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노작 <사기>는 기전체 서술의 효시인 만큼 본기, 세가, 열전, 표, 지로 다소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제왕의 역사를 기술한 본기와 여러 제후의 역사를 기술한 세가, 그리고 신하나 이민족 같은 세세한 인물들의 역사를 기술한 열전을 구분함으로써 유교적 세계관에 근거해 하나의 역사를 분리해 기술한다. 아울러 표와 지로써 장대한 역사를 서술하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따로 보충함으로써 인물의 언행에 국한되는 역사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한다. 물론 유교적 세계관이라는 게 장점이자 명확한 단점이기도 하지만.

<사기>라는 텍스트는 사마천 1인이 저술했다고 믿기 않을 만큼 방대하게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 앞서 말했듯 기전체라는 독특한 구성 방식은 그 장대한 중국사를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게 한다. 그런 점에서 고작 '열전'의 전부, 심지어 일부만 번역해 책으로 내놓은 일은 원전에 대한 그릇된 접근 방식이다. 아무리 <사기>에서 '열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사기>의 기전체식 기술 방식을 부정하고 시대 순에 따라, 즉 편년체 방식으로 재구성해 기술한 서해문집에서 내놓은 <불멸의 인간학, 사기 세트>는 애초에 사마천이 역사를 기술하면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부정하는 게 아닐까 한다. 영화 <메멘토>에서 한 인물이 겪는 이야기를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교차 편집되어 있어 보는 이를 무척 혼란케 한다고 이를 시간 순으로 편집한 판본이 영화의 독특한 맛을 유지하고파 했던 팬들에게 끝내 사장되었고, <무간도> 3부작 영화를 비슷한 방식으로 재편집해 DVD에 탑재하려고 했던 한국의 출시사의 기획이 홍콩의 영화사에게서 거부당했듯, 애초에 저자가 구상한 개념을 편집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하는 일은 무수한 문제점을 양산한다.

정 많은 이들에게 <사기>를 올곧게 그리고 쉽게 읽히고 싶었다면 상세한 해설과 함께 '표'를 바탕으로 사건과 인물을 배치한 레퍼런스를 제공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러한 레퍼런스로 전체적인 맥락을 읽으면서 관심 있는 부분은 해당 권이나 장을 찾아 읽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편년체 식으로 재구성한 <사기>를 읽으면 사마천이 '자객열전'이나 '유협열전' 같은 열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없다. 또한 제후가 아니었던 공자가 왜 제후들의 이야기인 '열전'에 포함되지 않고 '세가'에 등장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다행히도 이러한 무모한 번역 방식은 책을 번역한 기획 집단의 독창적인(?) 도전이 아닌 일본의 출판사가 이미 저지른 것이다. 적어도 학문의 영역, 번역의 영역에서 한국보다 한 수 높다고 할 수 있는 일본의 대학 교수들이 허튼 짓을 한 것은 아닐 게다. 하지만 쉽게 읽히려고 원작의 형식을 허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의문이 든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역사책을 읽는 것은 저자가 당대 또는 그 시대를 왜 그렇게 기술했는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것을 방기한 채 역사적 사건과 텍스트적 해석만을 아는 것은 역사책을 읽는 가장 잘못된 방식 중 하나이다. 굳이 초중고 12년 동안 잘못 저지리는 역사 수업을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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