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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후배가 그랬다.

"인터넷서점에서 책 못 사겠어요. 뽁뽁이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요."

생태적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이 그리 내밀화한 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 정도는 가졌던 후배에게 에어캡(일명 뽁뽁이)는 필요하지 않은 거추장스러운 사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야겠다 말했다. 그런 후배에게 인터넷서점의 할인액을 이야기하는 건 아무 의미 없었다. 후배는 이미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반생태적으로 살아선 않아야 함을 이미 내비쳤기 때문이다.

책을 비롯해 시디, 디비디, 커피, 아이 용품 등을 거의 대부분 인터넷쇼핑몰에서 구매하는 내게 에어캡은 친숙하다 못해 내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접하는 물건이다. 상품을 안전하게 내게 가져다준다는 본래의 목적 말고도, 톡톡 터트리는 재미로 스트레스의 극히 일부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물건을 풀어 버리면 처치해야만 하는 쓰레기의 근원이기도 한다. 다른 비닐과 함께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수거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내 곁에서 치우는 것일 뿐,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따금 후배의 말이 머릿속에서 겹쳐져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인터넷쇼핑물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비굴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기도 하다. 잠깐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 불편한 건 나중 문제이다.

주문하는 상품에 따라 여전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으로 돌돌 말려 오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알라딘은 "흔들림없는 에이스포장"이라는 이름 아래 거창하게 랩 포장을 한다고 홍보한다. 마침 주문한 상품 가운데 그렇게 포장돼 온 상품이 있어 살펴보니, 책 두 권이 불쌍할 정도로 비닐에 압착돼 판지에 착 달라붙어 있다. 이 정도 상태가 유지된다면 업체 입장에서는 자랑할 만하다. 좀 더 다양한 판형과 두께의 책을 포장한 것을 봐야 확실히 안심하겠지만, 큰 문제가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확실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보다는 소요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었다. 에어캡이든 에이스포장의 비닐이든 실제로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 구매 패턴에 따라 예측되는 누적량을 보건대 확실히 내가 버려야 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후배의 말로부터 10%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지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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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출판사 편집장이 자기 블로그에 최근 출판가 불황에 대해 자기 회사의 방침에 대해 포스트를 올렸다. "지금보다 생산량(출간 종수)을 두 배로 늘려서, 원활한 자금회전을 도모"하자는 게 회의 결과의 논지인데, 그 편집장은 그것에 대해 "회의를 통해 얻어진 것이라기보다는 회사에서 우리 부서에 내린 오더에 가깝다"라고 말한다. 책의 만듦새나 마케팅 전략을 종종 까던 출판사인데 아예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한마디로 사장에 대해 '이뭐병'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집 없는 사람이 많으니 집을 많이 지어야겠네'라는 말도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이지 않다. (대부분 실용서와 자기계발서겠지만) 팔릴 만한 책만 골라 내겠다는 말이 차라리 낫다 싶다. 책을 고르고 만들고 팔면서 영혼을 괴롭힐지라도 기약도 대가도 없이 야근과 특근을 잔뜩 쳐 바른 막장의 길로는 안 이끌 수 있으니.

사장의 독단적 결정이 아닐지라도, 편집장이 악의적으로 왜곡해 포스팅했다 해도, 공급량을 늘려 금융과 시장을 활성하겠다는 그 어떤 정책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80여 년 전에 공급이 수요를 이끈다는 세이의 법칙은 무용지물이 됐다. 무용지물을 다시 되살리려 했던 레이거노믹스도 파산했고, 그마저도 다시 되살리려 한 신자유주의는 지금의 경제 불황의 근원이 됐다. 왜 이토록 반복되는 기본적인 패턴을 자꾸 망각하는가?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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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 1인출판사 사장과 점심을 함께할 자리가 있었다. 이제 과학/경제 교양 서적 10권 낸 신생 출판사 사장이신데, 얼마 전 모 인터넷서점의 본부장급 사람이 했다는 말을 읊어 주신다.

"인문교양 서적? 그거 사치품이죠."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단순한 텍스트 분석보다는 사장 분이 전해 주는 맥락 아래 해석하면 다음처럼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

"인문교양 서적? 요즘 안 팔려요. 작년의 절반 수준밖에 안 팔려요. 불경기가 촛불 정국이다 사람들이 책을 통 안 사 봐요. 이런 마당에 자기계발서나 실용서가 아닌 인문교양 서적이요? 그런 책은 이제 돈 좀 있고 한가한 사람들이나 사서 읽는 사치품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책 못 읽어요. 이게 우리 현실이에요."

그러면서 사장은 5년 후 위기를 이야기하신다.

"5년 후가 문제예요. 5년 후면 386세대들이 모두 40대가 돼요. 지금의 인문교양 서적의 주 독자층은 30대인데, 그네들이 40대가 되면 책 못 읽어요. 먹고살기 팍팍하죠, 애들 크면 자기 책은 못 사 줘도 애들 책은 사 줘야 하죠."

실질적인 386의 끝 자락인 88학번이 이미 40대가 됐으므로 굳이 5년 후가 아니라 올해 이미 인문교양 서적 시장의 위기는 시작됐다. 불경기와 촛불 정국은 그저 하나의 변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장은 한 가지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되면 달라질 수 있어요. 이 세대들은 386 초기 세대의 자녀들이거든요. 어렸을 적부터 양질의 어린이책을 읽으며 자라난 세대예요. 촛불 시위의 초두에 10대들이 앞장선 거 다 나름 배경이 있는 거죠."

물론 장밋빛 환상일 수 있는 게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됐을 때 지금처럼 경기가 나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악화된 불경기에서는 지금의 20대와 다를 바 없어질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10대와 20대는 질적으로 다른 세대이다. 입시지옥과 멸사봉공의 산업화 시대를 산 20대들의 부모인 70년대 학번과 10대들의 부모 세대인 386세대의 차이만큼이나.

과연 5년 뒤 인문교양 서적 시장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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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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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죽인 책들교과서가 죽인 책들 - 8점
로버트 다운스 지음, 곽재성.정지운 옮김/예지(Wisdom)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로버트 다운스가 쓴 <교과서가 죽인 책들>은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옮긴이는 이 책에 실린 책들이 "교과서에 몇 줄로 축약되면서 원래의 책이 갖는 의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막았다"고 지적한다. 교과서를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다소 뜨끔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Books That Changed the World, 즉 '세상을 바꾼 책들'이라는 원제를 그딴 식으로 바꿔 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교과서는 애당초 아주 제한된 분량 안에 교육과정에 언급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내용을 균형감 있으면서도 미학적으로 잘 버무려 담아야 하는 특수한 책이다. 물론 분량이나 표현 수준에서 제약이 있고, 어느 정도 수정, 발췌가 용인되는 교과서라고 해서 앞뒤 잘라먹거나 저자의 의도를 제멋대로 훼손해 싣는 것은 응당 부적절하나, 그렇다고 책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사실 우리가 '고전'을 대하는 태도부터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흔히 고전은 마크 트웨인이 "고전이란 누구나 읽었기를 바라지만 읽기는 싫은 책"이라 나름 내린 고전의 정의를 떠올려 보자. 이 말은 '누구나 내용에 대해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책'이라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차례를 읽으며 <교과서가 죽인 책들>에서 거론하는 책을 살펴보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뒤쎄이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등. 우리는 교과서이든 다른 책에서든 이 책들을 숱하게 듣는다. 하지만 이 책은 교과서로 배우는 초중고등학생 시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모름지기 고전은 그것을 읽을 만한 소양이 있어야 온전히 읽을 수 있다. 그런 소양을 미처 갖추기 힘든 학생 시절에는 일단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핵심이라도 잘 파악하고 있는 게 장땡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에게 <군주론>이나 <꿈의 해석>을 발췌한 제시문을 가지고 논술문을 쓰라 하는 파렴치한 출제 경향이 외려 고전을 죽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물론 고전을 고전답게 제대로 설명해야 함을 역설하는 옮긴이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를 주장하는 데 지나쳐 '오바'했다 싶다. 다시 이 책의 원제를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세상을 바꾼 책'이다. 저자 로버트 다운스는 인류의 역사(물론 이 책은 서구의 역사를 빛낸 고전만 거론했다.)를 통틀어 획기적인 전환점 내지는 시사점을 던진 책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앞서 말했듯 대입 논술고사를 비롯한 시험을 공부하면서 대부분 고전을 접한다. 이렇게 읽으면 고전이 아닌 화석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고전을 읽을 바에는 차라리 당대의 현상만을 잘라 이야기하는 일부 사회과학 서적이나 감성적인 에세이를 읽는 게 낫다.

우리는 종종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종종 간과한다. 한마디로 고전은 그 시대와 당대의 지성의 결합체이다. 따라서 고전을 읽으려면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이 고전들이 쓰였는지, 시대와 고전이 어떻게 호흡했는지를 읽어 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좋게 말하면 '엑기스'만 낼름 잡숴 왔다. 그리고 고전을 읽으려 하는 사람을 책벌레나 공부벌레 정도로 취급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세계사를 바꾼 책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고전을 접해야 하는 이유를 대략적으로 이야기한다.

한편 책의 저자가 고전(학) 전문가가 아닌 도서관학 전문가라는 점이 눈에 띈다. 고전 전문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저자는 도서관학을 전공하면서 접한 고전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다시 자리 매김 한다. 어떻게 보면 해당 고전에 정통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도서관(학) 전문가가 질과 양으로 방대한 고전을 대중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고전에 관한 짤막한 맛보기의 묶음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고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고전을 찾아 읽게 하는 데는 괜찮은 책이다. 다만 이 책 한 권 읽고 수많은 고전을 읽은 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알라딘 TTB리뷰 9월 첫째 주 당선

http://camelian.tistory.com2008-08-28T07:41:120.3810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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