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8점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알마

철학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알라딘 서평단 도서(자일)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철학의 탄생'이라는 큼지막한 표제 아래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이라는 부제가 보인다. 그리고 하단에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크세노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렇다면 표지에서 거론되는 10명 철학자들이야말로 철학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양철학사 책의 대부분은 탈레스를 거론하며 철학자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10명의 철학자는 흔히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라 일컬어진다. 서양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는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탈레스부터 테모크리토스에 이르는 철학자들과 소크라테스의 차이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다.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다.
 
탈레스부터 테모크리토스에 이르는 철학자들을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로 분류한다면 이들을 설명하려면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요하다. 간단하게 도식적으로 설명한다면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에 대한 질문이라는 철학의 기본 과제를 설정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중심에 두었느냐이다. 엄밀히 따지면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 무리 가운데 한 명이었기에 소피스트를 이야기해 보면, 이네들은 철학의 대상을 인간에다 두었다. 거꾸로 이 책에서 언급된 탈레스부터 테모크리토스에 이르는 10명의 철학자들은 철학의 대상을 자연으로 설정했다. 따라서 이 책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유했는지 이네들의 사상의 궤적을 추적한다.
 
알다시피 철학의 어원은 '지혜를 사랑하는 행위 내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지혜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철학을 만학의 근원이라 한다. 이는 오늘날처럼 학문이 분화되기 전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학문으로서 탐구하는 일체를 철학이라 칭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가 무엇으로부터 생겨났는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인간을 비롯한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같은 일련의 질문이 나왔을 터이고, 이는 곧 철학의 대상이자 주제로서 인류의 '지혜'였다.
 
 
저자인 콘스탄틴 밤바카스는 먼저 이들 철학자들의 핵심 사상을 네 가지로 정리한 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 표면적인 무질서와 다양함의 심층에는 질서와 통일, 지속성의 세계가 있다. 
  • 이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근원적인 원소이며, 세계는 이 원소로부터 만들어졌다. 
  • 따라서 이 근원적인 원소와 우주의 현실은 하나이며, 초자연적인 원인이 아니라 자연적인 원인에만 기초하고 있다. 
  • 인간은 스스로의 힘을 통해 우주의 이러한 자연적인 원인들을 합리적으로 규명해 낼 수 있다.(이상 60-61쪽)
 
이런 명제를 세우고 나서 저자는 각 철학자들의 사상 가운데 주요 개념을 뽑아 차근차근 설명하고 이를 후대 철학자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정리한다.
 
흔히 밀레투스 학파라 일컬어지는 탈레스의 무리는 이 책에서 "자연철학자"라 거론했듯이 세계의 근원에 대해 가장 먼저 탐구해 (서양)철학의 시초자라 불린다. 탈레스를 이야기할 때는 도식적으로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정의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탈레스는 "신화로부터 벗어나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세계의 다양한 현상들 속에서 자연적인 통일을 찾"으면서 "자연 속에서 합법칙적인 인과성을 인식"(이상 85쪽)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탈레스는 합리적인 사고를 거쳐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점에서 탈레스는 신화의 틀로부터 벗어나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 첫 사람이었다. 이렇게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려던 아낙시만드로스나 아낙세미네스 같은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점차 우주론의 영역으로 그들의 철학을 확장시켜 나갔다. 아페이론이라는 무한의 기원으로 시작해 따뜻함과 차가움, 습함과 건조함 같은 대립쌍이 우주의 구성요소이며 이들의 창조와 파괴의 과정, 즉 만물이 운동하는 법칙을 이야기했다. 뒤이어 저자는 밀레토스 학파의 뒤를 잇는 피타고라스나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같은 철학자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만물의 근원과 운동, 질서와 조화 등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서 있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분석했는지 그 전말을 설명한다.
 
그런데 5세기 중반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자연이 아닌 인간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후대의 우리는 그들을 소피스트라 일컬었으며, 소크라테스 또한 그 무리 가운데 독특한 일인이었다. 책 말미의 <후기>에서 저자는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대립하는 이론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일하고며 불변 부동하는' 파르메니데스으 존재도, '만물이 항상 변화하고 아무것도 유지되지 않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도, '허공과 보이지 않는 원자로만' 구성되는 데모크리토스의 우주도 쉽게 받아들이지기 어려웠다."라고 이야기한 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사유의 핵심은 현상적이고 경험적인 세계의 뒤에 숨어 있는 궁극적 현실을 찾는 데 있었다."(이상 489-490쪽)라며 이네 철학자의 사상과 그것의 학문적 가치("우리의 과학 전체는 합리적이고 비판적이며 따라서 독단적이지 않은 이론 형성 과정과 연구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통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492쪽))를 간략하게 요약한다. 이런 점에서 앞 부분에 실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개관>에서 이들 철학자의 사상을 접근하는 방법론을 취한 뒤 <후기>의 정리를 읽는 것만으로 우리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핵심 사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정리와 목차를 보면서 관심이 가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개론적으로 정리해 가면 이 책을 읽는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분명 후기에 나타난 저자의 요약과 가치 판단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단순한 철학의 시초자로 보기보다는 과학의 시초로 보는 경향이 있다 싶었는데, 나중에야 저자의 약력을 보니 자연과학을 전공한 뒤 철학과 자연과학의 인접 영역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한다. 이를테면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것인가? 앞서 말했듯 이 시대 철학은 인문학인 동시에 자연과학으로서 아직 분과 학문으로 나뉘기 전인 마치 혼돈(chaos) 상태 같은 총체적인 학문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를 포함한 소피스트들이 철학의 대상을 인간으로 돌리기 전까지 철학자드의 주요 연구 주제는 자연 나아가 우주는 어떻게 구성됐으며 어떻게 변하는가였다. 당시만 해도 신화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던 때 그들은 자연을 접하면서 지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 시작의 과정을 한눈에 보여 주는 책이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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