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미도르 파는 이제 왕당파에 대하여 자기들의 보수적 공화주의가 공화주의 원칙에 얼마나 철저한가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테르미도르 파는 군주주의에 반대하는 것만큼 민주주의에도 반대하였다. 테르미도르 파의 공화국은 자유주의적이고 부르조아적이었으나 민주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정책은 상퀼로트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물리치는 동시에 왕당파의 왕정 복고도 거부하면서 부르조아적 규범 안에서 혁명을 안정시키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오른편에서는 왕당파의 공격을 받고 왼편에서는 서민 계급의 압력을 받았다. 이 공격과 압력을 적절히 배제하면서 부르조아적인 정치 체제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테르미도르 파의 정책은 시종 안정성이 없고 늘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다. 그 정치 체제가 쿠데타를 반복하다가 혁명의 본질적 획득물인 1789-1791년의 성과를 확보하기 위하여 드디어 나폴레옹에게 인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거기 있다. 이렇게 본다면, 테르미도르 파의 공화주의적 이념이라는 게 결국 '1891년 입헌 군주 정치'의 이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794년 여름에 뒤를 돌아다볼 때 국왕은 이미 시해되고 없었다. 거기서 결국 군주정을 회복할 수는 없고 공화정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말을 바꾸면, 테르미도르 파의 이상은 국왕 없는 입헌 군주주의였다. 이 모순에 해결의 길을 제공한 것이 바로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e이다.
-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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