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고전과 문제작을 집대성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 . 다양한 분야의 책 중에서도 소설 문학의... 인류의 정신적 지도를 그려온 1001편의 작품들을 망라하였다. 이 책에서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
알라딘에서 사은품으로 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1권>.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을 국내 발간작 중심으로 추려 사은품으로 제작했다는데... 맨 뒤편에 나온 체크리스트를 보다가 문득 발견한 사실.
'이거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 아냐?'
아이작 아시모프의 <나는 로봇>(이 책에 이미지도 쓰인 우리교육에 나온 번역작은 <아이, 로봇>인데...)부터 존 밸빌의 <바다>에 이르는 101권의 책은 모두 소설이다.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만화로도 보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래픽 노블'이라는 소설의 한 유형으로도 보기에 소설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 사은품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이라 해야 옳다.
그런데 원작인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은 어떨까? 국내 비발간작도 꽤 되는 1001권의 목록을 일일히 확일할 수 없지만, 대충 훑어보니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01권>이라 해야 옳을 듯.
이쯤 되면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국어 교과서 편집자 맞나?) 나로서는 눈쌀이 찌뿌려진다. 젠장 문학만 책인가? 문학 가운데서도 소설만 책인가? 투덜투덜. 가뜩이나 작년에 만든 교과서 심사본에 문학 작품이 적다는 불평을 듣고 기분이 언짢은데(문학=국어는 아니잖소!) 뭐 이래?
책 소개에는 "소설 문학 작품 1001편을 담았다" "소설이 왜 주목받는지, 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는지에 대한 대답이 효과적으로 담겨 있다."라는 문장이 적혔지만, 글쎄... '책'이라 해 놓고 '소설'만 이야기하는 책은 한마디로 눈꼴시렵다. 원제 자체가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이라 하지만, 번역해 내놓으면서 출판사에서 '편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일단 소설과 책을 구분 못하는 피터 박스올이라는 '문학' 교수에게 육두문자를 퍼부어야겠지만...
사족: 내가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인문학의 한 축인 문학의 영향력과 위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소설(문학)=책으로 놓은 사고방식이 마음에 안 들 뿐이다.
디자인하우스에서 나온 <리얼 아틀라스 리얼 월드>라는 책이 있다. '지도, 통계를 만나다'라는 부제답게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세계지도를 '조작'해 보여 준다. 가령 인구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우리가 흔히 보는 세계지도와 달리 중국과 인도가 드립다 커진다. 기계 수출량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된다. 이런 식이다. 똑같은 세계지도가 통계에 따라 변하는 아주 일관된 패턴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들춰 보는 맛이 있는 책이다. 특히 나처럼 지도에 환장한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만한 이 책의 머리말을 보다가 이맛살이 찌뿌려졌다. "마케도니아의 독립하기 전 유고슬라비아"이라는 문구인데 이 단어에는 아주 친절하게 원문이 적혀 있다. 'the Former Yogoslav of Macedonia'.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역도 이런 오역이 다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전공과 상관없는 전문 번역자의 작품이다. 편집자도 모르고 패스해 버린 듯.
엠블 시절 '알아봤자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시덥잖은 이야기 #1'이라는 글을 올린 적 있다. 그 글은 바로 the Former Yogoslav of Macedonia에 관한 내용인데, 요약하면 이것은 '구 유고슬라비아(였던)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 번역해야 한다. 과거형인 '마케도니아의 독립하기 전 유고슬라비아'과는 아주 다른 현재형의 말이다. 자세한 내막은 링크된 글을 참조하면 될 것이고, 중요한 것은 오역도 오역 같지 않은 게 나왔다는 것인데... 거참.
책에 홈페이지 주소도 공개돼 점잖게(라고 하지만 공개적으로 망신 좀 주려고)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오역을 지적하려 했더니. 거참.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디자인하우스 브랜드 사이트'라는 셀렉트바에는 단행본 출판부의 사이트 따위는 없다. 기껏 있는 게 '디자인하우스 북스'라고 영어로 된 배너인데, 이것을 클릭하면 당사의 쇼핑몰 가운데 책 부분과 연결된다. 그냥 단행본 출판부의 게시판 같은 게 없기만 했으면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다. 게시판은커녕 홈페이지도 없는 출판사가 한가득인데 그런 것으로 태클걸기엔 사람이 좀 쪼잔해 보인다. 그런데 쇼핑몰과 연결시키는 행태가 좀 짜증났다. 아니, 부아가 치밀었다. 소통을 원하는 이에게 책 팔 생각을 하다니. 홈페이지를 뒤져 보니 편집장(친하지는 않지만 사실 아는 사람이다)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별자리가 어떻고 하는 자기 소개는 있는데 독자와 소통할 공간은 없다. 양심이 있는 것인지 의례적인 것인지 이메일 주소는 있지만, 그쪽으로는 따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꼬우면 오역하지 말던가. 나 또한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만든 책이 어디인가에서 씹히면 기분 참 나쁘다. 그리고 TTB리뷰와 링크시키려다 애초에 내가 설정한 블로그 원칙과 위배되는 관계로 그냥 글만 올린다.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09년 개정판이 나왔다. 2008년 판이 일찌감치 품절돼 구매자들이 이리저리 수소문하게 했다는데, 그때마다 열린책들의 대답은 "2009년 판을 기다리세요"였단다. ^^;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알라딘의 설명을 보니 다음 같은 부분이 눈에 띈다.
이번 2009년판의 변화된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2008년 10월 개정된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여, 수정된 사항을 모두 반영했다. 둘째, 저작권 및 제작 관련 내용을 대폭 보강했다. 셋째, 순화해야 할 출판
편집 용어에 대해 논의하는 '새 이름을 지어 봅시다' 난을 마련하여, 책에서는 온갖 말을 벼리면서도 정작 업무 중에는 부적절한
용어들을 무분별하게 쓰는 세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10.9사태'라고 일갈했던 지난해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반영했다니 2008년 판을 가진 나도 지갑을 열게 만드는구나. 맨땅에 헤딩하듯 일일이 찾아 헤매며 고생했을 열린책들 편집자들의 노고가 눈에 선하니 이 얼마나 착한(?) 행위인가? 게다가 정가 5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사실 2008년 판은 3500원이라 무려 42.85% 인상했다 ^^;). 사실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지만 내부용으로 만드는 책을 조금 여유 있게 찍어 시중에 내놓는 만큼 비싸게 가격을 책정했다가는 욕만 먹겠지.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의 다섯번째권으로 출간된 이 책에서는 날로 심각해지는 노동양극화를 직시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환경미화원에서 변리사까지 28명의...
얼마 전 <우리시대 희망찾기>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을 펼쳐들었다가 놀랐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우리시대 희망찾기' 씨리즈는 희망제작소가 [삼성로고]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집필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리즈를 기획한 박원순/이회영이 쓴 발간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삼성은 '우리시대 희망찾기의 연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기금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어랍쇼? 민간 싱크탱크라는 데에서 민주주의, 교육개혁, 국가 재정, 시민사회, 양극화, 환경 갈등을 연구해 논한 책이 삼성의 돈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다른 것은 둘째치더라도 태안 앞바다를 기름으로 뒤덮어 놓고도 50억원 외에는 못 내놓겠다는 후안무치 삼성의 돈으로 환경 갈등을 다루는 책을 만든다... 이것을 뭐라 설명해야 하나? 자기를 까는 책에도 기꺼이 돈을 내놓는 삼성의 대인배스러움을 찬양해야 할까? 영혼을 팔아서라도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겠겠다는 희망제작소의 결연한 의지를 칭송해야 할까?
이 말을 거꾸로 하면 꽤 많은('무척 많은'이겠지만 --;) 학회는 삼성의 돈으로 운영되며, 꽤 많은(역시 '무척 많은'이겠지만 --;) 교수는 삼성의 돈으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일 게다. 그러고 보니 인문학 교육을 통한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인 '성 프랜시스 대학'도 삼성 돈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육기회 균등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고른기회 장학금'도 이건희가 사재 출연(사법 처리를 면하는 조건으로 출연한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좀 더 알아봐야겠다.)한 돈이 종잣돈이다. 아, 이놈의 세상에는 삼성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구나.
물론 삼성의 돈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크다. 노숙인들이 재활하고, 가난한 집 아이가 학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그런데 그것이 과연 삼성이 선한 뜻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내놓은 '눈먼' 돈일까? 악랄한 삼성에게서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 돈 마른 공공 영역에 투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설득력 있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라고 양잿물까지 마셔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김 교수의 말처럼 "삼성과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생존을 걸지 않아도 될 땐 최소한 자존심을 지키자"라는 그의 주문도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럼 점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현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개혁의 전망을 모색하는" 데 굳이 삼성의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연구 성과가 아무리 좋을지언정 판권에 박힌 삼성 로고가 있는 한 우리 시대에 희망은 폭풍우 앞에서 켠 촛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사인에 실린 '2009년 인문·사회출판 지형도는?'이라는 기사가 널리 회자된다. 올해 어떤 책, 특히 인문/사회 분야의 책이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다. 도저히 인문/ 사회 분야 전문 출판사라 할 수 없는 출판사가 리스트업되긴 했지만(맛이 갔다고 해도 목록에 빠진 출판사도 있는데...)대체로 올해의 인문/사회 분야 출판 시장의 경향성을 대충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정말 가오 선생 말처럼 저 책들이 2009년에 나올 수 있을까? 바짝 말라 붙다 못해 쩍 갈라진 저수지 밑바닥 같은 인문/사회 분야 출판 시장의 정황상 저 책들의 반이라도 독자의 손에 전해질 수 있을까? 이런 책이야 나오면 나올 수록 좋다지만 그 책들이 경기탓, 정확하게 말하면 독자탓에 사장되어 버리는 것보다 나쁜 건 없다.
테르미도르 파는 이제 왕당파에 대하여 자기들의 보수적 공화주의가 공화주의 원칙에 얼마나 철저한가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테르미도르 파는 군주주의에 반대하는 것만큼 민주주의에도 반대하였다. 테르미도르 파의 공화국은 자유주의적이고 부르조아적이었으나 민주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정책은 상퀼로트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물리치는 동시에 왕당파의 왕정 복고도 거부하면서 부르조아적 규범 안에서 혁명을 안정시키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오른편에서는 왕당파의 공격을 받고 왼편에서는 서민 계급의 압력을 받았다. 이 공격과 압력을 적절히 배제하면서 부르조아적인 정치 체제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테르미도르 파의 정책은 시종 안정성이 없고 늘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다. 그 정치 체제가 쿠데타를 반복하다가 혁명의 본질적 획득물인 1789-1791년의 성과를 확보하기 위하여 드디어 나폴레옹에게 인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거기 있다. 이렇게 본다면, 테르미도르 파의 공화주의적 이념이라는 게 결국 '1891년 입헌 군주 정치'의 이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794년 여름에 뒤를 돌아다볼 때 국왕은 이미 시해되고 없었다. 거기서 결국 군주정을 회복할 수는 없고 공화정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말을 바꾸면, 테르미도르 파의 이상은 국왕 없는 입헌 군주주의였다. 이 모순에 해결의 길을 제공한 것이 바로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e이다. -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125쪽
일전에 헌책으로 샀던 노명식 선생의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1789~1871>라는 책을 읽는데, 제아무리 역사는 좋아해도 워낙 숫자에 취약한 뇌를 가졌기에 정신 없이 진행되는 프랑스 대혁명의 사건이 너무 복잡해 아놔~ 해 버렸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혁명의 과정이 재미있기에 망정이지 마구 튀어나오는 익숙지 않은 프랑스어 단어에 뇌가 꼬일 뻔해 책을 집어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1980년에 나온 책치고는 잘 읽힌다는 생각도 든다.
'테르미도르 9일의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종식되는 부분까지 읽었는데 이때까지 일어난 혁명의 주요 사건만 정리해 본다. 혁명이 순식간에 일어나 루이 16세의 목을 잘랐다고 알고 있었는데(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후 루이 16세가 2단 분리되는 데는 3년 반이 걸렸다), 생각보다 혁명은 여러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1789-05-05 루이 16세, 삼부회 개최 1789-06-17 제3신분, 국민의회 창립 선언 1789-06-20 제3신분, 테니스코트 선언 1789-07-09 국민의회, 제헌의회 선언 1789-07-14 파리 민중, 바스티유 감옥 습격 1789-08-04 국민의회, 봉건제 폐지 선언 1789-08-26 국민의회, 인권선언 공포 1789-10-06 국민방위군, 루이 16세를 튈르리 궁에 유폐 1789-11-02 국민의회, 교회 재산 몰수 및 국유화 법령 포고
1790-05-14 국민의회, 교회 재산 매각 결정 1790-07-12 국민의회, 성직자 공민 헌장 제정 1790-11-27 국민의회, 모든 사제에게 성직자 민사기본법 충성 서약 의무화
1791-06-20 루이 16세 도주 시도(바렌느 사건) 1791-07-17 국민방위군, 마르스 연병장에서 파리 민중 학살 1791-08-27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혁명 간섭 표명(필니츠 선언) 1791-09-03 국민의회, 1791년 헌법 가결 1791-09-14 루이 16세, 헌법 준수 서약 1791-10-01 제헌의회, 해산 후 입법의회 소집 1791-11-09 입법의회, 망명 귀족에 대한 법령 성립 1791-11-29 입법의회, 선서 거부 사제에 대한 법령 성립
1792-04-20 입법의회,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로 혁명전쟁 시작 1792-05-27 입법의회, 선서 거부 사제 추방 결정하나 루이 16세가 거부권 행사 1792-06-08 입법의회, 의용병을 모아 파리 연맹군 결성 결정 1792-07-11 입법의회,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 선언 채택 1792-07-20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혁명파에 선전 포고 1792-08-10 파리 민중, 파리 코뮌 결성 및 국민공회 소집 결정(8월 10일 봉기) 1792-08-19 라파예트, 파리 민중 진압 실패 후 국외 도주 1792-08-25 입법의회, 봉건적 권리 폐지 법령 포고 1792-09-02 오스트리아 군, 베르됭 함락 1792-09-02 파리 민중, 6일까지 반혁명 용의자 살해(9월 학살 사건) 1792-09-20 혁명군, 프로이센 군 격파(발미 전투) 1791-09-20 국민공회 소집 1792-09-22 국민공회, 왕권 폐지 의결 후 공화력 1년 선포 1792-11-11 루이 16세 재판 개시
1793-01-17 국민공회, 루이 16세 유죄 판결 후 사형 결정 1793-01-21 루이 16세, 단두대에서 처형됨 1793-03-10 국민공회, 혁명재판소 창설 1793-03-10 방데 지방에서 반혁명 반란 발발 1793-04-06 국민공회, 공안위원회 창설 1793-05-18 지롱드 파, 12인위원회 구성 1793-05-31 무장 상퀼로트들의 봉기로 지롱드 파 정권 붕괴 1793-06-24 국민공회, 1793년 헌법 채택 1793-10-05 국민공회, 혁명력 채택 1793-10-17 혁명군, 방데 반란군 평정 1793-11-10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성의 제전으로 명명, 이후 파리의 모든 교회 폐쇄 1793-12-04 국민공회, 혁명 정부에 관한 법령 가결
1794-02-26 국민공회, 반혁명 용의자 재산 몰수 및 무상 분배 법령 가결 1794-03-24 로베스피에르, 에베르 파 숙청 1794-04-05 로베스피에르, 당통파 숙청 1794-07-27 테르미도르 9일의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르파 숙청
1795-04-01 제르미날 12일의 봉기. 파리 민중이 공회를 점령하려다 진압당함. 1795-05-20 프레리알 1일의 봉기. 파리 민중의 재차 봉기. 1795-08-22 국민공회, 혁명력 3년의 헌법(5인 총재와 양원제) 채택 1795-10-05 방데미에르 13일의 반란. 왕당파가 의회를 습격했으나 나폴레옹에게 격퇴. 1795-10-26 국민공회 해산 후, 총재 정부 수립.
1796-03-11 나폴레옹, 이탈리아 원정 1796-05-10 바뵈파가 주도한 평등주의자들의 음모 발각
1797-02-19 나폴레옹과 교황 사이에 트렌치노 조약 가결 1797-09-04 프륄티도르 18일의 쿠데타, 총재 정부가 나폴레옹의 지원으로 왕당파 제거
1798-05-11 플로레알 22일의 쿠데타, 총재 정부가 자코뱅파 축출 1798-05-19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 1798-08-01 아부키르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 영국에게 궤멸.
1799-11-09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나폴레옹이 총재 정부를 폐지하고 제1통령 취임
이제 총재 정부의 수립과 '영웅' 나폴레옹의 등장, 그리고 공화국의 몰락이다. 물론 책 제목처럼 파리꼬뮌까지 다룬다지만, 사실 내 관심사는 개판 오분전의 프랑스가 어떻게 세계사의 귀감이 되는 공화국을 수립하고 지켜냈는가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쥐는 과정을 분석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적용될 단초를 살펴보는 것이다.
출판사 들어오면 상당히 많은 일본어 비스무리한 용어에 고개를 갸우뚱하기 마련이다. 짬밥이 먹어 가면서 차츰 알아가지만 끝내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모르는 말도 많다. 가령 '누끼'라고 해야 할지, '눗기'라고 해야 할지 긴가민가 하는 것처럼. 게다가 이것의 정확한 뜻은 무엇이며 어원은 무엇인지 뭐라 바꿔 쓰면 좋을지에 이르기까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일은 수도 없이 많다.
팀 선배가 작성한 것을 무단으로 전재해 본다. 선배도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취합해 정리한 것일 텐데, 이런 것이야말로 '편집'이 아니던가? ^^;
소통을 위해서는 이런 일본어식 용어를 써야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왜 쓰이냐, 무엇을 말하느냐일 것이다.
가가리 ☞ 이건 뒤에 나오는 ‘아지로(あじろ)’하고 달리 본문의 책등 부분을 실로 꿰맨 후 책을 만드는 거다. 당연히 풀로 붙인 것보다는 튼튼하다. 튼튼한 만큼 값도 비싸다. 보통 제본소에서 실로 꿰매는 기계를 사철기(絲綴機) 또는 가가리기라고 부른다. 또 실로 매는 작업을 가가리토지(かがりとじ, 絲リ綴じ)라고 한다. 거기서 온 말인 듯하다. 우리말로는 실 매기 정도면 어떨까? 참 여기서, 양장과 무선철이란 말을 잠깐 설명한다. 말 그대로, 양장(洋裝)은 서양식으로 장정하는 걸 말한다. 표지에 가죽 따위를 붙이는 걸 말했지만, 요즘엔 가죽 대신에 두꺼운 종이(이를 합지라 부른다)를 넣고 겉을 얇은 종이로 싼다. 그리고 무선철(無線綴)은 실로 꿰매지 않은 제본을 말한다. 줄여서 무선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양장의 반대말이 무선철은 아니다. 즉 무선 양장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그게 아지로 양장이다. 또 실로 꿰맨 다음, 보통 단행본처럼 제본할 수도 있다.
가꾸양장 ☞ 가쿠양장은 각양장(角洋裝)이다. 보통 양장본은 책등이 둥글게 되어 있다. 뒤의 ‘마루(まる)’에서 나온 대로다. 그런데 어린이 책 중에는 책등이 둥글지 않고 각진 형태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바로 그걸 부르는 거다. 일본 말로 가쿠(かく)는 각(角)이다. 그러니까 각진 양장이라고 부르면 된다.
가마보꼬 ☞ 사전 같은 경우, 상자 안에 담긴 사전을 빼내면 상자 아래에 볼록 튀어나온 종이가 있다. 이건 등이 둥근 책의 배 쪽을 받쳐 책의 형태를 유지해 주는 기능을 하는 거다. 가마보코(かまぼこ)는 생선묵을 뜻하거나 보석을 안 심은, 가운데가 볼록한 반지를 뜻한다. 거기서 온 말인 듯하나, 우리말로 뭐라 해야 할는지 궁금하다. 댐판지라고 부르자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좀 어색하다.
겐또 ☞ 여러 색 인쇄를 할 때, 겹쳐 인쇄되는 위치가 정확한지를 맞추는 공정을 말한다. 겐토(けんとう), 즉 見當(견당)은 대체적인 방향이나 어림짐작 따위를 말하는 거다. 우리말로는 가늠 또는 가늠맞춤 정도가 좋겠다.
고바리 ☞ 필름 상태에서 지정된 레이아웃에 따라서 한 면씩 작업해서 완성하는 걸 고바리라고 부른다. 요즘엔 필름 상태에서 필요한 부분만큼 오려서 붙이는 걸 말하기도 한다. 일본 말 고바리(こばり), 즉 小貼(소첩)에서 온 것이다. 다만, 우리말로는 ‘따 붙이기’ 또는 ‘막 붙임’이라고 하면 된다.
교정스리 ☞ 인쇄 전에 색 작업 상태를 미리 확인하기 위해 시험 인쇄물을 만드는 걸 말한다. 우리말로는 색 교정 정도가 맞겠다. 교정스리는 교정이란 우리말에 인쇄를 뜻하는 스리(すり, 刷り)가 붙은 거다. 물론 교정이란 말도 일본에서 온 말이겠지만 말이다. 색 교정(色校正)에 해당하는 일본 말은 이로코세이(いろこうせい)다.
나까도지 ☞ 주간지나 팸플릿 같은 걸 보면 본문하고 표지를 한꺼번에 모아서 반으로 접은 다음 가운데 부분에 철사로 두세 곳 박았다. 이걸 부르는 거다. 일본 말로는 나카토지(なかとじ), 즉 中綴じ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중철(中綴)이라고도 하지만, 아무래도 가운데 매기, 등 매기 정도가 좋겠다.
나까마 ☞ 도매상이 부도날 때면 이런 소문이 떠돌곤 한다. ‘그 업체 나까마도 했다!’ 또 베스트셀러가 터질 때면 나까마 소문이 터지기도 한다. 하긴 이 말은 유통업계에서도 두루 쓰인다. 사전에는 나카마(なかま), 즉 仲間(중간)은 한패나 동료라는 뜻으로 나와 있다. 어떤 이는 그냥 한패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으로 움직이는 한패로 쓴다고도 한다. 여기서 ‘특정한’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러나 우리가 쓸 때에는 기존의 유통 질서 외의 방법으로 영업을 하는 중간상이란 의미로 쓴다.
난쬬 ☞ 제본할 때 접장 과정에서, 즉 장합(張合) 과정에서(일본 말로는 조아이ちょうあい 과정에서) 접장의 순서가 잘못되는 사고를 이렇게 부른다. 난초(らんちょう), 즉 亂丁(난정)이다. 우리말로는 난장(亂張)이나 접장 사고 정도로 쓰자고 한다. 특별한 대안이 없으니 쓸 수밖에……
노리 ☞ 노리는 풀칠이다. 접힌 인쇄물과 책 표지 따위를 풀로 붙이는 공정을 말한다. 노리(のり), 즉 糊(호)는 사전에 풀이라고 나온다. 당연히 우리말로 풀칠이라고 하면 된다.
누끼 ☞ 매킨토시의 그래픽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부분을 오려내는 것을 ‘누끼 딴다’고들 말한다. 일어 사전에서 누키(ぬき)를 찾으면 뺌 또는 생략이라고 소개한다. 우리말로는 그냥 딴다고 하면 되겠지. 괜찮은 말이다. 딴다!
다떼메 ☞ 다테메(たてめ)는 종이의 결이 세로로 나 있는 종목(縱目)이다. 즉 세로결이란 소리다. 종이에도 결이 있느냐고 묻지 마라. 종이가 나무로 만든다는 생각 조금만 해 봐라. 종이를 만드는 기계(초지기)에서 종이를 만들 때 종이의 흐름 방향으로 섬유소가 놓인 경우를 말한다. 좀 어려우면 이렇게 생각하라. 낱장 종이의 긴 변 쪽과 섬유소의 흐름 방향이 같을 경우, 이걸 세로결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로쓰기로 돼 있는 책에서 문자열이 세로 방향으로 짜는 조판을 다테구미라고도 하는데, 이것 역시 세로짜기라고 하면 된다. 다테구미(たてぐみ)는 縱組み(종조)다.
다찌시로 ☞ 책을 제본할 때 마무리 재단을 한다. 그때 잘린 부분을 다치시로(たちしろ, 裁ち代)라고 한다. 영어로는 ‘cutting margin’이다. 우리말로는 재단 여분 혹은 재단 몫이라고 하면 된다.
도무송 ☞ 이건 자름칼을 의미한다. 구멍이 뚫린 표지의 책을 본 적 있다면 바로 거기서 이 자름칼이 사용된다. 일반 재단기로 자를 수 없는 모양의 인쇄물이 필요할 때, 그 형태대로 목형을 만들어 기계 압력으로 그 모양으로 자르는 거다. 일본 말로는 자르는 칼을 뜻하는 切り刃인데, 기리바(きりば)라고 읽는다. 그래서 가끔 ‘기리바’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연히 우리말로도 자름칼 정도면 된다. 근데 도무송은 어디서 왔을까? 어디선가 도무송(톰슨)이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떠오른 추측인데, 이렇다. 일본어로 톰슨(Thomson)을 도무손(トムソン)이라고 쓴다. 말 그대로 ‘도무송’이라고 발음하는 거다. 마라톤(marathon)을 마라송(マラソン)이라고 발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우리가 일본 기계를 수입했는데, 그 기계가 톰슨이란 상표의 기계였던 거다. 당연히 기계엔 トムソン이라고 씌어 있을 거고. 그래서 그렇게 부른 거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그 기계 혹은 기술을 만든 사람이 이름이 톰슨인 거다. 그것도 아니라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추측이 결합한 거다. 우리 회사의 제작 담당자는 두 번째 가설에 힘을 싣는다.
도비라 또는 도베라 ☞ 도비라(とびら). 한자로는 문짝 비(扉). 문짝. (책의) 안겉장, 속표지. 일본에서도 부(部)나 장(章)을 구분하는 건 나카토비라(中扉, なかとびら), 책의 맨 앞에 있는 면은 혼토비라(本扉, ほんとびら)라고 부른다고 한다. 권도비라는 표제지, 부도비라는 내제지 정도가 좋을 듯.
돈뗑 ☞ 원칙적으로 신국판형의 책은 국전지 한 장에 32면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만들다 보면 면수가 꼭 32의 배수로 떨어질 수 없다. 그랬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 둘러치기 또는 같이걸이라고 부르는 돈텐(どんてん)이다. 한마디로 종이를 아끼기 위해 고안된 방법인 거다. 터 잡기된 필름의 마지막 부분에서 1/2돈뗑이니, 1/4돈뗑이니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게 이거다. 그래서 보통은 4의 배수로만 끝나면 된다고들 한다. 둘러치기나 같이걸이보다는 나눠찍기가 좀더 그럴싸하다. 앞의 것은 인쇄소 용어 같고, 아무래도 뒤의 것이 편집용어 같다.
돈보 ☞ 터 잡기(하리코미)된 필름을 교정보거나 원색필름을 교정볼 때 필름 양쪽 끝에 +모양으로 된 표시를 겹친다. 그게 기준선 역할을 하니까. 이를 부르는 거다. 일본어 사전에서 돈보(とんぼ), 즉 蜻蛉(청령)을 찾으면 ‘잠자리’라고 나와 있다. 제작 담당자가 전해준 가설(잠자리 날개 모습하고 비슷하다는)도 그럴싸하지만, 확실한 건 모르겠다. 우리말로는 가늠표나 맞춤표 정도가 어떨까?
똔똔 ☞ 다른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다 보면 아무리 책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해도 결국은 하게 된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최근 읽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가 종내에는 자기 회사 얘길 하게 마련이다. 사장이나 선배를 씹거나 자기가 만든 책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때 나올 만한 얘기가 바로 ‘똔똔’이다. “그래 그 책은 얼마나 나갔니?” “겨우 똔똔은 했어.” 똔똔이 나올 때가 또 있긴 하다. 책값을 매길 때 그렇다. 요즘엔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이란 얘길 많이 하지만, 그게 그거다. “5,000부 기준으로 BP가 얼마야?” “13,000원쯤 하면 되겠네.” 이 대화는 이렇게 바뀌어도 무방하다. “13,000원이면 얼마나 팔아야 똔똔이야?” “한 5,000부는 팔아야겠네.” 돈톤(とんとん)은 본전치기란 뜻으로 사용하곤 한다. 사전에는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인 똑똑’이나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 모양인 척척’이라고 나와 있다. 또 있긴 하다. 속어로 두 가지가 엇비슷함을 말하기도 한단다. 아마도 두 번째 뜻에서 넓어진 말이리라. 똔똔이라도 하면서 사는 인생, 그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마루 ☞ 양장본의 등이 둥글게 되어 있는 걸 본 적 있을 거다. 그 둥근 부분을 마루라고 부른다. 일어사전에서 마루(まる)를 찾으면 바로 한자 ‘알 환(丸)’이란 글자가 뜬다. 뜻은 물론 둥글다는 거다. 일본의 국기를 히노마루(日も丸)라고 부르지 않나? 참, 책등을 그렇게 둥글게 하는 이유는 이렇다. 먼저 책을 여닫기 편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책등이 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책등이 휘지 않아야 책이 오랫동안 안 망가진다. 제본소에서 책의 등을 둥글게 마는 기계를 마루미다시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마루도 그 마루다. 우리말로는 둥근 등 정도면 어떨까? 마루미다시를 원형 가공기라고 부르자는 얘기도 있다.
미까에시 ☞ 미카에시(みかえし), 즉 見返し(견반し)은 책의 면지를 말한다. 요즘은 거의 면지라고 부르니까, 굳이 이 말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 우등생이 되려면 알아서 나쁠 게 없겠지만.
미다시 ☞ 이건 출판뿐 아니라 언론계에서도 많이 쓰는 말이다. ꡔ경향신문ꡕ 박대호 기자가 쓴 ꡔ기자가 쓴 기자 이야기ꡕ(부키 2003)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중견 기자는 기사를 쓸 때 항상 ‘미다시’를 생각한다. 제목이 나오지 않으면 일단 기사가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눈치를 챘겠지만, 미다시(み-だし, 見出し)는 표제 또는 표제어이다. 일본어 사전에는 그 외에도 목차나 색인을 뜻한다고 나와 있기도 하다. 편집할 때도 ‘미다시’란 말 자주 쓴다.
미스꾸리 ☞ 이건 동대문시장에서도 쓰는 말이다. 어떤 제품을 포장할 때 미스꾸리한다고 한다. 또 감방에 있는 사람들도 이 말을 쓴다. 그들은 묶인 묶음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말은 니즈쿠리(にづくり), 즉 荷作り나 荷造り의 와전이라고 한다. 그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짐을 꾸림 또는 포장이라고 나와 있다. 우리말로는 ‘포장하다’ 혹은 ‘묶다’로 쓰면 되겠다. 니즈쿠리를 미스꾸리라고 말하는 건 사실 좀 창피한 짓이다.
미조 ☞ 미조는 홈이다. 양장으로 제본된 책의 표지와 등 사이에 표지가 잘 여닫힐 수 있도록 세로 홈이 나 있다. 그게 미조다. 미조(みぞ), 즉 溝(구)는 홈이다. 우리말로도 홈이라고 하면 된다.
베다 또는 뻬다 ☞ 인쇄할 때 망점으로 인쇄되지 않고 잉크가 통째로 묻은 부분이다. 즉 인쇄물의 농담이 100% 망점으로 인쇄된 것을 의미한다. 일테면, ‘베다를 먹으로 처리하라’는 말은 ‘바탕 면을 검은색으로 처리하라’는 말이다. 일어사전에서 베타(ベタ)를 찾아보면, ‘빈틈이 없음’ 또는 ‘온통’이라고 나온다. 우리말로는 민판 정도가 어떨까? 판 앞에 ‘꾸밈이나 딸린 게 없음’을 뜻하는 접두사 ‘민’을 붙여서 말이다.
베다스리 ☞ 위에서 베타(べた)란 걸 살펴봤는데, 베다스리란 말도 있다. 인쇄물에 완전히 잉크가 묻도록 하는 인쇄를 이른다. 베타스리(べたすり)라고 읽는 게 맞고 우리말로는 민인쇄라고 하면 좋겠다.
베라 ☞ 제지회사에서 나오는 종이는 둥그렇게 말린 화장지처럼 생겼다. 그건 윤전기 같은 걸 사용하는 대규모 인쇄에서 쓴다. 단행본 인쇄에서는 주로 낱장으로 인쇄를 한다. 베라(べら)는 낱장이나 매엽지(枚葉紙) 또는 낱장으로 된 인쇄물을 의미한다. 영어의 ‘sheet’에 해당하는 거다. 낱장이 딱 좋다.
비니루바리 ☞ 표지 같은 데 얇은 플라스틱 필름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코팅’이 이거다. 영어로는 ‘비닐 라미네이팅’(vinyl laminating)라고 부르고, 일어로는 비니루바리(ビニル貼り)라고 한다. 필름 입히기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고 이미 굳어진 채 사용하는 라미네이팅으로 하자는 사람도 있다. 난 후자 쪽이다. 그리고 여기서 팁 하나. 책 표지에 얇은 필름을 입히는 걸 부를 때 코팅이라고 해야 옳을까, 아니면 라미네이팅이라고 해야 옳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필름을 입히는 건 라미네이팅이라고 해야 한다. 코팅은 얇은 필름을 입히는 게 아니라 화학약품을 직접 뿌리는 걸 말하는 거다. 여성지의 화장품광고나 속옷광고 지면을 보면 무척 반짝거리는 걸 볼 수 있다. 이건 그런 효과를 내는 안료(顔料)를 직접 뿌린 거다. 즉 코팅한 거다. 요즘엔 단행본 표지에서도 UV코팅 같은 걸 하기도 한다.
사시꼬미 ☞ 책 사이에 엽서나 다른 광고물을 끼워 넣는 공정이나 그 광고물을 이른다. 사시코미(さしこみ), 즉 差し込み는 찔러 넣는 거나 플러그 같은 걸 말한다. 사이 넣기가 적당하다.
사양 ☞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컴퓨터의 사양은 이렇습니다. 시피유는 어쩌고 저쩌고~” 홈쇼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사양도 원래 우리말에는 없는 거다. 일본 말에서 온 건데, 시요(しよう, 仕樣)의 한자를 그냥 우리 식으로 읽은 거다. 일을 하는 방법, 도리 등을 뜻하는 단어란다. 사전에도 설명, 설명서, 품목 따위로 바꿔 쓰라고 권한다.
세네카 ☞ 사람이나 동물뿐 아니라 제목 등이 적힌 부분도 등이라고 부른다. 일어사전에서 세나카(せなか), 즉 背中(배중)을 찾아보면, 등, 뒷면, 표리관계 등으로 나와 있다. 우리는 ‘등’으로 쓰면 된다. 참고로 세하바(せはば), 즉 背巾(배건)는 등두께 혹은 등폭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니까 세나카를 세네카로 부르는 것은 위에서 얘기한 대로 니즈쿠리를 미스꾸리로 부르는 짓과 같다.
소부 ☞ 소부는 인쇄할 때 네거티브필름이나 포지티브필름을 놓고 빛을 쬐어 화상을 만드는 일을 말한다. 실제 인쇄 바로 직전 과정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터 잡기를 통해 얻은 필름 원판으로 실제 인쇄기에 걸 인쇄판을 만드는 일이다. 일본 말로는 야키쓰케(やきつけ), 즉 燒付け다. 그런데 燒付け에서 燒付를 그냥 우리 식으로 읽어버린 거다. 燒付가 소부니까. 재미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소부야끼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끼? 야끼만두가 생각난다. 야키(やき)가 곧 燒き니까. 우리말로는 빛쬠이나 노광이라고 하자는데, 좀 어색하다. 뭐가 좋을까?
스리지 ☞ 여기서 스리는 위의 교정스리나 베다스리에 나온 그 스리(すり, 刷り)다. 그리고 지(紙)는 물론 종이다. 일하다 보면, “스리지 나왔니?”란 말 종종 듣는다. 이건 색교정을 낸, 즉 교정스리를 낸 종이가 나왔느냐는 소리다.
시아게 ☞ 끝손질이나 작업의 마무리를 뜻하는 말인데, 마무리 재단을 일컫는다. 시아게(しあげ), 즉 仕上げ(사상げ)도 그런 뜻이다. 끝손질이나 마무리 재단 정도면 좋을 듯. 어릴 적 어머니가 뜨개질을 하실 때 마무리하는 작은 바늘을 시아게 바늘이라고 한 게 생각난다.
시오리 또는 서오리 ☞ 읽던 곳을 찾기 쉽도록 책장 사이에 끼워 두는 종이오리, 즉 서표(書標)를 일본 말로는 시오리(しおり)라고 부른다. 가름끈, 보기끈, 서표, 서오리, 보기끈, 갈피끈 등. 서오리는 서(書)에 ‘しおり’의 ‘오리(おり)’가 합쳐진 것 같다. 물론 서(書)에 ‘가느다란 가닥’을 의미하는 우리말 오리가 합쳐진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 관행으로 봤을 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시와 ☞ 종이에 생긴 주름을 시와라고 부른다. 일본 말로 주름을 시와(しわ), 즉 皺(추)라고 부른다. 皺는 주름 추 자다. 주름은 인쇄할 때, 접지할 때, 종이를 한 권 분량으로 모으는 장합 때 등 여러 공정에서 발생한다.
싸바리 ☞ 양장본에서 합지에 달라붙은 표지가 있는데, 그 표지는 싸바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싸바리는 표지를 안으로 싸 넣고 면지를 다시 붙이는 공정을 일컫는다. 그 속표지를 자세히 보면, 위의 정의처럼 되어 있다. 팬시상품 같은 데에서도 싸바리라는 용어는 두루 쓰인다. 싸바리는 과연 어디서 온 말일까? 내 추측인데 이렇다. ‘싸다’란 동사의 어간 ‘싸’에 인쇄 쪽에서 흔히 쓰는 ‘~바리(ばり, 貼り)’가 붙은 것이다. 고바리나 비니루바리 같은 데서 쓰는 ‘~바리’ 말이다. 그러나 내 추측은 틀렸음이 밝혀졌다. 나중에 전문가한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싸바리’가 아니라 ‘싸발이’가 맞단다. 싸서 바르다는 뜻이란다.
쓰가미혼 ☞ 책이 제대로 인쇄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인쇄가 끝나면 완성된 형태로 책을 묶어 확인한다. 이때 견본으로 묶는 책을 쓰카미혼(つかみほん), 즉 束見本(속견본)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본보기책, 견본책으로 부르면 된다. 견본이란 단어도 일본에서 온 것이겠지만 말이다.
아다마 ☞ 아타마(あたま)는 머리[頭]다. 물건의 꼭대기를 일컫기도 한다. 이쪽에서는 제본할 때 본문을 모아 재단한 세 면 중 위쪽을 이른다. 또는 책 위쪽의 여백을 가리키기도 한다. 덴(てん)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건 天(천)이다. 우리말로는 윗마구리, 윗여백, 머리 정도가 좋다.
아미 ☞ 아미(あみ)는 그물 망(網). 스크린 촬영(망 촬영)할 때 크고 작은 점으로 표현하는데, 그때의 점을 말하는 거다. 요즘에는 컴퓨터 출력장치에서 글자나 그림을 만드는 점을 말하기도 한다. 음영(陰影) 정도가 어떨까?
아지노 ☞ 책을 제본할 때는 본문과 표지가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몇몇 방법을 쓴다. 실이나 철사로 묶거나 접착제를 붙이는 방법이 그거다. 아지로(あじろ)는 뒤의 방법을 말하는 거다. 본문을 순서대로 접은 다음, 책등에 붙을 부분에 얇은 톱으로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그 구멍과 등 부분에 접착제를 붙이는 거다. 톱질을 하는 건 물론 표면적을 넓게 해서 접착제를 많이 묻히려는 이유에서다. 당연히 책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あじろ는 어살, 즉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하천 여울에 둘러친 살[矢]이나 대나무 같은 걸로 엮은 돗자리 같은 걸 뜻한다. 아지로란 말은 거기서 온 것 같다. 우리말로 어살매기라고 부르자는데, 어살[魚矢]을 독음한 것이므로 사실 그게 그거지만, 그거라도 써야 할 성싶다. 단 아지노로 쓰진 말자. 아지로다.
오도시 ☞ 재단할 때 나오는 자투리종이나 자투리종이를 자르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자투리종이 혹은 자투리종이 자르기라고 부르면 된다. 오토시(おとし)에는 떨어뜨림, 함정, 끝맺음 등의 뜻이 있다.
오리꼬미 ☞ 제본할 때, 인쇄된 종이를 면수가 제대로 되게 접는 걸 말한다. 오리코미(おりこみ), 즉 折りみ는 신문 같은 데 광고지 같은 걸 접어서 끼워 넣는 걸 말한다. 신문업계에서 전파된 말인 것 같다. 그냥 접지 정도로 하면 되겠다. 광고지 같은 걸 집어넣는 건 이쪽에선 사시코미(さしこみ)라고 부른다.
오비지 ☞ 제본소에서 책이 완성되면 물론 납품을 해야 한다. 당연히 납품할 때는 책을 몇십 권씩 묶어야 한다. 그게 편하니까. 요즘에는 주로 두꺼운 합지를 묶음의 위아래에 대고 묶는다. 그러나 아직도 누런색 종이를 사용해 묶음을 두르는 경우도 있다. 이때 두르는 종이를 오비지라고 부른다. 사전에도 오비(おび), 즉 帶(대)는 띠로 나와 있다. 일본 옷에서 허리에 두르는 띠. 이렇게 나와 있다. 어떤 이 중에는 오비지를 특정한 종이이름, 즉 누런 띠지를 일컫는 말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종이 이름은 따로 있다. 시멘트 부대 등에 쓰이는 종이인데, 그 종이는 크라프트지(kraft paper)라고 부른다. 크라프트펄프를 이용해 만든 종이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오시 ☞ 오시(おし), 즉 押し(압し)는 누름 또는 누르는 물건, 밀다 등을 뜻한다. 이쪽에서는 물건을 담는 상자 같은 데의 겹치는 부분에 주는 누름자국을 말한다. 아주 두꺼운 종이로 표지를 만들 때에도 접히는 부분에 이 누름자국을 줘야 한다. 그래야 접히니까. 또 양장본의 재킷에도 이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래야 생산성이 높아지니까 말이다. 당구용어 중에서 끌어치기를 의미하는 히끼(ひき, 引き)란 일본 말이 있는데, 그 말의 반대말이 바로 이 오시(おし, 押し)다. 흰 공이 빨간 공을 때린 후, 다시 앞으로 나가는 기술을 말한다. 물론 우리말로는 밀어치기라고 해야 한다.
와꾸 ☞ 이건 건설업계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와쿠(わく)는 콘크리트 공사 등에서 쓰는 거푸집이나 테두리를 뜻한다. 안경테도 메가네노와쿠(めがねのわく)라고 부른다. 인쇄소나 제본소에서도 쓰지만, 편집할 때도 이 말 간혹 쓴다. 본문에 들어가는 표를 부르기도 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때에 따라서 틀, 표, 맥락 등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요꼬메 ☞ 이건 가로결이다. 요코메(よこめ), 즉 횡목(橫目)이란 소리다. 가로결이 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세로결의 반대니까 말이다. 세로결이 뭔지 모르겠다면, 위의 다떼메를 읽어보라. 그럼 요코구미(よこぐみ), 즉 橫組み는 뭘까? 당연히 가로짜기다.
우라 ☞ 우라(うら), 즉 裏(리)는 뒤나 뒷면, 반대, 안 등의 뜻을 가진 말이다. 이쪽에서는 인쇄물의 뒷면을 이렇게 부른다. 그러니까 뒷면 정도로 하면 된다. 당구를 칠 때, 우라마시라는 게 있다. 정확한 말은 우라마와시(うらまわし, 裏回し)이고, 여기서 우라가 바로 이 우라다. 물론 그것도 뒤로 돌려치기가 맞는 말이다.
조아이 ☞ 제본소에서 인쇄된 종이를 접은 후, 접힌 종이를 페이지 순으로 모아 한 권 분량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접장모음, 접지모음이라고 한다. 실제 제본소에서는 장합(張合) 또는 정합(丁合)이라고 한다. 정합 역시 소부처럼 그냥 읽어버린 거다. 일본 말로 丁合(ちょうあい)이니까.
찌라시 ☞ 이 말은 출판 쪽에서만 쓰는 게 아니니까 뜻은 알 거다. 치라시(ちらし), 즉 散らし는 흩뜨림 또는 삐라라는 뜻이다. 삐라라는 말도 정감 있지만, 전단 정도가 괜찮을 듯하다.
카바 또는 자켓 ☞ 양장본을 보면, 속표지 말고 완성된 책 위에 다시 표지를 하나 덮어씌운 경우가 있다. 그 덮어씌운 표지를 재킷이라고 부른다. 영어의 book jacket을 일본사람들은 ‘쟈껫또(ジャケット)’로 불렀다. 그네들 외래어발음법이 그러니까. 이게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와 무척 많은 사람들이 쟈켓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카바’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cover의 일본어식 발음인 カバ을 본뜬 것이리라. 재킷을 제외한 표지를 커버로 부르는 경우는 있어도 재킷이 있는 경우에는 둘을 구분해 부르곤 한다. 즉 두꺼운 합지에 풀로 붙인 표지를 커버라고 하는 반면, 그 위에 다시 덧씌운 표지는 재킷이라고 부른다. 요컨대 재킷이나 겉표지 정도로 불러야 할 듯하다.
하리꼬미 ☞ 하리코미(張り込み). 낱장의 필름을 레이아웃 기준에 맞춰 커다란 대지필름에 붙이는 일을 말한다. 즉 제판용 원판을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터 잡기란 용어로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하다.
하모노 또는 코모노 ☞ 광고지나 엽서 등 책자도 아니고 모양도 일정하지 않은 인쇄물을 하모노 또는 고모노라고 한다. 하모노(はもの), 즉 端物(단물)은 전부 갖추어지지 않은 것 또는 모자라는 것을 이른다. 또 고모노(こもの), 즉 小物(소물)은 자질구레한 도구를 말한다. 우리말로 잡물(雜物) 정도면 될 것 같다.
하시라 ☞ 하시라(はしら)는 책의 면주(面註)다. 면주가 뭔가? 책에서 각 면의 위나 아래 또는 본문 바깥쪽에 넣는 절이나 장의 제목, 면수 등을 이르는 말이다. 일어사전에도 기둥 주(柱) 자로 나와 있다.
혼가께 ☞ 혼가케(ほんがけ), 즉 本掛け(본괘け)는 인쇄용어다. 인쇄할 때, 앞판과 뒤판을 따로 제판해서 인쇄하는 방법이다. 앞판을 먼저 인쇄하고, 뒷면에는 뒤판을 인쇄하는 거다. 그냥 접으면 되니까 말이다. 우리말로는 따로걸이라고 부른다.
혼스리 ☞ 인쇄판을 인쇄기에 붙인 다음, 색맞춤과 가늠맞춤 등의 준비작업을 한다. 이 과정을 포함해 인쇄물이 제대로 나왔는지를 살피는 것을 인쇄교정이라고 한다. 인쇄교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본인쇄에 들어가는데, 이를 혼스리(本刷り, ほんすり)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본인쇄라고 부르면 된다. ■
오래 전에 사두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펼쳐 보지 않았던 헌책을 꺼내 펴 보았다. 면지에 적힌 84년의 기록. 학교, 학과, 학년, 그리고 두 개의 이름(아마도 사 준 이와 받은 이인 듯). 그리고 이어지는 누리끼리한 바랜 종이들...
책은 저자 서문에서부터 밑줄이 한 가득이다. 책을 죽 넘겨 보니 적으면 1/3, 많으면 2/3 정도 밑줄이 그어져 있다. 그것도 모나미 173 볼펜을 자 대고 쭉쭉 그은... 아마 저학년들이 학습을 열심히 하려고 티 낸 흔적이겠지. 이따금 붉은 색 볼펜으로 중요함을 강조한 부분도 있고, 동글뱅이나 연번이 쳐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정도로 밑줄을 그어 놓으면 무엇이 중요한 부분이고 무엇이 덜 중요한 부분인지 어떻게 알까나? 책의 원 소유주의 집요함은 책의 마지막 문단에까지 밑줄을 쳐 놓는다. 밑줄이 안 그어진 속표지와 미주뿐. 차례에도 동글뱅이가 쳐져 있다.
초심자들은 책을 읽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을 때 일단 그어 놓고 본다. 그러다 보면 줄은 한 면을 가득 채우기 일쑤다. 왜냐면 다 모르는 내용이 줄줄이 나오는데 뭐가 중요한지 뭐가 덜 중요한지 알 수 없기 때문. 그리고 나름대로 성심성의를 부린다고 자 대고 밑줄을 긋는다. 초심자들이 그렇다면 중급 이상들은 안 그런다는 말. 한 면에 그치지 않고 길게는 한 챕터를 다 읽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밑줄이 서너 줄을 넘을 것 같으면 밑줄 대신 박스를 친다. 그리고 의문점이나 더 생각해 볼거리가 있으면 여백에 뭐라 적어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다 노트에 옮겨 적는다. 당근 노트는 삼공노트이다. 옮겨 적은 것들은 다른 책을 읽으며 해결한다. 그리고 책을 다시 읽는다.
필자나 역자는 물론 출판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의 결정체인 '책'에게 '50% 세일'이라든지 '7천 원 균일가'라든지 하는 말은 가혹한 세상살이의 징표이다. 엄청난 출판 시장의 불황기에 결국 출판사들은 언 발에 오줌 놓기 형식으로 덤핑을 시작했다. 이미 예견했던 바. 하지만 막상 그리 접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게로 달아 팔아도 시원찮을 책이 있으면, 고이고이 서가에 모셔 두고 틈틈이 꺼내 볼 책도 상존하는 법. 괜찮으나 도무지 안 팔리는 책만 내놓는 모 출판사도 결국 제살 깎아 먹기의 대열에 나섰다. 그 출판사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16만 원짜리 책을 전부터 탐냈는데, 마침 30% 할인으로 나오기에 접수할까 했더니 결제가 전처럼 5% 할인으로 되는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시스템 오류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기다렸더니 아예 5% 할인으로 수정됐다. 헛. 이럴 수가. 거기에서 나오는 적잖은 적립금을 산울림 박스 세트 사는 데 쓰려 했는데... 흑흑.
아무튼 10% 할인해 주는 다른 인터넷 서점이 있어 그쪽에서 주문했다만, 왠지 그 출판사들의 괜찮은 책이 아른거린다. 그 책이 아니면 그 책만큼의 다른 책도 사랑해 줄 텐데... 사실 그 책은 한정판이기는 하지만 16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아무도 쉽게 사려들지 않을 테니 품절되는 일은 생각만큼 일어나지 않을 텐데.
요즘 같은 세상 책 한 권 못 살 형편이라 꼭 필요한 책도 덜덜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실탄으로 싼값에 사 들이는 인간도 있을 게다. 물론 나라고 전자였던 적이 없을까? 대학 시절 지지리 책 안 읽던 데는 어려운 책만 읽어야 할 것 같은(혹은 읽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을 받은) 강박도 강박이었지만, 살 돈도 꽂아 둘 공간도 언제나 넉넉지 않았던 연유가 살포시 숨어 들어 있다.
내 아무리 핑크 플로이드의 팬일지라도 정규 앨범 14장을 묶은 CD 16장짜리 박스 세트가 나왔을 때 꿈쩍하지 않았다. 다시는 수입되지 않는 한정판이라고 쇼핑몰이 뽐뿌질하고 실제로 각종 포스터와 스티커 등이 포함된 패키지라 군침이 날지라도 14장의 앨범 중 2장을 빼곤 이미 가지고 있으니 딱히 사야 할 메리트가 없었다. 물론 눈먼 돈 22만원이 난데없이 생기면 고민 좀 하겠지만...
그런데 예약 판매를 시작한 산울림 전집 17장짜리 박스 세트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내가 가진 산울림 앨범은 2집과 3집, 그리고 3장짜리 컴필레이션이 달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요작 2~3장만 더 가졌어도 유혹에 견뎌 보겠는데, 1집을 중고로도 구매하기 힘든 마당에 전집 박스 세트라니... 게다가 엘피 미니어쳐에 150쪽 양장 부클릿이라니... 재발매를 하는 로엔(듣보잡 음반사인 줄 알았는데 YBM서울음반의 새 이름이란다.)에게 절이라도 할 태세이다. 하지만 17.8만원이라는 가격은 만만치 않다. 한 달 용돈 탁탁 털고 점심을 한 달 내내 라면으로만 먹으면 가능한... 하하...
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대박 고가 상품은 꾸준히 나온다. 줄줄이 글이 길어지지만 그냥 지워 버렸다. 아씨바 욕 나온다.
현 직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근무 조건은 도서구입지원비 지급이다. 일정 한도 안에서 도서 구입비의 60%를 지원해 준다. 몇 가지 제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책값의 40%만 더 지출하면 책을 꽤 많이 살 수 있다. 입사 초기 팀장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자기는 읽든 안 읽든 한도액을 꽉 채워 산다고 했다. 책 지름질을 좋아하는 나로서 마다할 리가 있나? 1월부터 지금까지 한도액을 꽉꽉 채워서 때로는 1-2천 원 정도 초과하면서 책을 사들이고 있다. 물론 지원비가 나온다 하지만 엄연히 40% 만큼의 비용은 지출해야 하는 만큼 아내는 도끼눈을 뜨지만 아내의 책까지 일정 정도 지원비로 사면서 입막음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왠지 이 한도를 안 채우면 손해 볼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다 언제까지 지금 회사를 다닐지 모르지만 서가를 채울 수 있을 때 팍팍 채워 놔야 나중에 놀아야만 할 때 덜 괴로울 듯싶다. ^^;
사는 건 둘째치고 이 책을 다 읽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한 달 내내 꼬박 읽어도 감당하기 힘든 양을 매달 사들이는 통에 사실 만화책을 제외하곤 책은 그저 꼽아 두는 용도로 쓰는 건 사실이다. 특히 알라딘에서 중고샵을 개장하면서 초반에 중고의 특성상 한정 상품이라는 데 혹해 마구잡이로 사들이기도 해 더 문제이다. 이 속도로 가다간 내년에 이사를 가야 할 때 이삿짐센터 사람들로부터 한소리 들을 하지만, 재작년 비로소 처음으로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기까지 그동안 언제라도 거처를 옮길 수 있도록 가능하면 짐을 주려야 했는데다 학비와 생활비를 근근이 조달하느라 책 한 번 제대로 못 사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책은 살 수 있을 때 사 놔야만 할 듯하다. 하지만 원칙은 필요한 법. 에세이 류처럼 한번 툭 읽고 마는 책은 가급적 제외하고 인류사의 고전이나 개념 정리 사전 같은 두고두고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 그리고 일단 꽂아 두면 집안의 품격을 높이는 가오 지향의 책을 주로 사려 한다. 물론 그것은 바람일 뿐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는 책을 사면 서평이라도 쓰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서평을 쓰기는커녕 제대로 읽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매달 두세 편 정도는 꼬박꼬박 서평을 쓰려 노력한다. 비록 쓰지 못하더라도 읽으려 노력하지만, 펴 보기만 하고 끝내 읽지 않은 책이 무척 많다. 그래도 그렇게 책으로 채워져 가는 서가를 보면 위는 굶주려 있어도 배가 부른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가뜩이나 출판가 불황이라는 말이 많은데 책 만드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사 줘야 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3개월 된 아이도 나 닮아 책이 좋은지 거처인 안방보다 책 먼지 가득한 서재방을 더 좋아한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대견하다. 아마도 점점 내가 읽는 책보다 아이가 읽을 책이 많아지리라. 그리고 아이가 제법 크면 나랑 서로 자기 책을 사겠다고 싸우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거기에 아내도 한몫 거들겠지. 생각만 해도 흐믓하다.
2008년에 산 책 목록
1월(16권-2권 되팖) 커피
십자군 이야기 1, 2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책과 세계 -> 소유분 실종으로 재구매
@
도시의 창, 고급호텔 -> 챕터 서너 개 읽고 알라딘에 되팖.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 카리스마, 브랜드 네이밍 -> 업무용 구입 도서
핫도그를 먹을까 핫덕을 먹을까 외래어 표기법 -> 업무용 구입 도서
3초 안에 반응이 오는 카피라이팅 -> 업무용 구입 도서
현대문자생활 백서 우리말 맞춤법.띄어쓰기 -> 업무용 구입 도서
한국 철학 스케치 1, 2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내 소유
@ 퀘스트 -> 헐값에 사서 구매가보다 비싸게 알라딘에 되팖.
그리스 비극 - 에우리피데스 편 -> 아내 소유
개념어 해석
2월(14권)
중세의 가을
치즈와 구더기
레제르 1, 2
기독교의 교파 - 그 형성과 분열의 역사
The Left 1848-2000
문화과학의 논리 -> 아내 소유
헤겔예술철학 -> 아내 소유
삼국전투기 1
열린책들 편집매뉴얼 -> 업무용 구입 도서
[중고]인간 없는 세상
[중고]애덤 스미스 구하기
[중고]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고]자본론 1 -상
3월(14권)
[중고]자본론 1 -하
[중고]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중고]현대 문학.문화 비평 용어사전
[중고]정훈이의 내 멋대로 시네마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3-2
정치적인 것의 귀환 -> 아내 소유
조선의 문화공간 1, 2
건방진 우리말 달인 -> 업무용 구입 도서
삼국전투기 2
[중고]세기말 비엔나
4월(17권)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아내 소유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 아내 소유
트래블홀릭-남유럽편 -> 아내 소유
세상의 모든 철학 -> 수업 교재
서양의 지적 전통
[중고]학교계급과 재생산
[중고]루트와 코드
[중고]온가족이 함께 읽는 신약성서
[중고]고양이대학살
The Art Book
필름 속을 걷다
삼국전투기 3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 출산/육아
삐뽀삐뽀 우리 아가 모유 먹이기 -> 출산/육아
[중고]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중고]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중고]지식의 최전선
5월(21권)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서구 정치사상 고전 읽기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사랑의 기술 -> 아내 소유
성장, 그 새빨간 거짓말
세계 신화 이야기
[중고]역사스페셜 1~7권 세트
[중고]현대 자본주의의 유형
[중고]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중고]21세기의 동양철학
중세의 형성 -> 아내 소유
로마공화정 -> 아내 소유
[중고]습지생태보고서
닥쳐라 세계화
정훈이의 뒹굴뒹굴 안방극장
6월(21권)
불한당들의 세계사 -> 아내 소유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
켈트 이야기
[중고]다산 정약용
[중고]테이레시아스의 역사
[중고]신들의 전성시대 -> 소유분 분실로 재구매
[중고]경제학의 향연
수사학 -> 아내 소유
유리피데스에게
흰기러기 -> 업무상 구입했다 개인 구입으로 전환
땡땡의 모험 3부 8권 세트
[중고]가톨릭교회
[중고]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중고]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1
7월(17권)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에티오피아 대장정
이데올로기 -> 소유분 분실로 재구매
이즘 - 철학 정치편
콩고에 간 땡땡
픽션들 -> 아내 소유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꿨는가
그리스 비극의 이해
삼국전투기 4
아틀라스 한국사
왼손과 오른손 -> 아내 소유
UFO학 인류학과의 조우
도마 위에 오른 밥상
장미의 이름 읽기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 출산/육아
[중고]도자기
종교, 지도로 본 세계 종교의 역사
8월(11권)
지나간 미래 -> 아내 소유
알렘 -> 아내 소유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미국에 간 땡땡
시베리아 횡단열차
[중고]서양 미술사 1
한자왕국 -> 아내 소유
고전영화본색
아름다운 바다
서양사 개념어 사전
한국근현대사사전
9월(14권) 위대한 영화 1, 2권 세트 인간 칼잡이들의 이야기 -> 아내 소유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 베네치아의 전설 변화하는 세계의 아틀라스 사랑의 이미지 -> 아내 소유 푸른 연꽃 내 별자리의 비밀언어 20 대한민국 식객요리 춘하추동 봄, 여름, 겨울, 가을 세트
10월(20권)
셰익스피어의 기억 -> 아내 소유
러시아 미술사 -> 아내 소유
발견 :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사마르칸트의 황금궁전
발견 :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일곱 개의 수정구슬
추리소설의 세계
특급추리여행
본격 제2차세계대전 1권
GM(General Manager) 1차전
삐뽀삐뽀 119 이유식 -> 출산/육아 [중고]사나운 새벽 2, 3, 4 [중고]국가와 사회혁명 [중고]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중고]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2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황금 집게발 달린 게
미의 역사
11월(4권)
매그넘 매그넘 공산당 선언 -> 에릭 홉스봄 모던에디션 서문 게재된 절판본 사상의학 바로 알기 자연의 빈자리
12월(12권) 세상을 바꾼 사진 철학하는 예술 -> 아내 소유 여성예술가 -> 아내 소유 애욕전선 이상없다 2 아이가 나를 미치게 할 때 -> 출산/육아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스페인어 급하신 분을 위한 표현백서 -> 아내 소유 독이 되는 부모 -> 출산/육아 닥터 고의 우리 아이 명품 건강법 -> 출산/육아 가톨릭에 관한 상식 사전 경이로운 생명 (특별보급판) 브루넬레스키의 돔 -> 아내 소유
합계를 내 보니 171권을 샀고 그중 2권은 되팔았으니 결과적으로 169권을 산 셈이다. 참 징그럽게도 많이 샀다. 서가가 대번에 포화 상태에 이르었다. 그런데 이중 만화책을 빼면 한 30권쯤 읽었을까? 아니 20권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예담에서 이번에 '위대한 도전이 낳은 인류의 명작 시리즈'를 내놓았다. 나처럼 가오 지향형 책에 잘 뽐뿌질 당하는 인간 만을 위한 책인데, 비행기, 범선, 자동차, 자전거의 '역사'를 다룬다는 이 시리즈 세트 가격은 25만원. 손간 허걱 하는 소리가 나온다. 가격부터 이 책을 팔려고 만든 책인지 의심이 들지만,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리뷰를 보니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와 같은 판형이라 한다. 가로 361mm 세로 267mm 320쪽 양장본. 나름 크다 생각하는 우리 집 서가에도 꽂지 못하는 그 거대한 판형 말이다. 램프의 바바 같은 웃음이 인다. 음홧홧홧홧.
하지만 탐/난/다. <조르주~>와 '세계문명 시리즈'는 비록 올바로 꽂아 두진 못하지만 이따금 폼 좀 내면서 읽기에 좋은 책 아닌가. 게다가 몇 년 뒤 아들과 함께 학습의 목적으로도 충분히 볼 수(아니다, 이 녀석 책을 자꾸 찢어댄다. ^^;) 있다. 하지만 세트 25만원 각 권 8~10만원은 만만치 않다. 그런데 발견한 사실 각 권 8~10만원인데 세트는 25만원? 8+8+8+10=34만원인데, 그러면 세트는 무려 9만원이나 깎아 판단 말이야? 얼마전 79%나 할인해 주던 알라딘 수입 앨범 파이어셀러 행사를 바빠서(실제로는 뒤지기 귀찮아서) 못 뒤지다 리스트에 모셔 둔 탠저린 드림 박스 세트를 날려 버린 것이 떠올랐다. 무려 9만원이나 깎아 주는데... 시간 지나면 분명 이 세트는 품절시킬 텐데... 어짜피 지를 땐 과감히 팍 질러야 하는데...
물론 세트가 25만원, 할인가 22.5만원은 도서지원비로 구매한다 해도 한도를 넘어서는 금액이다. 얼핏 두 달로 쪼개 살 수 있다는 말도 들은 듯하지만, 그러기엔 두 달 동안 다른 책은 못 산단 말이다. 육아나 아내의 공부 같은 이래저래 필요한 책도 이따금 있는 판에 그리 지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게다가 아직 못 지른 세트나 시리즈도 아직 많다. 게다가 내가 비행기 말고 다른 권에 관심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동양의 범선이 나오지 않는 반쪽짜리 범선에는 호기심이 날아가 버렸다. 자동차도 좀 왔다 갔다 하고, 자전거는 뭐 볼 게 있나 싶다. 흐음. 점점 안 사는 방향으로... 대신 다음 달에 비행기 하나 정도 사는 거... 아, 아내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 미리보기를 보니 참 간지난다. 가오용으로는 딱인데... 흐흐흐.
24권이나 되는지라 이미지를 다 따다 붙이긴 귀찮고 힘들고 시간도 없고 해, 품절 상태이긴 하나 일단 8권짜리 세트 3종의 이미지와 링크를 붙였다. 24권 전 권의 불어본 커버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이달 초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 5권 구매를 완료한 데 이어 <일곱 개의 수정 구슬>을 끝으로 땡땡의 모험 시리즈 24권 전 권을 모두 구매했다. 아싸~!
몇 년 전 땡땡의 모험 한국어판을 발매하는 출판사에 후배가 들어가자 직원가로 싸바싸바 해 8권 세트 3종을 구매하기는 했지만, 그때에는 금액이 부담돼 함께 일하던 (당시 임신 중이던) 후배 한 명을 꼬셔 반반 부담으로 세트 3종을 사서 반씩 나눠 가졌다. 그때에는 한두 번 보고 말 생각으로 "네 아이가 태어나면 출산 선물로 다 넘기마"라고 했지만, 이 말은 식언이 되었다. 책 욕심도 났거니와 내게도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들춰보는 땡땡의 모험은 너무 재미있었다. 허긴 먼 옛날 보물섬에 연재될 때에도 재미있게 봤으니.
그리 하여 전 권을 모두 모으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단 내게 없는 세트 한 종을 사고 그 다음달부터는 코르토 말테제와 함께 한 권씩 사들였다. 으하하.
땡땡의 모험은 좀 희한한 책이다. 첫 권인 <소비에트에 간 땡땡>은 볼세비키 치하의 소련에 대한 거의 적대적인 멸시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둘째 권인 <콩고에 간 땡땡>에서는 전형적인 서구 제국주의자의 시선으로 아프리카인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지극히 제국주의적이고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 하던 시각이 조금씩 변하더니 나중에는 전 세계의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좌빨'스러운 기운이 넘쳐났다. 오호호. 들리는 말에는 한 중국인이 작가인 에르제를 설득해 그를 '개종' 내지는 '회심'시켰다고 한다.
생태적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이 그리 내밀화한 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 정도는 가졌던 후배에게 에어캡(일명 뽁뽁이)는 필요하지 않은 거추장스러운 사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야겠다 말했다. 그런 후배에게 인터넷서점의 할인액을 이야기하는 건 아무 의미 없었다. 후배는 이미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반생태적으로 살아선 않아야 함을 이미 내비쳤기 때문이다.
책을 비롯해 시디, 디비디, 커피, 아이 용품 등을 거의 대부분 인터넷쇼핑몰에서 구매하는 내게 에어캡은 친숙하다 못해 내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접하는 물건이다. 상품을 안전하게 내게 가져다준다는 본래의 목적 말고도, 톡톡 터트리는 재미로 스트레스의 극히 일부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물건을 풀어 버리면 처치해야만 하는 쓰레기의 근원이기도 한다. 다른 비닐과 함께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수거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내 곁에서 치우는 것일 뿐,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따금 후배의 말이 머릿속에서 겹쳐져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인터넷쇼핑물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비굴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기도 하다. 잠깐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 불편한 건 나중 문제이다.
주문하는 상품에 따라 여전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으로 돌돌 말려 오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알라딘은 "흔들림없는 에이스포장"이라는 이름 아래 거창하게 랩 포장을 한다고 홍보한다. 마침 주문한 상품 가운데 그렇게 포장돼 온 상품이 있어 살펴보니, 책 두 권이 불쌍할 정도로 비닐에 압착돼 판지에 착 달라붙어 있다. 이 정도 상태가 유지된다면 업체 입장에서는 자랑할 만하다. 좀 더 다양한 판형과 두께의 책을 포장한 것을 봐야 확실히 안심하겠지만, 큰 문제가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확실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보다는 소요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었다. 에어캡이든 에이스포장의 비닐이든 실제로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 구매 패턴에 따라 예측되는 누적량을 보건대 확실히 내가 버려야 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후배의 말로부터 10%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지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