수 있는 음반과 그렇지 못한 서적을 비교하기도 어렵고요. 북토피아 파산의 실제 문제는 이러한 수익 배분에서 양자가 전혀 합의하지 못했다는 게 결정적입니다. 서적이라는 규정된 형태가 아닌 하나의 콘텐츠로 본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봅니다. 한때 시 한 편을 디지털 음원처럼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야기가 거론되었는데 들은 지 2년이 넘도록 하나 진전되는 게 없습니다. 아예 이야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비슷한 문제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5.
음반 또는 디지털 음원이 언급되어서 한마디 보탭니다. 종이 책과 음반을 비슷하게 보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음반, 정확히는 시디와 디지털 음원은 동일하게 복제가 가능합니다. 덕분에 무단 복제가 판을 쳐 시장을 망가뜨렸죠. 이것은 음악을 이진수 기호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이죠. 종이 책에 실린 텍스트와 이미지 이것 역시 이진수 기호의 집합으로 변환이 가능하고 재생산과 무한 복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종이 책에 실린 것과 이북에 실린 것은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질과 장정,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라피가 결합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들 역시 얼마든지 이진수 기호의 집합으로 재현 가능하지만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만, 이는 곧 어떤 디바이스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디스플레이에 걸려 버립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종이 신문은 망하는 지경에 처했지만, 신문의 넓은 조판은 여전히 유용합니다. 개개의 기사를 볼 때에는 인터넷에서 브라우저로 보든 이북 리더로 보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 텍스트의 나열로 구성된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겠죠. 하지만 그런 기사의 집합체로서 신문은 너른 판면에 일정하게 배열된 형태로 보아야 정보의 결합과 재구성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영향력은 쇠퇴하기도 하고 하이퍼링크라는 새로운 재구성에 뒤쳐져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는 게 개개 정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구성되는 방식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편집이겠죠. 제가 예전에 지적했던 것 중 하나가 종이책을 그대로 스캔해 또는 텍스트만 긁어서 이북용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이미지를 추가한다고 해도 새로운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라피 등이 요구되는데, 이거 하는 사람이 국내에는 없습니다. 업체는 필요성도 못 느끼고 이쪽의 비전도 없습니다.
6.
"전자책의 시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 동감합니다. 일종의 시대정신 같은 거겠죠. 이런 마당에 하루 속히 변화를 모색하고 선도하는 출판사가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 한숨만 나옵니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인 출판사가 이토록 만만디 하는 것에는 종이에 대한 여전한 수요를 기대해 보기 때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업무 특성상 종이의 사용량이 많습니다. 그런데 들고 다니며 보기 때문이 아닙니다. 워드나 스프레드시트로 문서 하나를 만들어도 출력해서 보지 않으면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피벗이 되는 모니터로 돌려 보는 사람도 있고, 무조건 출력부터 해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이가 주는 높은 가독성은 이북이 아직은 따라잡기 힘든 모양새입니다. 추천해 주신 동영상을 볼 때 결국은 스크롤을 해야 내용을 보는 장면에 눈길이 멈추더군요. 디스플레이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으니 결국은 손으로 밀고 당기고 해야 하나 봅니다. 뭐 익숙해지면 변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것은 이북 리더의 분발이 필요한 지점일 겁니다. 그리고 종이가 외려 덜 환경파괴적일 수도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하이브리드 카를 내놓으면서 친환경적이라 떠드니 누군가 한마디 하더군요. "거기 쓰는 배터리는 지구상에서 완전 분해가 불가능하다." 어느 기기를 막론하고 배터리 이거 참 흉물입니다. 오래 쓰지도 못하는 것이 분해는 불가능합니다. 종이는 잘 태우면 완전연소라도 가능하죠. 물론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키겠지만, 공장 짓는다 농장/사육장 짓는다고 황폐화시키는 숲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좀 쪼잔한 지적이긴 하지만, 현대인이 간과하는 부분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짧게 이야기한다는 게 꼬치꼬치 시비를 가르는 것 마냥 변해 버렸군요. 이 분야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다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마하반야 님 덕에 정리를 해 보네요. 물론 이게 정리한 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생각을 늘어놓은 것뿐이죠. 마하반야 님께 감사합니다. 사실 디바이스 중심의 사고를 경계하는 아이티 업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문제 지적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며 이것에 기초해 생각해 볼 단초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간만에 알라딘 TTB리뷰에 당선됐다. 그런데 간만에 되다 보니 당선축하 적립금이 1/5토막 난 사실에 조금 경악했다. 아낄 것을 아낄 것이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수긍하기란 어렵다. 요즘 같은 시절 적립금 5만원이면 꽤 짭짤하다. 하지만 이젠 꼴랑 1만원이다. 책 한 권 사기도 버거운 금액. 그래도 꽁짜잖아 하는 마음이 반이다. 물론 반은 그래도 원고료라 생각할 만한 건데 5만원은 너무 짜잖아 하는 마음.
이런 거 당선되는 거 보면 신기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껏 24건의 TTB리뷰 중에 이주의 당선작은 5건. 이중에서 모처에서 기사로 써 당선되어도 사양해야 할 것이 5건, 서평단으로 쓴 것이 2건인지라 이것들을 제외하면 17건 중 5건 당선이니 당선율이 1/3을 넘는다. 그리고 이쯤 데이터가 쌓이니 대충 어떤 책들이 당선되는지 얼추 감이 잡힌다. 이를테면 알라딘 담당자가 좋아하는 리뷰라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 마이리뷰로는 당선된 바 없어서 확신은 못하나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막연히 추측한다.
우선 성의 있게 써야 한다. 몇 줄짜리 반토막 감상을 끼적거리는 것으로는 당선, 안 된다. 요구하는 분량을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A4지 반바닥 정도는 써야 할 듯싶다. 물론 그보다 길면 읽다가 짜증 낼 게 분명하다. 그리고 당연스레 인터넷체 같은 인포멀한 말투는 집어던지고 어느 정도 한글맞춤법과 기본 형식은 지켜 줘야 한다. 이것은 당선과 상관없이 글로 인정받는 최소 조건이기도 하다. 글자의 조합은 글이 아니다.
둘, 가급적 근자에 출간되어 소위 잘 팔리거나 서점 직원 입장에서 좀 팔리었으면 하는 책이다. 물론 다소 오래된 책도 당선되기는 하나 당선작 리스트를 죽 보면 최근에 출간되어 세일즈 포인트를 높여 가는 책들이다. 어짜피 TTB리뷰 당선작은 책을 파는 데 뽐뿌질하는 목적으로 뽑는 거다. 알라딘 특성상 인문학/사회과학적 소재를 대중용으로 풀어 쓴 책을 좋아하는 듯. 다만 아주 학술적인 책은 서점의 매출고를 올리는 데 도움되지 않기에 그닥 좋아하지 않는 듯.
셋, 앞의 둘은 너무 빤한 것이니 실제로 쓸 만한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시작은 책과 관련된 개인적 경험을 한 문단 정도로 기재해 주는 것이다. 정색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포멀한 리뷰는 안 읽는 것인지 싫어하는 것인지 담당자에게 별로 인기 없다. 사실 나보고 읽으라고 해도 읽는 둥 마는 둥 할 게다. 앞 부분에서 읽은 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바탕으로 리뷰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글을 읽는 맛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빤한 말이군.
또 빤한 말 한마디 보태면 책의 주요 내용을 압축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 뭐 리뷰라면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막상 리뷰라고 올라오는 것들 보면 그게 불성실한 게 적잖게 보인다. 자, 이렇게 빤하디빤한 전제 조건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리뷰는 리뷰답게 그리고 읽는 이가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서점을 한가득 메우고 있는 자기계발서 마냥 누구나 다 알 법한 빤한 이야기이지만 그게 세상의 이치인 걸 어쩌겠는가.
택배 기사가 박스 하나를 건넨다. 알라딘에서 보낸 택배. 그런데 최근 책을 주문한 적 없는 나로서는 어리둥절하다. 갸우뚱. 혹시 누가 생일선물을 늦게나마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설레는 마음에 택배를 풀어 보니 다소 생뚱맞은 책이다. 그것도 3권이나. 근신-반성-갱생의 시간을 보내는지라 책을 사지 못하는 나로서는 웬 떡이나 싶었다. 그런데 박스 안에 든 송장을 보니 주문자가,
화이부동 님이다.
책을 보아 하니 최근 화이부동 님이 관심을 가지시던 건축 분야 책이 한 권 있다. 얼마 전 화이부동 님에게서 책을 선물받은 적이 있기에 실수로 당신 읽을 책을 최근 배송 주소로 보냈나 싶었다. 좋아 말았다는 생각을 0.03초 정도 했지만 그 나름 유쾌한 일이 아니던가. 어짜피 화이부동 님께 책을 보내드릴 예정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바, 그리고 주문하신 책이 안 와 슬쩍 스트레스 받으실지도 몰라 화이부동 님께 문자 메시지를 보내 드렸다. 블로그 방명록보다는 아무래도 문자 메시지가 빠르니까. 잠깐 후에 도착한 답문은 기가 막혔다.
"자일님께 보내 드린 것 맞습니다."
어라랏 이게 아닌데. 사실 책을 읽어 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집에서 먼지 뒤집어 쓰며 굴러다니던 책을 마땅히 읽을 분에게 보내 드렸을 뿐인데, 두 번에 걸쳐 새 책을 보내 주시다니. 지난번에 썼다가 오류로 인해 결국 사라져 버린 혼잣말이 반복되었다.
"이이이건 반칙입니다!"
책을 공으로 손에 넣은 것은 흐믓한 일이지만 이리 되면 살짝 부담이 된다. 아무리 호혜의 원칙에 따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책을 선물하신 것일 테지만, 사실 무언가를 공짜로 받으면 마음 한 켠은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라는 경구를 속담으로 남기지 않았는가? 그나마 원래 니나노 님과 포로리를 염두에 두고 회사에서 나온 책을 챙겨 두고 있던바, 화이부동 님께 보내드릴 게 없지 않지만 보내는 사람 마음과 받는 사람 마음은 화이부동 님의 선물을 대하는 내 마음을 볼 때 꽤나 다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화이부동 님의 글을 읽고 나서 마침 내게 월러스틴의 책이 몇 권 있기에 보내 드렸다. 본사 왕래하면서 반품 창고에서 언젠가는 건질 만하기도 했거니와 과연 내가 지고 있는다고 해도 그 책들을 언제 읽을까 싶어 마땅히 읽을 만한, 읽어야 할 분에게 드리는 게 책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글에 달린 니나노 님의 "분서갱유할 서적 목록"이라는 말에 화이부동 님에게 무한한 연대(!)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아내들이 남편이 무차별적으로 책 사 들이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구십구 프로 이해하지만 입은 툭 나온다. 책을 수백만 원어치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화이부동 님이 "분서하면, 저도 분신을"이라 답글을 단 데 대해 아내는 "분신은 뭐람"이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내 입장에서는 니나노님이 유생을 생매장한다는 뜻인 '갱유'를 언급한 데 대해 맥락은 알지만 지나친 언사라고 투덜거리는데, 아내는 뜻밖에도 그에 맞서는 화이부동님의 나름 저항 행위인 '분신'을 갖고 뭐라 한다. 한술 더 떠 "마누라들도 맞서서 된장물품들을 사제껴야 해."라고도 한다. 흠. 가재는 게 편이 맞나 보다. ^^;
알라딘에서 구매 리스트를 열어 보니 못 보던 버튼이 있었다. 해당 책의 중고 판매분 등록 여부를 알려 주는 버튼인데, 아쉽게도 활성화가 돼 있지 않아 일일이 해당 책의 페이지를 거쳐야만 하지만, 그동안 늘 바라던 기능이기에 훗훗 했다. 그런데 구매 리스트와 보관 리스트 같은 원래 서재에 고정된 리스트에서만 작동하는 듯. 내가 만든 마이 리스트에서는 중고책 재고가 있음에도 그 버튼은 뜨지 않았다. 좀 아쉽긴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인가 싶어 보관 리스트에서만 작동하는 데 만족.
그런데... 알라린 중고샵 자체가 아내가 늘 말하듯 광화문 교보문고 한구석에 헌책방이 들어선 것 같은 모양새인데, 여기에 한술 더떠 진열된 새 책 옆에 중고책이 몇 권 있다고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듯한 모양새가 아이러니하다. 중고책의 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에 소비자 처지에서는 좋긴 한데, 이 뭔가 어색한 '시츄에이션'을 뭐라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간만에 안티쿠스에서 메일이 왔다. 고전, 역사, 종교, 신화 등을 주로 실은 괜찮은 인문-교양 잡지였다. 하지만 정기 구독이 끝나고 곧이어 잡지가 사실상 폐간되는 바람에 잊고 살았는데 간만의 소식을 받았다. 혹시 재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감에 메일을 열어 봤는데, 아쉽게도 재간에 대한 소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망 그 자체의 메일은 아니었다.
안티쿠스는 창간호부터 16호까지 전 권을 웹사이트에서 PDF로 제공한다. "과월호를 찾으시는 분들과 절판된 호의 내용이 궁금하신 회원 여러분을 위해"라는 메일의 문구를 볼 때 실상 폐간했음에도 과월호를 찾는 사람이 꽤 있나 보다. 그렇다고 이것을 다시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안티쿠스는 PDF로 공개했다. 당연스레 무료로. 고해상도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개인용 프린터로 출력해 보는 데에는 큰 무리 없을 듯하다.
발행인이 굴지의 인쇄-출력 업체의 사장 부인이었던 관계로 어느 정도 독자만 붙어 줬더라면 계속 나올 수 있었을 듯한데, 그 '어느 정도'를 채우지 못해 끝내 폐간됐다고 들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협소한 한국의 인문학 시장은 늘 아쉽다. 그래도 혹시나 찾을지 모르는 독자를 위해 선뜻 PDF로 제공해 무료(물론 웹사이트에 회원 가입은 해야 한다)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전 발행인의 결단은 그나마 그것을 메워 준다 싶다. 그런 힘으로 한국의 인문학은 그나마 버티는지도 모른다.
시사인에 실린 '2009년 인문·사회출판 지형도는?'이라는 기사가 널리 회자된다. 올해 어떤 책, 특히 인문/사회 분야의 책이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다. 도저히 인문/ 사회 분야 전문 출판사라 할 수 없는 출판사가 리스트업되긴 했지만(맛이 갔다고 해도 목록에 빠진 출판사도 있는데...)대체로 올해의 인문/사회 분야 출판 시장의 경향성을 대충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정말 가오 선생 말처럼 저 책들이 2009년에 나올 수 있을까? 바짝 말라 붙다 못해 쩍 갈라진 저수지 밑바닥 같은 인문/사회 분야 출판 시장의 정황상 저 책들의 반이라도 독자의 손에 전해질 수 있을까? 이런 책이야 나오면 나올 수록 좋다지만 그 책들이 경기탓, 정확하게 말하면 독자탓에 사장되어 버리는 것보다 나쁜 건 없다.
출판사 들어오면 상당히 많은 일본어 비스무리한 용어에 고개를 갸우뚱하기 마련이다. 짬밥이 먹어 가면서 차츰 알아가지만 끝내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모르는 말도 많다. 가령 '누끼'라고 해야 할지, '눗기'라고 해야 할지 긴가민가 하는 것처럼. 게다가 이것의 정확한 뜻은 무엇이며 어원은 무엇인지 뭐라 바꿔 쓰면 좋을지에 이르기까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일은 수도 없이 많다.
팀 선배가 작성한 것을 무단으로 전재해 본다. 선배도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취합해 정리한 것일 텐데, 이런 것이야말로 '편집'이 아니던가? ^^;
소통을 위해서는 이런 일본어식 용어를 써야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왜 쓰이냐, 무엇을 말하느냐일 것이다.
가가리 ☞ 이건 뒤에 나오는 ‘아지로(あじろ)’하고 달리 본문의 책등 부분을 실로 꿰맨 후 책을 만드는 거다. 당연히 풀로 붙인 것보다는 튼튼하다. 튼튼한 만큼 값도 비싸다. 보통 제본소에서 실로 꿰매는 기계를 사철기(絲綴機) 또는 가가리기라고 부른다. 또 실로 매는 작업을 가가리토지(かがりとじ, 絲リ綴じ)라고 한다. 거기서 온 말인 듯하다. 우리말로는 실 매기 정도면 어떨까? 참 여기서, 양장과 무선철이란 말을 잠깐 설명한다. 말 그대로, 양장(洋裝)은 서양식으로 장정하는 걸 말한다. 표지에 가죽 따위를 붙이는 걸 말했지만, 요즘엔 가죽 대신에 두꺼운 종이(이를 합지라 부른다)를 넣고 겉을 얇은 종이로 싼다. 그리고 무선철(無線綴)은 실로 꿰매지 않은 제본을 말한다. 줄여서 무선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양장의 반대말이 무선철은 아니다. 즉 무선 양장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그게 아지로 양장이다. 또 실로 꿰맨 다음, 보통 단행본처럼 제본할 수도 있다.
가꾸양장 ☞ 가쿠양장은 각양장(角洋裝)이다. 보통 양장본은 책등이 둥글게 되어 있다. 뒤의 ‘마루(まる)’에서 나온 대로다. 그런데 어린이 책 중에는 책등이 둥글지 않고 각진 형태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바로 그걸 부르는 거다. 일본 말로 가쿠(かく)는 각(角)이다. 그러니까 각진 양장이라고 부르면 된다.
가마보꼬 ☞ 사전 같은 경우, 상자 안에 담긴 사전을 빼내면 상자 아래에 볼록 튀어나온 종이가 있다. 이건 등이 둥근 책의 배 쪽을 받쳐 책의 형태를 유지해 주는 기능을 하는 거다. 가마보코(かまぼこ)는 생선묵을 뜻하거나 보석을 안 심은, 가운데가 볼록한 반지를 뜻한다. 거기서 온 말인 듯하나, 우리말로 뭐라 해야 할는지 궁금하다. 댐판지라고 부르자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좀 어색하다.
겐또 ☞ 여러 색 인쇄를 할 때, 겹쳐 인쇄되는 위치가 정확한지를 맞추는 공정을 말한다. 겐토(けんとう), 즉 見當(견당)은 대체적인 방향이나 어림짐작 따위를 말하는 거다. 우리말로는 가늠 또는 가늠맞춤 정도가 좋겠다.
고바리 ☞ 필름 상태에서 지정된 레이아웃에 따라서 한 면씩 작업해서 완성하는 걸 고바리라고 부른다. 요즘엔 필름 상태에서 필요한 부분만큼 오려서 붙이는 걸 말하기도 한다. 일본 말 고바리(こばり), 즉 小貼(소첩)에서 온 것이다. 다만, 우리말로는 ‘따 붙이기’ 또는 ‘막 붙임’이라고 하면 된다.
교정스리 ☞ 인쇄 전에 색 작업 상태를 미리 확인하기 위해 시험 인쇄물을 만드는 걸 말한다. 우리말로는 색 교정 정도가 맞겠다. 교정스리는 교정이란 우리말에 인쇄를 뜻하는 스리(すり, 刷り)가 붙은 거다. 물론 교정이란 말도 일본에서 온 말이겠지만 말이다. 색 교정(色校正)에 해당하는 일본 말은 이로코세이(いろこうせい)다.
나까도지 ☞ 주간지나 팸플릿 같은 걸 보면 본문하고 표지를 한꺼번에 모아서 반으로 접은 다음 가운데 부분에 철사로 두세 곳 박았다. 이걸 부르는 거다. 일본 말로는 나카토지(なかとじ), 즉 中綴じ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중철(中綴)이라고도 하지만, 아무래도 가운데 매기, 등 매기 정도가 좋겠다.
나까마 ☞ 도매상이 부도날 때면 이런 소문이 떠돌곤 한다. ‘그 업체 나까마도 했다!’ 또 베스트셀러가 터질 때면 나까마 소문이 터지기도 한다. 하긴 이 말은 유통업계에서도 두루 쓰인다. 사전에는 나카마(なかま), 즉 仲間(중간)은 한패나 동료라는 뜻으로 나와 있다. 어떤 이는 그냥 한패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으로 움직이는 한패로 쓴다고도 한다. 여기서 ‘특정한’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러나 우리가 쓸 때에는 기존의 유통 질서 외의 방법으로 영업을 하는 중간상이란 의미로 쓴다.
난쬬 ☞ 제본할 때 접장 과정에서, 즉 장합(張合) 과정에서(일본 말로는 조아이ちょうあい 과정에서) 접장의 순서가 잘못되는 사고를 이렇게 부른다. 난초(らんちょう), 즉 亂丁(난정)이다. 우리말로는 난장(亂張)이나 접장 사고 정도로 쓰자고 한다. 특별한 대안이 없으니 쓸 수밖에……
노리 ☞ 노리는 풀칠이다. 접힌 인쇄물과 책 표지 따위를 풀로 붙이는 공정을 말한다. 노리(のり), 즉 糊(호)는 사전에 풀이라고 나온다. 당연히 우리말로 풀칠이라고 하면 된다.
누끼 ☞ 매킨토시의 그래픽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부분을 오려내는 것을 ‘누끼 딴다’고들 말한다. 일어 사전에서 누키(ぬき)를 찾으면 뺌 또는 생략이라고 소개한다. 우리말로는 그냥 딴다고 하면 되겠지. 괜찮은 말이다. 딴다!
다떼메 ☞ 다테메(たてめ)는 종이의 결이 세로로 나 있는 종목(縱目)이다. 즉 세로결이란 소리다. 종이에도 결이 있느냐고 묻지 마라. 종이가 나무로 만든다는 생각 조금만 해 봐라. 종이를 만드는 기계(초지기)에서 종이를 만들 때 종이의 흐름 방향으로 섬유소가 놓인 경우를 말한다. 좀 어려우면 이렇게 생각하라. 낱장 종이의 긴 변 쪽과 섬유소의 흐름 방향이 같을 경우, 이걸 세로결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로쓰기로 돼 있는 책에서 문자열이 세로 방향으로 짜는 조판을 다테구미라고도 하는데, 이것 역시 세로짜기라고 하면 된다. 다테구미(たてぐみ)는 縱組み(종조)다.
다찌시로 ☞ 책을 제본할 때 마무리 재단을 한다. 그때 잘린 부분을 다치시로(たちしろ, 裁ち代)라고 한다. 영어로는 ‘cutting margin’이다. 우리말로는 재단 여분 혹은 재단 몫이라고 하면 된다.
도무송 ☞ 이건 자름칼을 의미한다. 구멍이 뚫린 표지의 책을 본 적 있다면 바로 거기서 이 자름칼이 사용된다. 일반 재단기로 자를 수 없는 모양의 인쇄물이 필요할 때, 그 형태대로 목형을 만들어 기계 압력으로 그 모양으로 자르는 거다. 일본 말로는 자르는 칼을 뜻하는 切り刃인데, 기리바(きりば)라고 읽는다. 그래서 가끔 ‘기리바’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연히 우리말로도 자름칼 정도면 된다. 근데 도무송은 어디서 왔을까? 어디선가 도무송(톰슨)이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떠오른 추측인데, 이렇다. 일본어로 톰슨(Thomson)을 도무손(トムソン)이라고 쓴다. 말 그대로 ‘도무송’이라고 발음하는 거다. 마라톤(marathon)을 마라송(マラソン)이라고 발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우리가 일본 기계를 수입했는데, 그 기계가 톰슨이란 상표의 기계였던 거다. 당연히 기계엔 トムソン이라고 씌어 있을 거고. 그래서 그렇게 부른 거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그 기계 혹은 기술을 만든 사람이 이름이 톰슨인 거다. 그것도 아니라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추측이 결합한 거다. 우리 회사의 제작 담당자는 두 번째 가설에 힘을 싣는다.
도비라 또는 도베라 ☞ 도비라(とびら). 한자로는 문짝 비(扉). 문짝. (책의) 안겉장, 속표지. 일본에서도 부(部)나 장(章)을 구분하는 건 나카토비라(中扉, なかとびら), 책의 맨 앞에 있는 면은 혼토비라(本扉, ほんとびら)라고 부른다고 한다. 권도비라는 표제지, 부도비라는 내제지 정도가 좋을 듯.
돈뗑 ☞ 원칙적으로 신국판형의 책은 국전지 한 장에 32면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만들다 보면 면수가 꼭 32의 배수로 떨어질 수 없다. 그랬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 둘러치기 또는 같이걸이라고 부르는 돈텐(どんてん)이다. 한마디로 종이를 아끼기 위해 고안된 방법인 거다. 터 잡기된 필름의 마지막 부분에서 1/2돈뗑이니, 1/4돈뗑이니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게 이거다. 그래서 보통은 4의 배수로만 끝나면 된다고들 한다. 둘러치기나 같이걸이보다는 나눠찍기가 좀더 그럴싸하다. 앞의 것은 인쇄소 용어 같고, 아무래도 뒤의 것이 편집용어 같다.
돈보 ☞ 터 잡기(하리코미)된 필름을 교정보거나 원색필름을 교정볼 때 필름 양쪽 끝에 +모양으로 된 표시를 겹친다. 그게 기준선 역할을 하니까. 이를 부르는 거다. 일본어 사전에서 돈보(とんぼ), 즉 蜻蛉(청령)을 찾으면 ‘잠자리’라고 나와 있다. 제작 담당자가 전해준 가설(잠자리 날개 모습하고 비슷하다는)도 그럴싸하지만, 확실한 건 모르겠다. 우리말로는 가늠표나 맞춤표 정도가 어떨까?
똔똔 ☞ 다른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다 보면 아무리 책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해도 결국은 하게 된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최근 읽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가 종내에는 자기 회사 얘길 하게 마련이다. 사장이나 선배를 씹거나 자기가 만든 책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때 나올 만한 얘기가 바로 ‘똔똔’이다. “그래 그 책은 얼마나 나갔니?” “겨우 똔똔은 했어.” 똔똔이 나올 때가 또 있긴 하다. 책값을 매길 때 그렇다. 요즘엔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이란 얘길 많이 하지만, 그게 그거다. “5,000부 기준으로 BP가 얼마야?” “13,000원쯤 하면 되겠네.” 이 대화는 이렇게 바뀌어도 무방하다. “13,000원이면 얼마나 팔아야 똔똔이야?” “한 5,000부는 팔아야겠네.” 돈톤(とんとん)은 본전치기란 뜻으로 사용하곤 한다. 사전에는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인 똑똑’이나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 모양인 척척’이라고 나와 있다. 또 있긴 하다. 속어로 두 가지가 엇비슷함을 말하기도 한단다. 아마도 두 번째 뜻에서 넓어진 말이리라. 똔똔이라도 하면서 사는 인생, 그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마루 ☞ 양장본의 등이 둥글게 되어 있는 걸 본 적 있을 거다. 그 둥근 부분을 마루라고 부른다. 일어사전에서 마루(まる)를 찾으면 바로 한자 ‘알 환(丸)’이란 글자가 뜬다. 뜻은 물론 둥글다는 거다. 일본의 국기를 히노마루(日も丸)라고 부르지 않나? 참, 책등을 그렇게 둥글게 하는 이유는 이렇다. 먼저 책을 여닫기 편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책등이 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책등이 휘지 않아야 책이 오랫동안 안 망가진다. 제본소에서 책의 등을 둥글게 마는 기계를 마루미다시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마루도 그 마루다. 우리말로는 둥근 등 정도면 어떨까? 마루미다시를 원형 가공기라고 부르자는 얘기도 있다.
미까에시 ☞ 미카에시(みかえし), 즉 見返し(견반し)은 책의 면지를 말한다. 요즘은 거의 면지라고 부르니까, 굳이 이 말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 우등생이 되려면 알아서 나쁠 게 없겠지만.
미다시 ☞ 이건 출판뿐 아니라 언론계에서도 많이 쓰는 말이다. ꡔ경향신문ꡕ 박대호 기자가 쓴 ꡔ기자가 쓴 기자 이야기ꡕ(부키 2003)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중견 기자는 기사를 쓸 때 항상 ‘미다시’를 생각한다. 제목이 나오지 않으면 일단 기사가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눈치를 챘겠지만, 미다시(み-だし, 見出し)는 표제 또는 표제어이다. 일본어 사전에는 그 외에도 목차나 색인을 뜻한다고 나와 있기도 하다. 편집할 때도 ‘미다시’란 말 자주 쓴다.
미스꾸리 ☞ 이건 동대문시장에서도 쓰는 말이다. 어떤 제품을 포장할 때 미스꾸리한다고 한다. 또 감방에 있는 사람들도 이 말을 쓴다. 그들은 묶인 묶음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말은 니즈쿠리(にづくり), 즉 荷作り나 荷造り의 와전이라고 한다. 그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짐을 꾸림 또는 포장이라고 나와 있다. 우리말로는 ‘포장하다’ 혹은 ‘묶다’로 쓰면 되겠다. 니즈쿠리를 미스꾸리라고 말하는 건 사실 좀 창피한 짓이다.
미조 ☞ 미조는 홈이다. 양장으로 제본된 책의 표지와 등 사이에 표지가 잘 여닫힐 수 있도록 세로 홈이 나 있다. 그게 미조다. 미조(みぞ), 즉 溝(구)는 홈이다. 우리말로도 홈이라고 하면 된다.
베다 또는 뻬다 ☞ 인쇄할 때 망점으로 인쇄되지 않고 잉크가 통째로 묻은 부분이다. 즉 인쇄물의 농담이 100% 망점으로 인쇄된 것을 의미한다. 일테면, ‘베다를 먹으로 처리하라’는 말은 ‘바탕 면을 검은색으로 처리하라’는 말이다. 일어사전에서 베타(ベタ)를 찾아보면, ‘빈틈이 없음’ 또는 ‘온통’이라고 나온다. 우리말로는 민판 정도가 어떨까? 판 앞에 ‘꾸밈이나 딸린 게 없음’을 뜻하는 접두사 ‘민’을 붙여서 말이다.
베다스리 ☞ 위에서 베타(べた)란 걸 살펴봤는데, 베다스리란 말도 있다. 인쇄물에 완전히 잉크가 묻도록 하는 인쇄를 이른다. 베타스리(べたすり)라고 읽는 게 맞고 우리말로는 민인쇄라고 하면 좋겠다.
베라 ☞ 제지회사에서 나오는 종이는 둥그렇게 말린 화장지처럼 생겼다. 그건 윤전기 같은 걸 사용하는 대규모 인쇄에서 쓴다. 단행본 인쇄에서는 주로 낱장으로 인쇄를 한다. 베라(べら)는 낱장이나 매엽지(枚葉紙) 또는 낱장으로 된 인쇄물을 의미한다. 영어의 ‘sheet’에 해당하는 거다. 낱장이 딱 좋다.
비니루바리 ☞ 표지 같은 데 얇은 플라스틱 필름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코팅’이 이거다. 영어로는 ‘비닐 라미네이팅’(vinyl laminating)라고 부르고, 일어로는 비니루바리(ビニル貼り)라고 한다. 필름 입히기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고 이미 굳어진 채 사용하는 라미네이팅으로 하자는 사람도 있다. 난 후자 쪽이다. 그리고 여기서 팁 하나. 책 표지에 얇은 필름을 입히는 걸 부를 때 코팅이라고 해야 옳을까, 아니면 라미네이팅이라고 해야 옳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필름을 입히는 건 라미네이팅이라고 해야 한다. 코팅은 얇은 필름을 입히는 게 아니라 화학약품을 직접 뿌리는 걸 말하는 거다. 여성지의 화장품광고나 속옷광고 지면을 보면 무척 반짝거리는 걸 볼 수 있다. 이건 그런 효과를 내는 안료(顔料)를 직접 뿌린 거다. 즉 코팅한 거다. 요즘엔 단행본 표지에서도 UV코팅 같은 걸 하기도 한다.
사시꼬미 ☞ 책 사이에 엽서나 다른 광고물을 끼워 넣는 공정이나 그 광고물을 이른다. 사시코미(さしこみ), 즉 差し込み는 찔러 넣는 거나 플러그 같은 걸 말한다. 사이 넣기가 적당하다.
사양 ☞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컴퓨터의 사양은 이렇습니다. 시피유는 어쩌고 저쩌고~” 홈쇼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사양도 원래 우리말에는 없는 거다. 일본 말에서 온 건데, 시요(しよう, 仕樣)의 한자를 그냥 우리 식으로 읽은 거다. 일을 하는 방법, 도리 등을 뜻하는 단어란다. 사전에도 설명, 설명서, 품목 따위로 바꿔 쓰라고 권한다.
세네카 ☞ 사람이나 동물뿐 아니라 제목 등이 적힌 부분도 등이라고 부른다. 일어사전에서 세나카(せなか), 즉 背中(배중)을 찾아보면, 등, 뒷면, 표리관계 등으로 나와 있다. 우리는 ‘등’으로 쓰면 된다. 참고로 세하바(せはば), 즉 背巾(배건)는 등두께 혹은 등폭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니까 세나카를 세네카로 부르는 것은 위에서 얘기한 대로 니즈쿠리를 미스꾸리로 부르는 짓과 같다.
소부 ☞ 소부는 인쇄할 때 네거티브필름이나 포지티브필름을 놓고 빛을 쬐어 화상을 만드는 일을 말한다. 실제 인쇄 바로 직전 과정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터 잡기를 통해 얻은 필름 원판으로 실제 인쇄기에 걸 인쇄판을 만드는 일이다. 일본 말로는 야키쓰케(やきつけ), 즉 燒付け다. 그런데 燒付け에서 燒付를 그냥 우리 식으로 읽어버린 거다. 燒付가 소부니까. 재미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소부야끼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끼? 야끼만두가 생각난다. 야키(やき)가 곧 燒き니까. 우리말로는 빛쬠이나 노광이라고 하자는데, 좀 어색하다. 뭐가 좋을까?
스리지 ☞ 여기서 스리는 위의 교정스리나 베다스리에 나온 그 스리(すり, 刷り)다. 그리고 지(紙)는 물론 종이다. 일하다 보면, “스리지 나왔니?”란 말 종종 듣는다. 이건 색교정을 낸, 즉 교정스리를 낸 종이가 나왔느냐는 소리다.
시아게 ☞ 끝손질이나 작업의 마무리를 뜻하는 말인데, 마무리 재단을 일컫는다. 시아게(しあげ), 즉 仕上げ(사상げ)도 그런 뜻이다. 끝손질이나 마무리 재단 정도면 좋을 듯. 어릴 적 어머니가 뜨개질을 하실 때 마무리하는 작은 바늘을 시아게 바늘이라고 한 게 생각난다.
시오리 또는 서오리 ☞ 읽던 곳을 찾기 쉽도록 책장 사이에 끼워 두는 종이오리, 즉 서표(書標)를 일본 말로는 시오리(しおり)라고 부른다. 가름끈, 보기끈, 서표, 서오리, 보기끈, 갈피끈 등. 서오리는 서(書)에 ‘しおり’의 ‘오리(おり)’가 합쳐진 것 같다. 물론 서(書)에 ‘가느다란 가닥’을 의미하는 우리말 오리가 합쳐진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 관행으로 봤을 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시와 ☞ 종이에 생긴 주름을 시와라고 부른다. 일본 말로 주름을 시와(しわ), 즉 皺(추)라고 부른다. 皺는 주름 추 자다. 주름은 인쇄할 때, 접지할 때, 종이를 한 권 분량으로 모으는 장합 때 등 여러 공정에서 발생한다.
싸바리 ☞ 양장본에서 합지에 달라붙은 표지가 있는데, 그 표지는 싸바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싸바리는 표지를 안으로 싸 넣고 면지를 다시 붙이는 공정을 일컫는다. 그 속표지를 자세히 보면, 위의 정의처럼 되어 있다. 팬시상품 같은 데에서도 싸바리라는 용어는 두루 쓰인다. 싸바리는 과연 어디서 온 말일까? 내 추측인데 이렇다. ‘싸다’란 동사의 어간 ‘싸’에 인쇄 쪽에서 흔히 쓰는 ‘~바리(ばり, 貼り)’가 붙은 것이다. 고바리나 비니루바리 같은 데서 쓰는 ‘~바리’ 말이다. 그러나 내 추측은 틀렸음이 밝혀졌다. 나중에 전문가한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싸바리’가 아니라 ‘싸발이’가 맞단다. 싸서 바르다는 뜻이란다.
쓰가미혼 ☞ 책이 제대로 인쇄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인쇄가 끝나면 완성된 형태로 책을 묶어 확인한다. 이때 견본으로 묶는 책을 쓰카미혼(つかみほん), 즉 束見本(속견본)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본보기책, 견본책으로 부르면 된다. 견본이란 단어도 일본에서 온 것이겠지만 말이다.
아다마 ☞ 아타마(あたま)는 머리[頭]다. 물건의 꼭대기를 일컫기도 한다. 이쪽에서는 제본할 때 본문을 모아 재단한 세 면 중 위쪽을 이른다. 또는 책 위쪽의 여백을 가리키기도 한다. 덴(てん)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건 天(천)이다. 우리말로는 윗마구리, 윗여백, 머리 정도가 좋다.
아미 ☞ 아미(あみ)는 그물 망(網). 스크린 촬영(망 촬영)할 때 크고 작은 점으로 표현하는데, 그때의 점을 말하는 거다. 요즘에는 컴퓨터 출력장치에서 글자나 그림을 만드는 점을 말하기도 한다. 음영(陰影) 정도가 어떨까?
아지노 ☞ 책을 제본할 때는 본문과 표지가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몇몇 방법을 쓴다. 실이나 철사로 묶거나 접착제를 붙이는 방법이 그거다. 아지로(あじろ)는 뒤의 방법을 말하는 거다. 본문을 순서대로 접은 다음, 책등에 붙을 부분에 얇은 톱으로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그 구멍과 등 부분에 접착제를 붙이는 거다. 톱질을 하는 건 물론 표면적을 넓게 해서 접착제를 많이 묻히려는 이유에서다. 당연히 책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あじろ는 어살, 즉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하천 여울에 둘러친 살[矢]이나 대나무 같은 걸로 엮은 돗자리 같은 걸 뜻한다. 아지로란 말은 거기서 온 것 같다. 우리말로 어살매기라고 부르자는데, 어살[魚矢]을 독음한 것이므로 사실 그게 그거지만, 그거라도 써야 할 성싶다. 단 아지노로 쓰진 말자. 아지로다.
오도시 ☞ 재단할 때 나오는 자투리종이나 자투리종이를 자르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자투리종이 혹은 자투리종이 자르기라고 부르면 된다. 오토시(おとし)에는 떨어뜨림, 함정, 끝맺음 등의 뜻이 있다.
오리꼬미 ☞ 제본할 때, 인쇄된 종이를 면수가 제대로 되게 접는 걸 말한다. 오리코미(おりこみ), 즉 折りみ는 신문 같은 데 광고지 같은 걸 접어서 끼워 넣는 걸 말한다. 신문업계에서 전파된 말인 것 같다. 그냥 접지 정도로 하면 되겠다. 광고지 같은 걸 집어넣는 건 이쪽에선 사시코미(さしこみ)라고 부른다.
오비지 ☞ 제본소에서 책이 완성되면 물론 납품을 해야 한다. 당연히 납품할 때는 책을 몇십 권씩 묶어야 한다. 그게 편하니까. 요즘에는 주로 두꺼운 합지를 묶음의 위아래에 대고 묶는다. 그러나 아직도 누런색 종이를 사용해 묶음을 두르는 경우도 있다. 이때 두르는 종이를 오비지라고 부른다. 사전에도 오비(おび), 즉 帶(대)는 띠로 나와 있다. 일본 옷에서 허리에 두르는 띠. 이렇게 나와 있다. 어떤 이 중에는 오비지를 특정한 종이이름, 즉 누런 띠지를 일컫는 말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종이 이름은 따로 있다. 시멘트 부대 등에 쓰이는 종이인데, 그 종이는 크라프트지(kraft paper)라고 부른다. 크라프트펄프를 이용해 만든 종이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오시 ☞ 오시(おし), 즉 押し(압し)는 누름 또는 누르는 물건, 밀다 등을 뜻한다. 이쪽에서는 물건을 담는 상자 같은 데의 겹치는 부분에 주는 누름자국을 말한다. 아주 두꺼운 종이로 표지를 만들 때에도 접히는 부분에 이 누름자국을 줘야 한다. 그래야 접히니까. 또 양장본의 재킷에도 이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래야 생산성이 높아지니까 말이다. 당구용어 중에서 끌어치기를 의미하는 히끼(ひき, 引き)란 일본 말이 있는데, 그 말의 반대말이 바로 이 오시(おし, 押し)다. 흰 공이 빨간 공을 때린 후, 다시 앞으로 나가는 기술을 말한다. 물론 우리말로는 밀어치기라고 해야 한다.
와꾸 ☞ 이건 건설업계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와쿠(わく)는 콘크리트 공사 등에서 쓰는 거푸집이나 테두리를 뜻한다. 안경테도 메가네노와쿠(めがねのわく)라고 부른다. 인쇄소나 제본소에서도 쓰지만, 편집할 때도 이 말 간혹 쓴다. 본문에 들어가는 표를 부르기도 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때에 따라서 틀, 표, 맥락 등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요꼬메 ☞ 이건 가로결이다. 요코메(よこめ), 즉 횡목(橫目)이란 소리다. 가로결이 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세로결의 반대니까 말이다. 세로결이 뭔지 모르겠다면, 위의 다떼메를 읽어보라. 그럼 요코구미(よこぐみ), 즉 橫組み는 뭘까? 당연히 가로짜기다.
우라 ☞ 우라(うら), 즉 裏(리)는 뒤나 뒷면, 반대, 안 등의 뜻을 가진 말이다. 이쪽에서는 인쇄물의 뒷면을 이렇게 부른다. 그러니까 뒷면 정도로 하면 된다. 당구를 칠 때, 우라마시라는 게 있다. 정확한 말은 우라마와시(うらまわし, 裏回し)이고, 여기서 우라가 바로 이 우라다. 물론 그것도 뒤로 돌려치기가 맞는 말이다.
조아이 ☞ 제본소에서 인쇄된 종이를 접은 후, 접힌 종이를 페이지 순으로 모아 한 권 분량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접장모음, 접지모음이라고 한다. 실제 제본소에서는 장합(張合) 또는 정합(丁合)이라고 한다. 정합 역시 소부처럼 그냥 읽어버린 거다. 일본 말로 丁合(ちょうあい)이니까.
찌라시 ☞ 이 말은 출판 쪽에서만 쓰는 게 아니니까 뜻은 알 거다. 치라시(ちらし), 즉 散らし는 흩뜨림 또는 삐라라는 뜻이다. 삐라라는 말도 정감 있지만, 전단 정도가 괜찮을 듯하다.
카바 또는 자켓 ☞ 양장본을 보면, 속표지 말고 완성된 책 위에 다시 표지를 하나 덮어씌운 경우가 있다. 그 덮어씌운 표지를 재킷이라고 부른다. 영어의 book jacket을 일본사람들은 ‘쟈껫또(ジャケット)’로 불렀다. 그네들 외래어발음법이 그러니까. 이게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와 무척 많은 사람들이 쟈켓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카바’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cover의 일본어식 발음인 カバ을 본뜬 것이리라. 재킷을 제외한 표지를 커버로 부르는 경우는 있어도 재킷이 있는 경우에는 둘을 구분해 부르곤 한다. 즉 두꺼운 합지에 풀로 붙인 표지를 커버라고 하는 반면, 그 위에 다시 덧씌운 표지는 재킷이라고 부른다. 요컨대 재킷이나 겉표지 정도로 불러야 할 듯하다.
하리꼬미 ☞ 하리코미(張り込み). 낱장의 필름을 레이아웃 기준에 맞춰 커다란 대지필름에 붙이는 일을 말한다. 즉 제판용 원판을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터 잡기란 용어로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하다.
하모노 또는 코모노 ☞ 광고지나 엽서 등 책자도 아니고 모양도 일정하지 않은 인쇄물을 하모노 또는 고모노라고 한다. 하모노(はもの), 즉 端物(단물)은 전부 갖추어지지 않은 것 또는 모자라는 것을 이른다. 또 고모노(こもの), 즉 小物(소물)은 자질구레한 도구를 말한다. 우리말로 잡물(雜物) 정도면 될 것 같다.
하시라 ☞ 하시라(はしら)는 책의 면주(面註)다. 면주가 뭔가? 책에서 각 면의 위나 아래 또는 본문 바깥쪽에 넣는 절이나 장의 제목, 면수 등을 이르는 말이다. 일어사전에도 기둥 주(柱) 자로 나와 있다.
혼가께 ☞ 혼가케(ほんがけ), 즉 本掛け(본괘け)는 인쇄용어다. 인쇄할 때, 앞판과 뒤판을 따로 제판해서 인쇄하는 방법이다. 앞판을 먼저 인쇄하고, 뒷면에는 뒤판을 인쇄하는 거다. 그냥 접으면 되니까 말이다. 우리말로는 따로걸이라고 부른다.
혼스리 ☞ 인쇄판을 인쇄기에 붙인 다음, 색맞춤과 가늠맞춤 등의 준비작업을 한다. 이 과정을 포함해 인쇄물이 제대로 나왔는지를 살피는 것을 인쇄교정이라고 한다. 인쇄교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본인쇄에 들어가는데, 이를 혼스리(本刷り, ほんすり)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본인쇄라고 부르면 된다. ■
오래 전에 사두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펼쳐 보지 않았던 헌책을 꺼내 펴 보았다. 면지에 적힌 84년의 기록. 학교, 학과, 학년, 그리고 두 개의 이름(아마도 사 준 이와 받은 이인 듯). 그리고 이어지는 누리끼리한 바랜 종이들...
책은 저자 서문에서부터 밑줄이 한 가득이다. 책을 죽 넘겨 보니 적으면 1/3, 많으면 2/3 정도 밑줄이 그어져 있다. 그것도 모나미 173 볼펜을 자 대고 쭉쭉 그은... 아마 저학년들이 학습을 열심히 하려고 티 낸 흔적이겠지. 이따금 붉은 색 볼펜으로 중요함을 강조한 부분도 있고, 동글뱅이나 연번이 쳐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정도로 밑줄을 그어 놓으면 무엇이 중요한 부분이고 무엇이 덜 중요한 부분인지 어떻게 알까나? 책의 원 소유주의 집요함은 책의 마지막 문단에까지 밑줄을 쳐 놓는다. 밑줄이 안 그어진 속표지와 미주뿐. 차례에도 동글뱅이가 쳐져 있다.
초심자들은 책을 읽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을 때 일단 그어 놓고 본다. 그러다 보면 줄은 한 면을 가득 채우기 일쑤다. 왜냐면 다 모르는 내용이 줄줄이 나오는데 뭐가 중요한지 뭐가 덜 중요한지 알 수 없기 때문. 그리고 나름대로 성심성의를 부린다고 자 대고 밑줄을 긋는다. 초심자들이 그렇다면 중급 이상들은 안 그런다는 말. 한 면에 그치지 않고 길게는 한 챕터를 다 읽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밑줄이 서너 줄을 넘을 것 같으면 밑줄 대신 박스를 친다. 그리고 의문점이나 더 생각해 볼거리가 있으면 여백에 뭐라 적어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다 노트에 옮겨 적는다. 당근 노트는 삼공노트이다. 옮겨 적은 것들은 다른 책을 읽으며 해결한다. 그리고 책을 다시 읽는다.
필자나 역자는 물론 출판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의 결정체인 '책'에게 '50% 세일'이라든지 '7천 원 균일가'라든지 하는 말은 가혹한 세상살이의 징표이다. 엄청난 출판 시장의 불황기에 결국 출판사들은 언 발에 오줌 놓기 형식으로 덤핑을 시작했다. 이미 예견했던 바. 하지만 막상 그리 접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게로 달아 팔아도 시원찮을 책이 있으면, 고이고이 서가에 모셔 두고 틈틈이 꺼내 볼 책도 상존하는 법. 괜찮으나 도무지 안 팔리는 책만 내놓는 모 출판사도 결국 제살 깎아 먹기의 대열에 나섰다. 그 출판사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16만 원짜리 책을 전부터 탐냈는데, 마침 30% 할인으로 나오기에 접수할까 했더니 결제가 전처럼 5% 할인으로 되는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시스템 오류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기다렸더니 아예 5% 할인으로 수정됐다. 헛. 이럴 수가. 거기에서 나오는 적잖은 적립금을 산울림 박스 세트 사는 데 쓰려 했는데... 흑흑.
아무튼 10% 할인해 주는 다른 인터넷 서점이 있어 그쪽에서 주문했다만, 왠지 그 출판사들의 괜찮은 책이 아른거린다. 그 책이 아니면 그 책만큼의 다른 책도 사랑해 줄 텐데... 사실 그 책은 한정판이기는 하지만 16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아무도 쉽게 사려들지 않을 테니 품절되는 일은 생각만큼 일어나지 않을 텐데.
요즘 같은 세상 책 한 권 못 살 형편이라 꼭 필요한 책도 덜덜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실탄으로 싼값에 사 들이는 인간도 있을 게다. 물론 나라고 전자였던 적이 없을까? 대학 시절 지지리 책 안 읽던 데는 어려운 책만 읽어야 할 것 같은(혹은 읽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을 받은) 강박도 강박이었지만, 살 돈도 꽂아 둘 공간도 언제나 넉넉지 않았던 연유가 살포시 숨어 들어 있다.
현 직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근무 조건은 도서구입지원비 지급이다. 일정 한도 안에서 도서 구입비의 60%를 지원해 준다. 몇 가지 제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책값의 40%만 더 지출하면 책을 꽤 많이 살 수 있다. 입사 초기 팀장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자기는 읽든 안 읽든 한도액을 꽉 채워 산다고 했다. 책 지름질을 좋아하는 나로서 마다할 리가 있나? 1월부터 지금까지 한도액을 꽉꽉 채워서 때로는 1-2천 원 정도 초과하면서 책을 사들이고 있다. 물론 지원비가 나온다 하지만 엄연히 40% 만큼의 비용은 지출해야 하는 만큼 아내는 도끼눈을 뜨지만 아내의 책까지 일정 정도 지원비로 사면서 입막음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왠지 이 한도를 안 채우면 손해 볼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다 언제까지 지금 회사를 다닐지 모르지만 서가를 채울 수 있을 때 팍팍 채워 놔야 나중에 놀아야만 할 때 덜 괴로울 듯싶다. ^^;
사는 건 둘째치고 이 책을 다 읽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한 달 내내 꼬박 읽어도 감당하기 힘든 양을 매달 사들이는 통에 사실 만화책을 제외하곤 책은 그저 꼽아 두는 용도로 쓰는 건 사실이다. 특히 알라딘에서 중고샵을 개장하면서 초반에 중고의 특성상 한정 상품이라는 데 혹해 마구잡이로 사들이기도 해 더 문제이다. 이 속도로 가다간 내년에 이사를 가야 할 때 이삿짐센터 사람들로부터 한소리 들을 하지만, 재작년 비로소 처음으로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기까지 그동안 언제라도 거처를 옮길 수 있도록 가능하면 짐을 주려야 했는데다 학비와 생활비를 근근이 조달하느라 책 한 번 제대로 못 사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책은 살 수 있을 때 사 놔야만 할 듯하다. 하지만 원칙은 필요한 법. 에세이 류처럼 한번 툭 읽고 마는 책은 가급적 제외하고 인류사의 고전이나 개념 정리 사전 같은 두고두고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 그리고 일단 꽂아 두면 집안의 품격을 높이는 가오 지향의 책을 주로 사려 한다. 물론 그것은 바람일 뿐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는 책을 사면 서평이라도 쓰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서평을 쓰기는커녕 제대로 읽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매달 두세 편 정도는 꼬박꼬박 서평을 쓰려 노력한다. 비록 쓰지 못하더라도 읽으려 노력하지만, 펴 보기만 하고 끝내 읽지 않은 책이 무척 많다. 그래도 그렇게 책으로 채워져 가는 서가를 보면 위는 굶주려 있어도 배가 부른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가뜩이나 출판가 불황이라는 말이 많은데 책 만드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사 줘야 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3개월 된 아이도 나 닮아 책이 좋은지 거처인 안방보다 책 먼지 가득한 서재방을 더 좋아한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대견하다. 아마도 점점 내가 읽는 책보다 아이가 읽을 책이 많아지리라. 그리고 아이가 제법 크면 나랑 서로 자기 책을 사겠다고 싸우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거기에 아내도 한몫 거들겠지. 생각만 해도 흐믓하다.
2008년에 산 책 목록
1월(16권-2권 되팖) 커피
십자군 이야기 1, 2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책과 세계 -> 소유분 실종으로 재구매
@
도시의 창, 고급호텔 -> 챕터 서너 개 읽고 알라딘에 되팖.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 카리스마, 브랜드 네이밍 -> 업무용 구입 도서
핫도그를 먹을까 핫덕을 먹을까 외래어 표기법 -> 업무용 구입 도서
3초 안에 반응이 오는 카피라이팅 -> 업무용 구입 도서
현대문자생활 백서 우리말 맞춤법.띄어쓰기 -> 업무용 구입 도서
한국 철학 스케치 1, 2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내 소유
@ 퀘스트 -> 헐값에 사서 구매가보다 비싸게 알라딘에 되팖.
그리스 비극 - 에우리피데스 편 -> 아내 소유
개념어 해석
2월(14권)
중세의 가을
치즈와 구더기
레제르 1, 2
기독교의 교파 - 그 형성과 분열의 역사
The Left 1848-2000
문화과학의 논리 -> 아내 소유
헤겔예술철학 -> 아내 소유
삼국전투기 1
열린책들 편집매뉴얼 -> 업무용 구입 도서
[중고]인간 없는 세상
[중고]애덤 스미스 구하기
[중고]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고]자본론 1 -상
3월(14권)
[중고]자본론 1 -하
[중고]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중고]현대 문학.문화 비평 용어사전
[중고]정훈이의 내 멋대로 시네마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3-2
정치적인 것의 귀환 -> 아내 소유
조선의 문화공간 1, 2
건방진 우리말 달인 -> 업무용 구입 도서
삼국전투기 2
[중고]세기말 비엔나
4월(17권)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아내 소유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 아내 소유
트래블홀릭-남유럽편 -> 아내 소유
세상의 모든 철학 -> 수업 교재
서양의 지적 전통
[중고]학교계급과 재생산
[중고]루트와 코드
[중고]온가족이 함께 읽는 신약성서
[중고]고양이대학살
The Art Book
필름 속을 걷다
삼국전투기 3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 출산/육아
삐뽀삐뽀 우리 아가 모유 먹이기 -> 출산/육아
[중고]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중고]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중고]지식의 최전선
5월(21권)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서구 정치사상 고전 읽기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사랑의 기술 -> 아내 소유
성장, 그 새빨간 거짓말
세계 신화 이야기
[중고]역사스페셜 1~7권 세트
[중고]현대 자본주의의 유형
[중고]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중고]21세기의 동양철학
중세의 형성 -> 아내 소유
로마공화정 -> 아내 소유
[중고]습지생태보고서
닥쳐라 세계화
정훈이의 뒹굴뒹굴 안방극장
6월(21권)
불한당들의 세계사 -> 아내 소유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
켈트 이야기
[중고]다산 정약용
[중고]테이레시아스의 역사
[중고]신들의 전성시대 -> 소유분 분실로 재구매
[중고]경제학의 향연
수사학 -> 아내 소유
유리피데스에게
흰기러기 -> 업무상 구입했다 개인 구입으로 전환
땡땡의 모험 3부 8권 세트
[중고]가톨릭교회
[중고]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중고]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1
7월(17권)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에티오피아 대장정
이데올로기 -> 소유분 분실로 재구매
이즘 - 철학 정치편
콩고에 간 땡땡
픽션들 -> 아내 소유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꿨는가
그리스 비극의 이해
삼국전투기 4
아틀라스 한국사
왼손과 오른손 -> 아내 소유
UFO학 인류학과의 조우
도마 위에 오른 밥상
장미의 이름 읽기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 출산/육아
[중고]도자기
종교, 지도로 본 세계 종교의 역사
8월(11권)
지나간 미래 -> 아내 소유
알렘 -> 아내 소유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미국에 간 땡땡
시베리아 횡단열차
[중고]서양 미술사 1
한자왕국 -> 아내 소유
고전영화본색
아름다운 바다
서양사 개념어 사전
한국근현대사사전
9월(14권) 위대한 영화 1, 2권 세트 인간 칼잡이들의 이야기 -> 아내 소유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 베네치아의 전설 변화하는 세계의 아틀라스 사랑의 이미지 -> 아내 소유 푸른 연꽃 내 별자리의 비밀언어 20 대한민국 식객요리 춘하추동 봄, 여름, 겨울, 가을 세트
10월(20권)
셰익스피어의 기억 -> 아내 소유
러시아 미술사 -> 아내 소유
발견 :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사마르칸트의 황금궁전
발견 :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일곱 개의 수정구슬
추리소설의 세계
특급추리여행
본격 제2차세계대전 1권
GM(General Manager) 1차전
삐뽀삐뽀 119 이유식 -> 출산/육아 [중고]사나운 새벽 2, 3, 4 [중고]국가와 사회혁명 [중고]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중고]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2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황금 집게발 달린 게
미의 역사
11월(4권)
매그넘 매그넘 공산당 선언 -> 에릭 홉스봄 모던에디션 서문 게재된 절판본 사상의학 바로 알기 자연의 빈자리
12월(12권) 세상을 바꾼 사진 철학하는 예술 -> 아내 소유 여성예술가 -> 아내 소유 애욕전선 이상없다 2 아이가 나를 미치게 할 때 -> 출산/육아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스페인어 급하신 분을 위한 표현백서 -> 아내 소유 독이 되는 부모 -> 출산/육아 닥터 고의 우리 아이 명품 건강법 -> 출산/육아 가톨릭에 관한 상식 사전 경이로운 생명 (특별보급판) 브루넬레스키의 돔 -> 아내 소유
합계를 내 보니 171권을 샀고 그중 2권은 되팔았으니 결과적으로 169권을 산 셈이다. 참 징그럽게도 많이 샀다. 서가가 대번에 포화 상태에 이르었다. 그런데 이중 만화책을 빼면 한 30권쯤 읽었을까? 아니 20권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생태적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이 그리 내밀화한 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 정도는 가졌던 후배에게 에어캡(일명 뽁뽁이)는 필요하지 않은 거추장스러운 사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야겠다 말했다. 그런 후배에게 인터넷서점의 할인액을 이야기하는 건 아무 의미 없었다. 후배는 이미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반생태적으로 살아선 않아야 함을 이미 내비쳤기 때문이다.
책을 비롯해 시디, 디비디, 커피, 아이 용품 등을 거의 대부분 인터넷쇼핑몰에서 구매하는 내게 에어캡은 친숙하다 못해 내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접하는 물건이다. 상품을 안전하게 내게 가져다준다는 본래의 목적 말고도, 톡톡 터트리는 재미로 스트레스의 극히 일부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물건을 풀어 버리면 처치해야만 하는 쓰레기의 근원이기도 한다. 다른 비닐과 함께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수거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내 곁에서 치우는 것일 뿐,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따금 후배의 말이 머릿속에서 겹쳐져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인터넷쇼핑물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비굴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기도 하다. 잠깐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 불편한 건 나중 문제이다.
주문하는 상품에 따라 여전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으로 돌돌 말려 오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알라딘은 "흔들림없는 에이스포장"이라는 이름 아래 거창하게 랩 포장을 한다고 홍보한다. 마침 주문한 상품 가운데 그렇게 포장돼 온 상품이 있어 살펴보니, 책 두 권이 불쌍할 정도로 비닐에 압착돼 판지에 착 달라붙어 있다. 이 정도 상태가 유지된다면 업체 입장에서는 자랑할 만하다. 좀 더 다양한 판형과 두께의 책을 포장한 것을 봐야 확실히 안심하겠지만, 큰 문제가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확실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보다는 소요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었다. 에어캡이든 에이스포장의 비닐이든 실제로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 구매 패턴에 따라 예측되는 누적량을 보건대 확실히 내가 버려야 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후배의 말로부터 10%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지도 않을까?
한 출판사 편집장이 자기 블로그에 최근 출판가 불황에 대해 자기 회사의 방침에 대해 포스트를 올렸다. "지금보다 생산량(출간 종수)을 두 배로 늘려서, 원활한 자금회전을 도모"하자는 게 회의 결과의 논지인데, 그 편집장은 그것에 대해 "회의를 통해 얻어진 것이라기보다는 회사에서 우리 부서에 내린 오더에 가깝다"라고 말한다. 책의 만듦새나 마케팅 전략을 종종 까던 출판사인데 아예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한마디로 사장에 대해 '이뭐병'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집 없는 사람이 많으니 집을 많이 지어야겠네'라는 말도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이지 않다. (대부분 실용서와 자기계발서겠지만) 팔릴 만한 책만 골라 내겠다는 말이 차라리 낫다 싶다. 책을 고르고 만들고 팔면서 영혼을 괴롭힐지라도 기약도 대가도 없이 야근과 특근을 잔뜩 쳐 바른 막장의 길로는 안 이끌 수 있으니.
사장의 독단적 결정이 아닐지라도, 편집장이 악의적으로 왜곡해 포스팅했다 해도, 공급량을 늘려 금융과 시장을 활성하겠다는 그 어떤 정책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80여 년 전에 공급이 수요를 이끈다는 세이의 법칙은 무용지물이 됐다. 무용지물을 다시 되살리려 했던 레이거노믹스도 파산했고, 그마저도 다시 되살리려 한 신자유주의는 지금의 경제 불황의 근원이 됐다. 왜 이토록 반복되는 기본적인 패턴을 자꾸 망각하는가?
초등학생 3학년 아들을 둔 한 선배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위기탈출 시리즈나 살아남기 시리즈라 한다. 책 사 주는 데는 인색하지 않지만, 선배는 도대체 왜 아이가 공룡 세계나 곤충 세계에서 살아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한다. 이번에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가 나왔다는데, 앞으로 어떤 데서 살아남아야 하는 책이 나올까? 물론 아이도 그런 데서 살아남으려 읽는 게 아니라 그저 재미있으니까 사달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맘때쯤 여자아이들이 동화책을 읽는다면, 남자 아이들은 대체로 이런 책들 좋아한단다. 그런데 난 그때 어떤 책을 좋아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초등 고학년 즈음에는 추리소설에 빠져들었는데, 중학년 시절은 위인전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나 또한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 나이 때부터 씨잘데기 없는 데 참 관심이 많았던 나이기에 있었다면 분명 좋아했을 게다.
어제 모 1인출판사 사장과 점심을 함께할 자리가 있었다. 이제 과학/경제 교양 서적 10권 낸 신생 출판사 사장이신데, 얼마 전 모 인터넷서점의 본부장급 사람이 했다는 말을 읊어 주신다.
"인문교양 서적? 그거 사치품이죠."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단순한 텍스트 분석보다는 사장 분이 전해 주는 맥락 아래 해석하면 다음처럼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
"인문교양 서적? 요즘 안 팔려요. 작년의 절반 수준밖에 안 팔려요. 불경기가 촛불 정국이다 사람들이 책을 통 안 사 봐요. 이런 마당에 자기계발서나 실용서가 아닌 인문교양 서적이요? 그런 책은 이제 돈 좀 있고 한가한 사람들이나 사서 읽는 사치품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책 못 읽어요. 이게 우리 현실이에요."
그러면서 사장은 5년 후 위기를 이야기하신다.
"5년 후가 문제예요. 5년 후면 386세대들이 모두 40대가 돼요. 지금의 인문교양 서적의 주 독자층은 30대인데, 그네들이 40대가 되면 책 못 읽어요. 먹고살기 팍팍하죠, 애들 크면 자기 책은 못 사 줘도 애들 책은 사 줘야 하죠."
실질적인 386의 끝 자락인 88학번이 이미 40대가 됐으므로 굳이 5년 후가 아니라 올해 이미 인문교양 서적 시장의 위기는 시작됐다. 불경기와 촛불 정국은 그저 하나의 변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장은 한 가지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되면 달라질 수 있어요. 이 세대들은 386 초기 세대의 자녀들이거든요. 어렸을 적부터 양질의 어린이책을 읽으며 자라난 세대예요. 촛불 시위의 초두에 10대들이 앞장선 거 다 나름 배경이 있는 거죠."
물론 장밋빛 환상일 수 있는 게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됐을 때 지금처럼 경기가 나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악화된 불경기에서는 지금의 20대와 다를 바 없어질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10대와 20대는 질적으로 다른 세대이다. 입시지옥과 멸사봉공의 산업화 시대를 산 20대들의 부모인 70년대 학번과 10대들의 부모 세대인 386세대의 차이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