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된 지 오래된, 그런데 최근에 재쇄를 찍은 책의 경우 읽다 보면 낯선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대부분 타이포의 문제인데 컴퓨터에 만들어진 서체가 아닌 예전 활판에서 찍어 나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책을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보면 활판 인쇄 특유의 요철감은 없이 밋밋하다. 따라서 활판 인쇄에 대한 향수에 왜 그런 요철감이 없냐고 출판사에 항의 전화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한다.

현재 출판단지에 있는 활판 공방을 제외하곤 국내에서 활판 인쇄하는 곳은 없다. 즉 요철감을 느끼는 인쇄는 그러한 느낌을 구현할 수 있는 인쇄기를 사용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며, 그런 인쇄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왜 그런 활판 인쇄 느낌의 타이포로 인쇄되었냐 하면, 옛날 책을 촬영해 새로 인쇄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쿽익스프레스이든 인디자인이든 컴퓨터로 책을 조판하기 전에는 전산조판이라는 입력기를 쓰던 때도 있었고, 아예 활판 인쇄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의 자료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 즉 예전 책을 다시 찍으려면 직원이든 알바이든 책의 텍스트를 타이핑한 뒤 북디자이너가 새로 레이아웃을 잡은 뒤에 조판해야 한다. 즉 오래된 책 새로 만드려면 생고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옛날 책을 촬영하거나 스캔해 디지털 파일을 만들고 이것을 바탕으로 정해진 판형에 그냥 앉히는 작업을 거쳐 책을 인쇄한다. 따라서 예전의 타이포가 느껴지는데 요철감은 없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경우 오타 수정이 곤란하다. 최대한 예전 타이포의 느낌을 살리는 서체를 고르고 장평과 자간도 그에 맞게 조절해 수정자를 만들고 그것을 사진이나 필름에 덧붙여야 한다. 이거 역시 생고생이다. 따라서 생산자의 윤리 따위는 눈 찔금 감고 독자의 원성 따위는 휴지통에 구겨 넣고 그냥 배째라 인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표지 정도만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 개정판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 양심적이면 판형이라도 교체하는데, 이 경우 여백의 미를 좀 더 살리거나 사진을 약간 확대하면 된다. 뭐 양심적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외려 더 사기치는 느낌이 든다.

범우사에서 나온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011년 개정판. 판형은 조금 커졌는데 쪽수는 93년 초판과 일치한다. 여태까지 말한 것에 의해 새로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 관계자에게는 새로 교정 봤다고 하는데... 글쎄... 과연 그 생고생을 했을까? 뭐 품절된 채로 있는 것보단 그래도 이게 낫다.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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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유한 책 가운데 모 인터넷서점에서 품절 또는 절판이라 뜨는 책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사실 구매 버튼 대신 '품절' '절판'이라는 문구가 뜨면 왠지 뿌듯해지면서 안도의 한숨이 내쉬게 된다.

책이 품절 또는 절판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출판사가 망해 절판된 경우, 둘째, 출판사 측에서 책이 팔리지 않아 재고 보유로 인한 손실을 줄이고자 절판시키는 경우, 셋째 개정판을 내거나 출판사가 바뀌면서 재출간되는 경우, 넷째 출판사가 피인수되면서 새 주인이 기존의 책을 털어 버리려는 경우이다. 첫째는 어쩔 수 없다치지만, 둘째와 세째, 그리고 네째는 출판사가 돈벌이에 혈안이 돼 그리 된 걸 종종 보아 왔다. 그런 책을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 하지만 책이 잘 팔리면 그런 일은 대체로 없으니 역시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이다.

몇 가지 절판 사유를 더 알게 되어 추가한다. 그중 하나는 타국과 자국의 출판 환경의 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외서를 계약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예컨데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시장이 다른 미국에서는 별개의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그런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섣불리 계약했다가 피눈물 쏟는 경우가 있다. 계약은 페이퍼백으로 해놓고 하드커버로 책을 내놓으면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바다출판사가 <역사의 원전>과 <지식의 원전>이 양장본을 절판하고 반양장을 다시 내놓은 게 이에 해당하는 사례인 듯. (이 페이지에 따르면 잘못 알았던 사실.)

그리고 저자 스스로 지나간 책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절판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공저자와 다툼을 벌인 끝에 의절해 둘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고, 스스로 졸저라 생각하거나 자신의 책이 지금 시일에 맞지 않는다 판단해 책이 사라지기를 원하기도 한다. 심지어 저자가 출판사(정확히는 사장)가 마음에 안 들어 절판하는 경우도 있다.

추가. 번역서의 경우 외국 에이전트들이 판권료를 무자비하게 올리는 바람에 대박으로 나가는 책이 아닌 양 군소 출판사가 감당하지 못하고 판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읽는 것이 바로 나'라는 패러디성 문구도 있지만, 무슨 자랑질 하는 것도 아니고 내/아내가 보유한 책의 목록을 공개한다는 게 다소 추잡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 구매 도서 목록도 그런 맥락에서 비공개로 돌려놓았다. 이 글 또한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목록 부분만 떼로 떼어낼까 하다가 일단 두기로 했다. 이는 이러한 품절/절판 도서가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 장만하라는 뜻이다. 품절/절판 도서 구매는 손품이든 발품이든 열심히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목록을 보면서 미리 품절된 만한 책을 장만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덧.

1.
품절/절판된 책 구하는 방법으로 검색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각종 헌책방을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발품을 파는 것. 다른 하나는 해당 출판사에 연락해 사정하는 것이다. 대개 품절된 지 얼마 안 된 책은 출판사에 보관용으로 남아 있는 게 좀 있다. 잘 보이면 득템할 수 있다. 책 구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유입이 많아 헌책을 구하는 방법에 관한 포스팅을 따로 했다. http://camelian.tistory.com/288

2.
내가 보유한 품절/절판된 책의 권 수를 세어 보니 모두 90권이다. 흐믓하기보다는 씁쓸하다.

3.
품절과 절판의 차이를 검색어로 들어오는 유입이 좀 있다. 나도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선배에게 물으니 공식적으로 출판사에서는 절판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설사 앞으로 책을 찍어 낼 일이 없다고 해도 출판사에서는 체면치레 겸 책임 소재로부터 도망갈 요량으로 절판했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품절이라고 한단다.
다만 출판권을 소멸한 경우에는 어쩔 수 절판이라고 한단다. 예를 들면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녹색평론사에서 나오다 현재는 중앙북스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럴 경우에나 절판되었다고 한단다. 아니면 출판사가 아예 망하거나 꽤 오랫동안 품절 상태로 있던 경우나 새 판본을 내놓으려 구판을 폐기했을 경우 절판이라 한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으로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 몇몇 출판사는 앞으로 출간할 의사가 없을 경우 절판이라고도 선언하는 듯 보인다. 예컨대 세미콜론의 신시티 시리즈 중 몇 권은 절판 딱지가 붙어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슬쩍 일시품절 같은 면피를 붙였다가 슬쩍 품절로 바꿔 놓는데, 재고가 떨어지자마자 아예 절판 딱지를 붙여 버렸다. 이럴 때 책을 애타게 찾던 독자의 슬픔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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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솔루션책 취향 섹션이 추가되었다. 이런 거 있으면 절대 마다하지 않고 해 보는데, 첫 테스트 결과는 평론가의 까탈, "북방침엽수림" 독서 취향이었다. 이전 취향 테스트에서도 할 때마다 결과가 달라졌던 것을 생각해 다시 해 보니 웬걸 우수에 젖은 휴머니즘, "서안 해양성" 독서 취향이 나온다.

이쯤 되면 극과 극을 오가는데 서안 해양성은 영 아니다 싶기도 해 또 한 번 더 해 보니, 이번에는 하드보일드 실용주의, "사막" 독서 취향이 나온다. 재미 붙어서 또 하니 이번에는 외톨이의 초연함, "툰드라" 독서 취향. 그 후로는 사막이 두 번 더 나와 결국 사막이 내 취향이 아닌가 잠정적으로 결론내렸다. 빌 밸린저나 위화는 읽어 보지 않았지만 베르베르는 그래도 몇 권 읽기는 했다.


사막을 포함해 무려 4개의 유형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다른 4개의 유형, 즉 온화한 "지중해성" 독서 취향, 출판계의 패셔니스타, "몬순" 독서 취향 , 비옥한 창의성, "열대우림" 독서 취향 , 현실적인 품격, "사바나" 독서 취향 같은 유형은 선택되지 않으니 대략적인 내 독서 취향이 드러난다 싶다. 사실 사람의 취향을 딱 이거다라고 정의내리기는 힘들다. 당연스레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수많은 유형의 교집합에서 어느 한쪽으로 살짝 쏠리는 정도일 게다.

그런데 책 취향이라기보다는 문학, 좁게는 소설 취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거론되는 인물들은 죄다 소설가들이다. 묻기는 시도 있었고, 비문학 표지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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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구입 도서

2009. 10. 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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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없이 10시와 12시 사이에 퇴근하는 초바쁜 와중에 하루 휴가를 내고 이사했다. 한 동네에서 이사한 것이긴 하지만 이사 그 자체는 피로 또는 피곤이다. 이사하고나서 아내와 나는 그냥 뻗어 버렸다. 사실 포장 이사를 해도 따로 챙겨야 하는 것은 언제든 있기 마련이다. 며칠 동안 없는 시간을 쪼개어 아내와 둘이서 또는 아내 혼자서 힘겹게 버릴 것과 따로 챙길 것을 구분했지만 시간은 항상 빠듯했다. 그래도 하게는 되더라. 이삿날 새벽 그럭저럭 이사갈 태세를 갖추었다.

본 이사의 관건은 사다리차 기사가 여태 날라 본 가장 무거웠다던 냉장고도 아니고 65센티미터 좁은 틈에 63.5센티미터 폭의 세탁기를 넣는 것도 아닌, 대략 천 권 정도로 추산되는 책과 오백 장쯤 되는 시디였다. 100장 정도 되는 디비디는 일도 아니다. 애당초 포장 이사를 선택한 것은 바빠서가 아니라 이제는 책 싸는 일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포장 이사를 한다 해도 책은 있던 그대로에 배치될 수 없다. 하자면 원 위치대로 센터에서는 할 수 있다지만 그러면서 추가되는 시간에 그냥 포기하기 마련이다. 결국 책은 내 책과 아내 책의 구분 없이 분야와 크기에 상관없이 일단 마구 꽂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늘 내에 이사가 안 끝날지도 몰라서였다.

이러했음에도 보통 4시쯤 끝난다는 이사는 6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책상 유리가 깨진 게 있어도 인지상정상 이삿짐 센터에 처음 계약한 금액보다 조금 더 챙겨 줘야 했다. 정말 센터 사람들에게 책은 괴물단지일 게다. 사실 나보고 저 책을 싸고 나르고 집어 넣으라 하면 돈을 더 쳐 준다고 해도 진저리칠 듯싶다. 센터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교수와 목사라는데 젊은 사람이 웬만한 교수만큼 책이 있으니 놀라긴 놀랐을 게다. 이 꼴 안 보고 사려면 빨리 집 사서 이사 안 다니며 사는 수밖에 없지만 언감생심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다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는 책과 시디를 분류해 분야와 크기 등을 고려해 재배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일찌감치 재배치를 포기하고 책과 시디의 위치를 기억하는 것. 성질머리상 전자를 택해야겠디만 겁나게 바쁜 상황이다 보니 11월이나 되어야 가능하다. 사실 이전 집에 이사 오면서도 책을 정리하는 데 몇 달 걸렸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책이 더 늘었다. 심지어 회사에 쟁여 둔 책도 적지 않게 있다. 속히 후자를 택하는 게 마음에 여유를 줄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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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웬만한 신간을 주문해 받아 보면 띠지부터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띠지는 참 난감한 책의 요소이다. 좁은 책장에 박박 구겨 넣을 때 띠지는 여지없이 걸림돌이 된다. 게다가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타이포그라피 위주의 미니멀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관계로 띠지는 피부에 얹은 딱지 같은 존재로 여기진다. 그렇다고 무작정 버리지 않고 고이 접어서 책 뒤쪽 날개에 넣어 둔다. 이럴 때 서경식 선생의 <고뇌의 원근법>처럼 커다란 띠지는 처치하는 게 심히 곤란하다.

예전에는 띠지를 무조건 싫어했는데 점차 띠지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임지호 씨의 말처럼 출판사의 주요한 홍보 수단이기도 하지만, 점차 띠지 자체가 디자인의 한 요소이기 때문에 북디자인이라는 통일적 시각에서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서구처럼 홍보 문구를 아예 표지에 넣어 버리는 것보다는 제거할 수 있는 띠지에 넣는 게 나 같은 독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낫다.

물론 과다한, 무성의한, 선정적인 문구에는 눈쌀이 찌뿌려지지만 책 전체의 디자인상 부적절하다 생각하면 그냥 버리면 된다. 하지만 띠지를 잘 활용한 북디자인도 얼마든지 많다. 연휴 기간 책 정리하면서 그러한 것들을 살펴봐야겠다. 흠. 아내 책 정리와 시디 정리부터 해야겠군. 뭐 언젠가는 하겠지.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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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되는 비법이 아니라 그저 당선율을 조금 높이는 기술적 요소를 언급한 글입니다. 낚이셨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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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알라딘 TTB리뷰에 당선됐다. 그런데 간만에 되다 보니 당선축하 적립금이 1/5토막 난 사실에 조금 경악했다. 아낄 것을 아낄 것이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수긍하기란 어렵다. 요즘 같은 시절 적립금 5만원이면 꽤 짭짤하다. 하지만 이젠 꼴랑 1만원이다. 책 한 권 사기도 버거운 금액. 그래도 꽁짜잖아 하는 마음이 반이다. 물론 반은 그래도 원고료라 생각할 만한 건데 5만원은 너무 짜잖아 하는 마음.

이런 거 당선되는 거 보면 신기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껏 24건의 TTB리뷰 중에 이주의 당선작은 5건. 이중에서 모처에서 기사로 써 당선되어도 사양해야 할 것이 5건, 서평단으로 쓴 것이 2건인지라 이것들을 제외하면 17건 중 5건 당선이니 당선율이 1/3을 넘는다. 그리고 이쯤 데이터가 쌓이니 대충 어떤 책들이 당선되는지 얼추 감이 잡힌다. 이를테면 알라딘 담당자가 좋아하는 리뷰라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 마이리뷰로는 당선된 바 없어서 확신은 못하나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막연히 추측한다.

우선 성의 있게 써야 한다. 몇 줄짜리 반토막 감상을 끼적거리는 것으로는 당선, 안 된다. 요구하는 분량을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A4지 반바닥 정도는 써야 할 듯싶다. 물론 그보다 길면 읽다가 짜증 낼 게 분명하다.  그리고 당연스레 인터넷체 같은 인포멀한 말투는 집어던지고 어느 정도 한글맞춤법과 기본 형식은 지켜 줘야 한다. 이것은 당선과 상관없이 글로 인정받는 최소 조건이기도 하다. 글자의 조합은 글이 아니다.

둘, 가급적 근자에 출간되어 소위 잘 팔리거나 서점 직원 입장에서 좀 팔리었으면 하는 책이다. 물론 다소 오래된 책도 당선되기는 하나 당선작 리스트를 죽 보면 최근에 출간되어 세일즈 포인트를 높여 가는 책들이다. 어짜피 TTB리뷰 당선작은 책을 파는 데 뽐뿌질하는 목적으로 뽑는 거다. 알라딘 특성상 인문학/사회과학적 소재를 대중용으로 풀어 쓴 책을 좋아하는 듯. 다만 아주 학술적인 책은 서점의 매출고를 올리는 데 도움되지 않기에 그닥 좋아하지 않는 듯.

셋, 앞의 둘은 너무 빤한 것이니 실제로 쓸 만한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시작은 책과 관련된 개인적 경험을 한 문단 정도로 기재해 주는 것이다. 정색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포멀한 리뷰는 안 읽는 것인지 싫어하는 것인지 담당자에게 별로 인기 없다. 사실 나보고 읽으라고 해도 읽는 둥 마는 둥 할 게다. 앞 부분에서 읽은 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바탕으로 리뷰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글을 읽는 맛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빤한 말이군.

또 빤한 말 한마디 보태면 책의 주요 내용을 압축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 뭐 리뷰라면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막상 리뷰라고 올라오는 것들 보면 그게 불성실한 게 적잖게 보인다. 자, 이렇게 빤하디빤한 전제 조건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리뷰는 리뷰답게 그리고 읽는 이가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서점을 한가득 메우고 있는 자기계발서 마냥 누구나 다 알 법한 빤한 이야기이지만 그게 세상의 이치인 걸 어쩌겠는가.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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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 it RockPaint it Rock - 10점
남무성 지음/고려원북스

만화가 최훈이 더위를 먹었는지 7월과 8월에 걸쳐 매달 'GM'을 무려 2회나 연재했다. 그동안 '월간 GM'이라는 별명처럼 매달 1회, 심지어 달을 며칠 넘겨서 연재하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더위 먹었나 의심이 든다. 월간 체제가 된 지 거의 일 년이 넘어가니 나 또한 무덤덤해졌는데, 그래도 '삼국전투기'에 대한 연재 복귀 지연은 늘 아쉬었다. 그러던 찰나에 최훈이 또 뭔가 일을 벌인다는 소문을 접하고 말았다. 최훈의 새로운 연재물은 민음사 웹사이트에서 연재되는 '록커두들'. 록의 역사를 최훈식 어법으로 풀어간다는 것인데, 기대하는 것 이상의 아쉬움이 몰려온다. 'GM'도 '삼국전투기'도 엉망인 마당에 새로운 연재물이라니. 도대체 최훈은 얼마나 많은 욕을 더 먹어야 두 작품을 끝낼 수 있을까? ^^: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이제 9편 연재된 '록커두들'은 아무래도 얼마 전 단행본으로 나온 남무성의
<Paint It Rock>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다른 데도 아닌 민음사라는 출판사의 웹사이트에서 연재된다는 것은 단행본 출간을 염두에 둔 것이다. '록의 역사'라는 매혹적인 주제에, 최훈의 말빨과 패러디의 결합은 제법 괜찮은 구색을 갖춘 듯하다. 문제는 최훈이 록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록에 정통한 사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역사를 논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다. 록의 역사를 서술한다 것은 자칫하면 뮤지션에 대한 가십 거리를 주절주절 늘어놓기 십상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뮤지션, 장르, 레코드사 같은 일련의 요소가 시대적 사회적 배경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상호 파악해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일관된 서술로 풀어가야 한다. 거기에 대해서는 최훈이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 시작인 만큼 기대해 볼 만하지만 그가 블로그에서 하는 이야기만 볼 때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9편의 만화를 볼 때 아직은 단편적인 일화 심지어 가십거리에 다소 쏠리는 감이 있다.

그에 비해서 이미 1권이 출간된 남무성이 쓴 <Paint I Rock>은 록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아주 충실하게 록의 역사를 설명한 작품이다. 만화치고는 다소 재미없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지만, 만화는 여러번 이야기했듯 텍스트를 풀어가는 여러 방식 중 가장 파급력이 좋은, 유력한 접근 방식일 뿐이다. 특히 최훈도 초창기에 접근했다시피 록, 정확히는 록큰롤의 태동에 대한 필연적인 사회적 맥락을 상세히 이야기한다. 멜팅폿이라는 말처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이는 미국 땅에서 흑인들의 토속적인 블루스라는 종자가 전후 호황기와 베이비붐 세대라는 토양에서 변칙적으로 피어난 식물마냥 록이 생성되었다는 서술은 아주 보편적이지만, 그만의 독특한 만화적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앞서 재미없다고 했지만 그거야 웹툰의 서술 방식에 익숙해져서 느끼는 단편적인 감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악동 롤링스톤즈를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센타까서 돈 나오면 십 원에 한 대씩"이라고, 기타의 디스토션은 무조건 "좌우지 장지지" 하는 식으로 작자 마음대로 지껄이는 것은 지역적 해석이 주는 최대한의 창작성을 잘 이용했다 싶다. 게다가 송대관이나 장기하, 김병만 같은 한국 인물이나 백초토론, 분장실의 강선생님 같은 개그 소재를 슬쩍 밀어 넣는 패러디는 만화에 적절한 양념을 쳐 준다.

처음에는 <MM Jazz>의 발행인이자 재즈 만화인 <Jazz It Up>을 쓴 알아주는 재즈 매니아인지라 록을 얼마나 제대로 이야기할까 조금 노파심이 보였지만, 그 역시 재즈로 선회하기 전까지는 이른바 열혈 록키드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프로그레시브락에 심취했다고 한다. 허기사 사실 재즈나 록이나 결과적으로는 한 뿌리에서 태어난 사촌지간 아닌가? 무릇 한 분야의 전문가는 그 우물뿐만 아니라 다른 우물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진정한 전문가가 아니던가. 사실 록이라는 음악 자체가 태생은 블루스이지만, 컨트리, 포크, 재즈, 레게, 클래식, 아방가르드, 민속음악 같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음악을 잡아 삼키며 꾸준히 진화해 온 '괴물'이 아니던가. 아 책은 록이라는 이름의 괴물의 역사를 나름 잘 절묘하게 이쁘게 색칠했다 싶다. 다만 14쪽에 걸쳐 수 명의 추천사를 쓸데없이 받는다거나 명백한 인쇄 오류에 대해 하나 책임지지 않는 출판사 고려원북스의 심뽀는 참 고약하다 싶다. 그래도 곧 나온다는 2권이 기다려지고 작가의 전작
<Jazz It Up>이 땡기는 것을 보니 아이러니하다.

2009년 9월 2주 TTB리뷰 당선작
http://camelian.tistory.com2009-09-03T05:30:29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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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 기사가 박스 하나를 건넨다. 알라딘에서 보낸 택배. 그런데 최근 책을 주문한 적 없는 나로서는 어리둥절하다. 갸우뚱. 혹시 누가 생일선물을 늦게나마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설레는 마음에 택배를 풀어 보니 다소 생뚱맞은 책이다. 그것도 3권이나. 근신-반성-갱생의 시간을 보내는지라 책을 사지 못하는 나로서는 웬 떡이나 싶었다. 그런데 박스 안에 든 송장을 보니 주문자가,

 화이부동 님이다.

 책을 보아 하니 최근 화이부동 님이 관심을 가지시던 건축 분야 책이 한 권 있다. 얼마 전 화이부동 님에게서 책을 선물받은 적이 있기에 실수로 당신 읽을 책을 최근 배송 주소로 보냈나 싶었다. 좋아 말았다는 생각을 0.03초 정도 했지만 그 나름 유쾌한 일이 아니던가. 어짜피 화이부동 님께 책을 보내드릴 예정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바, 그리고 주문하신 책이 안 와 슬쩍 스트레스 받으실지도 몰라 화이부동 님께 문자 메시지를 보내 드렸다. 블로그 방명록보다는 아무래도 문자 메시지가 빠르니까. 잠깐 후에 도착한 답문은 기가 막혔다.

 "자일님께 보내 드린 것 맞습니다."

 어라랏 이게 아닌데. 사실 책을 읽어 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집에서 먼지 뒤집어 쓰며 굴러다니던 책을 마땅히 읽을 분에게 보내 드렸을 뿐인데, 두 번에 걸쳐 새 책을 보내 주시다니. 지난번에 썼다가 오류로 인해 결국 사라져 버린 혼잣말이 반복되었다.

 "이이이건 반칙입니다!"

 책을 공으로 손에 넣은 것은 흐믓한 일이지만 이리 되면 살짝 부담이 된다. 아무리 호혜의 원칙에 따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책을 선물하신 것일 테지만, 사실 무언가를 공짜로 받으면 마음 한 켠은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라는 경구를 속담으로 남기지 않았는가? 그나마 원래 니나노 님과 포로리를 염두에 두고 회사에서 나온 책을 챙겨 두고 있던바, 화이부동 님께 보내드릴 게 없지 않지만 보내는 사람 마음과 받는 사람 마음은 화이부동 님의 선물을 대하는 내 마음을 볼 때 꽤나 다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화이부동 님 고맙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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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 님의 글을 읽고 나서 마침 내게 월러스틴의 책이 몇 권 있기에 보내 드렸다. 본사 왕래하면서 반품 창고에서 언젠가는 건질 만하기도 했거니와 과연 내가 지고 있는다고 해도 그 책들을 언제 읽을까 싶어 마땅히 읽을 만한, 읽어야 할 분에게 드리는 게 책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글에 달린 니나노 님의 "분서갱유할 서적 목록"이라는 말에 화이부동 님에게 무한한 연대(!)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아내들이 남편이 무차별적으로 책 사 들이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구십구 프로 이해하지만 입은 툭 나온다. 책을 수백만 원어치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화이부동 님이 "분서하면, 저도 분신을"이라 답글을 단 데 대해 아내는 "분신은 뭐람"이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내 입장에서는 니나노님이 유생을 생매장한다는 뜻인 '갱유'를 언급한 데 대해 맥락은 알지만 지나친 언사라고 투덜거리는데, 아내는 뜻밖에도 그에 맞서는 화이부동님의 나름 저항 행위인 '분신'을 갖고 뭐라 한다. 한술 더 떠 "마누라들도 맞서서 된장물품들을 사제껴야 해."라고도 한다. 흠. 가재는 게 편이 맞나 보다. ^^;

그래서,

남편들이 잃을 것을 용돈뿐, 얻을 것은 책이다. 만국의 남편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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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특별판 - 전10권 - 8점
김만중 외 지음/민음사

올초에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 200권 돌파 기념으로 10종 특별판을 내놓았다. 인터넷서점에서 제공하는 이미지를 보자니 들쭉날쭉한 판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끄럼틀 지붕 박스, 그리고 책을 고른 기준의 모호함 따위의 이유로 '얼씨구 씨잘데기 없는 데 돈 썼네'라고 넘어갔다. 그리고 후배가 그것을 살까 말까 물어봤을 때 이 같은 이유로 분명 후회할 거라 했다.

어제 민음사 대표인 장은수 씨의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저 특별판의 아주 일부만 흘겨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강의의 핵심은 책의 정의, 그리고 물성(物性)이었는데, 강사는 그러한 정의와 물성을 파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 특별판은 그러한 실험의 일환이라는 거다.

박스 세트라는 상품이 가져다주는 고정관념은 일단 들쭉날쭉한 판형에서 파괴된다. 컬렉터가 아무리 꽂아 두는 것을 좋아한다 해도 쫙 '가오'가 난다 해도 시리즈가 똑같은 판형으로 일률적으로 꽂아 두는 것은 인류가 수백 년째 고수해 오고 있는 '지난' 시대의 방식이다. 물론 나는 가오를 중시하기는 하지만, 발상이라는 것은 전환해 봐야 하는 거고 고정관념은 깨 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 밖에도 이 시리즈는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서모컬러 잉크를 사용한다든지, 잉크가 번지지 않는 초고가 용지를 쓴다든지, 고전의 전형적인 텍스트 배치 방식을 바꾼다든지, 자수 기법을 도입해 수제작 장정을 하는 등 다채로운 디자인 방식을 도입했단다. 자세한 것은 민음사에서 제공하는 동영상을 보면 된다.

동영상 내려받기(마우스 오른쪽 버튼 눌러 '링크를 다른 이름으로 저장' 누르기)

대체로 이 특별판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나처럼 들쭉날쭉한 판형부터 문제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싼 가격에 낱권 판매를 안 한다는 사람에 심지어 책에 쓸데없는 인테리어질한다는 사람도 있다. 책의 선정 기준이나 여전한 오탈자 문제야 출판사를 탓할 만하다. 하지만 책이 이러한 꼴로 나오게 된 맥락을 이해하지 않은 채 그저 돈질한다고 하는 비판은 당최 이 특별판, 나아가 이 출판사의 실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아주 당연하게도 이 책은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이 아니다. 북리펀드로 책을 되파는 사람이나 도서관에서만 빌려 읽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책을 소장할 만한 자산으로 보고, 수집 가치가 있다 싶으면 과감히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물론 척박한 한국의 출판 시장에 이러한 자는 아주 극소수이다. 하지만 애당초 2000세트 한정판이라 한 것은 그런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게 잡아도 2000명을 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특별판 발행을 최종 결재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인지 모르지만 이 책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다. 모든 컨텐츠가 디지털로 전환할 것을 강요받는 이 시기에, 오로지 책만이 가지는 여전한 가치를 지키고 높이는 이 시도의 결과는 앞서 말한 대중의 불평과 출판사의 적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실험이라는 점에서는 이것은 분명 자산이 될 것이다. 적어도 한국 땅에 이렇게 북디자인을 놓고 적극적으로 실험한 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칭찬은 했는데... 저 시리즈를 살 요량은 없다. 값도 비싸고 둘 데도 없고 문학에도 별 흥미가 없다. 산다 해도 다른 책 살 돈 2달치를 떼려 박아야 하는데 그러기도 쉽지 않다. 다음주에 구경이나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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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상세보기
피터 박스올 지음 | 마로니에북스 펴냄
최고의 고전과 문제작을 집대성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 . 다양한 분야의 책 중에서도 소설 문학의... 인류의 정신적 지도를 그려온 1001편의 작품들을 망라하였다. 이 책에서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

알라딘에서 사은품으로 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1권>.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을 국내 발간작 중심으로 추려 사은품으로 제작했다는데... 맨 뒤편에 나온 체크리스트를 보다가 문득 발견한 사실.

'이거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 아냐?'

아이작 아시모프의 <나는 로봇>(이 책에 이미지도 쓰인 우리교육에 나온 번역작은 <아이, 로봇>인데...)부터 존 밸빌의 <바다>에 이르는 101권의 책은 모두 소설이다.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만화로도 보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래픽 노블'이라는 소설의 한 유형으로도 보기에 소설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 사은품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이라 해야 옳다.

그런데 원작인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은 어떨까? 국내 비발간작도 꽤 되는 1001권의 목록을 일일히 확일할 수 없지만, 대충 훑어보니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01권>이라 해야 옳을 듯.

이쯤 되면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국어 교과서 편집자 맞나?) 나로서는 눈쌀이 찌뿌려진다. 젠장 문학만 책인가? 문학 가운데서도 소설만 책인가? 투덜투덜. 가뜩이나 작년에 만든 교과서 심사본에 문학 작품이 적다는 불평을 듣고 기분이 언짢은데(문학=국어는 아니잖소!) 뭐 이래?

책 소개에는 "소설 문학 작품 1001편을 담았다" "소설이 왜 주목받는지, 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는지에 대한 대답이 효과적으로 담겨 있다."라는 문장이 적혔지만, 글쎄... '책'이라 해 놓고 '소설'만 이야기하는 책은 한마디로 눈꼴시렵다. 원제 자체가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이라 하지만, 번역해 내놓으면서 출판사에서 '편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일단 소설과 책을 구분 못하는 피터 박스올이라는 '문학' 교수에게 육두문자를 퍼부어야겠지만...

사족: 내가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인문학의 한 축인 문학의 영향력과 위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소설(문학)=책으로 놓은 사고방식이 마음에 안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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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에서 나온 <리얼 아틀라스 리얼 월드>라는 책이 있다. '지도, 통계를 만나다'라는 부제답게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세계지도를 '조작'해 보여 준다. 가령 인구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우리가 흔히 보는 세계지도와 달리 중국과 인도가 드립다 커진다. 기계 수출량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된다. 이런 식이다. 똑같은 세계지도가 통계에 따라 변하는 아주 일관된 패턴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들춰 보는 맛이 있는 책이다. 특히 나처럼 지도에 환장한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만한 이 책의 머리말을 보다가 이맛살이 찌뿌려졌다. "마케도니아의 독립하기 전 유고슬라비아"이라는 문구인데 이 단어에는 아주 친절하게 원문이 적혀 있다. 'the Former Yogoslav of Macedonia'.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역도 이런 오역이 다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전공과 상관없는 전문 번역자의 작품이다. 편집자도 모르고 패스해 버린 듯.

엠블 시절 '알아봤자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시덥잖은 이야기 #1'이라는 글을 올린 적 있다. 그 글은 바로 the Former Yogoslav of Macedonia에 관한 내용인데, 요약하면 이것은 '구 유고슬라비아(였던)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 번역해야 한다. 과거형인 '마케도니아의 독립하기 전 유고슬라비아'과는 아주 다른 현재형의 말이다. 자세한 내막은 링크된 글을 참조하면 될 것이고, 중요한 것은 오역도 오역 같지 않은 게 나왔다는 것인데... 거참.

책에 홈페이지 주소도 공개돼 점잖게(라고 하지만 공개적으로 망신 좀 주려고)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오역을 지적하려 했더니. 거참.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디자인하우스 브랜드 사이트'라는 셀렉트바에는 단행본 출판부의 사이트 따위는 없다. 기껏 있는 게 '디자인하우스 북스'라고 영어로 된 배너인데, 이것을 클릭하면 당사의 쇼핑몰 가운데 책 부분과 연결된다. 그냥 단행본 출판부의 게시판 같은 게 없기만 했으면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다. 게시판은커녕 홈페이지도 없는 출판사가 한가득인데 그런 것으로 태클걸기엔 사람이 좀 쪼잔해 보인다. 그런데 쇼핑몰과 연결시키는 행태가 좀 짜증났다. 아니, 부아가 치밀었다. 소통을 원하는 이에게 책 팔 생각을 하다니. 홈페이지를 뒤져 보니 편집장(친하지는 않지만 사실 아는 사람이다)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별자리가 어떻고 하는 자기 소개는 있는데 독자와 소통할 공간은 없다. 양심이 있는 것인지 의례적인 것인지 이메일 주소는 있지만, 그쪽으로는 따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꼬우면 오역하지 말던가. 나 또한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만든 책이 어디인가에서 씹히면 기분 참 나쁘다. 그리고 TTB리뷰와 링크시키려다 애초에 내가 설정한 블로그 원칙과 위배되는 관계로 그냥 글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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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나 역자는 물론 출판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의 결정체인 '책'에게 '50% 세일'이라든지 '7천 원 균일가'라든지 하는 말은 가혹한 세상살이의 징표이다. 엄청난 출판 시장의 불황기에 결국 출판사들은 언 발에 오줌 놓기 형식으로 덤핑을 시작했다. 이미 예견했던 바. 하지만 막상 그리 접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게로 달아 팔아도 시원찮을 책이 있으면, 고이고이 서가에 모셔 두고 틈틈이 꺼내 볼 책도 상존하는 법. 괜찮으나 도무지 안 팔리는 책만 내놓는 모 출판사도 결국 제살 깎아 먹기의 대열에 나섰다. 그 출판사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16만 원짜리 책을 전부터 탐냈는데, 마침 30% 할인으로 나오기에 접수할까 했더니 결제가 전처럼 5% 할인으로 되는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시스템 오류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기다렸더니 아예 5% 할인으로 수정됐다. 헛. 이럴 수가. 거기에서 나오는 적잖은 적립금을 산울림 박스 세트 사는 데 쓰려 했는데... 흑흑.

아무튼 10% 할인해 주는 다른 인터넷 서점이 있어 그쪽에서 주문했다만, 왠지 그 출판사들의 괜찮은 책이 아른거린다. 그 책이 아니면 그 책만큼의 다른 책도 사랑해 줄 텐데... 사실 그 책은 한정판이기는 하지만 16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아무도 쉽게 사려들지 않을 테니 품절되는 일은 생각만큼 일어나지 않을 텐데.

요즘 같은 세상 책 한 권 못 살 형편이라 꼭 필요한 책도 덜덜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실탄으로 싼값에 사 들이는 인간도 있을 게다. 물론 나라고 전자였던 적이 없을까? 대학 시절 지지리 책 안 읽던 데는 어려운 책만 읽어야 할 것 같은(혹은 읽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을 받은) 강박도 강박이었지만, 살 돈도 꽂아 둘 공간도 언제나 넉넉지 않았던 연유가 살포시 숨어 들어 있다.

괜히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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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직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근무 조건은 도서구입지원비 지급이다. 일정 한도 안에서 도서 구입비의 60%를 지원해 준다. 몇 가지 제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책값의 40%만 더 지출하면 책을 꽤 많이 살 수 있다. 입사 초기 팀장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자기는 읽든 안 읽든 한도액을 꽉 채워 산다고 했다. 책 지름질을 좋아하는 나로서 마다할 리가 있나? 1월부터 지금까지 한도액을 꽉꽉 채워서 때로는 1-2천 원 정도 초과하면서 책을 사들이고 있다. 물론 지원비가 나온다 하지만 엄연히 40% 만큼의 비용은 지출해야 하는 만큼 아내는 도끼눈을 뜨지만 아내의 책까지 일정 정도 지원비로 사면서 입막음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왠지 이 한도를 안 채우면 손해 볼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다 언제까지 지금 회사를 다닐지 모르지만 서가를 채울 수 있을 때 팍팍 채워 놔야 나중에 놀아야만 할 때 덜 괴로울 듯싶다. ^^;


사는 건 둘째치고 이 책을 다 읽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한 달 내내 꼬박 읽어도 감당하기 힘든 양을 매달 사들이는 통에 사실 만화책을 제외하곤 책은 그저 꼽아 두는 용도로 쓰는 건 사실이다. 특히 알라딘에서 중고샵을 개장하면서 초반에 중고의 특성상 한정 상품이라는 데 혹해 마구잡이로 사들이기도 해 더 문제이다. 이 속도로 가다간 내년에 이사를 가야 할 때 이삿짐센터 사람들로부터 한소리 들을 하지만, 재작년 비로소 처음으로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기까지 그동안 언제라도 거처를 옮길 수 있도록 가능하면 짐을 주려야 했는데다 학비와 생활비를 근근이 조달하느라 책 한 번 제대로 못 사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책은 살 수 있을 때 사 놔야만 할 듯하다. 하지만 원칙은 필요한 법. 에세이 류처럼 한번 툭 읽고 마는 책은 가급적 제외하고 인류사의 고전이나 개념 정리 사전 같은 두고두고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 그리고 일단 꽂아 두면 집안의 품격을 높이는 가오 지향의 책을 주로 사려 한다. 물론 그것은 바람일 뿐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는 책을 사면 서평이라도 쓰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서평을 쓰기는커녕 제대로 읽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매달 두세 편 정도는 꼬박꼬박 서평을 쓰려 노력한다. 비록 쓰지 못하더라도 읽으려 노력하지만, 펴 보기만 하고 끝내 읽지 않은 책이 무척 많다. 그래도 그렇게 책으로 채워져 가는 서가를 보면 위는 굶주려 있어도 배가 부른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가뜩이나 출판가 불황이라는 말이 많은데 책 만드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사 줘야 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3개월 된 아이도 나 닮아 책이 좋은지 거처인 안방보다 책 먼지 가득한 서재방을 더 좋아한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대견하다. 아마도 점점 내가 읽는 책보다 아이가 읽을 책이 많아지리라. 그리고 아이가 제법 크면 나랑 서로 자기 책을 사겠다고 싸우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거기에 아내도 한몫 거들겠지. 생각만 해도 흐믓하다.



합계를 내 보니 171권을 샀고 그중 2권은 되팔았으니 결과적으로 169권을 산 셈이다. 참 징그럽게도 많이 샀다. 서가가 대번에 포화 상태에 이르었다. 그런데 이중 만화책을 빼면 한 30권쯤 읽었을까? 아니 20권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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