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죽인 책들교과서가 죽인 책들 - 8점
로버트 다운스 지음, 곽재성.정지운 옮김/예지(Wisdom)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로버트 다운스가 쓴 <교과서가 죽인 책들>은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옮긴이는 이 책에 실린 책들이 "교과서에 몇 줄로 축약되면서 원래의 책이 갖는 의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막았다"고 지적한다. 교과서를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다소 뜨끔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Books That Changed the World, 즉 '세상을 바꾼 책들'이라는 원제를 그딴 식으로 바꿔 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교과서는 애당초 아주 제한된 분량 안에 교육과정에 언급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내용을 균형감 있으면서도 미학적으로 잘 버무려 담아야 하는 특수한 책이다. 물론 분량이나 표현 수준에서 제약이 있고, 어느 정도 수정, 발췌가 용인되는 교과서라고 해서 앞뒤 잘라먹거나 저자의 의도를 제멋대로 훼손해 싣는 것은 응당 부적절하나, 그렇다고 책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사실 우리가 '고전'을 대하는 태도부터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흔히 고전은 마크 트웨인이 "고전이란 누구나 읽었기를 바라지만 읽기는 싫은 책"이라 나름 내린 고전의 정의를 떠올려 보자. 이 말은 '누구나 내용에 대해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책'이라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차례를 읽으며 <교과서가 죽인 책들>에서 거론하는 책을 살펴보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뒤쎄이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등. 우리는 교과서이든 다른 책에서든 이 책들을 숱하게 듣는다. 하지만 이 책은 교과서로 배우는 초중고등학생 시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모름지기 고전은 그것을 읽을 만한 소양이 있어야 온전히 읽을 수 있다. 그런 소양을 미처 갖추기 힘든 학생 시절에는 일단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핵심이라도 잘 파악하고 있는 게 장땡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에게 <군주론>이나 <꿈의 해석>을 발췌한 제시문을 가지고 논술문을 쓰라 하는 파렴치한 출제 경향이 외려 고전을 죽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물론 고전을 고전답게 제대로 설명해야 함을 역설하는 옮긴이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를 주장하는 데 지나쳐 '오바'했다 싶다. 다시 이 책의 원제를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세상을 바꾼 책'이다. 저자 로버트 다운스는 인류의 역사(물론 이 책은 서구의 역사를 빛낸 고전만 거론했다.)를 통틀어 획기적인 전환점 내지는 시사점을 던진 책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앞서 말했듯 대입 논술고사를 비롯한 시험을 공부하면서 대부분 고전을 접한다. 이렇게 읽으면 고전이 아닌 화석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고전을 읽을 바에는 차라리 당대의 현상만을 잘라 이야기하는 일부 사회과학 서적이나 감성적인 에세이를 읽는 게 낫다.

우리는 종종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종종 간과한다. 한마디로 고전은 그 시대와 당대의 지성의 결합체이다. 따라서 고전을 읽으려면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이 고전들이 쓰였는지, 시대와 고전이 어떻게 호흡했는지를 읽어 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좋게 말하면 '엑기스'만 낼름 잡숴 왔다. 그리고 고전을 읽으려 하는 사람을 책벌레나 공부벌레 정도로 취급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세계사를 바꾼 책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고전을 접해야 하는 이유를 대략적으로 이야기한다.

한편 책의 저자가 고전(학) 전문가가 아닌 도서관학 전문가라는 점이 눈에 띈다. 고전 전문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저자는 도서관학을 전공하면서 접한 고전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다시 자리 매김 한다. 어떻게 보면 해당 고전에 정통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도서관(학) 전문가가 질과 양으로 방대한 고전을 대중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고전에 관한 짤막한 맛보기의 묶음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고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고전을 찾아 읽게 하는 데는 괜찮은 책이다. 다만 이 책 한 권 읽고 수많은 고전을 읽은 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알라딘 TTB리뷰 9월 첫째 주 당선

http://camelian.tistory.com2008-08-28T07:41:120.3810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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