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전기현의 시네뮤직'에서 '석양의 갱들'이 나온다. 10년 전쯤 본 영화. 엄청나게 반복되는 영화의 테마곡도 무척 아름답고, 멕시코 혁명의 상황 맥락이나 두 주인공의 우정도 멋있게 묘사된 영화다. 후일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나오는 바람에 나중 가서는 '그냥 영화'가 되어 버린 영화. 어쩌면 민중 혁명을 본격 다루는 바람에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려서인지 '갱들'이라는 번역명이 붙고 영화 자체도 평가절하 당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신 세 개가 떠오른다. 출발비디오 여행의 씬세개를 베낀 것 같아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냥 우연이다.
첫 번째 신은 혁명군 캠프에서 존과 후안이 혁명에 관해서 토론하는 장면. 존은 폭파라는 전문 기술과 형색으로 보아선 부르주아 출신 인물. 반면 후안은 좀도둑 출신의 말 그대로 가진 거 두 쪽밖에 없는 극빈 프롤레타리아. 후안은 혁명을 이야기하는 존에게 혁명은 가난한 이들은 총알받이로 내놓는다며 일갈한다. 압권인 장면은 후안의 일갈에 존은 데꿀멍하고선 읽고 있던 책을 집어던진다. 아나키스트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의 책.
두 번째 신은 존의 회상 장면. 존은 아일랜드공화군(IRA) 출신으로 멕시코로 망명온 혁명객. 그가 멕시코로 넘어온 것은 고문 끝에 밀고한 절친과 그를 앞세웠던 영국 군인을 사살해서다. 영국군이 바를 수색하는 동안 존의 절친은 IRA 당원을 한 명 한 명 찍었고 존은 뒤돌아선 채로 거울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존과 절친은 거울을 통해 눈길이 마주치고 둘 간에 복잡한 시선이 오간다. 그리고 존은 영국군을 사살하고 밀고자마저 처단한다.
세 번째 신은 영화의 오프닝. 황무지 한가운데서 부자와 성직자가 탄 고급 마차에 올라탄 후안은 가난한 이들과 혁명을 조롱하는 기득권 세력의 조롱을 한 몸으로 받는다. 이때 감독은 음식을 먹으면서 후안을 모욕하는 가진 자들의 입을 노골적으로 클로즈업해 보여 준다.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면 상당히 불쾌감을 주는데 정말 '처묵처묵'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세 신을 관통하는 것은 좌빨 감독으로 알려진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혁명에 대한 시선이다. 멕시코 혁명은 반쪼가리 혁명으로 끝났고, 그 후로 이어진 10월혁명을 위시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역시 서구 지성인들이 보기에는 그리 탐탁지 않은 결과만 낳았을 뿐임을 레오네 감독은 이 영화에 반영했다. 냉소적 시선으로 혁명의 낭만성을 제거한 감독이 영화에 불어넣은 낭만성은 황무지를 달리는 오토바이로 상징되는 서부의 추억이다. 전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태평양까지 잇는 철도를 통해 서부의 시대를 종결시켰지만, 황무지를 말 달리던 서부의 향수를 존의 오토바이로 되살려 냈다. 사실 영화에 나오는 지금과 같은 스타일의 오토바이는 멕시코 혁명이 끝난 한참 후인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야 실용화되었다. 하지만 다시 말을 태울 수는 없으니 고증보다는 간지!
얼마 전 알라딘 중고샵에 <석양의 무법자 CE>가 나왔길래 적립금과 쿠폰을 탈탈 털어 구매했다. 180분짜리 풀
버전을 극장에서 본 마당에 142분짜리 일반 버전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현재 DVD가 유통되는 것은 풀 버전과
다양한 서플먼트가 담긴 CE(컬렉터스 에디션)이 아니라 헐값에, 심지어 다른 영화와 세트로 묶인 일반판이었다. 서플먼트는
전무하고 화질도 조악할 것이 뻔했다. 한국의 초열악한 DVD 시장을 보건대 재출시될 확률은 극히 적은데다, 곧 블루레이 버전이
출시되니 이때가 아니면 언제 구하나 싶어 반성 주간임에도 덜컥 구매해 버렸다. 그래도 현금 지출은 1000원 대이니.
무엇보다 이 영화를 굳이 구매한 이유는 내 인생의 영화 5편 중에 하나로 꼽을 만한 내가 인정하는 걸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의 DVD를 안 갖추고 있다는 것은 그 영화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물론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을 꼽으라면 내 스스로도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더 쳐 주지만, 거기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징글맞은 찡그린 표정을 볼 수 없다. 레오네의 연출과 이스트우드의
연기가 최고로 잘 배합된 영화는 아무래도 <석양의 무법자>, 즉 영화 '놈놈놈'의 이름을 제공했던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다. 이런 마당에 어찌 안 사고 배기겠는가. 게다가 좀체 구할 수 없는
레어템이 되어 가는데.
이쯤에서 '내 인생의 영화 5편'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듯하다. 후훗. 자뻑일까?
내가 고른 '내 인생의 영화 5편'은 다음과 같다. 선정의 기준은 딱히 없다. DVD로 소장해서 이따금 보고 싶어 해야 한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이다. 절대로 자주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국 영화는 따로 뽑으려 한다[각주:1].
양조위가 나온다기에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영화인데 막상 보고 나서 대박이다 싶었던 영화다. 사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1위로 삼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도중 황 국장의 죽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양조위의 표정[각주:2], 도저히 잊혀지지 않았다.
내게 이랬던 영화는 별로 없다. http://gile.egloos.com/3232325 참조
뜻하지 않게 아내인 ALLURE님과 블로그에서 논쟁을 벌였다. 찰리 채플린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유일한 경쟁자인 버스터 키튼을 거론한 게라면 죄지만, 채플린에 우호적인 편인 나와 달리 아내는 키튼빠인지라 내가 특별히 키튼을 폄하한 것도 아닌데도 시비를 걸어온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막상 논쟁을 벌이다 보니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른다. ^^;
2년 전 3월 중순, 지금의 아내에게 막 일주일 전에 꼬여 내어 대시하고선 슬슬 수작을 걸던 와중의 일요일 오후. 안경을 새로 맞추러 홍대쪽으로 나간 김에 또 다시 수작을 걸어 볼까 했지만 아직은 모호한 관계인지라 전화는 그렇고 문자를 날렸다.
"오늘 버스터 키튼 어때요?"
아내의 블로그에서 버스터 키튼으로 흥분했던 글을 본지라 괜찮은 미끼다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키튼빠가 된 애당초 ALLURE님은 그날도 키튼의 영화를 보러 가려고 마음먹었던지라 미끼에 덥썩 물렸다. 문제는 낚시꾼. 고기가 미끼를 물면 한 번에 낚아채던가 아니면 힘싸움을 하며 고기의 진을 한것 빼논 상태에서 촥 낚아채야 하는데 한마디로 미적미적 거렸다. 뭐 내가 선수도 아니고.
문자로만 주고받던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보자고 구체적으로 약속을 잡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변명하자면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의사소통을 너무 나이브하게 해 온 내 패착이었다. 한 시간가량 미적거렸더니 ALLURE님은 다른 사람과 약속을 먼저 잡아 버렸다. 김이 팍 새긴 했지만 키튼의 영화가 궁금했던지라 약속과 상관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혹시라도 만나면 또 수작을 걸어 보면 되니까.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를 패러디한 <세 가지 시대>를 보면서 키튼의 영화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구나 싶어서 다음 영화인 <항해자>까지 보기로 마음먹고 표를 끊었다. 다음 영화가 상영되기 전 휴식 시간에 로비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예상과 달리 ALLURE님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커다란 키가 왜 안 보인담 하고 투덜거리면서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는
바로 ALLURE님이었다. 하핫.
운명이니 뭐니 하는 지리한, 하지만 감격스러운 각종 수식어가 순식간에 다 스쳐 갔다. 매표소의 자리 배정 방식은 잘 모르지만, 의도하지 않고 이렇게 앞뒤로 좌석이 잡힐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생판 모르던 두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튼 당황반 환호반의 마음과 표정을 순식간에 다잡고선 살짝 무게를 잡고선 속으로 '아싸'를 남발했다.영화가 끝나고 사정을 들으니 먼저 영화를 함께 봤던 이는 먼저 가 버려 이번 영화는 혼자 본 것이라 한다. 옆자리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싶지만 그것은 욕심이 과한 것이고...
막상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영화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뒷자리에 앉은 ALLURE님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영화에 집중. 그래도 뒷자리에서 스며나오는 웃음소리 정도는 캐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막상 영화가 끝나고나선 정확히 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밥 먹고 술 또는 차 한 잔 하면서 키튼과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겠지. 아무튼 처음부터 약속 잡고 영화 2편을 내리 함께 봤으면 더 좋았으련만 멍청하게도 명확하게 약속을 잡지 않는 바람에 데이트가 아니었던 데이트는 그저 반쪽으로 끝나 버렸다.
시간이 지나 정식으로 사귀고 나니 그때의 내 실수를 걸고 넘어진다. 물론 아예 혹평. 졸지에 믿지 못할 남자의 대열에 섰는데 이게 처음이 아니란다. 일주일 동안 두 번의 실수를 더 저질렀다고 한다. 3월 중순 하면 떠오르는... 맞다. 화이트데이다. 내 딴에는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내가 관심 있다고 대시한 마당에 화이트데이를 챙기는 것은 성급하다, 내가 관찰해 온 ALLURE님은 상업 지향적인 화이트데이 따위에는 관심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상대방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어찌됐는 내가 마음이 있다면 챙겼어야 했단다. 그리고 챙기는 거 싫어하는 여자 없다는... 아뿔사. 가뜩이나 좋게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상을 뒤엎었군 싶었다. 그런데 세 가지 실수라 제목을 달았다시피 한 가지 실수가 더 있었다.
대시한 다음날, 저녁이 되자 또 꼬여 내 수작을 걸라고 했는데 ALLURE님은 급히 사야 할 책이 있다고 광화문에 가야 한다고 한다. 그때에는 광화문에 직장이 있었는데 연락을 주고받을 때에는 이미 퇴근해 집에 들어와 있던 상황. 광화문에 함께 가자고 하는 ALLURE님의 문자에 대한 나만의 걸작 답변.
"지금 막 광화문에서 퇴근한 사람에겐 너무 가혹한데요."
지금 생각해도 미쳤지 싶다. 전날 대시에 대한 대답으로 뭔소리인지 모를 딴소리를 들었던 마당에 환심을 사기는커녕 왕비호 되기 딱 좋은 망언을 저리 하다니. 물론 술 마시지 않는 한 퇴근 후에 회사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거 직장인으로서 참 할 짓 못 되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 멀지도 않은데 좀 가 주면 안 되나? 지금도 드는 이 생각이 그때에는 왜 안 났을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어찌어찌 해서 밤 늦게 만나 바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조금 점수를 땄다 하지만 이미 상당히 점수를 까먹은 상태에서 만회해 봤자 본전도 안 되었을 것이다.
여튼 딱 7일 종안 내가 저지른 세 가지 실수는 결혼하기 전까지 두고 두고 아내가 나를 갈구는 수단이 되었다. 결혼하고선 안 갈구냐고? 그것은 아니다. 또 다른 실수에 앞의 실수들이 묻혔을 뿐. 실수야 어찌 됐든 거듭된 수작질과 낚시질에 우리 둘은 사귀는 지경이 되었고, 길지 않은 연애 끝에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실수가 비단 저 세 가지뿐이야겠냐만 지금에서 저 사건들은 실수이기 이전에 하나의 매듭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두 사람을 엮는 매듭 말이다.
51. <반지의 제왕 3부작The Lord of the Rings>(2001,2002,2003)
감독: Peter Jackson
출연: Elijah Wood, Ian McKellen, Viggo Mortensen
극장에서 보는 내 인생의 마지막 판타지 물이라 평합니다. 판타지라고 해도 안 볼 수 없었죠.
52. <엠M>(1931)
감독: Fritz Lang
출연: Peter Lorre, Theodor Loos, Otto Wernicke
이명세의 <M>이 아닌가요? 쿨럭.
53. <야전병원 매쉬M*A*S*H>(1970)
감독: Robert Altman
출연: Donald Sutherland, Elliott Gould, Tom Skerritt
아, 이게 영화도 있는 거군요. 티비 시리즈만 들어봤어요.
54. <말타의 매The Maltese Falcon>(1941)
감독: John Huston
출연: Humphrey Bogart, Mary Astor, Sydney Greenstreet
험프리 아재는 샘 스페이드와 참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막상 영화에서는 제법 잘 어울렸지요. 참 요상한...
55. <매트릭스The Matrix>(1999)
감독: Larry Wachowski, Andy Wachowski
출연: Keanu Reeves, Laurence Fishburne, Carrie-Anne Moss
화려한 그래픽 때문에 시시껄렁한 블록버스터 취급받는... 하지만 현대 철학의 가장 뛰어난 떡밥.
56. <모던 타임즈Modern Times>(1936)
감독: Charlie Chaplin
출연: Charlie Chaplin, Paulette Goddard
재미는 버스터 키튼가 앞서지만 영화사적 무게감은 아무래도 찰리 채플린이죠...
57. <몬티 파이톤과 성배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1975)
감독: Terry Gilliam, Terry Jones
출연: Graham Chapman, John Cleese, Terry Gilliam, Eric Idle, Terry Jones, Michael Palin
흠... 결국 보라는 말인데... 이상하게 안 땡기는 테리 길리엄의 영화.
58. <동물 농장National Lampoon's Animal House>(1978)
감독: John Landis
출연: John Belushi, Tim Matheson
몰라요. 이런 영화...
59. <네트워크Network>(1976)
감독: Sidney Lumet
출연: Faye Dunaway, William Holden, Peter Finch
역시 몰라요. 이런 영화.
60. <노스페라투Nosferatu>(1922)
감독: F.W. Murnau
출연: Max Schreck, Gustave Von Wagenheim, Greta Schroeder
평이야 어떨지 몰라도 무섭기보다 졸리는 드라큐라 영화. ^^;
61.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1954)
감독: Elia Kazan
출연: Marlon Brando, Karl Malden, Lee J. Cobb
이제는 안 본 영화라고 하는 것도 지겹다.
62.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1975)
감독: Milos Forman
출연: Jack Nicholson, Louise Fletcher, William Redfield
이제는 안 본 영화라고 하는 것도 지겹다. (2)
63. <영광의 길Paths of Glory>(1958)
감독: Stanley Kubrick
출연: Kirk Douglas, Ralph Meeker, Adolphe Menjou
이제는 안 본 영화라고 하는 것도 지겹다. (3)
64. <모노노케 히메Princess Mononoke>(1999)
감독: Hayao Miyazaki
출연: Billy Crudup, Billy Bob Thornton, Minnie Driver
출연 3인은 영어 더빙판 목소리 배우인가? <붉은 돼지>에 잇은 미야자오 선생의 최고작.
65. <싸이코Psycho>(1960)
감독: Alfred Hitchcock
출연: Anthony Perkins, Janet Leigh
구스 반 산트가 말아먹는 바람에 명작의 위상을 다시 확립한 걸작.
66. <펄프 픽션Pulp Fiction>(1994)
감독: Quentin Tarantino
출연: John Travolta, Samuel L. Jackson, Uma Thurman
왜 둘이 트위스트 춤춘 거밖에 기억나지 않을까?
67. <분노의 주먹Raging Bull>(1980)
감독: Martin Scorsese
출연: Robert De Niro, Cathy Moriarty-Gentile, Joe Pesci
왜 DVD는 사려고 마음먹으면 사기 싫고, 품절되면 사고 싶어지냐고요...
68.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1981)
감독: Steven Spielberg
출연: Harrison Ford, Karen Allen, Paul Freeman
예전에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2번인 줄 알았어요. ^^:
69. <홍등Raise the Red Lantern>(1992)
감독: Zhang Yimou
출연: Gong Li, He Caifei, Cao Cuifeng
야후코리아 말고 야후닷컴에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편을
선정했다. 역사적 중요성과 문화적 영향력(historical importance and cultural impact)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명확한 선정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결과를 봐서도 <Once Upon A Time In
America>나 <Gone with the Wind> 같은 영화가 빠져 있기도 하지만, 두 영화가 누구에게나
절대적 걸작이라고는 꼽힌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 누락작에 대한 언급은 일단 팻으. 일전에 엠블에서 포스팅했던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서 선정한 영화와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이글루스로 옮기면서 리스트가 사라져 버려 네온님의 포스트에서 그 리스트를 볼 수 있다. (젠장 다시 작업해야 하나?)
영화 리스트에 짤막한 코멘트를 덧붙였다. 물론 코멘트라고 하기에는 영화에 대한 한 줄 잡담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안 본 영화들이기에... ^^; 영화는 중요도나 선호도 순이 아니라 영문 알파벳 순으로 리스트업되었다. 100편에다 코멘트를 다는지라 일단 전반부 50작만 포스팅한다. 후반부 50작도 조만간 하겠지.
01. <12명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1957)
감독: Sidney Lumet
출연: Henry Fonda, Lee J. Cobb, E. G. Marshall
모르는 영화다.
02.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1968)
감독: Stanley Kubrick
출연: Keir Dullea, Gary Lockwood, William Sylvester
지금 생각해 보니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나네. 좌우지간 필름으로 보긴 했어. 사실 지루했던 영화이긴 한데 DVD로 다시 보면 새로울까?
05. <아프리카의 여왕The African Queen>(1952)
감독: John Huston
출연: Humphrey Bogart, Katharine Hepburn, Robert Morley
역시...
06. <에이리언Alien>(1979)
감독: Ridley Scott
출연: Tom Skerritt, Sigourney Weaver, Veronica Cartwright
개인적으로 에이리언 시리즈 중 최고로 꼽는... 보일 듯한 말 듯한 생명체가 주는 공포는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게 한다.
07.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1950)
감독: Joseph L. Mankiewicz
출연: Bette Davis, Anne Baxter, George Sanders
베티 데이비스를 막상 보고 왜 Bette Davis Eyes라는 노래가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무척 재미있게 본 영화.
08. <애니 홀Annie Hall>(1977)
감독: Woody Allen
출연: Woody Allen, Diane Keaton
우디 앨런의 수다는 귀따가울 정도로 시끄럽지만 요상스레 친근감이 간다.
09.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1979)
감독: Francis Ford Coppola
출연: Marlon Brando, Martin Sheen, Robert Duvall
오랜 티비로 볼 때에는 졸았고, 리덕스판으로 필름으로 볼 때에는 열광하고.
10. <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1967)
감독: Gillo Pontecorvo
출연: Jean Martin, Yacef Saadi, Brahim Haggiag
엔니오 할배의 음악만 들어봤음돠.
12.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1982)
감독: Ridley Scott
출연: Harrison Ford, Rutger Hauer, Sean Young
아, 비운의 걸작. 파이널 버전도 봐야 하는데...
13. <브레이징 새들스Blazing Saddles>(1974)
감독: Mel Brooks
출연: Cleavon Little, Gene Wilder, Slim Pickens
이런 영화가 있었나? 멜 부룩스네... 그러면?
14. <욕망Blow Up>(1966)
감독: Michelangelo Antononi
출연: David Hemmings, Vanessa Redgrave, Sarah Miles
남정네의 사진 찍는 포즈만 기억에 남는... 사실 못 봤어요... ^^;
15. <블루 벨벳Blue Velvet >(1986)
감독: David Lynch
출연: Kyle MacLachlan, Isabella Rossellini, Dennis Hopper
로이 오비스의 느끼한 목소리가 오버랩되는 장면만 봤습니다.
16.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1967)
감독: Arthur Penn
출연: Warren Beatty, Faye Dunaway, Michael J. Pollard
둘이 수백 발 총 맞고 '되지는' 장면만 기억.
17.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1960)
감독: Jean-Luc Godard
출연: Jean-Paul Belmondo, Jean Seberg
영어 제목은 저렇군. 생각만큼 인상적이지 않았죠.
18.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1957)
감독: David Lean
출연: William Holden, Alec Guinness, Jack Hawkins,
빠밤, 빠바바바 빰빠빠. 오래전 티비에서 본 영화는 가물하지만 주제곡만큼은 아직도 생생.
19. <베이비 길들이기Bringing Up Baby>(1938)
감독: Howard Hawks
출연: Cary Grant, Katherine Hepburn
보고 싶었는데, 작년에 바쁘다고 기회를 놓쳤죠.
20.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1969)
감독: George Roy Hill
출연: Paul Newman, Robert Redford, Katharine Ross
보기는 분명 봤는데... 하나도 기억이...
21. <카사블랑카Casablanca>(1942)
감독: Michael Curtiz
출연: Humphrey Bogart, Ingrid Bergman, Paul Henreid
험프리 보가트의 그 특유의 냉소와 로맨티시즘 가득한 눈빛과 대사빨. 아...
22. <차이나타운Chinatown>(1974)
감독: Roman Polanski
출연: Jack Nicholson, Faye Dunaway, John Huston
이거 언제 보나?
23. <시민 케인Citizen Kane>(1941)
감독: Orson Welles
출연: Orson Welles, Joseph Cotten, Dorothy Comingore
볼 기회를 놓치고선 DVD만 끼고 있지만 못 보고 있군요.
24.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2000)
감독: Ang Lee
출연: Chow Yun-Fat, Michelle Yeoh, Ziyi Zhang
제목이든 감독이든 배우든 영어로 읽으면 왠지 이상한 중국어로 된 미국 무협 영화, 라고 평하기엔 윤발 횽아가 너무 멋있어.
25. <다이 하드Die Hard>(1988)
감독: John McTiernan
출연: Bruce Willis, Bonnie Bedelia, Alan Rickman
개인적으로는 2편이 더 낫습니다. 3편도 좋아요. 그런데 왜 1편이?
26.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1989)
감독: Spike Lee
출연: Danny Aiello, Ossie Davis, Ruby Dee
스파이크 리 영화는 제대로 본 게 하나도 없군요.
27.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1944)
감독: Billy Wilder
출연: Fred MacMurray, Barbara Stanwyck, Edward G. Robinson
빌리 와일더라는 감독 이름만 알겠네.
28.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1964)
감독: Stanley Kubrick
출연: Peter Sellers, George C. Scott, Sterling Hayden
30. <이티 E.T. the Extra-Terrestrial>(1982)
감독: Steven Spielberg
출연: Dee Wallace Stone, Henry Thomas, Drew Barrymore
너무 오래 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
31. <용쟁호투Enter the Dragon>(1973)
감독: Robert Clouse
출연: Bruce Lee, John Saxon, Jim Kelly
미안하지만 거울 신 빼고는 음악만 기억납니다.
32. <엑소시스트The Exorcist>(1973)
감독: William Friedkin
출연: Ellen Burstyn, Max von Sydow, Linda Blair,
어렸을 적부터 공포 영화, 특히 이런 유의 악령물은 질색이었죠.
33. <리치몬드 연애 소동Fast Times At Ridgemont High>(1982)
감독: Amy Heckerling
출연: Sean Penn, Jennifer Jason Leigh, Judge Reinhold
숀 펜에 제니퍼 제이슨 리라...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걸까요?
34.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1971)
감독: William Friedkin
출연: Gene Hackman, Fernando Rey, Roy Scheider
말만 많이 들어본...
35. <대부The Godfather>(1972)
감독: Francis Ford Coppola
출연: Marlon Brando, Al Pacino, James Caan
36. <대부 2 The Godfather Part II>(1974)
감독: Francis Ford Coppola
출연: Al Pacino, Robert Duvall, Diane Keaton
대부 트릴로지 DVD 대한민국을 다 뒤져서 샀죠? 하지만 둘 다 제대로 본 건 Divx였슴돠~ ^^:
37. <007 골드핑거Goldfinger>(1964)
감독: Guy Hamilton
출연: Sean Connery, Honor Blackman
케이블에서 며칠 동안 007만 연속해 틀어 줄 때 봐서리 다 뒤섞였습니다.
38.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8)
감독: Sergio Leone
출연: Clint Eastwood, Eli Wallach, Lee Van Cleef
아들 녀석 태어나고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영화이지요. 예전에도 보았지만 이때에는 확장판으로 봐서 더 좋았죠.
39. <좋은 친구들Goodfellas>(1990)
감독: Martin Scorsese
출연: Robert De Niro, Ray Liotta, Joe Pesci
본다 본다 본다... 이거 '린다 린다 린다'도 아니고
40. <졸업The Graduate>(1967)
감독: Mike Nichols
출연: Anne Bancroft, Dustin Hoffman, Katharine Ross
어렸을 때 봤을 때에는 결말에 태클걸진 않았는데...
41. <거대한 환상Grand Illusion>(1938)
감독: Jean Renoir
출연: Jean Gabin, Pierre Fresnay, Erich von Stroheim
장 르노와르, 장 가뱅... 하지만 봤을 리 만무한... 원제는 뭘까요?
42.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1993)
감독: Harold Ramis
출연: Bill Murray, Andie MacDowell, Chris Elliott
케이블에서 쪼개쪼개 다 본... 조각을 이음하니 영화 정말 재미있더라는...
43. <하드 데이즈 나이트A Hard Day's Night>(1964)
감독: Richard Lester
출연: The Beatles
비틀즈라서일까요? 별볼일 없는 다큐인 줄 알았는데...
44.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2001)
감독: Wong Kar-Wai
출연: Maggie Cheung, Tony Leung
아흑아흑 두말하면 잔소리.
4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1934)
감독: Frank Capra
출연: Clark Gable, Claudette Colbert
이름은 낯익은데...
46.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1946)
감독: Frank Capra
출연: James Stewart, Donna Reed, Lionel Barrymore
또 프랭크 카프랍니까? 하지만...
47. <죠스Jaws>(1975)
감독: Steven Spielberg
출연: Roy Scheider, Robert Shaw, Richard Dreyfuss
죠스의 이빨보다 브로디 서장의 라이방이 더 인상 깊죠.
48. <킹콩King Kong>(1933)
감독: Merian C. Cooper, Ernest B. Shoedsack
출연: Fay Wray, Robert Armstrong
33년작이 76년작보다 어떻게 더 잘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라는 질문에 일단 봐, 라고 답하는 영화.
49. <레이디 이브The Lady Eve>(1941)
감독: Preston Sturges
출연: Barbara Stanwyck, Henry Fonda, Charles Coburn
이 뭥미?
50.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1962)
감독: David Lean
출연: Peter O'Toole, Alec Guinness, Anthony Quinn
이제는 시지비 아이맥스 빼고는 와이드로 틀어 줄 데가 있으려나? 시지비는 틀어 주려나? 티비로 본 게 영 아쉽습니다.
WBC 결승전 때문인지 야구 영화를 모은 포스트가 올라왔고, 이 영화가 거론되었다. 어렸을 적 TV에서 보고 감동받았던 영화. 하지만 이 영화는 나를 야빠로 만들지 못했다. 골든볼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축구에서는 한 방에 경기를 끝내 버리는 이런 극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하게 됐으니 좀 안타깝네...
아침에 어느 블로그에서 장진의 <박수칠 때 떠나라>를 두고 엔딩신의 중요성을 언급한 글을 읽었다. 결과 지향적이긴 하지만 끝이 좋으면 모두 용서받는다는 말, '끝이 좋은면 다 좋은 거다'라는 말이 통하는 현실에서는 틀렸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외려 이재한의 <컷런스딥>처럼 짠한 엔딩신 덕에 영화 보는 내내 심드렁했음에도 깊은 인상을 받는 영화가 있다. 물론 <타인의 삶>처럼 가뜩이나 좋았던 영화에 금칠을 하는 엔딩신도 있다.
아네스 자우이의 <타인의 취향>은 영화 전체가 좋았지만 특히 엔딩이 더 좋았던 영화이다. 이를테면 <타인의 삶>이 정말 가슴 짠하게 하는 감격스러운 엔딩신을 보임으로써 감명을 준다면, <타인의 취향>은 뒤통수를 툭 치는 듯한 살짜쿵 반전신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물론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영화의 전체 맥락을 모른 채 적절한 부분에서 커팅되지 않은(유튜브에도 없다니...--;) 아래의 동영상만 보면 '이 따위가 뭐' 하기 쉽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이래저래 갈등을 겪으며 꼬이기 시작했던 사건들이 결말에 가 하나둘 풀리면서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데, 브루노의 플룻 연습과 악단의 합주가 장식하는 엔딩신은 영화 전체를 함축해 보여 준다.
이를테면 영화 보는 내내 빽빽 거리는 브루노의 플룻 연습을 짜증냈는데, 영화가 끝나 가려는 마당에도 브루노의 연주는 여전히 빽빽 거리나 싶었다. 그러던 찰나 브루노의 연주가 아마추어 실내악단의 경쾌한 합주를 절묘하게 이끄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내 눈가에 살짝 웃음이 감돌았다. 게다가 연습하는 내내 뭔 곡인지 통 알 수 없었던 연습곡의 정체는 '난 후회하지 않아'로 번역되는 에디뜨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다. 그러면서 올라가는 엔딩타이틀. 영화를 볼 때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을 정도.
황야의 공동묘지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공터. 총잡이 셋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한가운데는 금화 20만 달러가 묻힌
무덤 주인의 이름이 적힌 돌멩이가 있다. 셋 가운데 살아남는 단 한 사람만이 그 돌멩이를 뒤집을 수 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20만 달러이니 지금으로 치면 200백만 달러 정도는 가뿐히 넘을 법한 이 거액을 손에 쥘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흔히 서부영화에서 보아 온 1:1 대결이 아니다. 바로 앞에 선 한 사람만 죽이면 끝이었던 1:1
대결과 달리 삼각 대결이기에 따라서 이 셋은 서로 노려 보며 언제든 자기가 아닌 다른 두 사람에게 총알을 날릴 태세를 취한다.
자신은 살고, 다른 둘은 죽어야 한다.
모종의 동업자였던 투코를 등쳐 먹은 블론디, 그에 앙심을 품고 결국 블론디를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으며 복수를 꾀한
투코, 투코와 블론디를 죽이고 금화를 전유하려는 엔젤 아이즈.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에게 원한과 증오, 그리고 금화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
사실 삼각 대립은 가장 완벽한 조합이다. 탁자의 다리가 4개인 것보다 3개인 것이 더 안정적이듯, 제갈량이 솥 정 자를
써 삼국정립의 구도를 유비에게 일렀듯 삼각 관계는 사태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균형의 구도이다. 이것은 섣불리 하나를 치려다간 상대
둘이 짬짜미해 역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협공을 취하는 척하다가 파트너를 바꿔 역공을 취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삼각
관계에서는 아군도 적군도 없이 오로지 자기 하나만 바라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서로 노려만 봐야 한다. 그도 아니면 다른 둘을
한번에 맞설 수 있는 기지와 완력이 있어야 한다.
블론디와 투코, 그리고 엔젤 아이즈는 서로 노려만 본다. 서로 자신이 아닌 다른 둘은 누구도 믿을 수 없거니와 혼자
금화를 차지하는데 방해만 되기에 반드시 없애야 한다. 하지만 섣불리 한쪽을 공격하다간 자칫 셋 다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자 그러면 누구를 먼저 쏘아야 하나? 아니면 한 놈과 짬짜미해 다른 놈을 함께 공격해 금화를 반으로 나눠야 하나? 그런데
그 놈을 믿을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이 삼각 구도를 깨트리면 한쪽이 다른 둘을 한번에 맞서야 한다. 조조가 결과적으로 천하를 얻은 건 오와
촉이 먼저 서로 멱살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셋은? 잔뜩 긴장감을 서렸던 감독은 The Good과 The Ugly,
그리고 The Bad라 칭한 데서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기는 놈이 '착한 놈'이고, 이용 당하는 놈이 '추한 놈'이며, 지는
놈이 '나쁜 놈'이다.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180분에 이르는 길고 긴 러닝 타임 내내 잔뜩 서려진 긴장감은 이것을 순간적으로 망각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