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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6 시디를 사 대다 8

지난 반 년 동안 구매한 시디는 모두 36장. 사은품으로 받은 것도 있고 중고가 절반 가까이지만 따지자면 매달 여섯 장씩 시디를 샀다는 것인데 내 주제에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빠듯한 용돈 탈탈 털어 쏟아붓고, 적립금 마일리지 쿠폰 싸그리 긁어 모으고, 아내도 좋아할 만한 앨범은 슬쩍 책 사면서 한 장 끼워 넣고...  이리 해도 장난 아닌 금액이다.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 내 스스로 감당할 깜냥만큼 시디를 사지만, 책보다 더 쉬이 품절되고 정작 품절되면 언제 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게 시디이다 보니 막상 뒤졌을 때 시디가 나타나면 안 사고는 못 배긴다. 그나마 아내가 무서워 회사에 수백 장 쌓아 두면서 가뭄에 콩 나듯 집에 들여가는 친구 놈 이야기를 들으면 그 정도가 아닌 게 다행이다 싶다.

시디가 아닌 디지털 앨범을 사고선 새 음반 샀다고 말하는 후배의 말에 깜짝 놀란 게 삼사 년 전 일이다. 시간의 지나는 것과 반비례로 시디는 더욱 안 팔리고 디지털 앨범 또는 싱글이 팔리거나 여전히 MP3 파일이 넷 세계를 헤엄쳐 다니는 시대이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은 여전히 시디를 사 대고 있다. 옛 뮤지션의 몰랐던 곡, 못 샀던 앨범을 어쩌다 접하면 시디를, 아니 시디로 꼭 사야 할 것만 같은 강박 관념이 생긴다. 그리고 구할 수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아니지만, 설사 그러기라도 하면 몹시 짜증 내며 "시디는 안 사고 불법 다운만 받는 이 더러운 세상!"이라며 혼자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러다 중고가 나오거나 수입이라도 되면 낼름 구매해 놓고선 혼자서 킥킥 거린다.

좀 웃기다. 그 자체로 폼 나는 엘피도 아니고 고작 12인치 쌔고 쌘 시디 따위를 사 대는지. 좋은 오디오로 듣는 게 아니라 기껏 컴퓨터로 재생하거나 심지어 리핑해 싸구려 이어폰으로 듣는 주제에 굳이 시디를 사 대는지. 이삿짐을 쌀 때마다 혹여 케이스가 깨질까, 아이가 시디를 집어던지기라도 하면 흠집이 나진 않았을까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왜 굳이 시디를 사 대는지. 살림살이에 털끝만큼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돈 버는 것도, 용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면서 어찌 시디를 계속 사 대는지. 나만큼이나 음악 듣는 거 좋아하는 아내도 선뜻 이런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시디로 음악을 들어야 듣는 것 같은데, 시디를 사지 않으면 누군가 채 갈 것 같아 사촌이 땅 사는 것만큼 배가 아픈데.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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