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시골의 본가에 가다가 뭔가 확 튀어나오는 바람에 급정거했었다. 다행인지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둡고 비교적 낯선 길이라 그리 빨리 달리지 않아 금세 멈출 수 있었다.

사오 미터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튀어나온 무언가를 가만히 살펴보니 너구리였다. 난생처음 본 너구리, 이 녀석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나를 응시한다. 바로 옆의 고속도로와 달리 그리 차량 운행이 많지 않은 시골길이라 로드킬의 위험을 덜 느끼는 것일까?

녀석은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다 종종 사라졌다. 나 역시 녀석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 때문에 놀랐겠거니 하고 안 움직였던 것이었는데, 좀 지나 생각하니 녀석은 나를 관찰했던 것.

가뭄에 콩 나듯 운전하다 결혼하면서 본격적으로 운전하게 되었는데, 주행 수가 늘어나는 만큼 로드킬 사체를 많이 보게 된다. 특히 도심보다는 외곽 주행이 많으니 보게 되는 로드킬 사체의 수는 그만큼 늘어난다. 볼 때마다 매번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해지고 동물들이 불쌍해진다.신설 도로를 가다 보면 산을 통째로 잘라먹은 곳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로드킬 당할 동물들에게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주로 로드킬이 발생하는 곳은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코너다.)

며칠 전에는 도심도 아닌 외곽인데 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하지도 않고 제갈길만 묵묵히 걸어가는 비둘기를 본 적 있다. 녀석의 배짱에 지나갈 때까지 멈춰 주었다. (어짜피 내 뒤에 차는 없었으니...) 하지만 많은 경우 이 경우 최소 클랙션을 누르거나 그냥 지나칠 게다. 그런 경우는 로드킬이 잘 안 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어찌됐든 그리하면 확률은 높아지는 것.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3412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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