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에서 조르주 심놈의 메그레 반장(경감이 익숙하지만 뭐) 시리즈를 내놓을 거라면서 "조르주 심농라는 책을 내놓았다. Buzzbook이라는 시리즈의 2권인데, 열린책들에 따르면 신간예고매체로 "중요 작가의 신작이나 저술을 펴내기 전에 저자나 책에 대해 미리 귀띔해 주는 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책의 정가는 750원이다. 신간임에도 20% 할인이 적용되는데 이런 책은 도서정가제의 범위 외의 책인가 보다. 750원이라는 가격도 파격적이지만(버즈북 1권은 666원이라 덜 파괴적이긴 하다) 무엇보다 224쪽이나 되는 쪽수는 더욱 파격적이다. 대체로 흑백 인쇄이지만 몇몇 페이지는 컬러 인쇄되어 있다. 적어도 두 대는 컬러란 말인데... 대충 셈해도 이거 팔아 봤자 종이값이나 나올까 싶은데, 즉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책이다. 정말 이상한 책이다. ^^;

열린책들이야 매년 개정판을 내놓는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로 손해 보는 장사에 재미들리더니 이제는 버즈북이라는 요상(?)한 매체로 진정 대인배로 등극하는 듯. 뭐 한국에서 추리소설 매니아를 빼고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조르주 심농의 책을 시리즈로 내놓는다는 것부터 이미 대인배 아닌가? 책 날개에는 무려 20권의 목록이 적혀 있다. 심지어 현존하는 유일한 심농 저작인 '13의 비밀'은 20권 안에 없다. 다시 보니 책 뒤쪽에는 들은 바 있는 75권 목록이 있다. 오우 대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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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책'이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면서 이제까지 트위터에서 끼적였던 '이상한 책'에 대한 트윗을 모아 본다. 정리 과정에서 조금 더 맥락을 추가한 경우도 있다.


"운명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자서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작자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구술하여 쓰게 한 전기."

그런데 인터넷 서점의 책에 대한 정보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고인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과 각종 인터뷰 및 구술 기록을 토대로 출생부터 서거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일관된 문체로 정리하는 작업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았다. 또 퇴임 후 서거 직전의 미완성 회고록 노트를 기본으로 문체를 통일하는 작업을 거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짓지도' 않고 남에게 구술하여 '적게 한' 것도 아닌데, 이것을 '자서전'이라 할 수 있을까?

/ 2010-04-19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정2판

출간된 지 8년 동안 개정판이 두 번 나왔다. 변화하는 정치 상황에 대한 수용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러한 변화를 누적하지 않으면서 섣불리 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글을 훼손하는 행태는 책 팔아먹기의 다른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저자도 책도 존경하지만 책의 속성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듯해 안타깝다. 더 이상 개정판이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2010-06-09


"바다생물 이름 풀이사전"

다 읽고선 우연히 책날개를 펴니 "이 책은 방일영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술 출판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책날개를 뜯을까 하다가 그냥 처분해 버렸다.

/ 2010-06-17


"비평고원10"

'블룩'이든 '카페북'이든 결국은 '책'일 뿐이다. 괜한 수식어 달아 놓고 새로운 척, 잰체, 하지 말자.

/ 2010-07-01


"절대지식 세계고전"

'절대'라는 수식어를 쓰는 책 치고, 제대로 된 책이 몇 권이나 되던가. 심지어 광고 카피는 '품격'을 운운한다.

/ 2010-07-05


감정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으려는 제자를 공저자로 넣었다. 제자를 공으로 부리지 않는 '착한' 교수로 보인다. 하지만 제자의 유명세를 판매에 이용하는 '악랄(?)한 교수라는 의혹은 여전히 존재한다.

/ 2010-07-05


"삼성을 생각한다 2"

뜻 하지 않게 대박친 "삼성을 생각한다"의 후속 도서임을 표방하지만 저자는 김용철 씨가 아니라 출판사 사람들이다. 정확한 제목은 "삼성을 생각한다를 생각한다"일 것이다. 말이 이상하면 "삼성을 생각한다 이렇게 만들었다/팔았다"라고 하면 될 것을 후속 도서라 우기고 있다. 생각지 않은 대박은 돈독을 야기하는 법이다.

/ 2010-07-07


"Atlas of the World 아틀라스 오브 더 월드"

"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지도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1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본문 내용은 영문으로 구성되었으며, 다루는 모든 지명은 The Times의 입장이다."라고 하는데 그렇게 번역하기가 싫었단 말인가? 그럼 책은 왜 내? 얼마든지 외서 사서 볼 수 있는 시대인데.

/ 2010-07-20


'사용법'을 제목에 단 책들 일반

요즘 참 '사용법'이라는 문구를 제목에 넣은 책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별걸 다 사용하려 든다.

/ 2010-07-21


"축구를 망친 50인"

축 구, 정확히는 잉글랜드 축구를 망친 50인에 대한 책.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설명을 보면 굳이 책을 안 사 봐도 될 법하다. 지나치게 자세하다. 보도자료 만든 편집자는 자기의 선한 의도로 책을 못 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선한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 2010-07-27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원래는 웅진씽크빅의 임프린트인 프레시안북에서 '자유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는데 절판되고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재출간되었다. 원제를 살린 제목이긴 한데 임프린트를 정리하는 수순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책들이 많이 품절이다.

/ 2010-11-26


"한국 대표 시인 초간본 총서"

"초간본 모습 그대로 편집되어 출간됐다"라고 해놓고선 "표기는 원칙적으로 현행 맞춤법에 맞추었"다고 한다. 초간본 총서라는 이름값 하려면 초간본 그대로 내야 하는 게 순리이다.

/ 2010-11-26


"문교의 조선" 세트

정가 1032만 원. 인터넷 서점에서 정가의 5% 주는 마일리지만 무려 46만 4400포인트이다. 알라딘 MD 말로는 알라딘에서 파는 가장 비싼 책이라는데 주문 들어오면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팔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 가격이면 실제로 파는 책이라기보다는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과 몇 군데 대형 도서관에 납본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책으로 보인다. 실제로 후덜덜한 가격을 달고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만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 20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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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지 오래된, 그런데 최근에 재쇄를 찍은 책의 경우 읽다 보면 낯선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대부분 타이포의 문제인데 컴퓨터에 만들어진 서체가 아닌 예전 활판에서 찍어 나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책을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보면 활판 인쇄 특유의 요철감은 없이 밋밋하다. 따라서 활판 인쇄에 대한 향수에 왜 그런 요철감이 없냐고 출판사에 항의 전화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한다.

현재 출판단지에 있는 활판 공방을 제외하곤 국내에서 활판 인쇄하는 곳은 없다. 즉 요철감을 느끼는 인쇄는 그러한 느낌을 구현할 수 있는 인쇄기를 사용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며, 그런 인쇄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왜 그런 활판 인쇄 느낌의 타이포로 인쇄되었냐 하면, 옛날 책을 촬영해 새로 인쇄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쿽익스프레스이든 인디자인이든 컴퓨터로 책을 조판하기 전에는 전산조판이라는 입력기를 쓰던 때도 있었고, 아예 활판 인쇄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의 자료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 즉 예전 책을 다시 찍으려면 직원이든 알바이든 책의 텍스트를 타이핑한 뒤 북디자이너가 새로 레이아웃을 잡은 뒤에 조판해야 한다. 즉 오래된 책 새로 만드려면 생고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옛날 책을 촬영하거나 스캔해 디지털 파일을 만들고 이것을 바탕으로 정해진 판형에 그냥 앉히는 작업을 거쳐 책을 인쇄한다. 따라서 예전의 타이포가 느껴지는데 요철감은 없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경우 오타 수정이 곤란하다. 최대한 예전 타이포의 느낌을 살리는 서체를 고르고 장평과 자간도 그에 맞게 조절해 수정자를 만들고 그것을 사진이나 필름에 덧붙여야 한다. 이거 역시 생고생이다. 따라서 생산자의 윤리 따위는 눈 찔금 감고 독자의 원성 따위는 휴지통에 구겨 넣고 그냥 배째라 인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표지 정도만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 개정판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 양심적이면 판형이라도 교체하는데, 이 경우 여백의 미를 좀 더 살리거나 사진을 약간 확대하면 된다. 뭐 양심적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외려 더 사기치는 느낌이 든다.

범우사에서 나온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011년 개정판. 판형은 조금 커졌는데 쪽수는 93년 초판과 일치한다. 여태까지 말한 것에 의해 새로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 관계자에게는 새로 교정 봤다고 하는데... 글쎄... 과연 그 생고생을 했을까? 뭐 품절된 채로 있는 것보단 그래도 이게 낫다.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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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엔진에 '사나운 새벽'이라고 입력하면 검색 결과의 대부분은 판타지 소설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20년 전에 나와 오래전에 절판된 외국 소설이 검색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켄 폴리트의 대표작, '사나운 새벽'. 원제가 'Pillar Of The Earth'인지라 '대지의 (불)기둥', '지구의 표주' 같은 제목이 어울릴 법한데 뜬금없이 '사나운 새벽'이다. 물론 중세 말기의 스산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지라 코끝 찡하게 추운 새벽의 사나움이 연상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나, 번역자와 출판사의 의도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쨌든 판타지 소설이 제목으로 차용할 정도이니 제법 그럴듯한 제목임은 분명하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중학교 시절 밤새워 가며 읽었던 정말 재미있던 소설.

몇 년 전에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 선정되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지만 한국에서는 오래 전에 절판되어 헌책방을 수소문해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몇 군데 헌책방을 뒤진 끝에 4권으로 된 절판본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람. 리들리 스콧이 8부작 드라마, 곧 미드를 만들어 인기를 끄니 급기야 모 출판사에서 재발간했다. 이번에는 '대지의 기둥'이라는 원제에 가까운 제목으로. 그런데 권 수는 하나 줄었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 고생하며 절판본을 모으던 기억은 이제 미드 주인공의 얼굴이 박힌 매끄러운 새 판본의 표지와 맞닥뜨린다. 솔직히 별로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 선정되었음에도 절판된 채로 내버려 두었던 책이 미드 붐에 편승해 재발간된다는 게. 반대로 이렇게라도 다시 세상을 보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대표작 '바늘 구멍'이라든가 속편인 'The World Without End'도 출간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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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 고전 선집이라는 고전 번역 시리즈가 있다. 처음에는 '고전천줄'이라는 이름을 달았다가 언제인가부터 '선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천줄'이 가지는 상징성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었나 보다.[각주:1] 아무튼 이 시리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에 대하여 몇 가지 논란이 있다.

1. 3600종 시리즈 완간이 목표로 (세계 최대의 시리즈인 펭귄 클래식의 두 배 규모로) 다양한 언어권의 인문, 사회, 예술, 자연과학 등 인류사의 거의 모든 고전을 번역하고자 한다.

2. 완역이 아니라 약 천 줄 분량[각주:2](신국판 기준 160쪽 안팎)으로 고전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번역한다.

3. 중역이 아니라 해당 언어의 전공자, 관련 분야 연구자가 직역한다.

3번이야 당연 그래야 하는 것이고, 1번의 경우 다소 마케팅적인 수사이긴 하지만 영어권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언어권과 영역에서 책을 펴 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1년에 천 종씩 낸다는 엄청난 계획인데, 실제로 2년 2개월(군대냐~) 동안 한 편집자가 책 백 권 만들고 퇴사했다고도 한다. 출간 2년 전부터 원고를 생산해 왔다고 하지만 저 규모의 책을 펴 낸다는 것은 사람 참 혹사하기 좋은 수준이다. 뭐 이거야 편집자들 문제라 치고.

문제는 2번이다. 저 중 600권은 별도의 시리즈 명으로 완역을 목표로 책을 내고 있다고 하지만, 나머지 3000권은 발췌 번역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가득한데 나 역시 발췌 번역에 대해서는 일단 부정적이다. 3000권 중에는 두루마기나 팸플릿 수준의 짧은 고전도 있겠지만, 수십 권에 달하는 고전도 있고 서문부터 부록까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구조적으로 짜인 고전을 그저 천 줄 분량으로 덜컥 잘라 내 번역한다는 게 뭔 의미가 있겠나 싶은 것이다. 자칫하면 겉핥기만 하고 고전을 잘못 이해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럴 바에는 고전에 대한 해설서[각주:3]가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것에 대한 변명은 있다. 실제로 고전은 유명세와 달리 사람들 대부분이 안 읽는, 아니 못 읽는 책이다. 기껏 고전을 읽는 사람은 공부하는 사람뿐이다. 공부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야 완역된 책을 한 장 한 장 더듬으며 문장을 쪼개어 가며 책 전체를 아우르며 저자의 집필 의도, 당대의 시대/사회상, 오늘에 끼치는 의미 등을 하나하나 깨우쳐 가며 찬찬히 읽겠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차마 그런 것을 하지 못하거나 조금 해 보다 말고 지쳐서 고전은 공부하는 사람들의 것일 뿐이라며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 뿐이다. 뭐 사실 나도 완역된 고전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다 읽은 적은 별로 없다. 읽다가 내버려 둔 책도 꽤 된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교양을 쌓거나 영혼을 맑게 하려 공부하는 수준에 그런 고전 읽기는 자학에 가깝다.

이 시리즈는 그런 점에 포착한 듯싶다. 게다가 3000권이라는 방대한 양으로 기획된 시리즈인 만큼 균일된 볼륨과 레벨을 유지하는 것도 시리즈 기획의 한 일환일 것이다. 또한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게 아니라 이 정도쯤은 읽을 수 있잖습니까 하는 그 나름 배려의 방식일 수도 있다. 더 앞서 나가면 향후 나올 완역에 앞서 발췌역을 먼저 선보여 예수를 기다리던 세례자 요한의 역할을 맡길 수도 있다. 실제로 홍기빈은 칼 폴라니의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에 <거대한 변환>의 핵심 부분 두 장을 먼저 번역하여 내놓아 그동안 절판되어 갑갑해하던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고, 후일 완역본을 내놓기도 했다. 뭐 이 시리즈도 별도로 추진되는 완역 시리즈가 있는 만큼 그런 모양새가 엿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발췌역과 달리 완역은 출판사나 번역자나 엄청난 시간과 자금이 투입된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출간해 봤자 몇 권 팔리지 않는 빈약한 고전 시장을 생각하면 완역은 그저 보기 좋은 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판사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고, 편집자는 정리당한다.

이쯤 되면 발췌역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어 보인다. 발췌역 3000권 중에서 겨우 2할뿐인 600권만을 완역하려고 계획을 세운 것은 좀 아쉽지만, 번역 한 번 되지 않은 고전을 일부나마 소개한다는 것은 의미는 '쪼까' 있어 보인다. 물론 비번역작이나 절판작만 내놓은다면 모를까 삼국사기처럼 번역도 여러 차례 된데다가 무엇보다 방대한 분량을 달랑 천 줄로 번역해 소개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완역 시리즈가 600권에서 1200~1500권 정도로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책을 누가 사 준다고...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새는데, 고전 아무리 완역하고 감수해 내놓는다고 해도 몇 권 팔리지 않는다. 뭐 언론 좀 타고 명사가 추천해 개중 몇은 그나마 재쇄를 찍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 많은 고전은 거의 십 년 동안 초판을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러고는 초판이 겨우겨우 다 나가면 품절, 사실상 절판이다. 헌책방을 뒤지고 복사해 저작권법을 이용하고 심지어 도서관에게서 불법적 소유권 이탈을 해야 읽어야 하는 수도 발생한다. 한국처럼 인문학 도서 시장이 협소하고 빈약한 데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다 사 주면 좋겠건만 그러기도 힘들다. 이 시리즈도 그런 점에서 내놓은 마케팅 제작 전략이 재미있다.

초판은 달랑 300권만 찍는단다. 2000-3000권 돌려 줘야 채산이 맞는 일반적인 오프셋 인쇄는 애당초 포기하고 복사와 크게 다르지 않는 마스터 인쇄를 한단다. 허긴 컬러로 인쇄해야 하는 고전이 몇이나 된다고. 그리고 초판에 한해서만 양장으로 제본하고, 재쇄부터는 보급판이라는 이름으로 페이퍼백으로 내는데 이마저도 마스터가 아니라 POD[각주:4]로 책을 만든다고 한다. 이러니 고작 160쪽짜리 책이 양장은 1.2만 원, 페이퍼백은 9500원[각주:5] 하는 거다. 가격은 완역 수준, 내용은 발췌역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안 팔리는 종은 그저 시리즈의 이를 맞추는 데 만족한다는 극악의 디마케팅(Demarketing) 전략도 재미있다. 가령 아프리카 문학 같은 분야의 책은 읽을 사람이 워낙 없어 초판 300권 팔기도 힘들다. 그런 책을 애써 팔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3000권을 목표로 하는 시리즈인 만큼 그것의 일부로서 구색을 맞추는 데 의미를 둔다면, 번역자의 속은 탈지언정 시리즈 전체로 볼 때에는 으레 있는 일일 것이다.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만지 고전 선집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발췌역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시리즈를 기획하고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 기획은 시장을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데 보탬이 되었다. 특히 단행본도 마스터 인쇄와 POD로 책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다는 점, 안 팔고 만다는 디마케팅도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 될 수도 있음은 나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1. 천 줄 분량이 안 되는 책도 있었다고 한다. 책 만들다 보면 천백 줄이 될 수도 있고. [본문으로]
  2. 현대인이 하루 동안 읽는 데 적합한 양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3. http://camelian.tistory.com/55 참조 [본문으로]
  4. 행여나 모를 분도 있을 텐데 Print On Demand라고 해서 수요자 (소량) 주문 생산이라고 보면 된다. 주문을 받으면 책을 인쇄가 아닌 출력(print)한 뒤 제본해 책을 만드는 방식이다. [본문으로]
  5. 출판일 잘 모르는 사람들은 160쪽짜리가 이리 비싸다고 툴툴거리는데, 마스터든 오프셋이든 기계를 돌리는 기본 부수가 있는지라 300부 돌려서는 적정 가격을 맞출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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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노작 <사기>는 기전체 서술의 효시인 만큼 본기, 세가, 열전, 표, 지로 다소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제왕의 역사를 기술한 본기와 여러 제후의 역사를 기술한 세가, 그리고 신하나 이민족 같은 세세한 인물들의 역사를 기술한 열전을 구분함으로써 유교적 세계관에 근거해 하나의 역사를 분리해 기술한다. 아울러 표와 지로써 장대한 역사를 서술하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따로 보충함으로써 인물의 언행에 국한되는 역사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한다. 물론 유교적 세계관이라는 게 장점이자 명확한 단점이기도 하지만.

<사기>라는 텍스트는 사마천 1인이 저술했다고 믿기 않을 만큼 방대하게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 앞서 말했듯 기전체라는 독특한 구성 방식은 그 장대한 중국사를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게 한다. 그런 점에서 고작 '열전'의 전부, 심지어 일부만 번역해 책으로 내놓은 일은 원전에 대한 그릇된 접근 방식이다. 아무리 <사기>에서 '열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사기>의 기전체식 기술 방식을 부정하고 시대 순에 따라, 즉 편년체 방식으로 재구성해 기술한 서해문집에서 내놓은 <불멸의 인간학, 사기 세트>는 애초에 사마천이 역사를 기술하면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부정하는 게 아닐까 한다. 영화 <메멘토>에서 한 인물이 겪는 이야기를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교차 편집되어 있어 보는 이를 무척 혼란케 한다고 이를 시간 순으로 편집한 판본이 영화의 독특한 맛을 유지하고파 했던 팬들에게 끝내 사장되었고, <무간도> 3부작 영화를 비슷한 방식으로 재편집해 DVD에 탑재하려고 했던 한국의 출시사의 기획이 홍콩의 영화사에게서 거부당했듯, 애초에 저자가 구상한 개념을 편집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하는 일은 무수한 문제점을 양산한다.

정 많은 이들에게 <사기>를 올곧게 그리고 쉽게 읽히고 싶었다면 상세한 해설과 함께 '표'를 바탕으로 사건과 인물을 배치한 레퍼런스를 제공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러한 레퍼런스로 전체적인 맥락을 읽으면서 관심 있는 부분은 해당 권이나 장을 찾아 읽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편년체 식으로 재구성한 <사기>를 읽으면 사마천이 '자객열전'이나 '유협열전' 같은 열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없다. 또한 제후가 아니었던 공자가 왜 제후들의 이야기인 '열전'에 포함되지 않고 '세가'에 등장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다행히도 이러한 무모한 번역 방식은 책을 번역한 기획 집단의 독창적인(?) 도전이 아닌 일본의 출판사가 이미 저지른 것이다. 적어도 학문의 영역, 번역의 영역에서 한국보다 한 수 높다고 할 수 있는 일본의 대학 교수들이 허튼 짓을 한 것은 아닐 게다. 하지만 쉽게 읽히려고 원작의 형식을 허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의문이 든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역사책을 읽는 것은 저자가 당대 또는 그 시대를 왜 그렇게 기술했는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것을 방기한 채 역사적 사건과 텍스트적 해석만을 아는 것은 역사책을 읽는 가장 잘못된 방식 중 하나이다. 굳이 초중고 12년 동안 잘못 저지리는 역사 수업을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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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6권이 나왔단다. 어라 작자인 더글러스 애덤스는 몇 년 전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미공개 유작이 출간된 걸까?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를 보니 다른 사람이 썼단다. 허긴 셜록 홈즈도 미공개 사건집이나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 같은, 코난 도일이 쓰지 않은 셜록 홈즈 시리즈도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좋게 보면 오마주고 나쁘게 보면 셜록 홈즈 이미지 도용이다. 하지만 도용 내지는 차용했을 뿐 아예 시리즈를 다른 사람이 이어서 쓴 것은 아니다.

애초에 더글러스 애덤스가 6권에 대한 집필 계획을 세웠다가 급사했고, 팬들도 강력히 6권을 요청했고, 심지어 유족이 고인의 뜻을 받들어 직접 집필자를 물색했다고 하지만, 이는 결국 미완의 작품이 가지는 아우라에 대한 훼손이다. 아무리 시시껄렁한 대중 소설이라 할지라도 애초에 작가가 설정한 세계가 있고, 인물이 있으며, 사건에는 패턴이 있다. 그것을 생판 다른 사람이 이어서 쓴다는 것은 연장이라기보다는 그저 모방에 불과하다. 설사 재해석 내지 재창조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고인의 작품과 별개인 완전히 새로운 작품일 뿐이다.

은하수~안내서 6권의 출간 소식에 기뻐하는 팬들도 적잖게 보인다. 소설이야 정주행 1회밖에 안 했지만, 영화는 수 차례 반복해 본 내 나름 팬의 범주 안에 든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에 그 모습이 안타깝다. "대체로 무해"했던 작품에 왠지 몸에 좋지 않은 첨가물을 더 넣어 버린 모양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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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김성근이 책을 냈나 보다. 아웃사이더 시절과 달리 빵빵한 팀에 가더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데만 무게중심을 두는 듯하여 야구를 거의 보지 않음에도 늘 눈쌀을 찌푸리게 하던 그였기에 책이 나오나 보다 했다. 최근 연예인 책 발간 러시도 그렇고. 그런데 책 표지의 한 가지에 시선이 머물렀다. "박태옥 말꾸밈"

한마디로 김성근이 구술하고 박태옥이라고 하는 작가가 글을 정리했다는 말이다. 말이 좋아서 '정리'이지 실상 대필이라는 말이다. 정지영의 '마시멜로 이야기' 대필 논란 이후 차츰 '스토리텔링' '정리' 등의 이름을 달고 대필 작가가 공식적으로 책에 이름을 올렸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 글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마당에 어짜피 대필은 필요하다. 다만 정지영의 예처럼 거짓말하거나 아닌 척한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부리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대필 작가가 양지로 나온 것이다. 바람직하다면 바람직한 변화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대필 작가는 음지에 있고, 유명인(과 출판사)는 자기가 책 썼네 하고 떠벌리거나 최소한 침묵한다. 거기에 "의외로 글 잘 쓴다" 하는 홍보성으로 의심되는 낯뜨거운 리뷰도 종종 보게 된다. 지인이 대필하기도 했거니와 그 사람 일정상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또한 대필 작가가 양지로 드러났다 하더라도 원작자가 얼마나 책에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작자가 거칠더라도 초고를 쓰거나 정식으로 대필 작가와 인터뷰하면서 구술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필 작가가 취재해 혼자 다 써 놓고선 원작자가 쓱 훑어보고 오케이하는 건도 있다. 심지어 원작자는 보지도 못하고 매니저나 기획사에서 오케이하는 건도 있다고 들었다. 대필 작가도 없이 편집자가 자료를 여기저기서 긁어다 뚝딱 책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뭐...


둘.

한 출판사가 자사에서 발간하는 시리즈의 모니터 요원을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7권이 나왔는데 이 책들을 비롯해 앞으로 나올 시리즈를 모두 소장할 수 있으며, 각종 오프라인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혜택의 댓가로 각 권마다 서평을 작성해야 하고, "시리즈 홍보에 힘써"야 한단다. 일종의 공식화된 서평단이라 할 수 있는데 흔한 일이기도 하지만 좀 씁쓸했다.

모니터링의 사전적인 뜻은 "방송국이나 신문사 또는 기업체로부터 의뢰를 받고 방송 프로그램이나 신문 기사 또는 제품 따위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하는 일."(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다. 즉 이 경우만 보면 책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출하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서평을 쓰는 것으로 모자라 홍보에 힘쓰라 한다. 이러면 모니터링 요원이 아니라 홍보 요원 아닌가?

사실 서평단도 실제로는 출판사에게는 홍보의 도구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유용한. 일간지 북섹션이 나는 것도 좋지만, 온라인 서점이나 블로그에 서평 한번 잘 올라오면 큰 돈 안 들이고 홍보를 할 수 있다. 독자 입장에서도 공짜로 책을 얻을 수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서평 원고료를 사전에 책으로 받는 것뿐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좋게만 보면 얼마든지 좋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됐든 댓가가 오가기에 순수한 리뷰라고 보기 힘들다. 책을 제공받고 썼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사람도 많다. 얼마 전 전문 리뷰어를 표방하는 블로거가 비싼 휴대폰을 제공받고 쓴 리뷰를 두고 말이 많았다. 그는 휴대폰을 제공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단점이나 문제점이 될 만한 것은 뒤로 몰면서 실상 칭찬 일색의, 리뷰가 아니라 홍보 자료를 올렸다. 리뷰와 서평이 다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리뷰는 비평적 접근이 요구된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크리티컬'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댓가로 받았기에 비평이 아니라 홍보를 하게 되는 것,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의 글을 보고 구입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나도 일전에 알라딘에서 주최하는 서평단 모집에 참여해 몇 편의 서평을 쓴 적 있다. 알라딘에서 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정작 글을 쓰는 데에는 모종의 자기검열이 작동했다. 좋거나 나쁘거나의 우열을 가르기 힘들다면 좋게 쓰는 게 그러한 서평 쓰기의 문제점이었다. 제공받은 책으로는 서평을 쓰지 않는다는 가오 선생의 말이 이해되었다. 알라딘 서평단의 모집 방식이 바뀌면서 나는 미련 없이 서평단에 새로 응모하지 않았다.[각주:1]

서평단 혹은 홍보단 자체를 나쁘게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은 유력한 마케팅 방식이다. 하지만 모니터링하라고 해놓고선 홍보하라고 하는 출판사나, 어찌됐는 댓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거나 나쁜 점을 은연중에 숨기는 리뷰어는 그것의 장점을 퇴색하게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덧.
난 애드센스나 TTB2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힘 안 들이고 공돈 버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엄연히 그것은 자기 블로그를 광고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 알량한 몇 푼 버는 데 그치지만, 그로 인한 폐해는 블로그 구동 시간만 느리게 할 뿐이다. 블로그가 느려질수록 구독자는 더 이상 찾지 않거나 RSS리더로 대충 보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1. 고백하자면 지인의 부탁으로 서평을 쓴 적이 있다. 다행히도 부탁받고 쓴 글인지 모르는 지인의 동료에게서 "반드시 좋게 본 것 같지는 않지만"이라는 말이 나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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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에서 나온 <리얼 아틀라스 리얼 월드>라는 책이 있다. '지도, 통계를 만나다'라는 부제답게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세계지도를 '조작'해 보여 준다. 가령 인구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우리가 흔히 보는 세계지도와 달리 중국과 인도가 드립다 커진다. 기계 수출량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된다. 이런 식이다. 똑같은 세계지도가 통계에 따라 변하는 아주 일관된 패턴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들춰 보는 맛이 있는 책이다. 특히 나처럼 지도에 환장한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만한 이 책의 머리말을 보다가 이맛살이 찌뿌려졌다. "마케도니아의 독립하기 전 유고슬라비아"이라는 문구인데 이 단어에는 아주 친절하게 원문이 적혀 있다. 'the Former Yogoslav of Macedonia'.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역도 이런 오역이 다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전공과 상관없는 전문 번역자의 작품이다. 편집자도 모르고 패스해 버린 듯.

엠블 시절 '알아봤자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시덥잖은 이야기 #1'이라는 글을 올린 적 있다. 그 글은 바로 the Former Yogoslav of Macedonia에 관한 내용인데, 요약하면 이것은 '구 유고슬라비아(였던)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 번역해야 한다. 과거형인 '마케도니아의 독립하기 전 유고슬라비아'과는 아주 다른 현재형의 말이다. 자세한 내막은 링크된 글을 참조하면 될 것이고, 중요한 것은 오역도 오역 같지 않은 게 나왔다는 것인데... 거참.

책에 홈페이지 주소도 공개돼 점잖게(라고 하지만 공개적으로 망신 좀 주려고)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오역을 지적하려 했더니. 거참.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디자인하우스 브랜드 사이트'라는 셀렉트바에는 단행본 출판부의 사이트 따위는 없다. 기껏 있는 게 '디자인하우스 북스'라고 영어로 된 배너인데, 이것을 클릭하면 당사의 쇼핑몰 가운데 책 부분과 연결된다. 그냥 단행본 출판부의 게시판 같은 게 없기만 했으면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다. 게시판은커녕 홈페이지도 없는 출판사가 한가득인데 그런 것으로 태클걸기엔 사람이 좀 쪼잔해 보인다. 그런데 쇼핑몰과 연결시키는 행태가 좀 짜증났다. 아니, 부아가 치밀었다. 소통을 원하는 이에게 책 팔 생각을 하다니. 홈페이지를 뒤져 보니 편집장(친하지는 않지만 사실 아는 사람이다)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별자리가 어떻고 하는 자기 소개는 있는데 독자와 소통할 공간은 없다. 양심이 있는 것인지 의례적인 것인지 이메일 주소는 있지만, 그쪽으로는 따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꼬우면 오역하지 말던가. 나 또한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만든 책이 어디인가에서 씹히면 기분 참 나쁘다. 그리고 TTB리뷰와 링크시키려다 애초에 내가 설정한 블로그 원칙과 위배되는 관계로 그냥 글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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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상세보기
이병훈 지음 | 창비 펴냄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의 다섯번째권으로 출간된 이 책에서는 날로 심각해지는 노동양극화를 직시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환경미화원에서 변리사까지 28명의...

얼마 전 <우리시대 희망찾기>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을 펼쳐들었다가 놀랐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우리시대 희망찾기' 씨리즈는 희망제작소가 [삼성로고]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집필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리즈를 기획한 박원순/이회영이 쓴  발간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삼성은 '우리시대 희망찾기의 연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기금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어랍쇼? 민간 싱크탱크라는 데에서 민주주의, 교육개혁, 국가 재정, 시민사회, 양극화, 환경 갈등을 연구해 논한 책이 삼성의 돈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다른 것은 둘째치더라도 태안 앞바다를 기름으로 뒤덮어 놓고도 50억원 외에는 못 내놓겠다는 후안무치 삼성의 돈으로 환경 갈등을 다루는 책을 만든다... 이것을 뭐라 설명해야 하나? 자기를 까는 책에도 기꺼이 돈을 내놓는 삼성의 대인배스러움을 찬양해야 할까? 영혼을 팔아서라도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겠겠다는 희망제작소의 결연한 의지를 칭송해야 할까?

1월 29일자 한겨레에 김기원 교수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성 돈 안 받는다고 학회가 문 닫는 건 아니며, 삼성이 교수들에게 보내주는 해외여행 안 간다고 인생이 비참해지지도 않는다"
- <[삶과경제]나훈아를 본받자> 중에서
이 말을 거꾸로 하면 꽤 많은('무척 많은'이겠지만 --;) 학회는 삼성의 돈으로 운영되며, 꽤 많은(역시 '무척 많은'이겠지만 --;) 교수는 삼성의 돈으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일 게다. 그러고 보니 인문학 교육을 통한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인 '성 프랜시스 대학'도 삼성 돈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육기회 균등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고른기회 장학금'도 이건희가 사재 출연(사법 처리를 면하는 조건으로 출연한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좀 더 알아봐야겠다.)한 돈이 종잣돈이다. 아, 이놈의 세상에는 삼성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구나.

물론 삼성의 돈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크다. 노숙인들이 재활하고, 가난한 집 아이가 학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그런데 그것이 과연 삼성이 선한 뜻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내놓은 '눈먼' 돈일까? 악랄한 삼성에게서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 돈 마른 공공 영역에 투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설득력 있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라고 양잿물까지 마셔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김 교수의 말처럼 "삼성과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생존을 걸지 않아도 될 땐 최소한 자존심을 지키자"라는 그의 주문도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럼 점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현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개혁의 전망을 모색하는" 데 굳이 삼성의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연구 성과가 아무리 좋을지언정 판권에 박힌 삼성 로고가 있는 한 우리 시대에 희망은 폭풍우 앞에서 켠 촛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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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 대략 3~5년 전만 해도 가장 존경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지체없이 신영복 선생을 꼽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때문이다. 근주자적스러운 세미나를 하면서 나름 말랑한 텍스트라 선배들이 생각해 교재로 선정돼 읽었는데 당시 내게는 상당한 충격과 감흥을 줬다. 더군다나 군대에서 신입 소대장이 가지고 있기에 낼름 빌려 다시 읽으며 감옥 생활과 진배 다를 바 없는 군 생활을 사유하는 나름의 매개체로 대했다. 제대 후 누군가에게 넘겨 준 지 오래된 햇빛출판사의 구판을 대신해 돌베개의 신판을 샀으며, 마찬가지로 <더불어 숲>이나 <나무야 나무야>, <강의> 같은 미디어 연재분을 묶은 책도 일부는 헌책일지라도 사두기는 했다. 하지만 사두기만 했을 뿐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관심과 열의, 존경 등의 감정은 도서관 서가에서 찾은 빛바랜 햇빛출판사 구판 표지마냥 바래졌다.

 

이리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군을 전역하면서 통제된 사회 조직으로부터 나름 독립하면서 감옥이라는 조직이 만들어 낸 독특한 사유를 나와 연계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신영복 선생은 진보, 좌파, 개혁, 운동권 같은 일련의 집단에서 '스타'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타나 히어로에 관심 없는 나로서는 그에게 유명세가 더할수록 관심을 덜 가지게 됐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가 사상전향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가 얽힌 추문 또한 들었다(특히 이 추문을 들었을 때 나는 충격받았다). 그리고 그는 점점 상품화됐다. 성공회대에 장학금을 준다는 명목 아래 써 준 모 소주병의 제호도 탐탁지 않았지만,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출판사 또한 그를 철저히 상품으로 만들었다. <엽서> 영인본이야 절판돼 레어템이 돼 재발간이 긍정적이라 보이지만, 연말마다 팔아먹는 탁상 달력과 <청구회 추억>, 그리고나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시리즈 중 신영복 편 같은 건 한마디로 재탕에 삼탕이 아닌가?

 

그중 가장 결정타는 <청구회 추억>이 되겠다. 증보판에 실린 몇 편의 짧은 글을 이런 식으로 단행본으로 만드는 건 아무리 봐도 탐탁지 않다. 증보판에서 '청구회 추억' 편은 분명 처음 구판을 읽었을 때와 다르지 않는 감흥을 줬던 건 사실이다. 제아무리 그림을 더하고 오디오북과 영문 번역문을 더한다 해도 이런 식으로 단행본을 만드는 건 신영복 선생의 팬의 주머니를 털어내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역시나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로 볼 때 적잖게 팔렸다. 사실 요즘 같은 불황기에 출판사로서는 고육지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신영복이라는 이름 석 자는 잘 팔리는 아이템이다. "이 책으로 재미를 보고 나면 출판사에도 이후 '신영복 우려먹기'에 재미가 들릴지도 모른다"는 나귀님의 우려가 기우였으면 싶다. 하지만 불을 보듯 빤하지 않은가? 신영복 선생의 팬들이 자신들의 글을 모아 책까지 펴내는 마당에. 그리고 여전히 초청 강사와 필자로 최우선 순위로 꼽히는 '스타'이기에.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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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국출판인회의가 2007년 02월 15일부터 2008년 02월 21일까지 교보문고, 영풍문고, YES24, 인터파크 등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10곳의 도서판매 부수를 집계한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입니다.

 1위.시크릿(론다 번ㆍ살림 BIZ/2007년06월)
 2위.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외ㆍ한국경제신문사/2007년12월)
 3위.즐거운 나의 집(공지영ㆍ푸른숲/2007년11월)
 4위.리버보이(팀 보울러ㆍ다산책방/2007년08월)
 5위.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지성ㆍ다산북스/2007년10월)
 6위.20대 공부에 미쳐라(나카지마 타카시ㆍ랜덤하우스코리아/2008년01월)
 7위.몰입(황농문ㆍ랜덤하우스코리아/2007년12월)
 8위.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이원복ㆍ김영사/2007년12월)
 9위.1% 행운(잭 캔필드ㆍ흐름출판/2008년01월)
10위.사랑을 믿다(권여선ㆍ문학사상사/2008년01월)
11위.사랑하기 때문에(기욤 뮈소ㆍ밝은세상/2007년12월)
12위.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ㆍ열린책들/2007년07월)
13위.무지개 원리(차동엽ㆍ동이/2006년11월)
14위.이기는 습관(전옥표ㆍ쌤앤파커스/2007년04월)
15위.1일 30분(후루이치 유키오ㆍ이레/2007년10월)
16위.감사의 힘(데보라 노빌ㆍ위즈덤하우스/2008년01월)
17위.구해줘(기욤 뮈소ㆍ밝은세상/2008년01월)
18위.신화는 없다(이명박ㆍ김영사/2005년05월)
19위.에너지버스(존 고든ㆍ쌤앤파커스/2007년01월)
20위.해커스토익 Reading-뉴토익(DAVID CHOㆍ해커스어학연구소/2006년02월)


20위 안에는 자기계발서와 실용서, 그리고 소설만 있다. 그나마 한국소설은 공지영의 책 단 한 권이다. 그런 마당에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과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위치하는 일은 가당치도 않다. 그나저나 18위에 있는 책 한 권이 몹시 거슬린다. 아니다. 그보다 더 높은 순위에 없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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