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소환된 음악]

커팅 크루의 I Just Died In Your Arms의 전주와 첫 소절, "(빰빰빰빰 빰빰빰빰 빰빰) I, I just die in your arms tonight"을 들으면 맞바로 "뭐가 보이는가?"를 외치고 이어 "자유가 보인다"라고 응답한다면 그냥 아재/아짐 인증!

레고 배트맨 무비를 보는데 I Just Died In Your Arms가 두 번이나 흘러나왔다. 브루스 웨인이 바바라 고든에게 홀딱 반하는 상황에서 드립성으로 쓴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맥스웰 광고의 임팩트가 커서 그런지 실제로 이 곡이 영국/미국에서는 딱히 어떻게 쓰였는지는 모르겠다. (뭐 그냥 네 품 안에서 죽고프다는 제목 자체 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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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킹 크림슨의 <Red> 앨범은 명반으로 꼽을 수는 없을지는 몰라도 주저 없이 꼽을 수 있는 명곡 'Starless'를 수록하고 있다. 처연한 또는 음침한 느낌의 멜로트론 음 위에서 담담한 듯하면서도 미칠 듯한 괴로움을 노래하는 존 웨튼의 목소리는 노래를 명곡으로 들어올리게 하는 지렛대였다. (사실 이 곡이 명곡으로 등극하게 하는 절대 요인은 중반부부터 시작되는 약빤 듯한 즉흥 연주이긴 하다.)

킹 크림슨 2기와 U.K., Asia의 주역 그리고 수많은 세션과 컬래보레이션 활동으로 프로그레시브 록 팬이라면 능히 아는 이름이지만, 딱 거기까지. 프로그레시브 록이 쇠퇴하면서 그저 그런 뮤지션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인생곡을 꼽자 하면 Starless와 U.K.의 Rendezvous 6:02, Asia의 Heat Of Moment 정도. 베이스 기타라고 하는 잘 티나지 않는 악기 때문인지 베이시스트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뮤지션이지만 보컬리스트로서만 각인된다. 암투병에 따른 그의 죽음만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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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에피소드 IV 세 주역이 스타워즈에 대한 입장은 저마다 달랐다. 해리슨 포드는 자기 필모 중 하나로 여기고 이후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배우로 거의 만렙을 찍었고, 마크 해밀은 이후 주역은 거의 맡지 못하며 조연과 성우을 전전하면서도 스타워즈를 자기의 인생 작품으로 여기며 스스로 스타워즈 덕후가 되었다. 하지만 캐리 피셔는 레아 공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그런 한때 잘 나갔던 배우로 전락하면서 스타워즈가 자기 연기 인생을 꼬이게 만든 주범으로 여길 수밖에 없게 해 버렸다.
하지만 영화 세 편에서 보여 준 레아의 모습은 강고한 스타워즈 팬덤 덕에 꾸준히 반복해 재생되었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로스는 레이첼에게 양머리와 금색 비키니의 레아 코스프레를 요구해 실현(물론 해당 에피소드는 시트콤답게 판타지를 친구들이 무참히 박살내었지만...)시켰다. 

그러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다시 재개되면서 셋 다 나온다는 소문에 스터워즈 팬덤은 흥분했고, 실제로 영화에서 한 명 한 명 나올 때마다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실제로 예견하지 못했던 타임에 핸 솔로와 츄이가 딱 등장했을 때는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쳤다. 루크 스카이워커의 분량은 아쉬웠지만 그 한 장면의 포스와 후속편에서 예견되는 비중에 후속편을 기다리게 했다. 레아의 비중은 핸 솔로나 이후 예견되는 루크의 비중을 생각하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저항군 총사령관으로서 악역의 어머니로서 적잖은 비중이 있을 것임을 고려할 때 루크만큼 기대감을 갖게 했다.
VIII편의 촬영이 어느 정도 되었을지라도 레아 역을 맡은 캐리 피셔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스타워즈 새 3부작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겠다. 새 3부작의 주축이 다음 세대로 넘어갔다고 하지만 핸, 레아, 루크의 전 세대 주축이 지니는 비중을 여전히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클래식 팬덤과 새 팬덤을 동시에 잡으려 했던 쌍제이는 이를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해진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RIP Carrie Frances Fisher 195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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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프랜차이즈답게 아이돌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갑자기 Wham!의 Last Christmas가 나온다. '캐럴'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있는 만큼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수많은 곡이 생겨나고 그 이상으로 온갖 곳에서 흘러나오지만 그런 캐럴 중 가장 지분이 큰 게 아마 Last Christmas일 게다. 그냥 크리스마스 좀비라고 해도 될 정도.

작년 크리스마스에 여자에게 채여 징징거리는 몹시 시궁창스러운 가사는 사실 별로 인지되지 않고,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작년 크리스마스에 사랑을 고백했다는 첫 구절만 되뇌에게 하는 어쩌면 마성의 BGM이 바로 Wham!의 Last Christmas다.
노래를 들으며 아내와 나는 이 곡으로 벌어들이는 조지 마이클의 저작권 수입을 이야기했다. 1984년에 나왔으니 무려 32년 동안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전 세계에서 흘러나올 테니 저작권 수입은... 하하하. 그러면서 팀 해체 이후에도 잘 나간 조지 마이클과 달리 그냥 별볼일 없는 전 멤버가 되어 버린 앤드루 리즐리는 뭐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고등학교 때 음악 같이 듣던 친구 말로는 리즐리의 솔로 앨범은 꽤 괜찮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들어본 적 없다.)

듀오든 밴드든 한 명이 혼자 잘 나가면 그 팀은 깨지게 마련이고 왬 역시 똑같은 길을 걸었다. 솔로 데뷔 앨범 Faith를 시작으로 보이 그룹 이미지의 왬과 달리 남성성과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컨템포러리 R&B에 가까운 음악은 솔직히 왬 시절 음악보다는 잘 손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좀 인상적인 게 데뷔 앨범 끄트머리에 실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광고 음악으로 실리면서 끈적끈적한 분위기 내는 데 제격인 Kissing A Fool과 어쩌면 엘튼 존 빨일지도 모르지만 그와 동급 수준은 되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의 빈 자리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준 Somebody To Love 정도를 빼놓고는 내게는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솔직히 대학을 들어간 이후 조지 마이클은 그냥 잊혀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Last Christmas가 있었다. 일 년의 350일 정도는 잊고 살아도 크리스마스까지 대략 보름 정도에 Last Christmas를 안 들은 해는 한 해도 없었으니까.

아침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모 포탈을 들어가니 실검 1위가 조지 마이클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와이파이가 끊기는 바람에 내용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직감했다.
'아, 그가 갔구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법이듯 이내 조지 마이클의 부고 기사를 보았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망 시점은 크리스마스. 지난 크리스마스에 조지 마이클은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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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인의 죽음을 말하며 문어로 '유명을 달리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이제껏 '남긴 수명'이라는 뜻의 遺命으로 알고 있던 유명은 '어둠과 밝음', '저승과 이승'을 뜻하는 幽明이었다. '달리하다'遺命에 얽매여 '다르게 가지다'라는 원 뜻이 아닌 '닳다'의 파생형으로만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무지했던 것.

 

2.

어제 우연히 키스 에머슨(3/10 사망)과 그렉 레이크(12/7 사망)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올해 참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떴구나 싶었다. 예년에 비해 좀 많다 싶어 한국어 위키와 영어 위키의 사망자 목록을 정리하니 대략 서른한 명 정도가 눈에 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아놀드 파머, 하퍼 리처럼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상은 잘 모르는 이부터 낸시 레이건과 시몬 페레스처럼 정치적으로 (내겐) 유명세만 있을 뿐인 사람도 있지만, 데이빗 보위라든지 신영복이라든지 이래저래 많이 접하고 적잖은 영향을 준 이도 들어 있다.

세상에 있는 생명만큼 죽음 또한 늘 곁에 있다. 어떠한 이유라든지 내게 영향을 준 이들이 대체로 50-70대인 것을 감안하면 이즈음이 그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특히 60-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음악인들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 수는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늘면 늘었지 수 년 간은 줄어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3.

영화 클로저를 볼 때 생경했던 게 부고 전문 기자의 존재였다. 신문 한 귀퉁이에서 누가 향년 몇 세로 죽었다, 어디에서 발인하며 유족으로는 누구 누구가 있다, 라는 식의 단신 부고 기사만 접해 본지라 고인의 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부고 전문 기자의 존재는 낯설었다. 공과 과를 평가할 만한 여유는 없다지만 고인에 대해 (뉴스답게) 늦지 않게 후루룩 정리해야 하고 언제 어디서 가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나 스탠바이 상태여야 하는 부고 전문 기자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도 그랬고 최근 몇 년 동안 유명을 달리하는 인물에 대해 나에 끼친 영향이 큰 사람은 페북 담벼락에 ‘RIP’을 달면서 추모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길어지기도 했고 간단히 추모만 하기도 했다. 이번 그렉 레이크의 부고를 접하면서 문득 좀 더 제대로 된 부고문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부고는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테고 점점 내게 끼친 영향이 큰 사람의 비중도 커질 테니까.

사실 고인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다. 과거 신해철의 죽음, 올해 백남기의 죽음처럼 충격에 뭘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불현듯 닥치는 죽음 앞에서 마냥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추모하는 것 이상의 글을 쓸 수 있는 깜냥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추모라는 본질을 넘어 글을 쓴다는 강박에 휩싸일 수도 있다. 부고의 본질은 추모다.

 

4.

그래도 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추모의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게다. 본말이 전도되지 않는 한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택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는 여전히 미생이지만 그래도 블로그질을 할 때부터 끼적끼적 글줄 날리는 게 그래도 가장 쉬웠다. 그런 맥락에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유효한 추모의 수단이 부고문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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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하는 분석 같은 것 말고 아무도 안 할 것 같은 것을 해 보자는 마음에 지난 2016년 테러방지법안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국회의원 38명의 이번 총선 결과를 점검해 보았다.

일단 결과는 다음과 같다.(발언 순서) 생각보다 컷오프와 경선 패배 등으로 불출마한 사람이 꽤 된다.

김광진(더)-불출마(낙천)
문병호(국)-낙선(부평갑)
은수미(더)-낙선(성남중원)
박원석(정)-낙선(수원정)
유승희(더)-당선(성북갑)
최민희(더)-낙선(남양주병)
김제남(정)-사퇴(은평을)
신경민(더)-당선(영등포을)
강기정(더)-불출마(컷오프)
김경협(더)-당선(원미갑)
서기호(정)-불출마(선언)
김  현(더)-불출마(컷오프)
김용익(더)-불출마(선언)
배재정(더)-낙선(사상)
전순옥(더)-불출마(낙천)
추미애(더)-당선(광진을)
정청래(더)-불출마(컷오프)
진선미(더)-당선(강동갑)
최규성(더)-불출마(컷오프)
오제세(더)-당선(서원)
박혜자(더)-불출마(낙천)
권은희(국)-당선(광산을)
이학영(더)-당선(군포을)
홍종학(더)-불출마(선언)
서영교(더)-당선(중랑갑)
최원식(국)-낙선(계양을)
홍익표(더)-당선(중성동갑)
이언주(더)-당선(광명을)
전정희(더/국)-불출마(컷오프)
임수경(더)-불출마(컷오프)
안민석(더)-당선(오산)
김기준(더)-불출마(낙천)
김관영(국)-당선(군산)
박영선(더)-당선(구로을)
주승용(국)-당선(여수을)
정진후(정)-낙선(동안을)
심상정(정)-당선(고양갑)
이종걸(더)-당선(만안)

종합하면 참여 의원 총 38명 가운데
당선 17명, 낙선 7명, 사퇴 1명, 불출마13명으로 당선율은 44.7%다.
불출마/사퇴 제외 시 당선율은 70.8%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도 많고,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것만으로 의정 평가를 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국회의원이 일한다는 것을 보여 준 이들인 만큼 20대 국회에서도 뭔가 보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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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신부님의 은경축 이야기에 은경축이 silver jubilee라는 것, 수품 50주년은 금경축이고 gold jubilee라는 것은 아는데 그보다 상급(?)인 diamond jubilee는 뭐라 번역하는지 궁금했다.

다이아몬드를 금강석이라고 하니 금강경축? 이런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그런데 은경축이 25주년, 금경축이 50주년이라 diamond jubilee는 75주년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60주년이다. 그래 성인+75주년이라는 것은 거의 100세가 넘어가는 것이긴 하지. 몇 년 전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의 diamond jubilee 기념 공연에서 브라이언 메이가 버킹엄 궁전 옥상에서 간지폭풍을 날리던 것도 기억났다.

참고로 70주년은 platinum jubilee란다. 그럼 80주년은? 40주년이 ruby jubilee라는 것, 100주년은 centenary라는 것만 알아냈다. 궁금해! 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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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라이코스 아이디를 네이트온 아이디로 썼는데, 그간 라이코스 코리아도 망해서 네이트에 합병되고, 뭐 네이트도 망한 바나 진배 없고.... 등등 하다가
결국 오늘 부로 라이코스 코리아 계정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네이트에 합병된 건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고 다 사라지거는구나... 언젠가 엠팔도 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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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시골의 본가에 가다가 뭔가 확 튀어나오는 바람에 급정거했었다. 다행인지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둡고 비교적 낯선 길이라 그리 빨리 달리지 않아 금세 멈출 수 있었다.

사오 미터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튀어나온 무언가를 가만히 살펴보니 너구리였다. 난생처음 본 너구리, 이 녀석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나를 응시한다. 바로 옆의 고속도로와 달리 그리 차량 운행이 많지 않은 시골길이라 로드킬의 위험을 덜 느끼는 것일까?

녀석은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다 종종 사라졌다. 나 역시 녀석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 때문에 놀랐겠거니 하고 안 움직였던 것이었는데, 좀 지나 생각하니 녀석은 나를 관찰했던 것.

가뭄에 콩 나듯 운전하다 결혼하면서 본격적으로 운전하게 되었는데, 주행 수가 늘어나는 만큼 로드킬 사체를 많이 보게 된다. 특히 도심보다는 외곽 주행이 많으니 보게 되는 로드킬 사체의 수는 그만큼 늘어난다. 볼 때마다 매번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해지고 동물들이 불쌍해진다.신설 도로를 가다 보면 산을 통째로 잘라먹은 곳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로드킬 당할 동물들에게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주로 로드킬이 발생하는 곳은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코너다.)

며칠 전에는 도심도 아닌 외곽인데 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하지도 않고 제갈길만 묵묵히 걸어가는 비둘기를 본 적 있다. 녀석의 배짱에 지나갈 때까지 멈춰 주었다. (어짜피 내 뒤에 차는 없었으니...) 하지만 많은 경우 이 경우 최소 클랙션을 누르거나 그냥 지나칠 게다. 그런 경우는 로드킬이 잘 안 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어찌됐든 그리하면 확률은 높아지는 것.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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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으면서 식당에서 나오는 모 드라마를 보는 순간 갑자기 소환된 기억... 속초공항...

해외여행 경험이 배 타고 규슈 간 것밖에 없는지라 비행기 탄 것은 제주도 두 번 간 것밖에 없는데, 사실 하나 더 있다. 속초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편도로 비행기를 탄 것.

속초공항이야 2002년에 폐쇄된지라 그런 공항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텐데, 공항이 태백산맥과 동해 바다 사이 골짜기에 있는지라  워낙 작고 위험하고 안개도 잘 껴 결항률이 역시 폐쇄된 목포공항과 쌍벽을 이루는 그런 공항이었다.

이등병 시절 실제 근무지는 해안가였지만 대대 본부는 바로 속초공항 옆에 있던지라 휴가자는 대대 본부에 신고하고서 옆집에서 비행기 타고 집에 가는 게 당시 부대원들의 로망이었다. "뱅기 타고 집에 가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론 실질적으로 운행하는 노선은 김포-속초뿐이어서 수도권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일이었지만, 함께 휴가 나온 사람들에 이끌려 100일 휴가 때는 비행기를 타 버렸다.

소요 시간은 30분이나 되나? 정말 이륙하고선 공중에서 잠깐 있다가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너무 찰라여서 기내 서비스가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복귀 시는 물론 이후 휴가에는 이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군인은 할인된다지만 요금도 만만치 않았고, 김포공항도 서울 서쪽에 쏠려 있어 지하철5호선을 이용한다 해도 여러 모로 불편했기 때문.

그리고 전역 2년 후 공항은 폐쇄. 이제는 사라진 공항이 되었고, 사라진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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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헨 옹도 인정했다시피 아무리 오리지널이라고 해도 Hallelujah는 솔직히 제프 버클리의 커버가 더 낫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오리지널로...
옛날 뮤지션들만 좋아하다 보니  툭 하면 부고를 접한다. 올드 뮤직 애호가의 비애....

RIP Leonard Cohen

https://www.youtube.com/watch?v=ttEMYvp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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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과 최성원의 관계는 비틀즈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관계와 얼추 비슷하다. 그리고 정말 친하면서도 허구헌날 싸워 대던 둘을 그래도 달래 주고 화해시키고 놀아 주고 한 사람은 두 밴드의 드러머인 주찬권과 링고 스타였다. 그럼 조지는? 내 나름 허성욱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허성욱에 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게 없다.
재결성하면서 톱밴드2에 나간다느니 바람을 넣고 놀러와에서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던 들국화는 결국 주찬권의 죽음으로 다시 산화해 버렸다. 전인권과 최성원이 다투더라도 그들을 이어 줄 사람은 이제 없기 때문이다.

들국화가 재결성하기 전에 귀국해 솔로 앨범까지 냈던 원년 멤버 조덕환이 재결성에 끼이지 않았던 것은 의외였으나 그 무렵 조덕환은 집안 문제 때문에 미국으로 간 게 아니라 들국화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봤다. '세계로 가는 기차',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축복합니다' 같은 명곡을 쓰긴 했지만 다른 멤버에 비해 노래도 별로고 기타도 못 쳤다는 이유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조덕환의 자리는 첫 앨범에서 세션을 했던 최구희와 손진태의 몫이었고 조덕환의 자리는 이내 잊혔다.
그런 점에서 조덕환의 포지션은 비틀즈 데뷔 직전에 방출당한 피트 베스트의 위치가 아닌가 한다. 라이브 클럽을 운영하던 어머니 빽으로 비틀즈 멤버라고까지 평가받던, 쫓아내고 싶어도 명분이 부족해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의 성에 안 찬다는 명목 아래 쫓겨난 드러머 피트 베스트 말이다. 비틀즈의 앤솔로지 앨범이 히트하면서 실연자 저작권료만으로도 그때까지 평생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나중에서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그래도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평가받는 피트 베스트와 달리 조덕환에 대한 평과 반응은 '뭐 그랬어' 정도에 불과한 듯하다.

오늘 조덕환이 암 투병 끝에 작고했다고 한다. 나라가 개판이어도 가신 분은 고이 모셔야 한다. 그게 산 자의 도리, 팬의 의무다.

RIP 조덕환 195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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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전기현의 시네뮤직'에서 '석양의 갱들'이 나온다. 10년 전쯤 본 영화. 엄청나게 반복되는 영화의 테마곡도 무척 아름답고, 멕시코 혁명의 상황 맥락이나 두 주인공의 우정도 멋있게 묘사된 영화다. 후일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나오는 바람에 나중 가서는 '그냥 영화'가 되어 버린 영화. 어쩌면 민중 혁명을 본격 다루는 바람에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려서인지 '갱들'이라는 번역명이 붙고 영화 자체도 평가절하 당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신 세 개가 떠오른다. 출발비디오 여행의 씬세개를 베낀 것 같아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냥 우연이다.

첫 번째 신은 혁명군 캠프에서 존과 후안이 혁명에 관해서 토론하는 장면. 존은 폭파라는 전문 기술과 형색으로 보아선 부르주아 출신 인물. 반면 후안은 좀도둑 출신의 말 그대로 가진 거 두 쪽밖에 없는 극빈 프롤레타리아. 후안은 혁명을 이야기하는 존에게 혁명은 가난한 이들은 총알받이로 내놓는다며 일갈한다. 압권인 장면은 후안의 일갈에 존은 데꿀멍하고선 읽고 있던 책을 집어던진다. 아나키스트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의 책.

두 번째 신은 존의 회상 장면. 존은 아일랜드공화군(IRA) 출신으로 멕시코로 망명온 혁명객. 그가 멕시코로 넘어온 것은 고문 끝에 밀고한 절친과 그를 앞세웠던 영국 군인을 사살해서다. 영국군이 바를 수색하는 동안 존의 절친은 IRA 당원을 한 명 한 명 찍었고 존은 뒤돌아선 채로 거울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존과 절친은 거울을 통해 눈길이 마주치고 둘 간에 복잡한 시선이 오간다. 그리고 존은 영국군을 사살하고 밀고자마저 처단한다.

세 번째 신은 영화의 오프닝. 황무지 한가운데서 부자와 성직자가 탄 고급 마차에 올라탄 후안은 가난한 이들과 혁명을 조롱하는 기득권 세력의 조롱을 한 몸으로 받는다. 이때 감독은 음식을 먹으면서 후안을 모욕하는 가진 자들의 입을 노골적으로 클로즈업해 보여 준다.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면 상당히 불쾌감을 주는데 정말 '처묵처묵'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세 신을 관통하는 것은 좌빨 감독으로 알려진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혁명에 대한 시선이다. 멕시코 혁명은 반쪼가리 혁명으로 끝났고, 그 후로 이어진 10월혁명을 위시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역시 서구 지성인들이 보기에는 그리 탐탁지 않은 결과만 낳았을 뿐임을 레오네 감독은 이 영화에 반영했다. 냉소적 시선으로 혁명의 낭만성을 제거한 감독이 영화에 불어넣은 낭만성은 황무지를 달리는 오토바이로 상징되는 서부의 추억이다. 전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태평양까지 잇는 철도를 통해 서부의 시대를 종결시켰지만, 황무지를 말 달리던 서부의 향수를 존의 오토바이로 되살려 냈다. 사실 영화에 나오는 지금과 같은 스타일의 오토바이는 멕시코 혁명이 끝난 한참 후인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야 실용화되었다. 하지만 다시 말을 태울 수는 없으니 고증보다는 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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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대를 가면서부터 소위 '민가', 민중가요를 들을 일도 부를 일도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민중가요는 듣는 음악이 아니라 부르는 노래이고, 그 노래를 부를 때에는 집회/시위 현장이나 술자리에서였던 만큼 부르던 노래는 다소 '센' 노래였다. 후배들은 세대가 그러하다 보니 그런 센 노래보다는 내 기준으로 말랑한, 서정성 짙은 노래[각주:1]를 좋아했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 노래들은 민중가요일지는 몰라도 '민가'는 아니었다.

복학생 시절에는 예전만큼 집회/시위에 나갈 일도 그리 많지 않았고, 때마침 유행(?)한 촛불집회에서는 일전에 부르던 민가를 부를 일이 거의 없었다.[각주:2] 그리고 직장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부터는 아예 집회/시위에 나갈 일은 거의 없었으니 민중가요와는 그야말로 빠이빠이.


2.

불렀던 것과는 달리 '듣는' 음악으로서 민중가요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천지인'과 '노래마을'를 꼽을 수 있다. 노찾사, 안치환, 정태춘은 좀 애매... '천지인'은 아직 테이프를 가지고 있고, 더럽게 비싸긴 하지만 중고 시디를 수배할 수 있는 데 반해, '노래마을'은 시디는커녕 테이프도 좀체 구경을 할 수가 없다.[각주:3]

사정이 그러다 보니 듣는 음악으로서 또는 서정적인 민중가요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한줌 햇볕이 될 수 있다면'을 듣기란 힘들다. 물론 피엘송 등을 통해 mp3파일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시디든 테이프든 실재하는 미디어로 들어야 음악 같은 내 관점에선 아쉽기 그지 없다.


3.

그러다 발견한 게 노래마을을 비롯해 노찾사, 정태춘, 안치환 등의 다소 서정적인 민중가요를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우리시대의 노래>이다. 솔직히 수록곡 면모를 보면 '우리 시대'라기보다는 '그 시대'이겠지만, 내가 그토록 찾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한줌 햇볕이 될 수 있다면'이 수록되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지만, 발견했을 때에는 그마저도 이미 품절 상태. 그 후 꽤 시간이 지나서 중고라도 겨우 구할 수 있었으니 다행.

노찾사의 '그날이 오면'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시디를 들으니 가물했던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집시 판의 유일한 승리의 기억이었던 95년 가을에 정말 질리게 불렀고 그 후로도 꽤 불러 댔던 '오월의 노래', 민중의례 때마다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 노동자 집회의 페이버릿 송 '철의 노동자', 진뱀형의 절규가 기억에 박혀 있는 '잠들지 않는 남도' 등 익숙한 노래가 이어진다. 의외의 발견은 정말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백두산'. 예전에는 지나치게 경쾌하다고, 감상적인 통일 타령은 별로다고 불러야 할 때 부르긴 해도 좋아하지 않았던 곡이었지만, 간만에 들어보니 무척 신선하다. 부를 때마다 함께하던 율동이 기억 날 리는 만무하지만...


4.

운동권이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지금은 더더욱 동떨어진 채 살고 있지만, 남들 보기에는 운동권 티 팔팔 나는 내 모습을 보건대 <우리시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더더욱 티 낼 것만 같다. 하지만 응4를 보면서 열광했듯이 <우리시대의 노래>는 술자리 뒷담화처럼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90년대를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매개체이다. 물론 단절의[각주:4]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우리 시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민망하지만... 



덧.

'백만년'만의 블로그 포스팅. 계정도 휴면 상태였고, 웹서점의 서지 정보 가져오는 것도 까먹었다.

페북에 올릴까 하다가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1. 예를 들면 조국과청춘의 '우산'이라든가... [본문으로]
  2. '아침이슬'이 어찌 민중가요던가? [본문으로]
  3. 테이프는 아직도 개인 소장하는 사람이 있긴 할 테지만 1, 2집 시디는 발매나 되었나? [본문으로]
  4. 사실 한때 좋았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맥락의 '리즈시절'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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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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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은 노예제를 기반으로 완벽하고 풍요로운 도시 경제를 발전시켰다. 수많은 노예가 없었다면 로마 제국의 경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르만족 전통에는 축노畜奴 제도가 없었다. 게르만족은 전통적으로 민주와 평등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같은 종족을 노예로 부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게르만족이 부린 소수의 노예는 모두 이민족이었다. 또한 게르만족 노예는 자기 집에서 독립된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었다. 중세 봉건 시대의 농노가 영주로부터 땅을 얻는 대신 세금과 부역의 의무를 지는 것과 같은 형태였다.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처럼 노예를 때리거나 가두거나 혹사시키지 않았다. 노예에게 잔혹한 형벌을 내리지도 않았다.

노예제가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자연히 막대한 부의 병력을 소유한 귀족이 등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게르만족은 로마제국의 중심지를 점령했지만 선진 상업 경제와 노예제를 활용하는 도시 경제에 적응하지 못했다. 재산도 노예도 없었던 게르만족은 다시 북쪽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 경제 방식으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중략)

게르만족 대이동 이후 중세 유럽이 암흑기에 빠진 이유는 게르만족 대이동이 수많은 전쟁을 촉발하고 로마 문명을 파괴했기 때문이 아니라, 게르만족이 점령한 유럽 중서부의 로마 문명지가 게르만화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로마 문명은 게르만족의 삶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경제 및 정치 제도의 기반이 무너진 로마 문명이 게르만족에 동화되었다. 이렇게 유럽 문명이 당시 야만인이라고 불리던 게르만족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문명의 암흑기가 찾아온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동양을 대표하는 중화 문명은 노예제 경제가 아니라 장원제를 기반으로 하는 자연 경제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중원에 진출한 야만족들이 중화 문명에 쉽게 적응하고 동화될 수 있었다. 중화 문명은 여러 이민족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풍요로운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지만 도시 경제와 상품 경제가 발달하지 못한 탓에 끊임없이 이민족에게 시달려야 했다.

- 역사를 뒤흔든 7가지 대이동 / 베이징대륙교문화미디어 엮음 / 현암사 / 203~205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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