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 것은 복숭아를 훔치는 것보다 죄가 더 무겁다. 그래서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不義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크게 나라를 공격하면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칭송하면서 의로움이라고 한다. 이러고서도 의와 불의의 분별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 <묵자>
 
언론에서는 안성기와 유덕화 같은 동아시아 각국의 스타가 출연한 것으로 떠들지만, 영화 <묵공>은 적어도 내게는 묵가의 이야기를 담아 뇌리에 각인됐다. 묵가는 묵적이라 하는 장인壯人 출신의 한 제자諸子의 사상을 따르는 무리를 말한다. 흔히 겸애설이라고 하는 사해평등주의, 박애주의, 반전평화주의로 알려진 묵가는 유학이 국학으로 자리 잡히면서 거의 박멸됐지만, 맹자 스스로 "양주와 묵적의 말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라고 한탄했을 정도로 춘추시대 당시에는 주도적인 학풍이 아니었나 싶다.
 
묵가는 개인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동일하게 여겨야 한다는 다분히 종교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사는 무리로서, 하나의 수도자로서 자신들을 혹독히 수련하고, 또한 조직적으로 그들의 사상을 행동으로 옮긴 무리였다. <묵공>에서 양나라는 조나라가 침략해 오자 묵가에게 원병을 요청한다. 실제로 묵가는 약소국을 대신해 방어전을 펼치며 그들의 겸애설을 실천으로 옮겼던 이들이다. 조금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자연스레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켄 로치의 <랜드 앤드 프리덤>에 묘사된 국제여단을 비롯한 스페인전쟁에 참여한 유럽과 미국의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영화가 곧 개봉하면서 슬슬 묵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 묵가의 책을 읽으려 했더니, 논술문제로 출제되다 보니 대부분 청소년용으로 재단된 책들이다. 훑어 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게 있어 옮겨 본다.
우리는 어떻게 어떤 사람들의 이론이 올바른 대안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가? 반드시 판단기준을 세워야 한다. 판단기준이 없이 주장하는 것은 비유컨대 회전하는 물레 위에서 동쪽과 서쪽의 방향을 정하는 것과 같다. 옳고 그름, 이로움과 해로움은 분명하게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무엇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가지 표준三表’이 있어야 한다. ‘세 가지 표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근본, 증거, 유용성이 있어야 한다. 근본은 어디에서 발견하는가? 저 위의 고대 성왕의 실천에서 발견한다. 그 증거는 어디에서 발견하는가? 저 아래 백성들이 실제로 보고 듣는 것을 살핌으로써 발견한다. 어디에서 그 유용성을 발견하는가? 형벌과 정치에 적용하고, 그것이 국가 백성 인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살핀다. 이것이 이른바 주장이 가져야 하는 ‘세 가지 표준’이다. - <묵자>

묵가는 중국 고대에서 여느 사상가들과 다르게 합리적인 논증을 중시했다. 모름지기 주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필요한데, 묵자는 이 판단기준을 세 가지 표준三表, 즉 근본(本), 원인(原), 유용성(用)으로 정리했다. "고대 성왕의 실천"이라는 근본이, "백성들이 실제로 보고 듣는 것"이라는 원인이 반드시 맞다고 보기 힘들며 더욱이 "인민의 이익"이 타국 인민에게도 적용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근본, 원인, 유용성이라는 삼표는 실제 일국이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데 반드시 요구되는 말 그대로의 표준으로서 판단기준이 아닌가. 겸애설과 함께 이 삼표의 판단기준은 묵가를 좀 더 공부하게끔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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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락티코님의 글 ' 가슴 찡한 '심즈' 감동 탄생 비화!!'는 게임 '심즈'의 아이디어를 건축학자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책 <Pattern Languge>에서 얻었다고 쓰였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게임의 본질을 건축에서 가족으로 바뀌긴 했지만, "건축이 인간의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256가지의 사례로 설명"했다는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그래도 인터넷서점 외서 코너에서 검색해 보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Two hundred and fifty-three archetypal patterns consisting of problem statements, discussions, illustrations, and solutions provide lay persons with a framework for engaging in architectural design
이것만으로는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궁금증은 한층 더 쌓여 간다. 번역까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책 기획해 출간해 보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출판사에 일한다 하더라도 영역이 다른지라 이런 책을 낼 수 없어 아쉽다. 게다가 이 책을 내 보라고 꼬드길 사람이 없어 더 아쉽다.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 이 책을 다뤄 보겠지?

사실 전 세계적으로 "6천 3백 장(6,300만 장이겠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PC 게임 사상 최고로 많이 팔린 게임"인 '심즈'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책이라 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팔릴 만한 책이 아닐까? 적어도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부터 관심을 가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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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전 직장에 들렀다가 두 권의 책을 선물받았다. 그중 한 권은 선물이라기보다는 신간소개에 넣어 달라는 청탁 아닌 청탁이지만, 다른 한 권은 어린이책/그림책이다 보니 말 그대로 선물이다.
 
처음에는 그냥 크레파스(색연필인가)를 사용한 그림들로 채워졌구나 싶었는데, 그림체라든가 구성방식이든가 호기심이 끌렸다. 그리고 제목에 들어가는 '분홍돌고래'. 아마존강에 서식한다는, 길을 일고 강으로 흘러들어왔다가 민물에 사는 돌고래. 왈터 살레스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는 분홍돌고래에 관한 전설이 언급된다. 분홍돌고래의 유혹에 넘어가 '교미'한 남자는 빠지지 않아 결국 죽고만다는... ^^;
 
아, 책 소개가 늦었다. 김한민이 그리고 쓴 <웅고와 분홍돌고래>라는 그림책이다. 웅고라는 이름의 노랑머리 흑인아이, 개로 추측되는 하마라는 이름의 동물, 그리고 녹색 악어가 주인공이다. 이 셋은 숲속에서 분홍돌고래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분홍돌고래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림체가 어디서 낯이 익다 했더니 재작년에 신간소갯글을 썼던 <유리피데스에게>를 그리고 쓴 김한민의 작품이었다. 예술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세태에 한껏 우울해진 가면쟁이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낸 이 책은 그림체라든지 주제라든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그가 새로 책을 낸 것이다. 그것도 앞서 말한 '친정'에서...
 
이번 책에서도 말하는 내용은 비슷하다. 부질없는 기다림, 근거 없는 희망, 소외된 인간에 대한 씁쓸한 주제의식은 귀여운 인물들의 모습과 달리 몹시 생경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서 보시라. ^^; 신간소개를 찾아보니 4-7세용이라고 한 매체도 있는데... 글쎄... 내가 보기엔 성인용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읽어 주면 아이들은 딱 그 나이 수준으로 이해할 테고, 어른은 어른의 수준으로 읽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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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ft 1848-2000 -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원제 Forging democracy (2002)
제프 일리 (지은이), 유강은 (옮긴이) | 뿌리와이파리

"방문객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꽂아 두십시오. 집안의 정체성과 품격이 확 드러날 것입니다. 온 가족이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좋은 일입니다." - armarius.net BBS의 모 글 답글 중에서

볼드로 처리한 '집안의 정체성과 품격'이라는 말을, 248*176mm 크기에 1028쪽 양장본이라는 책의 외적 형태와 접목시키면 자연스레 '가오'라는 말로 치환된다. 외양이나 내용이나 '가오' 잡기에 딱인 책이다.

<본 얼터메이텀>에 제이슨 본이 책으로 목을 때려 무기로 쓰는 장면이 나온다는데, 이 책은 한손에 잘 잡히지도 않으며 일단 두 손으로 힘껏 던지기만 해도 사람 잡기에는 충분한 무기가 될 듯싶다.

저 것 내기로 한 출판사나, 죽어라 교정 본 편집자도 그렇지만, 번역한 사람은 무슨 배짱으로 시작했을까? 여튼 만든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가오' 잡는데는 이만 한 게 없다. 고로 가오 잡는 것 중시하는 가오이스트들은 반드시 서가에 꽂아 둬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자 컬렉션이다.

일단 사긴 했는데... 다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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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착한 <비잔티움 연대기> 세트와 덤으로 주는 <역사의 원전>.
절대 <역사의 원전>을 공짜로 받으려고 산 게 아니다?! ㅋㅋ
일단 서가에 꼽아 놓으면 뽀대는 나겠다.
그런데 왜 한숨이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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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알라딘은 잘 들르지 않게 되는데 포노와 사이트 합병한다는 이야기에 그냥 둘러보다가 발견한 것은 바로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 지도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 지도책, 그것도 세계사 지도책이라. 사계절에서 나온 <아틀라스 한국사>와 <아틀라스 세계사>도 나를 매혹시켰는데, 이번에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는 정말 매혹적이었다. "520장의 섬세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사의 현장들"라는 카피는 내게 마구마구 구매욕구를 뽐뿌질했다. 게다가 아날학파의 거두 조르주 뒤비가 책임감수했다는데.
 
 
책이야 땡기지만 문제는 예약구매자에게는 3만원짜리 쿠폰을 준다는 이벤트가 무색할 정도로 비싼 가격. 무려 12만 원. 여기서 잠깐 한숨 뱉고... 12만 원이 여느 집 애 이름은 아니지만, 이런 것을 비싸다는 이유로 패쓰하면 지름신의 화신은 지하철 선로를 문질러 광내야 할 듯. 정말 사고 싶다. 쿠폰이긴 하지만 3만원이면, 앞으로 포노와 통합되는 바람에 천상 알라딘을 이용하게 될 나로서는 9만 원이란 것인데... 그리고 기본적으로 10% 할인이니 정작 내가 지불하는 금액은 78,000원이다. 흠... 이 정도면 대략 65% 값에... ^^; 이만 하면 싸게 주고 샀다 싶은데....
 
 
항상 문제는 있는 법. 그것은 바로 생각의나무의 전례인데. 연초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각각 35,000원에 샀는데, 원래 이 책의 가격이 10만 원을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재고가 쌓이니 나중에 염가로 내놓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도 똑같은 처지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 물론 세계사 지도책이다 보니 역사교사들에게 어느 정도 팔릴 듯하지만 12만 원을 우습게 알고 살 사람이 과연이 몇이나 될까 싶다. 설마 또 내년 정도에 35,000원 정도에 나와 버리면? 아마 생각의나무를 사색의나무로 만들어 버릴지도.
 
아, 그리고 엄마박쥐 허선수 시켜 사 온다든 지도책은 어이 되었노? 이 글 안 보면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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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비싼 값에 산 <브라질>의 중고 비디오테이프. 무척 아끼는 영화이지만, 때는 이미 디비디 시대인지라 더 이상 보지도 않게 되고 그렇다고 책장에 꽂아 두자니 술 생각만 절로 나게 하던지라 마침 네온님이 <브라질>을 비롯한 내가 가진 비디오테이프 10장 9편을 전량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지난 네온님이 때린 번개 때 소유권을 네온님에게로 이전했다.
 
인수가는 협의 후 결정하자고 했는데 네온님은 내가 생각했던 금액의 2.5배를 때려 나를 당황케 했다. 순간 나는 큰 맘 먹고 그 금액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양심적으로 원래 내가 생각했던 금액을 말할지, 양심을 약간 만 팔아 적당한 값에서 선심 쓰는 척 값을 부를지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중고 비디오테이프로 큰 돈 벌면 벌 받을 듯해 결국 내가 제시한 금액만 불렀다. 그리고 대금도 현금 박치기가 아닌 책 교환으로. 네온님은 서점에서 일하신다. 직원가로 사면 싸단다 ^^; 그래서 고른 책이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가 책임편집을 맡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과 수전 손택의 <우울한 열정>이다. 물론 두 권의 책 값은 비디오 거래가보다 많고, 인터넷서점에서 사는 것보다 싸다. 결과적으로 네온님과 나의 거래는 윈-윈.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은 1001편의 영화를 다루고 있는 만큼 분량부터 압권이다. 960쪽 아트지에 양장본. 도저히 들고다닐 수 없는 무게에다 하루에 한 편씩만 본다고 해도 1001일이 걸린다. 연애하면서 1000일을 세는 사람이라면 그 엄청난 시간의 흐름에 질릴지도 모른다. ^^; 수전 손택은 유명세에 비하면 잘 모르는 저자이지만, '우울한 열정'이라는 책 제목에 끌렸다. 실은 두 권 다 <필름2.0>의 컬처 블로그에 소개된 책이다. 으하하하 책을 자주 사지도 않으면서도 책을 잘 읽지도 않아 안 본 책이 점점 쌓아져 가는데 들어온 책. 다 읽을 고통과 다 읽고서 느낄 쾌감이 뒤섞여 나를 흥분시킨다. 흠... 이번에는 후딱 읽어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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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에게 빌려온 아다치 미츠루의 러프 12권을 세 시간 동안 앉은 자리에서 다 봤다.
물론 재미있었으니 앉은 자리에서 쉬지 않고 봤겠지.
그러나...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보면 안 돼.
하지만 나는 내일 H2를 볼 것이다.
그리고 또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보면 안 돼, 라고 말할 것이다.
터치를 봤을 때도 레인보우스토리를 봤을 때도 그랬다.
 
그 이유는 남자 주인공은 뭐든지 잘하고 여자가 줄줄줄 따라다니고,
거기다 여자 주인공 또한 예쁜 데다 뭐든지 잘하고 남자한테도 헌신적이라는 것이다.
단지 만화속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일 뿐인데도,
쓸 데 없이 내게 판타지만 가져다 줘 비하감만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있다.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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