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H. 월쉬의 <역사철학>이 도착했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역사철학 강의를 듣기 전에 워밍업 차원에서 읽어 봐야 할 것 같은 모종의 불안감 때문에 구입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알뤼르님이 역사철학에 관한 책을 여섯 권이나 주문하시면서 불안감을 팍팍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똑같이 갈굼을 받아도 답변에서 차이가 나면 갈굼의 가중치가 높아질 듯한 불안감에 예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예습이라는 것을 하다니. --; 복습도 안 하는데 말이야. 몇 권 찾아보니 일단 월쉬의 책으로 워밍업 하는 게 낫다 싶어 주문했다.

알라딘의 설명에서는 일단 좀 옛날 책처럼 보였는데, 역시나 그렇다. 표지의 "(수정판)"이라는 문구에서부터 80년대 책에서 주로 볼 수 있던 식자 인쇄한 티가 팍 난다. 본문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글꼴. 촌스러운 듯하지만 정겨운 느낌도 난다.

판권을 찾아봤다. 수정판 7쇄 펴낸날 2006년 11월 30일. 책에 비해 인쇄는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수정판 1쇄의 펴낸날은 1989년 6월 20일. 맙소사 7년 동안 판갈이를 한 번도 안 했단 말이야? 그런데 2판도 아니고 수정판이다. 그렇다면 초판에서 오타 정도만 수정해 다시 찍었다는 말일 텐데, 초판 1쇄 펴낸날은 1979년 8월 5일이다. 거의 내 나이만큼 나이 먹은 책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뒤쪽 책날개를 보다 이번에는 껄껄 웃고 말았다. 자사의 도서목록을 적어 놨는데, 여기에는 "역사철학 W. 월쉬 김정선 6000원"이라고 적혀 있다. 참고로 이 책의 정가는 9,500원이다. 아마 "6000원"은 초판 또는 수정판 1쇄의 가격일 게다. 이런 것도 수정하지 않고 책을 내놓다니. 그것도 작년 연말에 말이다.

공부하려고 산 책인데도 서문이나 차례부터 볼 생각은 안 하고, 외적인 것 가지고 시비 중이다. 책을 만들면서 는 것은 남이 만든 책 흠잡는 법이다. 내가 만드는 책의 오타는 못 잡으면서 남의 책(특히 전 직장) 오타는 기가 막히게 찾지는 못해도 꼭 발견하면 그거 가지고 갈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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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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