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전기현의 시네뮤직'에서 '석양의 갱들'이 나온다. 10년 전쯤 본 영화. 엄청나게 반복되는 영화의 테마곡도 무척 아름답고, 멕시코 혁명의 상황 맥락이나 두 주인공의 우정도 멋있게 묘사된 영화다. 후일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나오는 바람에 나중 가서는 '그냥 영화'가 되어 버린 영화. 어쩌면 민중 혁명을 본격 다루는 바람에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려서인지 '갱들'이라는 번역명이 붙고 영화 자체도 평가절하 당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신 세 개가 떠오른다. 출발비디오 여행의 씬세개를 베낀 것 같아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냥 우연이다.

첫 번째 신은 혁명군 캠프에서 존과 후안이 혁명에 관해서 토론하는 장면. 존은 폭파라는 전문 기술과 형색으로 보아선 부르주아 출신 인물. 반면 후안은 좀도둑 출신의 말 그대로 가진 거 두 쪽밖에 없는 극빈 프롤레타리아. 후안은 혁명을 이야기하는 존에게 혁명은 가난한 이들은 총알받이로 내놓는다며 일갈한다. 압권인 장면은 후안의 일갈에 존은 데꿀멍하고선 읽고 있던 책을 집어던진다. 아나키스트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의 책.

두 번째 신은 존의 회상 장면. 존은 아일랜드공화군(IRA) 출신으로 멕시코로 망명온 혁명객. 그가 멕시코로 넘어온 것은 고문 끝에 밀고한 절친과 그를 앞세웠던 영국 군인을 사살해서다. 영국군이 바를 수색하는 동안 존의 절친은 IRA 당원을 한 명 한 명 찍었고 존은 뒤돌아선 채로 거울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존과 절친은 거울을 통해 눈길이 마주치고 둘 간에 복잡한 시선이 오간다. 그리고 존은 영국군을 사살하고 밀고자마저 처단한다.

세 번째 신은 영화의 오프닝. 황무지 한가운데서 부자와 성직자가 탄 고급 마차에 올라탄 후안은 가난한 이들과 혁명을 조롱하는 기득권 세력의 조롱을 한 몸으로 받는다. 이때 감독은 음식을 먹으면서 후안을 모욕하는 가진 자들의 입을 노골적으로 클로즈업해 보여 준다.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면 상당히 불쾌감을 주는데 정말 '처묵처묵'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세 신을 관통하는 것은 좌빨 감독으로 알려진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혁명에 대한 시선이다. 멕시코 혁명은 반쪼가리 혁명으로 끝났고, 그 후로 이어진 10월혁명을 위시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역시 서구 지성인들이 보기에는 그리 탐탁지 않은 결과만 낳았을 뿐임을 레오네 감독은 이 영화에 반영했다. 냉소적 시선으로 혁명의 낭만성을 제거한 감독이 영화에 불어넣은 낭만성은 황무지를 달리는 오토바이로 상징되는 서부의 추억이다. 전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태평양까지 잇는 철도를 통해 서부의 시대를 종결시켰지만, 황무지를 말 달리던 서부의 향수를 존의 오토바이로 되살려 냈다. 사실 영화에 나오는 지금과 같은 스타일의 오토바이는 멕시코 혁명이 끝난 한참 후인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야 실용화되었다. 하지만 다시 말을 태울 수는 없으니 고증보다는 간지! 


Posted by Enits
,

얼마 전 알라딘 중고샵에 <석양의 무법자 CE>가 나왔길래 적립금과 쿠폰을 탈탈 털어 구매했다. 180분짜리 풀 버전을 극장에서 본 마당에 142분짜리 일반 버전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현재 DVD가 유통되는 것은 풀 버전과 다양한 서플먼트가 담긴 CE(컬렉터스 에디션)이 아니라 헐값에, 심지어 다른 영화와 세트로 묶인 일반판이었다. 서플먼트는 전무하고 화질도 조악할 것이 뻔했다. 한국의 초열악한 DVD 시장을 보건대 재출시될 확률은 극히 적은데다, 곧 블루레이 버전이 출시되니 이때가 아니면 언제 구하나 싶어 반성 주간임에도 덜컥 구매해 버렸다. 그래도 현금 지출은 1000원 대이니.

무엇보다 이 영화를 굳이 구매한 이유는 내 인생의 영화 5편 중에 하나로 꼽을 만한 내가 인정하는 걸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의 DVD를 안 갖추고 있다는 것은 그 영화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물론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을 꼽으라면 내 스스로도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더 쳐 주지만, 거기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징글맞은 찡그린 표정을 볼 수 없다. 레오네의 연출과 이스트우드의 연기가 최고로 잘 배합된 영화는 아무래도 <석양의 무법자>, 즉 영화 '놈놈놈'의 이름을 제공했던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다. 이런 마당에 어찌 안 사고 배기겠는가. 게다가 좀체 구할 수 없는 레어템이 되어 가는데.


이쯤에서 '내 인생의 영화 5편'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듯하다. 후훗. 자뻑일까?

내가 고른 '내 인생의 영화 5편'은 다음과 같다. 선정의 기준은 딱히 없다. DVD로 소장해서 이따금 보고 싶어 해야 한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이다. 절대로 자주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국 영화는 따로 뽑으려 한다[각주:1].



무간도
감독 맥조휘, 유위강 (2002 / 홍콩)
출연 양조위, 유덕화, 여문락, 정수문
상세보기
양조위가 나온다기에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영화인데 막상 보고 나서 대박이다 싶었던 영화다. 사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1위로 삼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도중 황 국장의 죽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양조위의 표정[각주:2], 도저히 잊혀지지 않았다. 내게 이랬던 영화는 별로 없다. http://gile.egloos.com/3232325 참조


석양의 무법자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1966 / 스페인, 이탈리아)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엘리 월러치, 리 반 클리프, 알도 주프레
상세보기
앞서 말했듯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궁합이 최적화된 영화이다. 180분짜리 풀 버전은 자못 지루한 감이 없지 않으나 마지막 3인의 결투신은 그 지루함을 잊게 했다. http://camelian.tistory.com/50 참조


랜드 앤 프리덤
감독 켄 로치 (1995 / 스페인)
출연 이안 허트, 로잔나 파스터, 프레드릭 피에롯, 톰 길로이
상세보기
드높았던 이상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짓이겨져 버렸을 때의 참담함. 켄 로치는 그것을 아주 낭만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http://gile.egloos.com/3231493 참조


천국의 나날들
감독 테렌스 맬릭 (1978 / 미국)
출연 리처드 기어, 브룩 아담스, 티모시 스콧, 밥 윌슨
상세보기
매직 아워[각주:3] 대에만 골라 가며 찍은 환상적인 화면이 죽인다. 이전까지 탄탄한 내러티브나 세밀한 심리/감정 묘사에만 천착하던 영화 보는 기준을 송두리째 바꾼 영화. http://camelian.tistory.com/175 참조


타인의 삶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 독일)
출연 울리히 뮈헤, 마르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울리히 터커
상세보기
담백하면서도 가슴 찡한 엔딩 신은 잘 차려진 음식에 황금 소스를 살포시 얹은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http://gile.egloos.com/3232548 참조


사실 좋은 영화가 수십 편 수백 편 있는데 달랑 5편만 고르는 것은 어폐가 있다. 적어도 내가 본 영화 중에서 '내 인생의 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을 더 소개해 본다.






  1. 즉 한국 영화 관련 글을 따로 쓴다는 것. 물론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요새 일요일에도 출근할 정도로 좀 바쁘다. [본문으로]
  2. 이 장면의 스틸컷은 알라딘의 내 서재에서 쓰고 있다. [본문으로]
  3. 일출, 일몰 전후 30분을 말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Enits
,

뜻하지 않게 아내인 ALLURE님과 블로그에서 논쟁을 벌였다. 찰리 채플린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유일한 경쟁자인 버스터 키튼을 거론한 게라면 죄지만, 채플린에 우호적인 편인 나와 달리 아내는 키튼빠인지라 내가 특별히 키튼을 폄하한 것도 아닌데도 시비를 걸어온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막상 논쟁을 벌이다 보니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른다. ^^;

2년 전 3월 중순, 지금의 아내에게 막 일주일 전에 꼬여 내어 대시하고선 슬슬 수작을 걸던 와중의 일요일 오후. 안경을 새로 맞추러 홍대쪽으로 나간 김에 또 다시 수작을 걸어 볼까 했지만 아직은 모호한 관계인지라 전화는 그렇고 문자를 날렸다.

"오늘 버스터 키튼 어때요?"

아내의 블로그에서 버스터 키튼으로 흥분했던 글을 본지라 괜찮은 미끼다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키튼빠가 된 애당초 ALLURE님은 그날도 키튼의 영화를 보러 가려고 마음먹었던지라 미끼에 덥썩 물렸다. 문제는 낚시꾼. 고기가 미끼를 물면 한 번에 낚아채던가 아니면 힘싸움을 하며 고기의 진을 한것 빼논 상태에서 촥 낚아채야 하는데 한마디로 미적미적 거렸다. 뭐 내가 선수도 아니고.

문자로만 주고받던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보자고 구체적으로 약속을 잡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변명하자면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의사소통을 너무 나이브하게 해 온 내 패착이었다. 한 시간가량 미적거렸더니 ALLURE님은 다른 사람과 약속을 먼저 잡아 버렸다. 김이 팍 새긴 했지만 키튼의 영화가 궁금했던지라 약속과 상관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혹시라도 만나면 또 수작을 걸어 보면 되니까.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를 패러디한 <세 가지 시대>를 보면서 키튼의 영화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구나 싶어서 다음 영화인 <항해자>까지 보기로 마음먹고 표를 끊었다. 다음 영화가 상영되기 전 휴식 시간에 로비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예상과 달리 ALLURE님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커다란 키가 왜 안 보인담 하고 투덜거리면서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는

바로 ALLURE님이었다. 하핫.

운명이니 뭐니 하는 지리한, 하지만 감격스러운 각종 수식어가 순식간에 다 스쳐 갔다. 매표소의 자리 배정 방식은 잘 모르지만, 의도하지 않고 이렇게 앞뒤로 좌석이 잡힐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생판 모르던 두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튼 당황반 환호반의 마음과 표정을 순식간에 다잡고선 살짝 무게를 잡고선 속으로 '아싸'를 남발했다.영화가 끝나고 사정을 들으니 먼저 영화를 함께 봤던 이는 먼저 가 버려 이번 영화는 혼자 본 것이라 한다. 옆자리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싶지만 그것은 욕심이 과한 것이고...

막상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영화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뒷자리에 앉은 ALLURE님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영화에 집중. 그래도 뒷자리에서 스며나오는 웃음소리 정도는 캐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막상 영화가 끝나고나선 정확히 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밥 먹고 술 또는 차 한 잔 하면서 키튼과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겠지. 아무튼 처음부터 약속 잡고 영화 2편을 내리 함께 봤으면 더 좋았으련만 멍청하게도 명확하게 약속을 잡지 않는 바람에 데이트가 아니었던 데이트는 그저 반쪽으로 끝나 버렸다.

시간이 지나 정식으로 사귀고 나니 그때의 내 실수를 걸고 넘어진다. 물론 아예 혹평. 졸지에 믿지 못할 남자의 대열에 섰는데 이게 처음이 아니란다. 일주일 동안 두 번의 실수를 더 저질렀다고 한다. 3월 중순 하면 떠오르는... 맞다. 화이트데이다. 내 딴에는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내가 관심 있다고 대시한 마당에 화이트데이를 챙기는 것은 성급하다, 내가 관찰해 온 ALLURE님은 상업 지향적인 화이트데이 따위에는 관심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상대방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어찌됐는 내가 마음이 있다면 챙겼어야 했단다. 그리고 챙기는 거 싫어하는 여자 없다는... 아뿔사. 가뜩이나 좋게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상을 뒤엎었군 싶었다. 그런데 세 가지 실수라 제목을 달았다시피 한 가지 실수가 더 있었다.

대시한 다음날, 저녁이 되자 또 꼬여 내 수작을 걸라고 했는데 ALLURE님은 급히 사야 할 책이 있다고 광화문에 가야 한다고 한다. 그때에는 광화문에 직장이 있었는데 연락을 주고받을 때에는 이미 퇴근해 집에 들어와 있던 상황. 광화문에 함께 가자고 하는 ALLURE님의 문자에 대한 나만의 걸작 답변.

"지금 막 광화문에서 퇴근한 사람에겐 너무 가혹한데요."

지금 생각해도 미쳤지 싶다. 전날 대시에 대한 대답으로 뭔소리인지 모를 딴소리를 들었던 마당에 환심을 사기는커녕 왕비호 되기 딱 좋은 망언을 저리 하다니. 물론 술 마시지 않는 한 퇴근 후에 회사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거 직장인으로서 참 할 짓 못 되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 멀지도 않은데 좀 가 주면 안 되나? 지금도 드는 이 생각이 그때에는 왜 안 났을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어찌어찌 해서 밤 늦게 만나 바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조금 점수를 땄다 하지만 이미 상당히 점수를 까먹은 상태에서 만회해 봤자 본전도 안 되었을 것이다.

여튼 딱 7일 종안 내가 저지른 세 가지 실수는 결혼하기 전까지 두고 두고 아내가 나를 갈구는 수단이 되었다. 결혼하고선 안 갈구냐고? 그것은 아니다. 또 다른 실수에 앞의 실수들이 묻혔을 뿐. 실수야 어찌 됐든 거듭된 수작질과 낚시질에 우리 둘은 사귀는 지경이 되었고, 길지 않은 연애 끝에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실수가 비단 저 세 가지뿐이야겠냐만 지금에서 저 사건들은 실수이기 이전에 하나의 매듭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두 사람을 엮는 매듭 말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Enits
,
어제에 이어 야후가 선정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편' 가운데 후반부 50편에 대한 리스트와 짤막한 코멘트를 올린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편 (1)


Posted by Enits
,

야후코리아 말고 야후닷컴에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편을 선정했다. 역사적 중요성과 문화적 영향력(historical importance and cultural impact)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명확한 선정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결과를 봐서도 <Once Upon A Time In America>나 <Gone with the Wind> 같은 영화가 빠져 있기도 하지만, 두 영화가 누구에게나 절대적 걸작이라고는 꼽힌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 누락작에 대한 언급은 일단 팻으. 일전에 엠블에서 포스팅했던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서 선정한 영화와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이글루스로 옮기면서 리스트가 사라져 버려 네온님의 포스트에서 그 리스트를 볼 수 있다. (젠장 다시 작업해야 하나?)

영화 리스트에 짤막한 코멘트를 덧붙였다. 물론 코멘트라고 하기에는 영화에 대한 한 줄 잡담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안 본 영화들이기에... ^^; 영화는 중요도나 선호도 순이 아니라 영문 알파벳 순으로 리스트업되었다. 100편에다 코멘트를 다는지라 일단 전반부 50작만 포스팅한다. 후반부 50작도 조만간 하겠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편 (2)

Posted by Enits
,
한국에 <슈퍼스타 감사용>이 있다면, 미국에는 <내츄럴>이 있다.
물론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감사용>이 더 높지만,
엔딩의 극적인 부분은 <내츄럴>이 조금 더...

9회말 2아웃. 2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자가 2명 나가 있는 상황.
이대로 경기는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역전 스리런홈런?

타석에 선 이는 35살배기 신인 로이 홉스.
불운 사고로 16년 동안 야구를 하지 못하다 이제 막 진가를 발휘하는 비운의 강타자.
그러나 그는 최하위 구단을 망치려는 경영진의 음모로 간택(?)된 인물.

2스트라이크 노 볼 상황 복부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파울볼에 그의 분신인 배트 '원더보이'는 두 동강 났다.

몸 상태를 걱정하는 주심의 말에 대한 로이의 대답은
"It's baseball."
그리고 날라오는 몸쪽 빠른 공.



길다 싶으면 이 동영상을,
이것마저 길다 싶으면 이 페이지의 동영상을 보시라.

WBC 결승전 때문인지 야구 영화를 모은 포스트가 올라왔고,  이 영화가 거론되었다. 어렸을 적 TV에서 보고 감동받았던 영화. 하지만 이 영화는 나를 야빠로 만들지 못했다. 골든볼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축구에서는 한 방에 경기를 끝내 버리는 이런 극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하게 됐으니 좀 안타깝네...
Posted by Enits
,
아침에 어느 블로그에서 장진의 <박수칠 때 떠나라>를 두고 엔딩신의 중요성을 언급한 글을 읽었다. 결과 지향적이긴 하지만 끝이 좋으면 모두 용서받는다는 말, '끝이 좋은면 다 좋은 거다'라는 말이 통하는 현실에서는 틀렸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외려 이재한의 <컷런스딥>처럼 짠한 엔딩신 덕에 영화 보는 내내 심드렁했음에도 깊은 인상을 받는 영화가 있다. 물론 <타인의 삶>처럼 가뜩이나 좋았던 영화에 금칠을 하는 엔딩신도 있다.

아네스 자우이의 <타인의 취향>은 영화 전체가 좋았지만 특히 엔딩이 더 좋았던 영화이다. 이를테면 <타인의 삶>이 정말 가슴 짠하게 하는 감격스러운 엔딩신을 보임으로써 감명을 준다면, <타인의 취향>은 뒤통수를 툭 치는 듯한 살짜쿵 반전신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물론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영화의 전체 맥락을 모른 채 적절한 부분에서 커팅되지 않은(유튜브에도 없다니...--;) 아래의 동영상만 보면 '이 따위가 뭐' 하기 쉽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이래저래 갈등을 겪으며 꼬이기 시작했던 사건들이 결말에 가 하나둘 풀리면서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데, 브루노의 플룻 연습과 악단의 합주가 장식하는 엔딩신은 영화 전체를 함축해 보여 준다.

이를테면 영화 보는 내내 빽빽 거리는 브루노의 플룻 연습을 짜증냈는데, 영화가 끝나 가려는 마당에도 브루노의 연주는 여전히 빽빽 거리나 싶었다. 그러던 찰나 브루노의 연주가 아마추어 실내악단의 경쾌한 합주를 절묘하게 이끄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내 눈가에 살짝 웃음이 감돌았다. 게다가 연습하는 내내 뭔 곡인지 통 알 수 없었던 연습곡의 정체는 '난 후회하지 않아'로 번역되는 에디뜨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다. 그러면서 올라가는 엔딩타이틀. 영화를 볼 때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을 정도.




Posted by Enits
,
황야의 공동묘지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공터. 총잡이 셋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한가운데는 금화 20만 달러가 묻힌 무덤 주인의 이름이 적힌 돌멩이가 있다. 셋 가운데 살아남는 단 한 사람만이 그 돌멩이를 뒤집을 수 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20만 달러이니 지금으로 치면 200백만 달러 정도는 가뿐히 넘을 법한 이 거액을 손에 쥘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흔히 서부영화에서 보아 온 1:1 대결이 아니다. 바로 앞에 선 한 사람만 죽이면 끝이었던 1:1 대결과 달리 삼각 대결이기에 따라서 이 셋은 서로 노려 보며 언제든 자기가 아닌 다른 두 사람에게 총알을 날릴 태세를 취한다. 자신은 살고, 다른 둘은 죽어야 한다.

모종의 동업자였던 투코를 등쳐 먹은 블론디, 그에 앙심을 품고 결국 블론디를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으며 복수를 꾀한 투코, 투코와 블론디를 죽이고 금화를 전유하려는 엔젤 아이즈.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에게 원한과 증오, 그리고 금화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

사실 삼각 대립은 가장 완벽한 조합이다. 탁자의 다리가 4개인 것보다 3개인 것이 더 안정적이듯, 제갈량이 솥 정 자를 써 삼국정립의 구도를 유비에게 일렀듯 삼각 관계는 사태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균형의 구도이다. 이것은 섣불리 하나를 치려다간 상대 둘이 짬짜미해 역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협공을 취하는 척하다가 파트너를 바꿔 역공을 취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삼각 관계에서는 아군도 적군도 없이 오로지 자기 하나만 바라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서로 노려만 봐야 한다. 그도 아니면 다른 둘을 한번에 맞설 수 있는 기지와 완력이 있어야 한다.

블론디와 투코, 그리고 엔젤 아이즈는 서로 노려만 본다. 서로 자신이 아닌 다른 둘은 누구도 믿을 수 없거니와 혼자 금화를 차지하는데 방해만 되기에 반드시 없애야 한다. 하지만 섣불리 한쪽을 공격하다간 자칫 셋 다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자 그러면 누구를 먼저 쏘아야 하나? 아니면 한 놈과 짬짜미해 다른 놈을 함께 공격해 금화를 반으로 나눠야 하나? 그런데 그 놈을 믿을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이 삼각 구도를 깨트리면 한쪽이 다른 둘을 한번에 맞서야 한다. 조조가 결과적으로 천하를 얻은 건 오와 촉이 먼저 서로 멱살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셋은? 잔뜩 긴장감을 서렸던 감독은 The Good과 The Ugly, 그리고 The Bad라 칭한 데서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기는 놈이 '착한 놈'이고, 이용 당하는 놈이 '추한 놈'이며, 지는 놈이 '나쁜 놈'이다.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180분에 이르는 길고 긴 러닝 타임 내내 잔뜩 서려진 긴장감은 이것을 순간적으로 망각하도록 했다.
 
Posted by Eni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