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 년 동안 구매한 시디는 모두 36장. 사은품으로 받은 것도 있고 중고가 절반 가까이지만 따지자면 매달 여섯 장씩 시디를 샀다는 것인데 내 주제에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빠듯한 용돈 탈탈 털어 쏟아붓고, 적립금 마일리지 쿠폰 싸그리 긁어 모으고, 아내도 좋아할 만한 앨범은 슬쩍 책 사면서 한 장 끼워 넣고...  이리 해도 장난 아닌 금액이다.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 내 스스로 감당할 깜냥만큼 시디를 사지만, 책보다 더 쉬이 품절되고 정작 품절되면 언제 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게 시디이다 보니 막상 뒤졌을 때 시디가 나타나면 안 사고는 못 배긴다. 그나마 아내가 무서워 회사에 수백 장 쌓아 두면서 가뭄에 콩 나듯 집에 들여가는 친구 놈 이야기를 들으면 그 정도가 아닌 게 다행이다 싶다.

시디가 아닌 디지털 앨범을 사고선 새 음반 샀다고 말하는 후배의 말에 깜짝 놀란 게 삼사 년 전 일이다. 시간의 지나는 것과 반비례로 시디는 더욱 안 팔리고 디지털 앨범 또는 싱글이 팔리거나 여전히 MP3 파일이 넷 세계를 헤엄쳐 다니는 시대이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은 여전히 시디를 사 대고 있다. 옛 뮤지션의 몰랐던 곡, 못 샀던 앨범을 어쩌다 접하면 시디를, 아니 시디로 꼭 사야 할 것만 같은 강박 관념이 생긴다. 그리고 구할 수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아니지만, 설사 그러기라도 하면 몹시 짜증 내며 "시디는 안 사고 불법 다운만 받는 이 더러운 세상!"이라며 혼자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러다 중고가 나오거나 수입이라도 되면 낼름 구매해 놓고선 혼자서 킥킥 거린다.

좀 웃기다. 그 자체로 폼 나는 엘피도 아니고 고작 12인치 쌔고 쌘 시디 따위를 사 대는지. 좋은 오디오로 듣는 게 아니라 기껏 컴퓨터로 재생하거나 심지어 리핑해 싸구려 이어폰으로 듣는 주제에 굳이 시디를 사 대는지. 이삿짐을 쌀 때마다 혹여 케이스가 깨질까, 아이가 시디를 집어던지기라도 하면 흠집이 나진 않았을까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왜 굳이 시디를 사 대는지. 살림살이에 털끝만큼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돈 버는 것도, 용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면서 어찌 시디를 계속 사 대는지. 나만큼이나 음악 듣는 거 좋아하는 아내도 선뜻 이런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시디로 음악을 들어야 듣는 것 같은데, 시디를 사지 않으면 누군가 채 갈 것 같아 사촌이 땅 사는 것만큼 배가 아픈데.


Posted by Enits
,

1. 23 HOURS TOO LONG  from Sonny Boy Williamson and The Yardbirds
2. OUT ON THE WATER COAST  from Sonny Boy Williamson and The Yardbirds
3. FIVE LONG YEARS  from Five Live Yardbirds
4. I AIN'T GOT YOU  from single
5. GOOD MORNING LITTLE SCHOOLGIRL  from single
6. LITTLE RED ROOSTER (REHEARSAL)  from The London Howlin' Wolf Sessions (no Yardbirds)
7. LITTLE RED ROOSTER from The London Howlin' Wolf Sessions (no Yardbirds)
8. HIGHWAY from The London Howlin' Wolf Sessions (no Yardbirds)
9. WANG-DANG-DOODLE from The London Howlin' Wolf Sessions (no Yardbirds)
10. I'M A MAN  from Five Live Yardbirds
11. THE TRAIN KEPT A ROLLING  from demo/alternate take of "The Nazz Are Blue"
12. JEEF'S BLUES  from demo/alternate take of "The Nazz Are Blue" without vocals
13. STEELED BLUES  from demo/alternate take of "The Nazz Are Blue"
14. NEW YORK CITY BLUES  from demo/alternate take of "The Nazz Are Blue"
15. IT'S A BLOODY LIFE  from Sonny Boy Williamson backed by Jimmy Page (no Yardbirds)
16. I SEE A MAN DOWNSTAIRD  from Sonny Boy Williamson backed by Jimmy Page (no Yardbirds)

Eric Clapton, Jeff Beck, Jimmy Page의 "Blue Eyed Blues"라는 앨범이 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이들은 사실 Yardbirds라는 같은 밴드 출신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3대 기타리스트'로 묶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3대 기타리스트이 아니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기타 연주를 숱한 앨범에 선보였다. 잡설로 이 셋 중 누가 우위냐고 할 때 나는 제프 벡, 아내는 지미 페이지를 골랐는데, 막상 크림 시절 에릭 클랩튼의 연주를 들어 보면서 논쟁을 중단했다. 그렇다고 에릭 클랩튼이 끝판왕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논쟁만 안 할 뿐.
          
1992년에 'Charly Blues Masterworks' 시리즈의 일환으로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Blue Eyed Blues"는 세 기타리스트가 폼 잡고 나온 커버 이미지[각주:1]와 달리, 세 명이 실제로 협연한 앨범이 아니라 각자 따로 놀았던 야드버즈 시절의 곡을 모아 놓은 편집한 것이다.[각주:2] 앨범에 실린 곡도 셋에게 균일하게 배분된 것도 아닌, 에릭 클랩튼이 10곡, 제프 벡이 4곡, 지미 페이지가 2곡씩 연주한 것을 모아 놓은 앨범이다. 여기에 소니 보이 윌리엄슨과 협연한 앨범에 수록된 곡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백밴드로 연주한 곡을 비롯해, 공식적으로 에릭 클랩튼이 야드버즈를 탈퇴한 뒤에 하울링 울프의 라이브 앨범에 참여한 곡도 포함돼 있는 등, 야드버즈의 앨범이라 하기 민망하다. 그때문인지 위키피디어 야드버즈의 디스코그래피 항목에 이 앨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앨범 제목인 'Blue Eyed Blues'는 푸른 눈을 지닌 서구 백인의 블루스라는 뜻이다. 이것은 두 가지를 함축하는데, 하나는 For Your Love 같은 대중적으로 히트한 곡이 아니라 블루스 곡을 담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흑인들의 음악인 블루스를 백인들이 재현했다는 점이다. 미시시피 강 하류에 살던 흑인들의 음악 블루스는 미국 전역에 퍼진 것으로 모자라 바다 건너 영국에 전해졌고, 로큰롤과 함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로큰롤 밴드로 알고 있는 롤링스톤즈도,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거장 핑크 플로이드도 모두 블루스 밴드로 시작했을 만큼 음악 좀 해 보겠다는 영국의 젊은이들은 꽤 블루스를 연주했고, 그중 하나가 야드버즈이다. 물론 성공에 목 마른 나머지 대중에 영합하는 곡을 연주하거나 사이키델릭 음악이나 하드록으로 변화해 갔지만, 블루스는 록 음악 자체의 뿌리였다. 오죽하면 팝이 아니라 블루스를 하고 싶다고 에릭 클랩튼은 야드버즈를 뛰쳐나갔고, 제프 벡은 여러 가지 실험을 했을까? 그리고 지미 페이지는 모두 떠난 밴드에 홀로 남아 결국 레드 제플린을 만들었다.

재차 말하면 이 앨범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가 야드버즈라는 이름으로 백인들의 블루스를 시도한 몇몇 곡을 모아 놓은 앨범이다.미국 블루스의 거장 소니 보이 윌리엄슨이나 하울링 울프의 곡이 주를 이루다 보니 역설적으로 오리지널 블루스에 더 가까운 연주를 들려 준다. 거기에 밴드 곡도 아직은 일렉트릭 기타가 왕왕 울어대는 축축한 블루스가 아닌 오리지널 블루스의 냄새가 풍기는 끈적한 블루스가 당대 유행하던 로큰롤이 뒤섞인 어중띤 모습(이게 리듬 앤 블루스인가?)으로 흘러나온다. 좋게 말하면 로큰롤으로 변모해 가는 블루스라고나 할까. 그 때문에 이 세 기타리스트의 야드버즈 이후 시절의 록 음악을 생각했다간 앨범 집어던지기 십상이다. 아무튼 미국 흑인의 전유물인 블루스가 어떻게 바다 건너 백인들에게 전해졌는지, 그 중간 과정을 대강 알 수 있게 하는 자료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나이가 먹었는지 이런 블루스 음악도 이제는 제법 들을 만하다.

  1. 역시 생긴 것만으로 보면 에릭 클랩튼이 한 수 위. 그런데 제프 벡보다 지미 페이지가 더 이상하게 나왔다. [본문으로]
  2. http://www.allmusic.com/cg/amg.dll?p=amg&sql=10:0bftxql5ldfe 에서 각 트랙의 일부분을 조금씩 들을 수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Enits
,
<The Mission>, <Once Upon A Time In America>, <Cinema Paradiso>, <Love Affairs>.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언제나 가슴 저미는 선율, 하지만 섬세하거나 장중하다기보다는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익숙한 단조로운 패턴의 선율로 수놓아져 있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가슴 저미는 선율은 웬만해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그중에서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담당한 영화 중에서 최고 걸작은 아무래도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Once Upon A Time In West>일 것이다. 미국의 서부에서 무법자들의 종말을 드라마틱하게 보여 주는 영화도 영화지만, 엔니오 모리코네의 빼어난 선율을 다각적으로 변주한 테마는 영화를 뛰어넘는다. 성스러움, 한탄스러움, 아련함, 희망, 아쉬움, 쓸쓸함 등 영화에서 표현되는 그 어떤 정서와도 잘 조화되는 <Once Upon A Time In West>의 테마야말로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부활의 2집 <Remeber>의 대미를 장식하는 Jill's Theme, 메인 테마의 변주 중 하나인 질의 테마를 듣다가 예전에 쓴 이 글이 생각나 수정해 본다.




호기심에 인터넷을 뒤지니 꽤 많은 뮤지션이 이 곡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주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은 듯. 그렇게 찾은 곡 가운데 가장 절절했던 곡은 노르웨이의 바이얼리니스트 Arve Tellefsen의 연주. 바이얼린이라는 악기의 특성상 마치 날카로운 비수가 심장을 서서히 파고드는 듯한 절절함이 살아 있는 곡인 듯싶다. 칼이 스며들어간 상처 자욱에서 흘러 내리는 선홍색 피. 하지만 그런 장면조차 아름답도록 보이게 만드는 영화는 수없지 않은가? 그런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Arve Tellefsen - <Intermezzo>(2002)


다음 곡은 영화에 마지막 엔딩신에 실린(실은 영화를 언제 봤는지조차 기억이 안나는 - 혹시 안 봤을지도 모르는 - 정확히는 모르나 이런 음악은 대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흐른다)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의 Finale. 스트링의 조화 속에서 여성 스캣 코러스과 이따금 흐르는 하프시코드가 살짝 얹혀져 아르베 텔레프센의 곡에 비해 한껏 아련함이 느껴진다. 아마 영화의 Finale로 쓰여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르베 텔레프센이 지금 겪고 있는 절절한 아픔이라면, 원곡은 먼 옛날의 아픔을 회상하는 느낌을 전해 준다.

Ennio Morricone -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OST>(1972)


그리고 다음은 클래식 대중화의 전도사인 클래식 계의 히딩크라 불리우는 앙드레 류가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와 전 세계를 돌며 협연했던 곡. 원곡보다는 좀 더 장중한 느낌의 오케스트라에 아득한 느낌을 주는 소프라노의 코러스가 다소 위압적이게 들린다. 텔레프센의 절절함이나 원곡의 아득함을 느끼기는 힘드나 좀 더 강렬한 느낌을 전해 준다.

Andre Rieu - <Special Tour Edition>(2004)


이어지는 곡은 엔니오 모리꼬네와 파두 현대화의 선두 주자(?) 둘체 폰테스가 함께한 앨범 <Focus>에 실린 버전이다. 얼핏 듣기에는 셀린느 디옹이 아닌가 했는데 둘체 폰테스란다(나 보고 목소리를 구별하라는 것은 이명박의 주둥아리를 꼬매는 것보다 조금 쉬운 행위이다). 대개 파두에서 느낄 수 있던 애조띤 정서보다는 꾹꾹 눌러 담아 놨던 슬픔을 터뜨린 채 엉엉 우는 듯한 힘 있는 보컬이 또 다른 면에서 숙연하게 만든다.

Ennio Morricone & Dulce Pontes - <Focus>(2003)


앞서 말했듯 부활 2집에는 'Jill's Theme'이라는 이름으로 록 스타일의 연주곡이 수록되었다. 김태원의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이 곡은 일렉트릭 기타의 울부짖음으로 원곡의 스캣을 절묘하게 카피하고 있다. 아무래도 록 밴드의 연주이다 보니 다른 연주보다 다소 격하게 느껴지지만 애당초 엔니오 모리코네가 추구한 정서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앨범 수록 이후 부활의 공연에서는 자주 연주되는 듯한데, 이승철이 다시 합류한 후 가진 관현악단과 함께한 공연 실황을 올려 본다.

마지막으로 마크 노플러가 이끌었던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연주한 곡을 올려 본다. 원곡과는 제목만 같을 뿐이다. ^^;

Dire Straits - <Communique>(1979)

* 엠블 시절 작성한 글을 아주 조금 고치고 보탠 글이다.
Posted by Enits
,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 : 집약본
8점

손낙구의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 수도권편"의 출간 이야기에 책을 사려 했더니 정가 10만 원. 인터넷 서점에서 10% 할인받고 적립금을 고려해도 후덜덜. 그래도 자료 확보 차원과 출판사에 대한 애정을 생각해서 구매할까 했지만 아내의 반대로 끝내 구입하지 못했다. 그러다 몇달 지나 집약본이라는 이름으로 정가 1.7만원짜리 발췌본이 나왔다. 서문에 달린 출간 배경이 기가 막히다.

2010년 2월에 펴낸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 수도권 편>의 10만 원이라는 가격이 독자들이 돈을 주고 사서 읽기엔 너무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한 독자는 서민의 관점에서 쓴 책이 서민이 사서 읽기 어렵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요약본이라도 내달라는 주문을 했다. 한 번은 이 책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서 필자가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30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청중은 말할 것도 없고 토론자도 이 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한 사람은 언론에 소개된 내용과 필자의 발표문만 참조했고 다른 사람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고 했다.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은 서점에서 이 책을 손에 쥐고 살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결국 내려놓았다며 구매자의 고민을 말해 주었다. 책값 때문에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어, 언론에 실린 기사를 통해서만 이 책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문제라는 생각에 서민판을 내기로 했다.

학술회의 토론자들조차 사지 않는 책. 나처럼 도서구입지원비를 받는 사람조차 구입하지 못하는 책.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해도 가격이 후덜덜 해도 뜻 있는 사서가 아니면 한정된 예산 때문에 선뜻 구매하기 힘든 책. 그런 책을 낸 저자도 출판사도 오판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집약본이라는 이름으로 가격을 대폭 낮춘 책이 나왔지만 1660쪽에 B5 사이즈의 책을 440쪽에 A5로 축약하다 보니 책의 핵심 자료인 시군구별 자료는 강남구, 수원시, (인천)남구만 빼고 통째로 사라졌다. 정작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인 마포구나 곧 이사 갈 파주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볼 수 없는 것. 이게 어디 나만 그러겠는가.

저자가 수 년 동안 손품 팔아 생성한, 귀한 자료를 출판사에 내놓으라 할 수 없으니 결국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듯, 10만 원짜리 수도권편을 손 떨어가며 사든가 도서관에서 빌리든가 아니면 대형 서점에서 훑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든 생각은 POD이다. 이른바 주문자 제작 출력. 예시로 실린 강남구, 수원시, 남구 대신 자기가 사는, 또는 관심이 가는 시군구만 골라 책을 엮는 것이다. 조금 방식을 달리하면 기존의 집약본과 별개로 시군구별 예시만 자신이 골라 출력해 제본할 수도 있겠다. 적잖게 찍었을 수도권편이 안 팔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오로지 가격 때문에 자기가 사는 동네의 지표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손익 계산을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현재 POD는 문제가 있다. 가장 큰 것은 POD가 결코 싸지 않다는 것. 교과서를 제작하면서 여러번 POD를 이용해 봤는데, 출력의 질은 차치하고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4도 양면의 경우 쪽당 200원. 해 보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단도를 대략 100원이라 하면 440쪽의 경우 4.4만원이 나온다. 제본비야 1천 원 정도이니 별 의미 없다 쳐도 가격이 후덜덜해진다. 물론 마스터 인쇄도 가능하고 대략 쪽당 15원 정도니까 가격은 확 내려간다. 학위 논문으로 주로 취급하는 업체의 경우 10부 정도부터 가능하고 100부 이상부터는 어느 정도 할인이 되는 만큼 시도해 볼 만하다.

이렇게라도 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봤으면 하는데, 그저 집약본 나온 것에 감지덕지해야 할까? 기왕지사 실책을 인정하고 집약본을 낸 만큼 최소한 고려 정도는 해 봤으면 좋겠다.
Posted by Enits
,

누가 말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말이 있다.

"울지 않는 것은 기타가 아니다."

잡다한 설명일랑 집우치우고 우선 이 말을 증명할 법한 열 곡을 골라 봤다.


01. Roy Buchanan - The Messiah Will Come Again

http://www.youtube.com/watch?v=deeBQZ8Aklc

'우는 기타' 아니 '울부짖는 기타' 연주의 정석. 보컬 따위는 필요 없고, 밴드는 저 뒤만치에서 서성거리라 하면서 절망, 고독, 두려움, 그리고 실낱 같은 희망을 기타로 표현한다.


02. Led Zeppelin - Since I've Been Loving You

http://www.youtube.com/watch?v=Bkjv9SscotY

로버트 플랜트의 악마 같은 목소리는 이 곡에 한해서는 양날의 검. 지미 페이지의 기타 연주를 극대화하는가 하면 거추장스럽게 보이게도 한다. 그만큼 기타 연주는 환상 그 자체.


03. Jeff Beck - 'Cause We've Ended As Lover 

http://www.youtube.com/watch?v=JDgjBl86vq8

입을 꽉 다문 듯 억지로 참지만 금세라도 입을 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극도로 정제된 슬픔.


04. Camel - Ice

http://www.youtube.com/watch?v=GlUkOopLUK4

상실, 허무, 고독. 얼어붙은 호수 위에 서서 가슴 아픈 오랜 기억을 반추하며 쓸쓸히 저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연주. 기억은 그 자체로 고통.


05. Cozy Powell - Living A LIe

http://www.youtube.com/watch?v=zvuIT2VORUk

카레이서 드러머의 솔로 앨범에서 피어난 한 떨기 우는 기타. 주인장인 드러머를 잠시 잊게 한다.


06. Pink Floyd - Shine On Your Crazy Diamond 

http://www.youtube.com/watch?v=TdAEmX0OpMk

아아,  시드는 갔지만 나는 시드를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70년대 영국에도 애이불비의 정서가 있었나 보다.


07. Jethro Tull - Elegy 

http://www.youtube.com/watch?v=1hMmMpZ64mQ

슬프게만 아프게만 우는 것만이 우는 게 아니다. 기품 있게 절도 있게 우아하게 아름답게 울 수도 있다.


08. Genesis - Firth of Fifth 

http://www.youtube.com/watch?v=SD5engyVXe0

한 소절 기타를 울리기 위해 스티브 해킷은 349초를 기다리게 했나 보다.


09. Cusco - Apurimac II 

http://www.youtube.com/watch?v=yedAlTF-Ego

피사로와 그 일당들의 칼에 쓰러진 잉카인들에 대한 진혼곡.


10. Gary Moore - Parisienne Walkaways 

http://www.youtube.com/watch?v=qyTHJ40pasM

이래도 안 울래 하는 협박성 짙은 울음.




Posted by Enits
,
지만지 고전 선집이라는 고전 번역 시리즈가 있다. 처음에는 '고전천줄'이라는 이름을 달았다가 언제인가부터 '선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천줄'이 가지는 상징성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었나 보다.[각주:1] 아무튼 이 시리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에 대하여 몇 가지 논란이 있다.

1. 3600종 시리즈 완간이 목표로 (세계 최대의 시리즈인 펭귄 클래식의 두 배 규모로) 다양한 언어권의 인문, 사회, 예술, 자연과학 등 인류사의 거의 모든 고전을 번역하고자 한다.

2. 완역이 아니라 약 천 줄 분량[각주:2](신국판 기준 160쪽 안팎)으로 고전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번역한다.

3. 중역이 아니라 해당 언어의 전공자, 관련 분야 연구자가 직역한다.

3번이야 당연 그래야 하는 것이고, 1번의 경우 다소 마케팅적인 수사이긴 하지만 영어권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언어권과 영역에서 책을 펴 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1년에 천 종씩 낸다는 엄청난 계획인데, 실제로 2년 2개월(군대냐~) 동안 한 편집자가 책 백 권 만들고 퇴사했다고도 한다. 출간 2년 전부터 원고를 생산해 왔다고 하지만 저 규모의 책을 펴 낸다는 것은 사람 참 혹사하기 좋은 수준이다. 뭐 이거야 편집자들 문제라 치고.

문제는 2번이다. 저 중 600권은 별도의 시리즈 명으로 완역을 목표로 책을 내고 있다고 하지만, 나머지 3000권은 발췌 번역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가득한데 나 역시 발췌 번역에 대해서는 일단 부정적이다. 3000권 중에는 두루마기나 팸플릿 수준의 짧은 고전도 있겠지만, 수십 권에 달하는 고전도 있고 서문부터 부록까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구조적으로 짜인 고전을 그저 천 줄 분량으로 덜컥 잘라 내 번역한다는 게 뭔 의미가 있겠나 싶은 것이다. 자칫하면 겉핥기만 하고 고전을 잘못 이해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럴 바에는 고전에 대한 해설서[각주:3]가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것에 대한 변명은 있다. 실제로 고전은 유명세와 달리 사람들 대부분이 안 읽는, 아니 못 읽는 책이다. 기껏 고전을 읽는 사람은 공부하는 사람뿐이다. 공부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야 완역된 책을 한 장 한 장 더듬으며 문장을 쪼개어 가며 책 전체를 아우르며 저자의 집필 의도, 당대의 시대/사회상, 오늘에 끼치는 의미 등을 하나하나 깨우쳐 가며 찬찬히 읽겠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차마 그런 것을 하지 못하거나 조금 해 보다 말고 지쳐서 고전은 공부하는 사람들의 것일 뿐이라며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 뿐이다. 뭐 사실 나도 완역된 고전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다 읽은 적은 별로 없다. 읽다가 내버려 둔 책도 꽤 된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교양을 쌓거나 영혼을 맑게 하려 공부하는 수준에 그런 고전 읽기는 자학에 가깝다.

이 시리즈는 그런 점에 포착한 듯싶다. 게다가 3000권이라는 방대한 양으로 기획된 시리즈인 만큼 균일된 볼륨과 레벨을 유지하는 것도 시리즈 기획의 한 일환일 것이다. 또한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게 아니라 이 정도쯤은 읽을 수 있잖습니까 하는 그 나름 배려의 방식일 수도 있다. 더 앞서 나가면 향후 나올 완역에 앞서 발췌역을 먼저 선보여 예수를 기다리던 세례자 요한의 역할을 맡길 수도 있다. 실제로 홍기빈은 칼 폴라니의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에 <거대한 변환>의 핵심 부분 두 장을 먼저 번역하여 내놓아 그동안 절판되어 갑갑해하던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고, 후일 완역본을 내놓기도 했다. 뭐 이 시리즈도 별도로 추진되는 완역 시리즈가 있는 만큼 그런 모양새가 엿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발췌역과 달리 완역은 출판사나 번역자나 엄청난 시간과 자금이 투입된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출간해 봤자 몇 권 팔리지 않는 빈약한 고전 시장을 생각하면 완역은 그저 보기 좋은 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판사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고, 편집자는 정리당한다.

이쯤 되면 발췌역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어 보인다. 발췌역 3000권 중에서 겨우 2할뿐인 600권만을 완역하려고 계획을 세운 것은 좀 아쉽지만, 번역 한 번 되지 않은 고전을 일부나마 소개한다는 것은 의미는 '쪼까' 있어 보인다. 물론 비번역작이나 절판작만 내놓은다면 모를까 삼국사기처럼 번역도 여러 차례 된데다가 무엇보다 방대한 분량을 달랑 천 줄로 번역해 소개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완역 시리즈가 600권에서 1200~1500권 정도로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책을 누가 사 준다고...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새는데, 고전 아무리 완역하고 감수해 내놓는다고 해도 몇 권 팔리지 않는다. 뭐 언론 좀 타고 명사가 추천해 개중 몇은 그나마 재쇄를 찍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 많은 고전은 거의 십 년 동안 초판을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러고는 초판이 겨우겨우 다 나가면 품절, 사실상 절판이다. 헌책방을 뒤지고 복사해 저작권법을 이용하고 심지어 도서관에게서 불법적 소유권 이탈을 해야 읽어야 하는 수도 발생한다. 한국처럼 인문학 도서 시장이 협소하고 빈약한 데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다 사 주면 좋겠건만 그러기도 힘들다. 이 시리즈도 그런 점에서 내놓은 마케팅 제작 전략이 재미있다.

초판은 달랑 300권만 찍는단다. 2000-3000권 돌려 줘야 채산이 맞는 일반적인 오프셋 인쇄는 애당초 포기하고 복사와 크게 다르지 않는 마스터 인쇄를 한단다. 허긴 컬러로 인쇄해야 하는 고전이 몇이나 된다고. 그리고 초판에 한해서만 양장으로 제본하고, 재쇄부터는 보급판이라는 이름으로 페이퍼백으로 내는데 이마저도 마스터가 아니라 POD[각주:4]로 책을 만든다고 한다. 이러니 고작 160쪽짜리 책이 양장은 1.2만 원, 페이퍼백은 9500원[각주:5] 하는 거다. 가격은 완역 수준, 내용은 발췌역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안 팔리는 종은 그저 시리즈의 이를 맞추는 데 만족한다는 극악의 디마케팅(Demarketing) 전략도 재미있다. 가령 아프리카 문학 같은 분야의 책은 읽을 사람이 워낙 없어 초판 300권 팔기도 힘들다. 그런 책을 애써 팔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3000권을 목표로 하는 시리즈인 만큼 그것의 일부로서 구색을 맞추는 데 의미를 둔다면, 번역자의 속은 탈지언정 시리즈 전체로 볼 때에는 으레 있는 일일 것이다.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만지 고전 선집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발췌역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시리즈를 기획하고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 기획은 시장을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데 보탬이 되었다. 특히 단행본도 마스터 인쇄와 POD로 책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다는 점, 안 팔고 만다는 디마케팅도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 될 수도 있음은 나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1. 천 줄 분량이 안 되는 책도 있었다고 한다. 책 만들다 보면 천백 줄이 될 수도 있고. [본문으로]
  2. 현대인이 하루 동안 읽는 데 적합한 양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3. http://camelian.tistory.com/55 참조 [본문으로]
  4. 행여나 모를 분도 있을 텐데 Print On Demand라고 해서 수요자 (소량) 주문 생산이라고 보면 된다. 주문을 받으면 책을 인쇄가 아닌 출력(print)한 뒤 제본해 책을 만드는 방식이다. [본문으로]
  5. 출판일 잘 모르는 사람들은 160쪽짜리가 이리 비싸다고 툴툴거리는데, 마스터든 오프셋이든 기계를 돌리는 기본 부수가 있는지라 300부 돌려서는 적정 가격을 맞출 수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Enits
,
업무상 사야 할 책들이 많은데 찾다 보면 품절된 책이 많다. 이럴 때에는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헌책을 사야 하는데, 전자로 가능한 책은 별로 없기도 한데다 피차 다 아는 판에 아쉬운 소리 싫어 헌책을 사기 마련이다. 그런데 헌책을 사는 것은 정말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요새는 거의 대부분 온라인으로 검색이 가능해 예전처럼 정말 발품 파는 일은 없지만 숱하게 많은 헌책방들 뒤져 원하는 책을 찾는 것은 손품을 팔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손품 파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테면 헌책방 통합검색 또는 개인 판매자 중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일단 후자에는 알라딘 중고샵과 북코아가 있다. 시작은 북코아가 먼저 했지만 알라딘이라는 거대(?) 인터넷 서점이 서비스를 시작하니 대부분 이쪽에서 거래되는 느낌이다. 전문 헌책 판매자도 많이 입점했다. 특히 숨책처럼 웹사이트가 없던 헌책방도 입점해 책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북코아는 오늘 처음 이용해 봐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하루에 5천 권 이상씩 거래되는 것을 보니 만만치 않다 싶다.

헌책방 통합 검색은 더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이용하는 것은 헌책사랑, 북아일랜드, 고고북 3곳이다. 헌책사랑은 사실 말만 통합 검색이지 일일이 헌책방 버튼을 눌러야 하기에 이용이 꺼려지지만, 알짜배기 개인 판매자를 중계해 주기도 한다. 알라딘 중고샵이 생기기 전에는 꽤 이용했다. 말만 개인 판매자이지 전문 헌책 판매자로 보이는 사람이 많다. 북아일랜드는 헌책사랑에 비해 확연히 통합검색 능력을 잘 보여 준다. 오늘 알게 된 고고북은 북코아를 함께 검색해 주기에 검색 결과가 북아일랜드보다 좀 더 많다. 북아일랜드와 고고북에 얼마나 많은 헌책방이 링크되어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북코아 검색 분을 제외하면 북아일랜드에서 검색 결과가 좀 더 많은 것으로 보아 느낌상 링크는 북아일랜드에 더 많이 되어 있는 듯하다.

대충 이 다섯 사이트에서 헌책을 검색해 보면 어지간한 책은 구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모두 놓치는 책을 구글을 뒤져 미처 링크되지 않은 헌책방에서 책을 찾기도 한다. 그러한 일은 드물 듯하니 결국 이 다섯 곳에서 책을 찾지 못하면 남은 방법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수밖에 없다. 복사나 제본을 하는 것은 개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다. / 2009/09/16 14:51


추가

1. 인터넷 교보문고와 예스24가 중고 서적 중개를 시작했다. 대체로 알라딘과 비슷해 보이는데, 광화문 교보문고 한켠에 헌책방에 들어선 꼴이다.

2. 고고북에서 알라딘 중고샵과 옥션/지마켓 중고 물품 장터도 함께 검색된다.

Posted by Enits
,
1.
지난 토요일, 오후에 업무상 일이 있었다. 요즘 분위기상 대충 6시면 끝날 듯했지만 오잔나 공연을 가지 않았다. 아내가 몸살기가 있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잔나는 땡기지 않았다. 그들의 앨범을 두 장 가지고 있지만 일전에 말했듯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시디를 꺼내 들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오리지널 멤버도 한 명인가 두 명인가. 150장밖에 안 팔렸다는 읍소가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공연장으로 끝내 이끌지 못했다. 카페나 블로그에서 후기를 보지만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으로 한국 땅에서 아트락 공연은 이제 끝일지도 모른다. T.T

2.
일요일에는 아내의 몸살기가 호전되기도 했고 날도 좋아 외출했다. 첫 행선지는 경복궁 옆 대림미술관. 예스 등의 아트락 밴드의 앨범 커버를 거의 도맡아했던 로저 딘의 회고전이 있기 때문. 대림미술관을 찾는 데 조금 헤매었지만 막상 가 보니 좋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시디에 들어 있는 커버 이미지를 보는 것보다 엘피의 커버 이미지, 그것보다 더 클 수도 있는 원화를 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아내의 말대로 '간지'를 추구하는 로저 딘의 그림은 엘피 사이즈마저도 좁아 보이게 한다. 아내가 면박했지만 도록도 구매했다. 앞으로도 엘피를 사 모으지 못할 테니 도록으로나마 로저 딘의 그림을 종종 보고 싶었다. 그런데 띄어쓰기가 눈에 걸린다. 흑. 도록 만든다고 할 때 교정 자원할 걸 그랬나. ㅎㅎ

3.
요즘 들어 포스트락이나 슈게이징 밴드에 귀가 많이 돌아가긴 하지만 아무래도 아트락이라는 장르는 "고독한 인텔리인 척"하는 내게 딱인 장르이다. 요즘은 앨범 하나 구하기 힘들지만 그런 만큼 공들여 앨범 한 장 사서 들으면 꽤 뿌듯하다. 잘 몰랐거나 안 들린다고 내버려 두었던 이들의 음악을 다시 듣고 감탄하면 그것은 두 배! ㅎㅎ

'뮤즈의 조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좀체 못 구하고 있는 레어템들  (5) 2010.08.11
시디를 사 대다  (8) 2010.07.06
[링크] Jeff Buckley A to Z  (4) 2010.03.25
아트락 내한공연은 이제 끝인감?  (2) 2010.03.19
제프 벡 내한공연  (4) 2010.01.22
Posted by Enits
,
팬질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나 보다.

제프 버클리 사전[각주:1]이라니 이런 거 나는 생각도 못 했는데...

모종의 경외심에 링크를 모아 본다.

이것 이외에도 제프 버클리에 관한 자료가 꽤 많다.

Jeff Buckley A to Z (1)

Jeff Buckley A to Z (2)

Jeff Buckley A to Z (3)

Jeff Buckley A to Z (4)

공식 데뷔 이전에 Gods And Monst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시기에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게리 루카스와 협연한 앨범을 듣는다. 에디트 피아프의 원곡을 음산하기 짝이 없게 편곡한 Hymme A L'Amour가 주는 마력은 제프 버클리에게 선천적으로 잠내해 있던 어둠의 마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1. 정확히는 관련 용어집 정도이겠지만 사전이라고 해서 틀릴 것도 없다. [본문으로]

'뮤즈의 조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디를 사 대다  (8) 2010.07.06
'아트락'에 대한 몇 가지  (0) 2010.04.05
아트락 내한공연은 이제 끝인감?  (2) 2010.03.19
제프 벡 내한공연  (4) 2010.01.22
김두수, 닉 드레이크, 제프 버클리  (2) 2009.12.21
Posted by Enits
,
지난달에는 피트 햄, 크로노스 쿼텟과 캐멀에 빠져 허우적댔는데 이번달은 제프 버클리와 안토니 앤 더 존슨즈에 홀라당 빠져 버렸다. 없는 돈을 털어 제프 버클리의 라이브 모음집 한 장, 게리 루카스와의 듀엣(?) 한 장, 그리고 안토니~의 작년 신보를 샀는데, 이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은 업무를 방해한다. 사실 지난달에 비하면 방해될 만큼 덜 바빠서 그렇기도 하지만...

[수입] Mystery White Boy - 10점
Jeff Buckley/소니뮤직(SonyMusic)
제프 버클리야 그동안 숱하게 언급했지만 그의 라이브 앨범을 한 장 한 장 들을 때마다 그가 펼치는 마법의 굿판에 흠뻑 빠져든다. 요절한 뮤지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그마저 요절했다는 가십거리로 유명세를 탄 그이지만, 천재적인 보컬은 그를 신화 속 주인공으로 만드는 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게 한다. 그렇다, 고작 정규 앨범 한 장 낸 그는 짐 모리슨이나 커트 코베인 같은 레전드의 지위에 오를 수 없게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신화의 인물이 되었다. 인생, 한방에 훅 가는 법. 일전에는 익숙한 멜로디의 리메이크 3종 세트(Hallelujah, Lilac Wine, Calling You)에 쏠렸는데, 이제는 그의 오리지널리티인 그래서 그의 번뜩이는 실력이 확연히 드러나는 Last Goodbye, Mojo Pin, Eternal Life에 끌린다. 신화의 주인공인 만큼 앨범 하나 가지고 몇 번이나 우려 먹는 못난 놈들 덕에 몇 장의 에디션을 더 사야겠지만, 그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현존하는 그의 모든 음악을 듣고 싶은 것은 욕망의 발현이 아니라 경외의 표현이다.

[수입] Antony and the Johnsons - The Crying Light - 10점
안토니 앤 더 존슨스 (Antony And The Johnsons) 노래/Secretly Canadian
안토니 앤 더 존슨즈는 과거 엠블 시절에는 몇 번 포스팅한 적 있는데, 리더인 안토니 헤가티의 여리고 섬세한 보컬을 앞세운 챔버 팝 밴드이다. 그도 사실 트랜스젠더인 것으로 사료되는 외모/성별과 괴리된 섬세한 목소리와 창법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그러한 불일치는 그에게서 굉장한 음악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남성의 신체에 갖힌 한 여성의 울부짖음 같은 그의 목소리는 절망의 절벽 위에서 맞바람에 맞서며 토로하는 흐느낌을 연상케 한다. 유럽 차트에서 1위를 했음에도 국내에는 제대로 수입조차 안 되는 <Crying Light>는 이전 작 같은 킬러 트랙은 눈에 띄지 않지만, 슬픔이 차곡차곡 쌓여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 짐더미 같다. 하늘을 어깨에 맨 아틀라스처럼 그 짐을 짊어진 채 세상에 노래하는 안토니 헤가티의 목소리.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운명에 맞서야 했던 제프 버클리의 울부짖음과 생면 다르지만 그것의 임팩트는 하나 다를 게 없다.

이에 비하면 덤으로 산 스타세일러의 <Love Is Here>는 무슨 자장가 같다. 하지만 나는 제임스 월시의 보컬을 아주 좋아한다. 다만 구입 시기가 안 좋았을 뿐. 제프 버클리와 안토니 헤가티와 대적하기에는 제임스 월시는 너무 불운했다.

'뮤즈의 조각상 > My Funny Albums' 카테고리의 다른 글

Hayden - Everything I Long For / Elk-Lake Serenade  (5) 2010.11.09
Blue Eyed Blues  (0) 2010.06.25
Camel Discogrphy #1  (7) 2010.02.10
캐멀의 A Nod And A Wink  (2) 2009.07.20
희귀 앨범 <몽실이와 하늘 아이들>  (10) 2009.04.01
Posted by Enits
,
요 몇 년 동안 한국을 다녀간 New Trolls, P.F.M., Latte E Miele에 비하면 Osanna는 사실 내게도 그다지 인기 없는 밴드이다. 그들의 앨범을 두 장 가지고 있긴 하지만, L'uomo와 Conzone(There Will Be Time)을 제외하면 내 귀에 꽂힌 곡은 없다. 뭐 3집 이후는 제대로 들어본 적 없긴 하지만.

들리는 말에 따르면 내한공연을 2주 앞두고 좌석이 겨우 150장 팔렸단다. 700석 규모의 마포아트센트에서 말이다. 그 덕분에 공연을 기획한 이들은 똥줄이 타는 모양. 사실 오잔나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그동안 공연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내가 다 걱정이 든다. 뉴트롤즈 같은 이들이야 아트락 매니아가 아니더라고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다지만, 오잔나 같은 그럭저럭 인지도가 있는 뮤지션의 공연이 대참패 하면 앞으로 아트락 공연은 끝이다. 뉴트롤즈가 다시 온다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이쯤 되니 관심 없었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도 오잔나 공연에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하지만 일정이야 그렇다 쳐도 티켓 값이 만만치 않다. 평소 같으면 그 돈이면 시디 대여섯 장을 사고 말지, 라고 할 텐데 이제는 섣불리 그리 말할 수 없다.

'뮤즈의 조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트락'에 대한 몇 가지  (0) 2010.04.05
[링크] Jeff Buckley A to Z  (4) 2010.03.25
제프 벡 내한공연  (4) 2010.01.22
김두수, 닉 드레이크, 제프 버클리  (2) 2009.12.21
비틀즈, 욕심은 끝이 없다  (8) 2009.09.10
Posted by Enits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이 자신의 블로그에 자신이 e북에 관해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엮은 <e-북이 아니라 e-콘텐츠다>의 텍스트를 공개했길래 링크를 모아 봤다. 첫 번째 e북 열풍이 불었던 10년 전에 나온 책이라 지금에 와서는 다소 낡은 느낌이 들지만, 한기호 소장은 자신의 관점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나 역시 대체로 그의 주장에 동의하며, 현재 온라인 서점 주도의 e북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된다. 거칠게 말하면 10년 전보다 e북 리더만 좋아졌을 뿐이다. 책들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만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출판에서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목적은 무엇일까, 콘텐츠의 성격에 따른 다양한 미디어를 어떤 식으로 최적화해 독자에게 공급할까이다. e북이든 디지털 미디어이든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서문

1장 e-북, '문자 르네상스' 꽃피울까?

2장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는 출판시장

3장 소설은 e-북으로 다시 꽃필 것인가?

4장 e-북은 없다 1 

5장 e-북은 없다 2 

6장 아날로그 종이책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섭씨 233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정리  (7) 2010.08.13
헌책을 찾고 싶으면(추가)  (0) 2010.04.19
요즘 내 취미는...  (6) 2010.02.03
책 취향 테스트  (6) 2010.01.14
2010년 인문학/사회과학 서적 출간 예정 리스트  (0) 2010.01.12
Posted by Enits
,
신기섭 씨가 "웬만하면 <삼성을 생각한다> 빨리들 확보해두시길. 레어 아이템 후보되겠습니다."라며 트위트를 날리길래 품절, 절판된/될 책을 사 모으는 나로서는 낼름 구매해 버렸다.  오늘 아침에 읽은 블로그 글프레시안 기사를 보니 일일 방문자가 고작 40-60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도 광고 지면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광고를 일체 달지 않기로 했지만, 뭐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나름 공익적 성격이 있다고 판단되어 예정 광고 이미지를 게재한다. 아마 오늘 책이 도착할 텐데 바쁘더라도 리뷰는 짤막하게나마 써야겠다.






덧붙임
1. 까먹었는데 이 광고는 캡콜드 님의 글을 보고 따라한 것이다.
2. 2월 한 달 내내는 좀 그렇고, 설 연휴 전날인 12일까지 광고를 블로그 맨 상단에 게재한다.
Posted by Enits
,
저 오래된 여인숙이라는 블로그에 Camel의 전 곡[각주:1]이 올라오길래 링크를 모아 보았다. 그런데 명색이 캐멀의 팬이라고 하면서 남의 블로그를 링크만 옮겨 붙이는 것이 다소 찜찜해 앨범에 대해 (리뷰는 능력이 안 되기에) 짤막한 멘트라도 달아놓을까 싶다. 그래도 정주행 한번 하면서 멘트를 다니 이것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이미지나 볼드 처리된 앨범 타이틀을 클릭하면 전 곡을 들을 수 있는 포스트가 뜬다.



 Camel(1973)
캐멀의 데뷔 앨범으로, 눈물 흘리며 질주하는 낙타 열차(?)를 담은 커버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내 취향상 처음 들을 때에는 캐멀 특유의 서정성이 담긴 Mystic Queen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큰 인상을 남기는 앨범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일 발매된 라이브 앨범 <Never Let Go>를 듣고 난 뒤에는 Never Let Go 같은 그루브감 넘치는 곡도 서서히 관심을 끌게 되었지만 거장의 데뷔 작 정도로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추천 곡: Mystic Queen, Never Let Go



  Mirage(1974)
캐멀 골수 팬들에게 캐멀 하면 대개 이 앨범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나 또한 이 앨범의 이미지를 넷상에서 나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종종 쓰고 있다. 앨범 전체적으로 애잔한 느낌의 서정적인 연주와 함께 그루브 감 넘치는 박력 있는 연주가 종횡하는데,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이 많이 보인다. 이 앨범의 백미이자 절정인 3부작 조곡 Lady Fantasy 역시 갈라드리엘을 노래한다고 한다.

추천 곡: Supertwister, Lady Fantasy



 Music Inspired By The Snow Goose(1975)
폴 갤리코의 동화 <Snow Goose>를 음악으로 표현한 토털 컨셉 앨범으로, 동화에 대한 사운드 트랙이라 할 수 있다. 캐멀을 동명의 담배 회사 소속 밴드로 오해한 폴 갤리코가 저작권 사용 승인을 해 주지 않아 제목을 저렇게 지어야 했고, 가사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됭케르크 철수를 역사적 배경으로 한 외톨이와 소녀의 우정 그리고 그 둘을 이어 준 흰기러기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동화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보컬 없이 연주만으로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추천 곡: Rhayader, Snow Goose



  Moonmadness(1976)
캐멀 서정 미학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앨범이지만, 결성 시부터 이어 온 앤드류 레이티머(V, G, Flute), 피터 바덴즈(K), 앤디 워드(D), 덕 퍼거슨(B)으로 구성된 탄탄한 쿼텟은 이 앨범으로 종결을 맞이한다. 그만큼 이 앨범은 밴드의 최절정이자 화룡점정이 아닐까 한다. Song Within Song, Spirit Of The Water, Air Born, Lunar Sea로 이어지는 곡들은 커버 이미지만큼 아름다우며, 다른 곡에서도 마찬가지로 짠한 멜로디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모든 곡에 애정이 가는 유일한 앨범이다.

추천 곡:  Song Within Song, Spirit Of The Water, Air Born, Lunar Sea
       


 Rain Dances(1977년)
<Moonmadness>를 끝으로 탈퇴한 베이시스트 덕 퍼거슨 대신에 캐러번 출신의 리처드 싱클레어와 킹크림슨 출신의 멜 콜린스(Sax.)가 가세하면서 사운드는 좀 더 재지해졌다. 숫제 One Of These Days I'll Get An Early Night는 재즈 밴드의 곡이라 해도 속을 정도. 하지만 Tell Me 같은 곡에서는 여전히 캐멀 특유의 서정성을 내비친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캐멀은 분열과 변화의 시기인 중기에 접어든다.

추천 곡: Tell Me, Elke, Raindance



 Breathless(1978)
개인적으로 <Single Factor>와 함께 캐멀의 앨범 중에서 가장 정이 안 가는 작품으로 정규 앨범 중에서는 품절로 구입이 힘들었던 <A Nod And A Wink>를 제외하곤 가장 나중에 구입했다. Echoes에서는 재즈 어프로치가 강한 초기 사운드를 느낄 수 있으나, 동명 타이틀 곡을 비롯해 대체로 앨범 전체적인 구성, 특히 보컬 파트는 이전에 비해 상당히 파퓰러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변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밴드의 양대 기둥 중 하나인 피터 바덴즈가 녹음 도중 탈퇴하고 캐러번 출신의 데이빗 싱클레어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 이후 캐러멜(캐멀+캐러반)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마지막 수록 곡인 Rainbow's End는 그나마 남은 서정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으나 파퓰러하기는 매한가지다.

추천 곡: Echoes, Rainbow's End



I Can See Your House From Here(1979)
초입부터 연이어 터지는 파퓰러한 두 곡과 베스트 앨범에서 들은 뉴웨이브 스타일의 Remote Romance 덕분에, 아마 라이브로 먼저 들은 Ice가 아니었으면 이 앨범 역시 어정쩡한 팝 앨범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진지하면서도 실험적인 프로그레시브 열풍이 잦아들고 반대급부로 펑크와 디스코가 대세이던 70년대 후반에 밴드의 생존 방책은 파퓰러한 사운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재지한 사운드 변화의 주동자인 싱클레어 들이 퇴장하면서 캐멀은 다시금 짠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는 서정성을 여전히 앨범 속에 녹여 내었다. 다만 그것이 앨범의 기조라 하기엔 부족해 보이지만, 다시 돌아온 대곡 Who We Are와 Ice는 현존하는 캐멀의 기초적인 모델로 남는 듯하다.
   
추천 곡: Eye Of The Storm, Who We Are, Hym To Her, Ice



 Nude(1981)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 섬에 고립되었던 일본군 패잔병[각주:2]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두 번째 토털 컨셉 앨범이다. 밴드의 기조가 점차 파퓰러해지는 가운데 토털 컨셉 앨범을 추구했다는 점은 캐멀이 적어도 평범하게 팝 음악을 하지 않는 아티스트적 면모를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보인다. 잇따른 멤버 교체와 다양한 세션 참여 등으로 약간은 산만한 느낌이 들지만, 실화를 소재로 한 토털 컨셉 앨범인 만큼 인물과 상황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극적이면서도 짜임새 있는 연주로 펼쳐지는 수작이다. 개인적으로 캐멀의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인 Drafted가 수록되었다.

추천 곡: Drafted, Landscape, Lies
   


The Single Factor(1982)
마지막 남은 원년 멤버 앤디 워드마저 약물 중독과 손목 부상으로 밴드를 떠나게 된다. 앤드류 레이티머는 그 죽일 놈의 계약 때문에 왕년 멤버 피터 바덴스와 멜 콜린스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세션을 모아 앨범을 내놓는다. 홀로 남은 레이티머를 상징하는 앨범 타이틀과 커버 이미지는 더 이상 레이티머가 밴드의 리더가 아닌 밴드 그 자체임을 의미하는 듯하다. 밴드의 급작스런 변화기에 나온 작품이다 보니, 캐멀 특유의 서정적 분위기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Heores 같은 곡에서는 갑자기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가 연상되며, You Are the One은 이게 캐멀 맞아 하는 소리가 나오는 등 앨범은 전체적으로 다소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Breathless>와 함께 꽤 늦게 사게 되는 앨범이 되었는데, 그나마 마지막을 장식하는 접속곡 A Heart Desire/End Peace가 그래도 캐멀임을 증명해 준다.

추천 곡: Selva, A Heart Desire, End Peace



 Stationary Traveller(1984)
개인적으로 엠블 시절 블로그 이름을 가져다 쓰기도 했으며, 히트 곡인 Long Goodbye 덕에 우리나라에 캐멀을 알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앨범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Ice와 쌍벽을 이루며 캐멀의 서정성을 극대화하는 타이틀 곡 Stationary Traveller로 기억되는 앨범이다. 분단된 도시 베를린을 소재로 한 토털 컨셉 앨범이지만, 전 매니저와의 법정 공방 때문인지 이전의 토털 컨셉 앨범 두 종에 비하면 구성력이 떨어져 '토털'의 느낌은 그리 크지 않다. 또한 커버 이미지에서도 보이듯 앨범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 지배하지만 그 톤은 대체로 고르지 못한 편이라 앨범만 놓고 보면 <Mirage>, <Moonmadness>, <Nude>에 미치지 못하는 다소 아쉬운 앨범이다.

추천 곡: Pressure Points, Vopos, Stationary Traveller


이후 법정 공방과 미국 이주, 레코드 사의 냉대로 인한 7년간의 침묵 끝에 앤드류 레이티머가 독자적인 레이블인 Camel Production에서 내놓은 후기 앨범들, <Dust And Dream>(1991), <Harbour of Tears>(1996), <Rajaz>(1999), <A Nod and a Wink>(2002)[각주:3]는 노발리스 님이 포스팅을 하지 않은 관계로 내가 직접 음원을 올려 놓거나 음원 없이 설명해야 할 듯. 그리고 라이브 앨범인 <God Of Light '73-'75>(2000), <A Live Record>(1978), <Never Leg Go>(1993), <Coming Of Age>(1998)[각주:4] 정도는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아무래도 글을 쪼개야 할 듯하다. 그리고 이 참에 컴필레이션을 만들고픈 욕망이 생겼다.

  1. 현재 스튜디오 앨범 10장만 전 곡을 들을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후 작품과 라이브 앨범을 올릴 계획이 없는 듯하다. [본문으로]
  2. 아무래도 오노다 히로인 듯한데, 이런 인물이 생각보다 많다. 이 앨범의 스토리는 오노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수전 후버가 창작한 것인지, 아니면 '누데'라고 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는지 모르겠다. 가장 유명한 괌에서 발견된 요코이 쇼이치는 일단 아니다. [본문으로]
  3. 앤드류 레이티머의 건강이 호전되어 공연도 재개했다고 하지만, 나이와 건강 상태로 보건대 이 앨범은 캐멀의 마지막 앨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본문으로]
  4. On The Road 시리즈는 Official이라고 해도 결국 Bootleg이라 소개하기가 거시기하며, [Pressure Point]와 [Paris Collection]은 소유하지도 들어보지도 못해 뭐라 할 말이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Enits
,
일전에 Badfinger의 Without you를 포스팅한 적 있다. 일단 크게 울고 보면 장땡이라는 듯 속절없이 엉엉 우는 듯한 머라이어 캐리의 커버와 달리 터져 나올 듯한 눈물을 꾸꾹 참으며 목울대만 겨우 적시게 하는 배드핑거스의 오리지널에 아무래도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설사 아랜비빠라서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공연 중에 "배드핑거는 가라! 우린 비틀즈를 원한다"라는 팬들의 야유에 충격받고서 자살을 택한 피트 햄의 가려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무래도 이쪽에 정이 가기 마련.

피트 햄은 생전에 솔로 앨범을 내지 못하고 사후에 데모를 편집한 유작만 2종 내놓았는데, 그중 <Golders Green>에 그의 이름을 팝 음악사에 남긴 걸작 Without You의 다른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흔히 알려진 Without You는 1970년에 나온 <No Dice>에 수록된 곡인데, 이 곡은 Without You의 백미인 후렴구 부분이 원곡(?)과 아예 다르다. 그 덕에 아예 분위기도 통으로 다르다. 배드핑거 버전의 정서가 슬픔 또는 괴로움이라면, 피트 햄 솔로 버전은 안타까움 또는 아련함이다. 원곡(?)의 절절함은 느낄 수 없지만 이것 역시 매력이 있다. 실제로 연인과 이별하면 징징 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저 홀로 쓸쓸해하는 척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 곡은 후자의 정서를 반영한 게 아닐까?

앨범에 실린 곡들이 대부분 피트 햄이 혼자 작곡하고 녹음하던 데모가 출전인지라 아무래도 이 곡이 원 곡이고, 배드핑거의 일원으로써 녹음하는 과정에서 좀 더 절절하게 가사를 바꾸고 편곡한 게 아닐까 싶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톰 이번스가 공동 작곡자인 것으로 보아선 후렴구는 톰 이번스의 작품이 아닐까 추측만 해 본다.



Golders Green(1999)


Posted by Eni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