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 : 집약본
8점

손낙구의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 수도권편"의 출간 이야기에 책을 사려 했더니 정가 10만 원. 인터넷 서점에서 10% 할인받고 적립금을 고려해도 후덜덜. 그래도 자료 확보 차원과 출판사에 대한 애정을 생각해서 구매할까 했지만 아내의 반대로 끝내 구입하지 못했다. 그러다 몇달 지나 집약본이라는 이름으로 정가 1.7만원짜리 발췌본이 나왔다. 서문에 달린 출간 배경이 기가 막히다.

2010년 2월에 펴낸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 수도권 편>의 10만 원이라는 가격이 독자들이 돈을 주고 사서 읽기엔 너무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한 독자는 서민의 관점에서 쓴 책이 서민이 사서 읽기 어렵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요약본이라도 내달라는 주문을 했다. 한 번은 이 책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서 필자가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30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청중은 말할 것도 없고 토론자도 이 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한 사람은 언론에 소개된 내용과 필자의 발표문만 참조했고 다른 사람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고 했다.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은 서점에서 이 책을 손에 쥐고 살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결국 내려놓았다며 구매자의 고민을 말해 주었다. 책값 때문에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어, 언론에 실린 기사를 통해서만 이 책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문제라는 생각에 서민판을 내기로 했다.

학술회의 토론자들조차 사지 않는 책. 나처럼 도서구입지원비를 받는 사람조차 구입하지 못하는 책.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해도 가격이 후덜덜 해도 뜻 있는 사서가 아니면 한정된 예산 때문에 선뜻 구매하기 힘든 책. 그런 책을 낸 저자도 출판사도 오판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집약본이라는 이름으로 가격을 대폭 낮춘 책이 나왔지만 1660쪽에 B5 사이즈의 책을 440쪽에 A5로 축약하다 보니 책의 핵심 자료인 시군구별 자료는 강남구, 수원시, (인천)남구만 빼고 통째로 사라졌다. 정작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인 마포구나 곧 이사 갈 파주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볼 수 없는 것. 이게 어디 나만 그러겠는가.

저자가 수 년 동안 손품 팔아 생성한, 귀한 자료를 출판사에 내놓으라 할 수 없으니 결국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듯, 10만 원짜리 수도권편을 손 떨어가며 사든가 도서관에서 빌리든가 아니면 대형 서점에서 훑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든 생각은 POD이다. 이른바 주문자 제작 출력. 예시로 실린 강남구, 수원시, 남구 대신 자기가 사는, 또는 관심이 가는 시군구만 골라 책을 엮는 것이다. 조금 방식을 달리하면 기존의 집약본과 별개로 시군구별 예시만 자신이 골라 출력해 제본할 수도 있겠다. 적잖게 찍었을 수도권편이 안 팔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오로지 가격 때문에 자기가 사는 동네의 지표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손익 계산을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현재 POD는 문제가 있다. 가장 큰 것은 POD가 결코 싸지 않다는 것. 교과서를 제작하면서 여러번 POD를 이용해 봤는데, 출력의 질은 차치하고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4도 양면의 경우 쪽당 200원. 해 보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단도를 대략 100원이라 하면 440쪽의 경우 4.4만원이 나온다. 제본비야 1천 원 정도이니 별 의미 없다 쳐도 가격이 후덜덜해진다. 물론 마스터 인쇄도 가능하고 대략 쪽당 15원 정도니까 가격은 확 내려간다. 학위 논문으로 주로 취급하는 업체의 경우 10부 정도부터 가능하고 100부 이상부터는 어느 정도 할인이 되는 만큼 시도해 볼 만하다.

이렇게라도 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봤으면 하는데, 그저 집약본 나온 것에 감지덕지해야 할까? 기왕지사 실책을 인정하고 집약본을 낸 만큼 최소한 고려 정도는 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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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씨가 "웬만하면 <삼성을 생각한다> 빨리들 확보해두시길. 레어 아이템 후보되겠습니다."라며 트위트를 날리길래 품절, 절판된/될 책을 사 모으는 나로서는 낼름 구매해 버렸다.  오늘 아침에 읽은 블로그 글프레시안 기사를 보니 일일 방문자가 고작 40-60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도 광고 지면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광고를 일체 달지 않기로 했지만, 뭐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나름 공익적 성격이 있다고 판단되어 예정 광고 이미지를 게재한다. 아마 오늘 책이 도착할 텐데 바쁘더라도 리뷰는 짤막하게나마 써야겠다.






덧붙임
1. 까먹었는데 이 광고는 캡콜드 님의 글을 보고 따라한 것이다.
2. 2월 한 달 내내는 좀 그렇고, 설 연휴 전날인 12일까지 광고를 블로그 맨 상단에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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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원제가 On Liberty이기에 '자유에 관하여'가 적합한 번역 같다.)을 읽고 싶어 하기에 검색을 해 보니 유명한 책답게 번역본이 여러 종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자유론'으로 검색하니 20종이 검색된다. 여기서 논술용 서적과 절판된 판본을 제외하고 출판사의 지명도를 놓고 보니 대충 4종이 추려진다. 최근 출간순으로 기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팔린 판본은 위너스초이스에서 나온 논술용 서적이다.

박홍규가 번역한 문예출판사 본(2009. 3. 신국판 320쪽)
가장 최근에 번역된 판본으로 "<자유론> 출간 150주년을 맞아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비판적 해설을 곁들여 번역했다."라고 한다. 고전의 번역에 머물지 않고 한국 사회의 주요 문제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해설 덕에 320쪽으로 가장 두꺼우나 가격은 1만원으로 착한 편이다.

김형철이 번역한 서광사 개정판 본(2008. 5. 신국판 302쪽)
김형철 연세대 교수가 번역한 판본으로 1992년에 나온 활판본을 손질해 양장본으로 나왔다. 양장본인 탓에 1.8만원으로 가장 비싸다. 교수신문 기획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선정 판본이다.

이주명이 옮긴 필맥 본(2008. 3. 문고판 변형 236쪽)
필맥 사장이 직접 번역한 필맥 본은 유일하게 'On Liberty'라는 제목을 살렸다. 236쪽(7천원)으로 가장 얄팍하다. 번역의 질은 다른 판본에 비해 잘 모르겠으나 필맥이 이제까지 내 놓은 책을 볼 때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표지가 마음에 든다.

서병훈이 옮긴 책세상 본(2005. 1. 문고판 변형 254쪽)
책세상문고답게 254쪽에 6.9천원으로 가장 싸고 작다. 필맥 본보다 두꺼운 이유는 역자의 해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가 번역했는데, 역자 중 유일하게 정치사상 전공자이다. 김형철 본과 마찬가지로 교수신문 선정작이며, 네 종 중 가장 많이 팔렸다.

교수신문이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라는 기획을 추진하고 이것을 책으로 펴 냈을 때 추천받은 판본은 김형철(서광사) 본과 서병훈(책세상) 본이다. 하지만 책이 나온 게 2006년이니 이후에 나온 필맥 본이나 문예출판사 본은 검토되지 않았다.

원제를 최대로 살린 '자유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긴 하나 아무래도 이주명 본은 가장 먼저 탈락하게 될 듯하다. 번역의 질이 차이가 나지 않는 선에서는 고전 번역본은 아무래도 해제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비싼 양장본인 김형철 본도 탈락할 확률이 높다. 책장에 꽂아 둘 가오용이 아닌 담에야 고전은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며, 사실 <자유론>은 팸플릿 수준의 얄팍한 책이기에 양장본이라는 외피가 적절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박홍규 본과 서병훈 본인데, 아무래도 아내가 직접 판단하는 게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난은 두울 다아!'라고 말하고 싶다. [2009-06-19]

업무상 자유론의 한 대목을 쓸 일이 있어 일전에 구입한 박홍규 역본을 봤는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그래서 서병훈 역본을 구해 비교해 보니 딱딱하고 건조한 게 이것은 무슨 바윗덩어리 같았다. 원문의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는 데에는 차라리 딱딱한 게 나으나 떠듬떠듬 읽기란 힘겨운 일이다. 그렇다고 명상을 해야 하는 글을 읽는 것이 쉽지도 않고. 이에 구글을 뒤져 영문 원본을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한눈에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의도는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에 일단 서병훈 역본을 참고해 꽤 윤문하는 것으로 결론내었다. 하지만 박홍규 역본의 장점은 박홍규의 시의적절(?)한 해제이다. 자유론이 인류사에서 가지는 위치에 기반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유가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논파한 글은 재미도 있고 의도도 깊다. 이것만으로도 살 만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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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전쟁 상세보기
아리카와 히로 지음 | 대원씨아이(주) 펴냄
책을 둘러싼 전쟁과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도서관전쟁』. 미디어의 검열을 강화하는 법률인 &#39;미디어양화법&#39;이 시행된 지 30년. 그 검열과 검열권의 무력에...

'도서관 전쟁' 시리즈라는 일본 원작의 라이트 노벨이 있나 보다. 그런데 작품의 배경이 독특하다. 가상의 일본에 국민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체를 검열하겠다는 '미디어양화법'이라는 게 생긴다. 방송, 신문, 잡지 같은 각종 미디어에서 비속어, 막장 스토리, 음란물은 물론 정부를 비판하는 일련의 것들을 싸그리 단속하겠다는 법이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그러한 법이 공표된 지 30년 후, 홍위병 마냥 미디어양화법에 따라 도서 검열을 일삼는 '양화대'가 있고, 그들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맞서는 이들이 있다. 특이한 점은 이들은 도서관을 근거지 삼아 양화대와 맞서 싸우는 '도서대'이다. 말하자면 사서들이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총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내전 상태. 하지만 양화대와 도서대는 총 들고 설치긴 하지만, 해방기 좌우익 '완장'들의 그랬던 것처럼 국가 권력의 방조 또는 무능 아래 지네들끼리 싸움질한다. 하지만 늘 미디어에 맞닿아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은 동화책 한 권 보려 하다가 이들의 싸움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 4권짜리 '도서관 전쟁' 시리즈는 라이트 소설답게 이 심각하디 심각한 상황 속에서 남녀의 로맨스를 중심 삼아 이야기를 펼치는 듯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양화대와 도서대 간의 대립은 꽤나 흥미롭다. 특히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는 바람에 이 법이 통과되고, 법이 집행되고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돌이키기엔 늦었다는 상황 설정은 웃어 넘길 수만 없다. 멀지 않은 과거에 표현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던 사전 검열이 있었고, 최근에는 정부 시책에 반하는 글을 인터넷에 썼다고 잡혀 가는데다, 일사부재의의 원칙 따위는 무시하고 미디어법을 강행 통과하는 '대한민국'을 볼 때 이는 소설 속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힘든 제법 그럴 듯한 상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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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점에 갔다가 익숙한 제목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첫 직장에서 만들던 잡지에 실렸던 연재물의 제목이었는데, 그 연재물을 묶어 단행본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 연재는 초등학교에서 만들기 같은 수작업 활동을 슬라이드 쇼 형식으로 지면에 담은 것인데, 내 스타일에는 다소 안 맞았다. 뭐 그래도 하라면 해야 하지 않나. 물론 첫 기사는 컨셉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는 비운의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그 후로 좀 했나 싶었는데 막상 목차를 보니 내가 작성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은 꼴랑 3개이다. 헛헛.


사실 출판사에서 자사 발간 잡지가 있으면 여러 모로 유용하다. 가장 좋은 것은 다량의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거다. 1-2년 정도 연재한 기사를 잘 가다듬으면(이게 편집 아닌가) 단행본 한 권을 뚝딱 만들 수 있다. 광고로 가득찬 잡지가 아닌 담에야  잡지 대부분은 적자이다. 그럼에도 출판사가 잡지를 내는 이유는 이러한 콘텐츠 확보 때문이다. 물론 적자를 감당할 수 없으면 폐간 또는 휴간하지만...


4년 반 동안 월간지를 만들었다 보니 그동안 직접 쓰든 편집하든 내가 관여한 기사를 엮어 내놓은 책이 몇 권 된다. 그것을 정리해 봤다. 이중 단행본 편집까지 관여한 것은 두 권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거드는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손으로 만든 책은 한 권도 없다.



'더이상' 잡지를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단행본을 만드는 일도 아니라서 내 손으로 만드는 책이 과연 나올까 싶다. 게다가 책이 아닌 콘텐츠의 묶음을 고민하는 지금의 나로서는 더더욱. 그래서 저 책들을 보면 조금 짠해진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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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상세보기
피터 박스올 지음 | 마로니에북스 펴냄
최고의 고전과 문제작을 집대성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 . 다양한 분야의 책 중에서도 소설 문학의... 인류의 정신적 지도를 그려온 1001편의 작품들을 망라하였다. 이 책에서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

알라딘에서 사은품으로 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1권>.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을 국내 발간작 중심으로 추려 사은품으로 제작했다는데... 맨 뒤편에 나온 체크리스트를 보다가 문득 발견한 사실.

'이거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 아냐?'

아이작 아시모프의 <나는 로봇>(이 책에 이미지도 쓰인 우리교육에 나온 번역작은 <아이, 로봇>인데...)부터 존 밸빌의 <바다>에 이르는 101권의 책은 모두 소설이다.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만화로도 보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래픽 노블'이라는 소설의 한 유형으로도 보기에 소설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 사은품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이라 해야 옳다.

그런데 원작인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은 어떨까? 국내 비발간작도 꽤 되는 1001권의 목록을 일일히 확일할 수 없지만, 대충 훑어보니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01권>이라 해야 옳을 듯.

이쯤 되면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국어 교과서 편집자 맞나?) 나로서는 눈쌀이 찌뿌려진다. 젠장 문학만 책인가? 문학 가운데서도 소설만 책인가? 투덜투덜. 가뜩이나 작년에 만든 교과서 심사본에 문학 작품이 적다는 불평을 듣고 기분이 언짢은데(문학=국어는 아니잖소!) 뭐 이래?

책 소개에는 "소설 문학 작품 1001편을 담았다" "소설이 왜 주목받는지, 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는지에 대한 대답이 효과적으로 담겨 있다."라는 문장이 적혔지만, 글쎄... '책'이라 해 놓고 '소설'만 이야기하는 책은 한마디로 눈꼴시렵다. 원제 자체가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이라 하지만, 번역해 내놓으면서 출판사에서 '편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일단 소설과 책을 구분 못하는 피터 박스올이라는 '문학' 교수에게 육두문자를 퍼부어야겠지만...

사족: 내가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인문학의 한 축인 문학의 영향력과 위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소설(문학)=책으로 놓은 사고방식이 마음에 안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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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편집 매뉴얼(2009) 상세보기
열린책들 편집부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09년 개정판이 나왔다. 2008년 판이 일찌감치 품절돼 구매자들이 이리저리 수소문하게 했다는데, 그때마다 열린책들의 대답은 "2009년 판을 기다리세요"였단다. ^^;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알라딘의 설명을 보니 다음 같은 부분이 눈에 띈다.

이번 2009년판의 변화된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2008년 10월 개정된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여, 수정된 사항을 모두 반영했다. 둘째, 저작권 및 제작 관련 내용을 대폭 보강했다. 셋째, 순화해야 할 출판 편집 용어에 대해 논의하는 '새 이름을 지어 봅시다' 난을 마련하여, 책에서는 온갖 말을 벼리면서도 정작 업무 중에는 부적절한 용어들을 무분별하게 쓰는 세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10.9사태'라고 일갈했던 지난해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반영했다니 2008년 판을 가진 나도 지갑을 열게 만드는구나. 맨땅에 헤딩하듯 일일이 찾아 헤매며 고생했을 열린책들 편집자들의 노고가 눈에 선하니 이 얼마나 착한(?) 행위인가? 게다가 정가 5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사실 2008년 판은 3500원이라 무려 42.85% 인상했다 ^^;). 사실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지만 내부용으로 만드는 책을 조금 여유 있게 찍어 시중에 내놓는 만큼 비싸게 가격을 책정했다가는 욕만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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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헌책으로 샀던 노명식 선생의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1789~1871>라는 책을 읽는데, 제아무리 역사는 좋아해도 워낙 숫자에 취약한 뇌를 가졌기에 정신 없이 진행되는 프랑스 대혁명의 사건이 너무 복잡해 아놔~ 해 버렸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혁명의 과정이 재미있기에 망정이지 마구 튀어나오는 익숙지 않은 프랑스어 단어에 뇌가 꼬일 뻔해 책을 집어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1980년에 나온 책치고는 잘 읽힌다는 생각도 든다.

'테르미도르 9일의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종식되는 부분까지 읽었는데 이때까지 일어난 혁명의 주요 사건만 정리해 본다. 혁명이 순식간에 일어나 루이 16세의 목을 잘랐다고 알고 있었는데(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후 루이 16세가 2단 분리되는 데는 3년 반이 걸렸다), 생각보다 혁명은 여러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이제 총재 정부의 수립과 '영웅' 나폴레옹의 등장, 그리고 공화국의 몰락이다. 물론 책 제목처럼 파리꼬뮌까지 다룬다지만, 사실 내 관심사는 개판 오분전의 프랑스가 어떻게 세계사의 귀감이 되는 공화국을 수립하고 지켜냈는가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쥐는 과정을 분석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적용될 단초를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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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무리 핑크 플로이드의 팬일지라도 정규 앨범 14장을 묶은 CD 16장짜리 박스 세트가 나왔을 때 꿈쩍하지 않았다. 다시는 수입되지 않는 한정판이라고 쇼핑몰이 뽐뿌질하고 실제로 각종 포스터와 스티커 등이 포함된 패키지라 군침이 날지라도 14장의 앨범 중 2장을 빼곤 이미 가지고 있으니 딱히 사야 할 메리트가 없었다. 물론 눈먼 돈 22만원이 난데없이 생기면 고민 좀 하겠지만...

그런데 예약 판매를 시작한 산울림 전집 17장짜리 박스 세트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내가 가진 산울림 앨범은 2집과 3집, 그리고 3장짜리 컴필레이션이 달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요작 2~3장만 더 가졌어도 유혹에 견뎌 보겠는데, 1집을 중고로도 구매하기 힘든 마당에 전집 박스 세트라니... 게다가 엘피 미니어쳐에 150쪽 양장 부클릿이라니... 재발매를 하는 로엔(듣보잡 음반사인 줄 알았는데 YBM서울음반의 새 이름이란다.)에게 절이라도 할 태세이다. 하지만 17.8만원이라는 가격은 만만치 않다. 한 달 용돈 탁탁 털고 점심을 한 달 내내 라면으로만 먹으면 가능한... 하하...

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대박 고가 상품은 꾸준히 나온다. 줄줄이 글이 길어지지만 그냥 지워 버렸다. 아씨바 욕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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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위대한 도전이 낳은 인류의 명작 세트 - 전4권


예담에서 이번에 '위대한 도전이 낳은 인류의 명작 시리즈'를 내놓았다. 나처럼 가오 지향형 책에 잘 뽐뿌질 당하는 인간 만을 위한 책인데, 비행기, 범선, 자동차, 자전거의 '역사'를 다룬다는 이 시리즈 세트 가격은 25만원. 손간 허걱 하는 소리가 나온다. 가격부터 이 책을 팔려고 만든 책인지 의심이 들지만,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리뷰를 보니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와 같은 판형이라 한다. 가로 361mm 세로 267mm 320쪽 양장본. 나름 크다 생각하는 우리 집 서가에도 꽂지 못하는 그 거대한 판형 말이다. 램프의 바바 같은 웃음이 인다. 음홧홧홧홧.

하지만 탐/난/다. <조르주~>와 '세계문명 시리즈'는 비록 올바로 꽂아 두진 못하지만 이따금 폼 좀 내면서 읽기에 좋은 책 아닌가. 게다가 몇 년 뒤 아들과 함께 학습의 목적으로도 충분히 볼 수(아니다, 이 녀석 책을 자꾸 찢어댄다. ^^;) 있다. 하지만 세트 25만원 각 권 8~10만원은 만만치 않다. 그런데 발견한 사실 각 권 8~10만원인데 세트는 25만원? 8+8+8+10=34만원인데, 그러면 세트는 무려 9만원이나 깎아 판단 말이야? 얼마전 79%나 할인해 주던 알라딘 수입 앨범 파이어셀러 행사를 바빠서(실제로는 뒤지기 귀찮아서) 못 뒤지다 리스트에 모셔 둔 탠저린 드림 박스 세트를 날려 버린 것이 떠올랐다. 무려 9만원이나 깎아 주는데... 시간 지나면 분명 이 세트는 품절시킬 텐데... 어짜피 지를 땐 과감히 팍 질러야 하는데...

물론 세트가 25만원, 할인가 22.5만원은 도서지원비로 구매한다 해도 한도를 넘어서는 금액이다. 얼핏 두 달로 쪼개 살 수 있다는 말도 들은 듯하지만, 그러기엔 두 달 동안 다른 책은 못 산단 말이다. 육아나 아내의 공부 같은 이래저래 필요한 책도 이따금 있는 판에 그리 지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게다가 아직 못 지른 세트나 시리즈도 아직 많다. 게다가 내가 비행기 말고 다른 권에 관심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동양의 범선이 나오지 않는 반쪽짜리 범선에는 호기심이 날아가 버렸다. 자동차도 좀 왔다 갔다 하고, 자전거는 뭐 볼 게 있나 싶다. 흐음. 점점 안 사는 방향으로... 대신 다음 달에 비행기 하나 정도 사는 거... 아, 아내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 미리보기를 보니 참 간지난다. 가오용으로는 딱인데...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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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 5권 구매를 완료한 데 이어 <일곱 개의 수정 구슬>을 끝으로 땡땡의 모험 시리즈 24권 전 권을 모두 구매했다. 아싸~!

몇 년 전 땡땡의 모험 한국어판을 발매하는 출판사에 후배가 들어가자 직원가로 싸바싸바 해 8권 세트 3종을 구매하기는 했지만, 그때에는 금액이 부담돼 함께 일하던 (당시 임신 중이던) 후배 한 명을 꼬셔 반반 부담으로 세트 3종을 사서 반씩 나눠 가졌다. 그때에는 한두 번 보고 말 생각으로 "네 아이가 태어나면 출산 선물로 다 넘기마"라고 했지만, 이 말은 식언이 되었다. 책 욕심도 났거니와 내게도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들춰보는 땡땡의 모험은 너무 재미있었다. 허긴 먼 옛날 보물섬에 연재될 때에도 재미있게 봤으니.

그리 하여 전 권을 모두 모으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단 내게 없는 세트 한 종을 사고 그 다음달부터는 코르토 말테제와 함께 한 권씩 사들였다. 으하하.

땡땡의 모험은 좀 희한한 책이다. 첫 권인 <소비에트에 간 땡땡>은 볼세비키 치하의 소련에 대한 거의 적대적인 멸시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둘째 권인 <콩고에 간 땡땡>에서는 전형적인 서구 제국주의자의 시선으로 아프리카인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지극히 제국주의적이고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 하던 시각이 조금씩 변하더니 나중에는 전 세계의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좌빨'스러운 기운이 넘쳐났다. 오호호. 들리는 말에는 한 중국인이 작가인 에르제를 설득해 그를 '개종' 내지는 '회심'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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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황금궁전>을 끝으로 국내에 발간된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를 모두 구입했다. 보르헤스 전집(아내의 것)과 땡땡의 모험 시리즈 미구입분을 함께 매달 한 권씩 다섯 달에 걸쳐 샀는데, 시리즈 물을 한 달에 한 권씩 사는 맛도 은근 쏠쏠하다. 다음 주에 땡땡의 모험 중 <일곱 개의 수정 구슬>마저 사면 땡땡의 모험 시리즈 구입도 완결이다.

코르코 말테제 시리즈는 사실 위 다섯 권이 전부가 아니다. 위키에서 찾아본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는 모두 12권이며, 거기에 비공식 작품인 <코르토 말테제-회상록>(이건 만화가 아닌 듯)이 있다. 하지만 이 다섯 권이 아닌 다른 시리즈는 아마 한국어판으로는 보기 힘들 듯하다. 알라딘 기준으로 다섯 권 다 세일즈포인트가 500을 넘지 못한다. 즉 초판 초쇄도 못 팔았다는 이야기이다. 기 출간작이 이러한데 새 출간작을 내놓을 간 큰 출판사 사장은 없다. 아쉽다....

내가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를 사게 된 건 전적으로 박사와 이명석이 경향신문에 연재한 '지구보다 큰 지도'의 코르토 말테제 편 탓이다. 2002년에 시리즈가 처음 출간되면서 언론을 살짝 탔으며, 올해 시카프에서 전시전이 열렸다지만 전혀 알지 못했다. 경향신문 기사에는 다음 같은 구절이 있다.

풍성한 고고학과 민속학 지식, 놀라운 용맹성과 위기 대처 능력, 어떤 이념과 국적에도 소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항해와 모험을 거듭했던 코르토는 ‘인디아나 존스’ ‘마스터 키튼’ ‘툼 레이더’를 탄생시킨 원초적 DNA다.

내 본디 방랑벽 따위는 없어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이나 대양을 넘나드는 마도로스에게 취미는 없으나, 역사와 픽션의 틈바구니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설정은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산 <켈트 이야기>(서점에서 검색되는 순서가 아닌 위키에서 본 연도에 근거해 샀다)상상했던 것과 좀 달랐다.

도대체 뭔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몽상담(특히 스톤헨지에서으 낮잠)에 잘못 샀단 생각도 들었으나, 두세 번 더 읽어 보니 (일부) 사람들이 코르토 말테제에 빠져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종일관 비비 꼬아 대는 시니컬한 독설의 장광설, 거친 펜선, 그리고 유럽인들에게만 축적된 역사적 맥락을 살짝 걷어 내면, 앞서 말한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벌이는 내러티브가 드러났다.

영 인디아나 존스나 마스터 키튼 시리즈를 좋아했던 이들은 능히 빠져들 만했다. 단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다섯 권 다 없다 볼 수 있다. 재미는 징그럽게 없는데 이상하게 빠져드는... 마치 팜므파탈인 줄 빤히 알면서도 그에게 빠져드는 순진한 청년 같다고나... 에쿠.

앞서 말했듯, 앞으로 코르토 말테제의 새 시리즈는 한국어판으로 볼 일은 없을 게다. 그렇다고 영어판을 아마존 등에서 사서 볼 일도 없다. 그저 애니메이션인 <코르토 말테제: 비밀의 궁전>(이마저도 내가 알기론 국내에서 정식으로 DVD 출시되지 않았다)정도나 구해서 보겠지. <염해의 발라드>를 비롯한 나머지 7권이 나를 애타게 찾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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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러로그를 역추적하다 우석훈의 블로그에서 척추골반전위증(대부분의 검색은 척추전방전위증)이 우유와 관련 있다는 가설이 있다는 말에 이것저것 검색하다 발견한 책이 프랭크 오스키의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 이다.  저자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10장과 11장의 제목인 "우유를 당장 끊어라!"와 "송아지만 우유를 먹어야 한다"이란다. 특히 몇몇 리뷰를 훑어 보니 정말 먹어선 안 될 것이다. 특히 책의 뒷표지에 나온 걸 옮겼다는 다음 구절에서 질겁.

- 평생 우유 마신 사람 동맥 경화 앓는다!
- 우유는 철분 결핍성 빈혈의 원인!!
- 우유 지방은 콜레스테롤 덩어리다!!
-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은 독성 탓이다!!

학교에서 먹는 우유도 모자라 하루에 1000ml 한 팩을 단숨에 마시던 네 살 아래 동생이 고등학생인 내 키를 훌쩍 넘겼음에도, 내 위가 우유를 썩 잘 소화하지 못하는 바람에(그리고 우유의 비릿함을 싫어해) 나는 우유 마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준강제 급식으로 매일 우유를 마셔야 했던 시절에는 이래 뺀들 저리 뺀들 하며 우유를 곧잘 버리는 등 잘 마시지 않았던 게 천만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아내가 임신과 출산의 와중에 골반이 심하케 틀어졌음에도 모유 수유를 고집해 아이가 분유를 먹지 않아 아내가 무척 고맙다. 앞으로 아내가 얼마나 더 모유만 먹일 수 있는지, 아이가 평생 우유를 안 마시며 살 수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유팩을 드는 순간 나를 엄습할 불안감을 나는 당당히 맞아드릴 것이다.

2003년에 나온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이다. 언제 절판된 지는 잘 모르지만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1228 정도 되고 리뷰가 9개 달린 정도에 출판사 역대 판매량의 11위 정도면 굳이 절판시킬 만한 책은 아니다 싶다. 입시 전략과 주식 투자 관련 서적을 주종으로 삼는 출판사라 회사의 출간 경향과 안 맞아 정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낙농업자와 정치인의 결탁으로 우유 소비를 권장하는 비도덕성을 고발한다."라는 책 소개의 마지막 구절을 볼 때, 낙농업계가 모종의 압박을 가한 건 아닌지 의심이 살짝 든다.


덧.

'오래 살고 싶으면'이라는 문구가 다소 마음에 안 들긴 한다. 하지만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로운 치맛속까지 자유로운>에 나온 일화가 하나 생각난다. 요지는 목수정이 딸 칼리를 임신했음을 남자친구 희완에게 알리자 아나키스트로 가족 제도를 부정했을 법한 희완이 대뜸 담배를 끊겠다 선언했다고 한다. 이유는 "앞으로 자기는 오래 살아야 한다."였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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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라, 세계화! - 10점
엄기호 지음/당대


은연중에 나를 교도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은 교주가 된 선배가 책을 냈다.
교주께서 교도에게 30% DC해 줄 테니 20권을 팔아 오시라 계시를 내리셨다.
(저자가 현재 한국에 없는 관계로 복잡하게 꼬여 일단 저자 할인 구매는 보류입니다. --;)
버는 돈을 온전히 기저귀 사는 데 쏟아 부어야 하는 교도는 대신 블로그에 광고성 포스트를 남기기로 했다.
참고로 서문에는 교주의 가장 충성스런 교도였던 내 이름도 나온다


그런데 선동적인 제목에 비해 표지 디자인이 약하다.
저래서 책 좀 팔 수 있을까 싶다.
천 권 팔아야 인세로 백만 원 번다는, 사회과학 책 1천 권 팔면 대박이라는 한국사회에서 말이다.

교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에 링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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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레시브락 밴드 Camel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많은 이들은 1975년작 <The Snow Goose>를 꼽는다. 폴 갤리코의 동명 소설 <The Snow Goose>를 모티브로 삼아 가사 없이 연주만 담은(여기에 관해서는 참 비극적인 사연이 있는데 뒤에서 따로 이야기) 앨범인데, 캐멀 라이브의 주된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어제 들은 이들의 첫 번째 라이브 앨범 <A Live Record>의 두 번째 시디에서는 <The Snow Goose>을 통째로 라이브 연주로 들을 수 있다. 캐멀의 연주는 라이브로 들으면 그들의 진가를 좀 더 알 수 있다.

캐멀의 <The Snow Goose>를 들은 지도 한 십 년이 넘는데, 오늘에서야 이 앨범의 원작 소설인 <The Snow Goose>에 관심이 갔다. 'A Story of Dunkirk'라는 부제를 단 폴 갤리코의 <The Snow Goose>는 영국 동부 에섹스 지방의 해안가 습지의 버려진 등대에서 세상 사람들과 절연하며 사는 외로운 장애인 레이아더(사람마다 발음이 다른데 책에는 '리야더'라고 나온다)와 그에게 상처 입은 흰기러기(스노 구스)를 데려온 어린 소녀 프리다의 우정을 다룬 어린이 단편소설이다. 영국 전역에서 1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스테디셀러란다. 하지만 이탈리아 출신의 영국 작가라는 누군가의 말에 영국식 발음인 '폴 갈리코'로 알라딘에서 검색하니 절판된 책과 일러스트가 없을 것만 같은 외서 한 권씩 딱 걸린다. 이런... 오기가 생겨 아침에 아마존을 검색했던 김에 다시 찾아보니 역시 주루룩까지는 아니어도 몇 권 나온다. 하지만 표지 일러스트가 공포물이다. 웩. 이것은 교보 외서 코너에서도 구할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글로 검색하니 원문에 일러스트 몇 컷이 함께한 PDF를 구할 수 있었다. 역시 오래된 해외저작물은 PDF로 공개된 게 가끔 있다. 한 문단 정도 읽어 보니 호기심이 살살 발동한다. 이참에 이걸 한번 번역해 봐? 아내가 거의 수업료라 할 수 있는 과제로 얄팍한 책 한 권을 번역해 선생에게 제출해야 하는데, 아이 돌보는 것도 힘든데다 번역이라는 게 쉽지 않아 거의 손도 못 되고 있는데, 옆에서 함께 번역하는 것도 아내에게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적 소양은 개나 줄 정도라 말끔한 번역은 못 되겠지만, 스토리를 보니 교과서에 실어도 될 듯싶기도 하고...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폴 갤리코'로 검색하니... 아놔 욕나온다. 있다. '갤리코'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등록돼 몇 권 검색되는 데다 내가 찾던 <The Snow Goose>도 <흰기러기>라는 이름으로 모 출판사에서 작년 말에 딱 내놓았다. 이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나 전에 다니던 회사를 꼬셔 출간까지 생각했던 나의 철없던 꿈은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 나도 용접하고 모래주머니 채워 넣고 철심까지 박아 놓을 걸.... 하여튼 이미 출간된 책이 있으니 쓸쓸한 마음은 소주 대신 커피 한 잔으로 달래고 주문. 교과서 지문으로 검토라도 해야 하니까. 그래도 호기심이 서린 책을 영문이 아닌 한글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책을 읽으며 다시 캐멀의 연주를... 이번에는 스튜디오 버전으로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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