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 상세보기
김두식 지음 | 창비 펴냄
『불멸의 신성가족』은 사법을 주된 탐구 대상으로 삼고, 사법을 통해 우리사회 전체의 모습을 분석하고자 시도하였다. 본문에는 일반적으로 사법 하면 떠올리는 판검사, 변호사, 경찰, 민형사 소송 경험자는...

책이 나오기 전에 제게도 <불명의 신성가족>의 가제본이 전달됐습니다. 읽지는 않고 대충 훑어보기만 했는데, 부제에서 일단 어렴풋이 제목이 뜻하는 바를 유추할 수 있었죠. 또한 '김두식'이라는 저자명에서 이 책은 그의 전작인 <헌법의 풍경>이나 <평화의 얼굴>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표지가 없었기에 그동안 6권이나 진행된 '우리시대 희망찾기'라는 시리즈라는 점은 방기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받아들고서도 시리즈임을 알 수 없었죠. 뭐 제가 꼼꼼이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 가장 크겠지만, 기존 6권과 표지 디자인이 확연히 다릅니다. 또한 상징성 가득한 제목의 콘셉트도 다르죠. 익숙한 책등이 아니었다면 시리즈의 일부임을 한참 후에나 알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이 제목으로 인용한 엥겔스의 저작은 저 또한 읽어 보지 않아 내용은 모르나, '신성가족'이라는 단어가 전해 주는 느낌은 명료합니다. 거기에 부제에 기재된 '사법 패밀리'라는 용어로 볼 때 이 책의 성격은 제목만으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죠. 여기에 저자의 전작을 읽어 본 이들이라면 띠지의 문구를 보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불멸'이라는 수식어가 걸립니다. 그만큼 '사법 패밀리'가 그들만의 철옹성 안에서 스스로를 게토화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무언가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불길함을 전해 주는 듯합니다. 이는 책의 결말에서도 드러나더군요. '억지로 찾아본 희망'이라는 중제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문제 투성이의 '신성가족'을 어찌해 보지 못하고 "시민들이 두려움의 장막을 걷고 법조계를 향해 말 붙이기를 시작"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나마도 "해체될지도 모릅니다"라는 도망가는 듯한 뉘앙스로 말이죠. "외형적으로는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고 하지만, 저자는 '의사소통의 부재'와 '원만함'이라는 여전한 문제점을 제시하며 스스로 "방법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시민의 희망이다"라는 말은 줄 하나 댈 사람 없는 85.5%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억지로 찾아본 희망"에 불과하지요. 책을 읽으면서 손이 오그라들고 가슴이 미어터지는 와중에도 그래도 마무리에 가서는 제아무리 '불명의 신성가족'이라 할지라도 뭔가 흔들어 볼만한 '껀수'를 제시하겠지 하는 제 바람은 여지없이 휴지통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자의 위치나 시리즈의 특성을 볼 때 어쩔 수 없겠구나 했던 애초에 느꼈던 한계점이 확인받는 것 같아 조금 불쾌했습니다.


검사 생활이 짧았기에 그저 로스쿨 교수일 뿐인 '신성가족'의 외곽에서 맴도는 저자는 애초에 '법당밖에서 빙빙 도는 종교 전문 기자'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몇 안 되는 내부고발자들의 구술을 정리하는 책의 콘셉트 상 대안적인 결론을 낼 수 없었을 겁니다. 이건 인정해야죠. 본격적으로 사법 시스템 내의 문제를 내부 고발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일 테니까요. 게다가 저자 스스로가 꾸준히 면접하고 정리하고 기술해 나가면서 신영철 대법관 사태 같은 현 시점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신속하게 다루었다는 점 역시 장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동안 '신성가족'의 지배에서 고통받아 온 사람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에 그친다는 단점으로도 비칩니다. 생생한 내부고발자의 증언에 손이 오그라드는 분노를 야기할 수는 있지만, 정작 하경미 씨처럼 '개고생'을 해야 그나마 대들어 볼 수 있음을 확인할 때 독자는 스스로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시대 희망찾기'라는 시리즈 명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이러한 사법 패밀리들의 문제점은 사법 제도를 통째로 바꿔야 뭔가 개선의 여지가 있습니다. 미국처럼 사법시험이 아닌 로스쿨로 변호사를 양성하고, 일률적인 성적순이 아니라 공모로 판사와 검사를 선발해 양성하고, 추첨으로 된 배심원이 실질적인 판결을 하는 등 개선할 방향은 있습니다. 문제가 가득하긴 하지만 이미 로스쿨이 개교했고, 국민참여 배심원 재판도 시범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기의 시도를 접하지 않고 문제점만 고발하는 것은 열심히 분노해 온 독자를 허탈하게 하지 않나 싶군요. 그럴 바에는 나름 법 전문가가 굳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저자가 말한 문제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기자가 진행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의구심이 듭니다. 거기에 저자 스스로 "우습다"라고 실토한 정년 보장이 되고서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서두에서 밝힌 말은 짜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소 지엽적이지만 아쉬운 것 중 하나가 브로커들을 '신성가족의 제사장'이라 칭한 점은 재미있는데, 그것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신성가족'이라는 상징 가득한 제목 덕분에 딱딱한 고발서에 그쳐 보이지도 않죠. 하지만 딱 거기서라는 게 걸립니다. '신성가족'의 내부와 외부에서 똬리 틀고 있는 각종 군상들을 '신성가족'이라는 이름을 두고 저마다 상징화해 묘사했다면 조금은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표지의 이미지도 아쉽습니다. 굳게 닫힌 '신성가족'의 폐쇄성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자물쇠 모양의 이미지는 그리 보이는데 그 콘셉트와 제목의 서체는 어색해 보입니다. '신성가족'에는 좀 더 견고한 느낌을 준다면, '불멸의'에는 기왕 캘리그라피를 한 것 무언가 바스라 트리는 색깔과 서체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리 쓰고 보니 맨 불평만 가득하군요. 앞서 말했지만 읽는 내내 두 손이 오그라드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저 역시 85.5%에 속하는지라 나도 저리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함께 가능한 저 인간들과는 엮이지 않는 게 좋겠구나 수십 번 다짐하면서도 책 자체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재미있게 읽는다 말하면서도 "이거 참 씁쓸하구먼" 하는 속내는 끝내 감출 수가 없군요.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사내 인트라넷에 내부자 리뷰로 쓰였기에 TTB리뷰에 링크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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