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유한 책 가운데 모 인터넷서점에서 품절 또는 절판이라 뜨는 책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사실 구매 버튼 대신 '품절' '절판'이라는 문구가 뜨면 왠지 뿌듯해지면서 안도의 한숨이 내쉬게 된다.

책이 품절 또는 절판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출판사가 망해 절판된 경우, 둘째, 출판사 측에서 책이 팔리지 않아 재고 보유로 인한 손실을 줄이고자 절판시키는 경우, 셋째 개정판을 내거나 출판사가 바뀌면서 재출간되는 경우, 넷째 출판사가 피인수되면서 새 주인이 기존의 책을 털어 버리려는 경우이다. 첫째는 어쩔 수 없다치지만, 둘째와 세째, 그리고 네째는 출판사가 돈벌이에 혈안이 돼 그리 된 걸 종종 보아 왔다. 그런 책을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 하지만 책이 잘 팔리면 그런 일은 대체로 없으니 역시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이다.

몇 가지 절판 사유를 더 알게 되어 추가한다. 그중 하나는 타국과 자국의 출판 환경의 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외서를 계약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예컨데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시장이 다른 미국에서는 별개의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그런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섣불리 계약했다가 피눈물 쏟는 경우가 있다. 계약은 페이퍼백으로 해놓고 하드커버로 책을 내놓으면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바다출판사가 <역사의 원전>과 <지식의 원전>이 양장본을 절판하고 반양장을 다시 내놓은 게 이에 해당하는 사례인 듯. (이 페이지에 따르면 잘못 알았던 사실.)

그리고 저자 스스로 지나간 책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절판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공저자와 다툼을 벌인 끝에 의절해 둘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고, 스스로 졸저라 생각하거나 자신의 책이 지금 시일에 맞지 않는다 판단해 책이 사라지기를 원하기도 한다. 심지어 저자가 출판사(정확히는 사장)가 마음에 안 들어 절판하는 경우도 있다.

추가. 번역서의 경우 외국 에이전트들이 판권료를 무자비하게 올리는 바람에 대박으로 나가는 책이 아닌 양 군소 출판사가 감당하지 못하고 판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읽는 것이 바로 나'라는 패러디성 문구도 있지만, 무슨 자랑질 하는 것도 아니고 내/아내가 보유한 책의 목록을 공개한다는 게 다소 추잡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 구매 도서 목록도 그런 맥락에서 비공개로 돌려놓았다. 이 글 또한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목록 부분만 떼로 떼어낼까 하다가 일단 두기로 했다. 이는 이러한 품절/절판 도서가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 장만하라는 뜻이다. 품절/절판 도서 구매는 손품이든 발품이든 열심히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목록을 보면서 미리 품절된 만한 책을 장만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덧.

1.
품절/절판된 책 구하는 방법으로 검색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각종 헌책방을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발품을 파는 것. 다른 하나는 해당 출판사에 연락해 사정하는 것이다. 대개 품절된 지 얼마 안 된 책은 출판사에 보관용으로 남아 있는 게 좀 있다. 잘 보이면 득템할 수 있다. 책 구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유입이 많아 헌책을 구하는 방법에 관한 포스팅을 따로 했다. http://camelian.tistory.com/288

2.
내가 보유한 품절/절판된 책의 권 수를 세어 보니 모두 90권이다. 흐믓하기보다는 씁쓸하다.

3.
품절과 절판의 차이를 검색어로 들어오는 유입이 좀 있다. 나도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선배에게 물으니 공식적으로 출판사에서는 절판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설사 앞으로 책을 찍어 낼 일이 없다고 해도 출판사에서는 체면치레 겸 책임 소재로부터 도망갈 요량으로 절판했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품절이라고 한단다.
다만 출판권을 소멸한 경우에는 어쩔 수 절판이라고 한단다. 예를 들면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녹색평론사에서 나오다 현재는 중앙북스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럴 경우에나 절판되었다고 한단다. 아니면 출판사가 아예 망하거나 꽤 오랫동안 품절 상태로 있던 경우나 새 판본을 내놓으려 구판을 폐기했을 경우 절판이라 한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으로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 몇몇 출판사는 앞으로 출간할 의사가 없을 경우 절판이라고도 선언하는 듯 보인다. 예컨대 세미콜론의 신시티 시리즈 중 몇 권은 절판 딱지가 붙어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슬쩍 일시품절 같은 면피를 붙였다가 슬쩍 품절로 바꿔 놓는데, 재고가 떨어지자마자 아예 절판 딱지를 붙여 버렸다. 이럴 때 책을 애타게 찾던 독자의 슬픔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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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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