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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4 축구를 좀 더 제대로 보는 법
현대축구의 전술, 알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 - 8점
이형석 지음/싸커라인(Soccerline)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을 드나들다 <현대축구의 전술, 알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라는 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접했다. 평소 축구 전술에 관심이 많던지라 낼름 구매했다. 정가 1.3만원이라는데 배송료 포함해 1만원이면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서점과는 유통 계약을 맺지 않고 웹사이트 직판과 옥션에서만 판매하는 게 흠이라면 흠.

예정된 날짜에 받아 본 책은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조금 놀라게 했다. 한 명이 디자인, 일러스트, 편집을 도맡아했다는 이 책의 디자인은 HWP로 편집한 듯 무척이나 심심하고 또 심심했다. 애당초 올 컬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책에선 축구장의 녹색 그라운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마치 해외 전지훈련을 나갔다가 녹색 잔디의 전용 구장이 아니라 맨땅 공설 운동장을 보고 당황한 느낌. 게다가 도중에 문단 하나를 통째로 날려 먹은 페이지가 있는가 하면 가독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타이포그래피, 빡빡한 여백의 설정 등, 책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보지 않은 이가 며칠 밤을 캐고생하며 HWP로 낑낑 됐을 뻔한 장면이 눈에 선했다.

한국 축구계나 출판계나 그 빤하디빤한 좁고 열악한 환경을 고려하면 사실 이런 책이 팔려 받자 얼마나 팔릴 것이며, 이런 책을 과감히 펴낼 출판사가 어디 있겠나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태생 자체를 축복해 줘야 하는 소중한 결실일 게다. (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 않은가. 심히 아쉽다.) 사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봐도 축구에 관련된 책 자체가 별로 없는데다, 그마저도 선수 가이드북, 에세이집이나 칼럼집에 불과할 뿐 전술 등을 다룬 축구 전문 서적은 가뭄에 콩 나 듯하다.

열악한 디자인에 비하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좋은 편이다. 전반부의 '축구 전술의 역사'와 '현대 축구의 이해' 편은 축구 전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내용을 적절히 채웠다. 우리가 흔히 뉴스나 해설로만 접해 실제로는 관념적으로 안다고 믿는 '압박 축구'와 '카테나치오' 같은 개념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어지는 포메이션 시스템별 전술의 상세한 해설과 시스템 간 대결 구도에 대한 설명은 포메이션이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한다. 특히 관념적인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맨유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의 실제 사례를 거론하며 해설하는 점에서 좀 더 이해가 쉽다. (문제는 팀 간 구분이 잘 되지 않는 단도 일러스트.)

이런 축구 전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설명한 다음에는 홀딩-앵커맨으로 구성되는 중앙 미드필드진의 필수성, 로테이션 시스템, 유럽 3대 리그의 차이점 같은 축구팬이라면 가질 만한 질문 10가지를 두고 앞서 설명한 이론을 바탕으로 답해 준다. 특히나 해외 언론 등을 통해 유입되었다가 원개념이 이상스레 변해 버린 용어를 사용하면서 발생한 축구 전술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켜 준다.

제목도 제목인데다 마무리 글에서 밝히 듯 저자 스스로 '알고 봐야' 함을 강조한다. 그저 리모콘 들고 맥주캔 부여 잡고 편한 자세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숱한 경기의 연속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차츰 발전해 온 복잡한 전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볼 것을 주문한다. 그럴 때 비로소 박지성이 재계약을 한다 만다, 주전에서 밀렸나 안 밀렸나 같은 가십은 휴지통으로 밀어 넣고 축구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덧. 알라딘에 등록돼 TTB리뷰로 발행한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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