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으로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가 출시되었다. 아돌프 히틀러를 소재로 '정의'에 대해 추구한다는 이 만화를 걸작 내지 필독서로 꼽는 사람이 많아 관심을 가졌는데, 마침 팀장이 산 것을 잠깐 훑어 본 바로도 사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일가에 전용 박스에 포장된 한정판은 이미 알라딘에서는 품절되었다. 교보에는 아직 재고가 있지만 단지 박스의 유무만이 차이라면 이 한정판이라는 게 꼭 사야 할 것은 아니다. 매달 한 권씩 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짜피 박스 본 구매는 쉽사리 인가될 리 없지 않은가.

얼마 전 캡콜드 님이 폼잡기 좋은 만화를 골라 주신 덕분에 <히스토리에>를  비롯해 땡기는 작품이 많지만, 만화책이라는 게 남들 보기에는 가벼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줍잖은 글자 나부랭이 책보다 더 깊이가 있거나 방대한 게 많다고 하더라도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편견은 우리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러한 편견 이겨 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다. 무슨 독립운동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한 편견에 맞선다는 것, 녹록지도 않거니와 무척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다.

알라딘 마이리스트에 담아 놓은 만화와 그래픽 노블을 합치면 대략 100권쯤 된다. 물론 이것을 다 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 사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꼭 읽고 싶은 게 적잖게 있고, 그들 대부분은 사서 두고두고 보고 싶은 것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것을 다 구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계가 명확한 구매 자금과 비치 공간도 문제이지만, 앞서 말한 만화책이나 보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것도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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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하루는 넘어가고...
언제까지 이 짓을 하고 살아야 하나 울컥할 때
나를 진정시키는 곡
Egberto Gismonti의 And Zero.
이름을 보아하니 이태리 사람.
어느 블로그에서는 브라질이 고향이라고 하는데,
팻 메스니의 'Letter From Home'을 연상케 하는 첫 소절.
왠지 벨기에나 알사스 아니면 슬로베니아의 느낌이 나는 건반의 투명함.
탁 트인 호수 좀 있고, 우거진 숲도 좀 있고, 너른 초원도 있고... 그런...
식상하기 짝이 없는 목가적이니, 전원적이니 하는 수식어도 뭐 어색하지 않다.



젠장 다운 받은 wma 파일을 올린답시고 mp3로 바꾸었더니 지글지글 사글사글.
맛이 팍팍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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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원제가 On Liberty이기에 '자유에 관하여'가 적합한 번역 같다.)을 읽고 싶어 하기에 검색을 해 보니 유명한 책답게 번역본이 여러 종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자유론'으로 검색하니 20종이 검색된다. 여기서 논술용 서적과 절판된 판본을 제외하고 출판사의 지명도를 놓고 보니 대충 4종이 추려진다. 최근 출간순으로 기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팔린 판본은 위너스초이스에서 나온 논술용 서적이다.

박홍규가 번역한 문예출판사 본(2009. 3. 신국판 320쪽)
가장 최근에 번역된 판본으로 "<자유론> 출간 150주년을 맞아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비판적 해설을 곁들여 번역했다."라고 한다. 고전의 번역에 머물지 않고 한국 사회의 주요 문제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해설 덕에 320쪽으로 가장 두꺼우나 가격은 1만원으로 착한 편이다.

김형철이 번역한 서광사 개정판 본(2008. 5. 신국판 302쪽)
김형철 연세대 교수가 번역한 판본으로 1992년에 나온 활판본을 손질해 양장본으로 나왔다. 양장본인 탓에 1.8만원으로 가장 비싸다. 교수신문 기획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선정 판본이다.

이주명이 옮긴 필맥 본(2008. 3. 문고판 변형 236쪽)
필맥 사장이 직접 번역한 필맥 본은 유일하게 'On Liberty'라는 제목을 살렸다. 236쪽(7천원)으로 가장 얄팍하다. 번역의 질은 다른 판본에 비해 잘 모르겠으나 필맥이 이제까지 내 놓은 책을 볼 때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표지가 마음에 든다.

서병훈이 옮긴 책세상 본(2005. 1. 문고판 변형 254쪽)
책세상문고답게 254쪽에 6.9천원으로 가장 싸고 작다. 필맥 본보다 두꺼운 이유는 역자의 해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가 번역했는데, 역자 중 유일하게 정치사상 전공자이다. 김형철 본과 마찬가지로 교수신문 선정작이며, 네 종 중 가장 많이 팔렸다.

교수신문이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라는 기획을 추진하고 이것을 책으로 펴 냈을 때 추천받은 판본은 김형철(서광사) 본과 서병훈(책세상) 본이다. 하지만 책이 나온 게 2006년이니 이후에 나온 필맥 본이나 문예출판사 본은 검토되지 않았다.

원제를 최대로 살린 '자유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긴 하나 아무래도 이주명 본은 가장 먼저 탈락하게 될 듯하다. 번역의 질이 차이가 나지 않는 선에서는 고전 번역본은 아무래도 해제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비싼 양장본인 김형철 본도 탈락할 확률이 높다. 책장에 꽂아 둘 가오용이 아닌 담에야 고전은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며, 사실 <자유론>은 팸플릿 수준의 얄팍한 책이기에 양장본이라는 외피가 적절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박홍규 본과 서병훈 본인데, 아무래도 아내가 직접 판단하는 게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난은 두울 다아!'라고 말하고 싶다. [2009-06-19]

업무상 자유론의 한 대목을 쓸 일이 있어 일전에 구입한 박홍규 역본을 봤는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그래서 서병훈 역본을 구해 비교해 보니 딱딱하고 건조한 게 이것은 무슨 바윗덩어리 같았다. 원문의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는 데에는 차라리 딱딱한 게 나으나 떠듬떠듬 읽기란 힘겨운 일이다. 그렇다고 명상을 해야 하는 글을 읽는 것이 쉽지도 않고. 이에 구글을 뒤져 영문 원본을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한눈에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의도는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에 일단 서병훈 역본을 참고해 꽤 윤문하는 것으로 결론내었다. 하지만 박홍규 역본의 장점은 박홍규의 시의적절(?)한 해제이다. 자유론이 인류사에서 가지는 위치에 기반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유가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논파한 글은 재미도 있고 의도도 깊다. 이것만으로도 살 만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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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구입 도서

2009. 10. 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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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없이 10시와 12시 사이에 퇴근하는 초바쁜 와중에 하루 휴가를 내고 이사했다. 한 동네에서 이사한 것이긴 하지만 이사 그 자체는 피로 또는 피곤이다. 이사하고나서 아내와 나는 그냥 뻗어 버렸다. 사실 포장 이사를 해도 따로 챙겨야 하는 것은 언제든 있기 마련이다. 며칠 동안 없는 시간을 쪼개어 아내와 둘이서 또는 아내 혼자서 힘겹게 버릴 것과 따로 챙길 것을 구분했지만 시간은 항상 빠듯했다. 그래도 하게는 되더라. 이삿날 새벽 그럭저럭 이사갈 태세를 갖추었다.

본 이사의 관건은 사다리차 기사가 여태 날라 본 가장 무거웠다던 냉장고도 아니고 65센티미터 좁은 틈에 63.5센티미터 폭의 세탁기를 넣는 것도 아닌, 대략 천 권 정도로 추산되는 책과 오백 장쯤 되는 시디였다. 100장 정도 되는 디비디는 일도 아니다. 애당초 포장 이사를 선택한 것은 바빠서가 아니라 이제는 책 싸는 일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포장 이사를 한다 해도 책은 있던 그대로에 배치될 수 없다. 하자면 원 위치대로 센터에서는 할 수 있다지만 그러면서 추가되는 시간에 그냥 포기하기 마련이다. 결국 책은 내 책과 아내 책의 구분 없이 분야와 크기에 상관없이 일단 마구 꽂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늘 내에 이사가 안 끝날지도 몰라서였다.

이러했음에도 보통 4시쯤 끝난다는 이사는 6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책상 유리가 깨진 게 있어도 인지상정상 이삿짐 센터에 처음 계약한 금액보다 조금 더 챙겨 줘야 했다. 정말 센터 사람들에게 책은 괴물단지일 게다. 사실 나보고 저 책을 싸고 나르고 집어 넣으라 하면 돈을 더 쳐 준다고 해도 진저리칠 듯싶다. 센터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교수와 목사라는데 젊은 사람이 웬만한 교수만큼 책이 있으니 놀라긴 놀랐을 게다. 이 꼴 안 보고 사려면 빨리 집 사서 이사 안 다니며 사는 수밖에 없지만 언감생심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다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는 책과 시디를 분류해 분야와 크기 등을 고려해 재배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일찌감치 재배치를 포기하고 책과 시디의 위치를 기억하는 것. 성질머리상 전자를 택해야겠디만 겁나게 바쁜 상황이다 보니 11월이나 되어야 가능하다. 사실 이전 집에 이사 오면서도 책을 정리하는 데 몇 달 걸렸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책이 더 늘었다. 심지어 회사에 쟁여 둔 책도 적지 않게 있다. 속히 후자를 택하는 게 마음에 여유를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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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웬만한 신간을 주문해 받아 보면 띠지부터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띠지는 참 난감한 책의 요소이다. 좁은 책장에 박박 구겨 넣을 때 띠지는 여지없이 걸림돌이 된다. 게다가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타이포그라피 위주의 미니멀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관계로 띠지는 피부에 얹은 딱지 같은 존재로 여기진다. 그렇다고 무작정 버리지 않고 고이 접어서 책 뒤쪽 날개에 넣어 둔다. 이럴 때 서경식 선생의 <고뇌의 원근법>처럼 커다란 띠지는 처치하는 게 심히 곤란하다.

예전에는 띠지를 무조건 싫어했는데 점차 띠지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임지호 씨의 말처럼 출판사의 주요한 홍보 수단이기도 하지만, 점차 띠지 자체가 디자인의 한 요소이기 때문에 북디자인이라는 통일적 시각에서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서구처럼 홍보 문구를 아예 표지에 넣어 버리는 것보다는 제거할 수 있는 띠지에 넣는 게 나 같은 독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낫다.

물론 과다한, 무성의한, 선정적인 문구에는 눈쌀이 찌뿌려지지만 책 전체의 디자인상 부적절하다 생각하면 그냥 버리면 된다. 하지만 띠지를 잘 활용한 북디자인도 얼마든지 많다. 연휴 기간 책 정리하면서 그러한 것들을 살펴봐야겠다. 흠. 아내 책 정리와 시디 정리부터 해야겠군. 뭐 언젠가는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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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다시피 시공사는 전두환의 큰 아들 전재국, 말하자면 아버지 돈을 달랑 29만 원만 남기고 자기가 낼름 먹은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이다. 시공북스나 시공코믹 같은 출판사는 물론 온/오프라인 서점 북스리브로를 비롯해 연천 허브빌리지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그 외 계열사는 이 페이지이 블로그를 참조.

그런 점에서 시공사의 책을 사는 것은 찜찜한 일이다. 시공디스커버리 총서를 비롯해 '왓치맨' 같은 그래픽노블 시리즈,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xx의 역사' 같은 책은 좋은 책의 범주 안에 든다. 하지만 그 책을 사는 것은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피멍 들게 한다. 전두환의 국장에는 눈물을 흘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의 돈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에서 나오는 책을 산다니. 책이 아무리 좋아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이다.

가오 선생이 강의에서 디스커버리 총서를 추천했나 보다. 이것에 의아해하는 사람에 대해 "'시공'을 떠들 때마다 제 속도 많이 타들어 갑니다."라고 말하듯 이 시리즈를 두고 구매자는 갈등하기 마련이다. 서정주의 시를 좋아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차마 좋아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좋은 책과 좋은 시에 그것을 둘러싼 맥락을 제거하고 텍스트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게 과연 옳은지 잘 모르겠다.

결론: 이 모든 게 전두환 썩을 놈 때문이다. [2009/09/29 처음 작성]


덧.
계간 판타스틱을 시공사가 인수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판타스틱 너마저, 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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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버든 & 애니멀스의 Paint It Black이 들어 있는 앨범을 찾다가 우연히 레어템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포커스의 Hamburger Concerto. 얄팍한 용돈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도 이런 거 두고 지나치면 찜찜해서 일이 안 된다. 문제는 몇 끼는 점심에 라면만 먹어야 한다는 거. 

알라딘에 앨범 정보가 없을 정도로 좀체 구하기 힘들었던 앨범인데, 아니나 다를까 티스토리에 밴드 이름과 곡명을 그대로 파일 제목으로 올려도 제제받지 않는다. 아싸. 사실 나는 이 앨범에서 타이틀 곡을 더 좋아하는데, 이 곡을 좋아하는 비다 님의 요청으로 올려 본다.

Strasbourg - la flèche de la cathédrale
Strasbourg - la flèche de la cathédrale by Erminig Gwen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티스토리의 제제를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추석 연휴가 지나면 비공개로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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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MS Concert at Madison Square Garden, NYC,1983/12

어제는 에릭 버든이더니 오늘 아침은 야드버즈 브라더스가 난 흥분시키는군. 알다시피 60년대 활동했던 야드버즈에는 소위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리는 에릭 클랩튼, 제프 백, 그리고 지미 페이지가 차례로 활동했다. 뒤에 둘은 잠시 트윈 기타로 두 곡인가 녹음하긴 했다는데, 실제로 이들이 모두 모인 공연은 십수 년 뒤에 모두 기타의 신[각주:1]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주로 검색되는 로열 앨버트 홀 실황[각주:2]은 Layla의 연주가 다소 원곡보다 빨라 호흡을 상당히 숨가쁘게 하는데, 이 MSG 실황은 그에 비하면 원곡의 속도에 가깝다. 나이 먹으니까 에릭 클랩튼의 MTV 언플러그드 버전이 더 좋긴 하지만, 레일라의 멋은 초반부에 몰아치는 슬라이드 기타 연주, 그리고 중후반부의 기타와 피아노의 절묘한 합주이다.

ARMS (자선) 콘서트[각주:3]는 출연진이 참으로 빠방한데 야드버즈 브라더스 외 주요 뮤지션만 스티브 윈우드(블라인드 페이스, 트래픽), 존 폴 존스(레드 제플린), 빌 와이먼, 찰리 와츠(이상 롤링스톤즈), 케네디 존스(페이스, 더 후), 앤디 페어웨더-로(누군지 모름) 등이 함께한 공연이다. 하지만 이들은 야드버즈 출신의 기타리스트 3명 앞에서는 미안하지만 그저 '+@'에 불과하다.


  1. 사실 '기타의 신'은 에릭 클랩튼을 지칭하는 말이다. 다른 두 사람에게도 별명이 따로 있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본문으로]
  2. 사실 이것이 원 공연이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등의 미국 공연은 향후에 추가로 이루어진 공연이다. [본문으로]
  3. 다발성경화증(MS) 조사 단체를 후원할 목적으로 록 뮤지션들이 연 공연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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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잡담 블로그일지라도 곡 하나 띡 걸어 놓는 음악 (재생) 블로그가 아닌 리뷰 블로그를 표방하려 했지만, 아침에 유튜브에서 애니멀즈를 검색하다 우연히 들은 이 곡에 '그래, 가끔은 음악 블로그'도 해 보지, 뭐'라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

<머나먼 정글>의 영향 때문인지 롤링스톤즈의 곡 중에서 최고로 꼽는 곡은 아무래도 Paint It Black이다. 전주에 나오는 시타르의 기묘한 분위기나 키스 리차드의 덜거덕거리는 기타 연주도 최고이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무대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믹 재거의 샤우팅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하지만 에릭 버든의 커버를 듣고서 그는 에릭 버든 앞에서는 아직 덜 여문 풋내기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둘은 별로 나이 차가 별로 안 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여전히 믹 재거를 높이치는 사람도 있을 게다.)

비오는 날 유리창을 긁듯 고막을 긁어 대는 바이얼린의 거친 소리가 웬일인지 짜증스럽게 들리지 않았다. (뭐 프로그레시브쪽에서는 이런 연주 종종 듣는다. ) 그리고 이어지는 블루스 필 가득한 록 밴드의 합주.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몽롱한 기운이 내 주변을 감싸 흐른다. 한 대 맞은 것 마냥 기분이 멍해졌을 때 슬며시 나오는 에릭 버든의 마치 무당 같은 보컬. 롤링스톤즈보다 한층 복잡한 애니멀즈의 연주는 굿판의 자바라와 북 소리 같다. 아 바이얼린도 밴드 멤버가 연주했군. 이 모든 게 뒤섞이니 그렇다면 이들의 연주는 하나의 굿판?

순간 애니멀즈가 원 곡이고 롤링스톤즈가 커버했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적어도 리메이크하려면 원 곡보다 나아야 하는 것 아닌가? 리메이크를 한다면 롤링스톤즈와 믹 재거보다 더 잘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에릭 버든과 애니멀즈는 원 곡의 아우라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당시만 해도) 롤링스톤즈보다 더 잘나간다는 자존심을 이 곡으로 증명했다.

사실 이 곡은 1967년 작 <Wind of Change>에 수록된 게 스튜디오 버전이 아니라 1968년 공개된 <Roadrunners>에 실린 스톡홀름 라이브 실황인데, 앨범을 사서 들어보니 라이브에 비해 무척 심심하다. 짧기도 하거니와 보컬이 왠지 맥아리가 좀 없는 느낌이 난다. 그리고 고막을 긁어 대는 바이얼린 연주는 없다 보면 된다. 이쯤 되면 믹 재거의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국내 어느 음반 몰에도 들어온 적 없는 <Roadrunners>를 아마존에서 주문해야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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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 님의 글과 그 전의 댓글에 대해 보충과 해명을 위해 쓴 글이지만, 이북과 디지털 콘텐츠에 관한 기본적인 제 생각을 담았습니다. 일단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아 깁니다. 하지만 스압에는 스압으로! 입니다. ^^;

1.
똑똑샘의 어중간함은 출판 업계와 IT 업계, 정확히는 이북/디지털 콘텐츠 업계 사이의 간극 사이에서 나온 절충안입니다. 애당초 절충은 어정쩡합니다. 이 솔루션은 콘텐츠를 만드는 출판사도 전자펜을 만드는 IT업체도 아닌 PDF 솔루션 업체에서 고안한 것입니다. 사실 PDF 자체가 어정쩡하죠. 문서를 디지털화했지만 양쪽 다 속하는 듯하면서도 속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출판업계에 발을 디밀고 있는 이  PDF 업체는 정밀한 스케치 도구로밖에 쓰이지 않던 전자펜을 이용해 멀티미디어 파일을 구동하는 초보적인 디지털 교과서를 고안했습니다. 정부의 디지털 교과서 사업이 잘 진행됐으면 이것은 아마 저렴한 비용 이외에는 장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학생에게 태블릿PC는커녕 넷북조차 공급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출판업계가 등돌리고 있는 마당에 IT업체가 디지털 교과서만을 위한 별다른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이것은 그 나름의 돌파구를 찾은 것입니다.

2.
출판업체와 IT업체가 반목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북토피아의 파산입니다. 한국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여기서 터진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컨텐츠를 다루는 관점이 두 업체 간에 너무 달랐죠. "10년 전의 음반기획사/제작사"와 다를 바 없는 출판계의 정저지와성 시각을 탓하기에는 종이 책에서 텍스트만 긁으면 이북이 될 거라고 생각한 이북 업체 역시 개구리이긴 매한가지였습니다. 저작권 문제, 수익 정산 문제, 결제 문제, 디바이스 문제 등 숱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에도 둘 다 안이하게 대처했고, 결론은 북토피아의 파산이었습니다. 그 후로 출판계에서는 이북을 백안시하고, 이북 업체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놈들 어디 두고 보자 식으로 일관하고 있죠. 누군가를 이 간극을 좁혀야 할 텐데 별로 하려는 사람 없습니다. 출판계는 더 심합니다. 최근에 책을 낸 모 출판사의 사장조차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언급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신국판이든 사륙배판이든 그 틀 안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못하죠. 출판에 대해서 한목소리하는 이런 이도 이런 마당에 말단 편집자들이 뭔 생각을 하겠습니까? 저조차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게 6개월이 안 됩니다. 강의를 들으며 고민을 시작한 찰라에 저 어정쩡한 솔루션을 접하고선 그나마 생각이 한 발짝이라도 나간 것이죠.

3.
사실 할 만한 이야기는 다 했지만 조금도 끼적거려 봅니다. 마하반야 님과 제가 공유하는 지점은 디바이스 중심의 관점을 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로 자리 하는 위치가 달라 발생하는 다소 사소한 차이를 빼놓고 한 가지를 더 말해 보면 플랫폼의 통일, 그리고 저작권의 보호입니다. 디바이스는 표준화할 필요가 없다치더라도 플랫폼은 통일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여타의 포맷을 어느 디바이스에서나 가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이 책은 문서의 코덱스라는 동일한 플랫폼이 존재합니다. 때문에 구입만 하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죠. 디바이스는 마하반야 님의 말처럼 태블릿피시로 하든 이북 리더로 하든 하물며 휴대 전화로 하든 자기 능력껏 편한 대로 하면 될 듯합니다. (물론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쓰는 것은 능력껏 구비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콘텐츠는 어느 디바이스에서 구동이 되어야겠죠. 컬러와 흑백은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어느 장치에서나 읽을 만한 가독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미지도 차이나지 않게 보여야 합니다. 여기에 멀티미디어 파일도 동일하게 재생되어야겟지요. 뭐 이런 부분은 마하반야 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4.
저작권 보호도 마찬가지일 수 있으나 그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비교할 만한 게 음반 업계일 텐데 디지털 음원의 판매 수익의 배분을 볼 때 출판사 입장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서점 공급가와 비교할 때 음반 내지는 음원 공급가는 터무니없이 낮죠. 또한 동일하게 무한 복제가 가능해 공급가를 상당히 낮출 수 있는 음반과 그렇지 못한 서적을 비교하기도 어렵고요. 북토피아 파산의 실제 문제는 이러한 수익 배분에서 양자가 전혀 합의하지 못했다는 게 결정적입니다. 서적이라는 규정된 형태가 아닌 하나의 콘텐츠로 본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봅니다. 한때 시 한 편을 디지털 음원처럼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야기가 거론되었는데 들은 지 2년이 넘도록 하나 진전되는 게 없습니다. 아예 이야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비슷한 문제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5.
음반 또는 디지털 음원이 언급되어서 한마디 보탭니다. 종이 책과 음반을 비슷하게 보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음반, 정확히는 시디와 디지털 음원은 동일하게 복제가 가능합니다. 덕분에 무단 복제가 판을 쳐 시장을 망가뜨렸죠. 이것은 음악을 이진수 기호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이죠. 종이 책에 실린 텍스트와 이미지 이것 역시 이진수 기호의 집합으로 변환이 가능하고 재생산과 무한 복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종이 책에 실린 것과 이북에 실린 것은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질과 장정,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라피가 결합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들 역시 얼마든지 이진수 기호의 집합으로 재현 가능하지만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만, 이는 곧 어떤 디바이스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디스플레이에 걸려 버립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종이 신문은 망하는 지경에 처했지만, 신문의 넓은 조판은 여전히 유용합니다. 개개의 기사를 볼 때에는 인터넷에서 브라우저로 보든 이북 리더로 보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 텍스트의 나열로 구성된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겠죠. 하지만 그런 기사의 집합체로서 신문은 너른 판면에 일정하게 배열된 형태로 보아야 정보의 결합과 재구성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영향력은 쇠퇴하기도 하고 하이퍼링크라는 새로운 재구성에 뒤쳐져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는 게 개개 정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구성되는 방식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편집이겠죠. 제가 예전에 지적했던 것 중 하나가 종이책을 그대로 스캔해 또는 텍스트만 긁어서 이북용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이미지를 추가한다고 해도 새로운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라피 등이 요구되는데, 이거 하는 사람이 국내에는 없습니다. 업체는 필요성도 못 느끼고 이쪽의 비전도 없습니다.

6.
"전자책의 시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 동감합니다. 일종의 시대정신 같은 거겠죠. 이런 마당에 하루 속히 변화를 모색하고 선도하는 출판사가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 한숨만 나옵니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인 출판사가 이토록 만만디 하는 것에는 종이에 대한 여전한 수요를 기대해 보기 때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업무 특성상 종이의 사용량이 많습니다. 그런데 들고 다니며 보기 때문이 아닙니다. 워드나 스프레드시트로 문서 하나를 만들어도 출력해서 보지 않으면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피벗이 되는 모니터로 돌려 보는 사람도 있고, 무조건 출력부터 해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이가 주는 높은 가독성은 이북이 아직은 따라잡기 힘든 모양새입니다. 추천해 주신 동영상을 볼 때 결국은 스크롤을 해야 내용을 보는 장면에 눈길이 멈추더군요. 디스플레이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으니 결국은 손으로 밀고 당기고 해야 하나 봅니다. 뭐 익숙해지면 변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것은 이북 리더의 분발이 필요한 지점일 겁니다. 그리고 종이가 외려 덜 환경파괴적일 수도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하이브리드 카를 내놓으면서 친환경적이라 떠드니 누군가 한마디 하더군요. "거기 쓰는 배터리는 지구상에서 완전 분해가 불가능하다." 어느 기기를 막론하고 배터리 이거 참 흉물입니다. 오래 쓰지도 못하는 것이 분해는 불가능합니다. 종이는 잘 태우면 완전연소라도 가능하죠. 물론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키겠지만, 공장 짓는다 농장/사육장 짓는다고 황폐화시키는 숲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좀 쪼잔한 지적이긴 하지만, 현대인이 간과하는 부분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짧게 이야기한다는 게 꼬치꼬치 시비를 가르는 것 마냥 변해 버렸군요. 이 분야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다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마하반야 님 덕에 정리를 해 보네요. 물론 이게 정리한 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생각을 늘어놓은 것뿐이죠. 마하반야 님께 감사합니다. 사실 디바이스 중심의 사고를 경계하는 아이티 업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문제 지적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며 이것에 기초해 생각해 볼 단초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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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디지털 리마스터링 판이 출시되니 여기저기에서 관련 글이 보인다. 때 맞추어 단행본도 나오고, 때 아닌 비틀즈 열풍이 분다. 뭐 박스세트에 대한 욕구는 애당초 없었으니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다. 하지만 비틀즈를 좋아하기에 관심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발 맞춘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Let it be>와 <Yellow Submarine>을 일단 중고로 구매했다. 킬러 트랙이 3곡이나 있지만 그 외는 생각보다 어수선한 <Let it be>에 조금 한숨이 났고, 절반이 오케스트레이션 연주곡으로 채워진 <Yellow Submarine>을 꽤 비싼 값에 주고 샀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Yellow Submarine Songtrack>을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내 취향상 그다지 땡기지 않는 초창기 다섯 장의 앨범과 <Magical Mystery Tour>는 일단 레드 앨범으로 대체하기로 해 구매를 보류한 상태이기에 화이트 앨범과 <Past Masters>만 사면 얼추 내가 원하는 비틀즈 컬렉션은 갖추게 된다. 그런데 이 두 종의 더블 앨범은 구판보다 신판이 더 싸다. 그러면 <Revolver>와 <Rubber Soul>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다소 애매해진다. 게다가 신판은 디지팩으로만 수입돼 플라스틱 케이스인 다른 앨범들과 구색이 안 맞는다. 그렇다고 구판을 사자니 신판보다 비싸다. 그리고 분명 이 둘을 구매하면 앤솔로지를 포함한 나머지 앨범도 분명 사고 싶어질 텐데.

본디 막귀에 가깝고 대부분 회사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야 하는 불쌍(?)한 인생이기에 음질에 대한 평은커녕 구분조차 불가능에 가까울 텐데, 왠지 좋아하는 것은 새끈한 신판으로 갖고 싶은 욕심이 기지개를 켠다. 이번에 신판이 출시되면서 모노 버전과 스테레오 버전 두 종류로 출시되었다는데 그 차이도 궁금하다. 게다가 살 게 두 개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모든 앨범을 갖추고 싶은 욕구도 일어난다.

사람 욕심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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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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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되는 비법이 아니라 그저 당선율을 조금 높이는 기술적 요소를 언급한 글입니다. 낚이셨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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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알라딘 TTB리뷰에 당선됐다. 그런데 간만에 되다 보니 당선축하 적립금이 1/5토막 난 사실에 조금 경악했다. 아낄 것을 아낄 것이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수긍하기란 어렵다. 요즘 같은 시절 적립금 5만원이면 꽤 짭짤하다. 하지만 이젠 꼴랑 1만원이다. 책 한 권 사기도 버거운 금액. 그래도 꽁짜잖아 하는 마음이 반이다. 물론 반은 그래도 원고료라 생각할 만한 건데 5만원은 너무 짜잖아 하는 마음.

이런 거 당선되는 거 보면 신기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껏 24건의 TTB리뷰 중에 이주의 당선작은 5건. 이중에서 모처에서 기사로 써 당선되어도 사양해야 할 것이 5건, 서평단으로 쓴 것이 2건인지라 이것들을 제외하면 17건 중 5건 당선이니 당선율이 1/3을 넘는다. 그리고 이쯤 데이터가 쌓이니 대충 어떤 책들이 당선되는지 얼추 감이 잡힌다. 이를테면 알라딘 담당자가 좋아하는 리뷰라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 마이리뷰로는 당선된 바 없어서 확신은 못하나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막연히 추측한다.

우선 성의 있게 써야 한다. 몇 줄짜리 반토막 감상을 끼적거리는 것으로는 당선, 안 된다. 요구하는 분량을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A4지 반바닥 정도는 써야 할 듯싶다. 물론 그보다 길면 읽다가 짜증 낼 게 분명하다.  그리고 당연스레 인터넷체 같은 인포멀한 말투는 집어던지고 어느 정도 한글맞춤법과 기본 형식은 지켜 줘야 한다. 이것은 당선과 상관없이 글로 인정받는 최소 조건이기도 하다. 글자의 조합은 글이 아니다.

둘, 가급적 근자에 출간되어 소위 잘 팔리거나 서점 직원 입장에서 좀 팔리었으면 하는 책이다. 물론 다소 오래된 책도 당선되기는 하나 당선작 리스트를 죽 보면 최근에 출간되어 세일즈 포인트를 높여 가는 책들이다. 어짜피 TTB리뷰 당선작은 책을 파는 데 뽐뿌질하는 목적으로 뽑는 거다. 알라딘 특성상 인문학/사회과학적 소재를 대중용으로 풀어 쓴 책을 좋아하는 듯. 다만 아주 학술적인 책은 서점의 매출고를 올리는 데 도움되지 않기에 그닥 좋아하지 않는 듯.

셋, 앞의 둘은 너무 빤한 것이니 실제로 쓸 만한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시작은 책과 관련된 개인적 경험을 한 문단 정도로 기재해 주는 것이다. 정색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포멀한 리뷰는 안 읽는 것인지 싫어하는 것인지 담당자에게 별로 인기 없다. 사실 나보고 읽으라고 해도 읽는 둥 마는 둥 할 게다. 앞 부분에서 읽은 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바탕으로 리뷰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글을 읽는 맛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빤한 말이군.

또 빤한 말 한마디 보태면 책의 주요 내용을 압축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 뭐 리뷰라면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막상 리뷰라고 올라오는 것들 보면 그게 불성실한 게 적잖게 보인다. 자, 이렇게 빤하디빤한 전제 조건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리뷰는 리뷰답게 그리고 읽는 이가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서점을 한가득 메우고 있는 자기계발서 마냥 누구나 다 알 법한 빤한 이야기이지만 그게 세상의 이치인 걸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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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 it RockPaint it Rock - 10점
남무성 지음/고려원북스

만화가 최훈이 더위를 먹었는지 7월과 8월에 걸쳐 매달 'GM'을 무려 2회나 연재했다. 그동안 '월간 GM'이라는 별명처럼 매달 1회, 심지어 달을 며칠 넘겨서 연재하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더위 먹었나 의심이 든다. 월간 체제가 된 지 거의 일 년이 넘어가니 나 또한 무덤덤해졌는데, 그래도 '삼국전투기'에 대한 연재 복귀 지연은 늘 아쉬었다. 그러던 찰나에 최훈이 또 뭔가 일을 벌인다는 소문을 접하고 말았다. 최훈의 새로운 연재물은 민음사 웹사이트에서 연재되는 '록커두들'. 록의 역사를 최훈식 어법으로 풀어간다는 것인데, 기대하는 것 이상의 아쉬움이 몰려온다. 'GM'도 '삼국전투기'도 엉망인 마당에 새로운 연재물이라니. 도대체 최훈은 얼마나 많은 욕을 더 먹어야 두 작품을 끝낼 수 있을까? ^^: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이제 9편 연재된 '록커두들'은 아무래도 얼마 전 단행본으로 나온 남무성의
<Paint It Rock>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다른 데도 아닌 민음사라는 출판사의 웹사이트에서 연재된다는 것은 단행본 출간을 염두에 둔 것이다. '록의 역사'라는 매혹적인 주제에, 최훈의 말빨과 패러디의 결합은 제법 괜찮은 구색을 갖춘 듯하다. 문제는 최훈이 록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록에 정통한 사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역사를 논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다. 록의 역사를 서술한다 것은 자칫하면 뮤지션에 대한 가십 거리를 주절주절 늘어놓기 십상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뮤지션, 장르, 레코드사 같은 일련의 요소가 시대적 사회적 배경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상호 파악해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일관된 서술로 풀어가야 한다. 거기에 대해서는 최훈이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 시작인 만큼 기대해 볼 만하지만 그가 블로그에서 하는 이야기만 볼 때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9편의 만화를 볼 때 아직은 단편적인 일화 심지어 가십거리에 다소 쏠리는 감이 있다.

그에 비해서 이미 1권이 출간된 남무성이 쓴 <Paint I Rock>은 록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아주 충실하게 록의 역사를 설명한 작품이다. 만화치고는 다소 재미없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지만, 만화는 여러번 이야기했듯 텍스트를 풀어가는 여러 방식 중 가장 파급력이 좋은, 유력한 접근 방식일 뿐이다. 특히 최훈도 초창기에 접근했다시피 록, 정확히는 록큰롤의 태동에 대한 필연적인 사회적 맥락을 상세히 이야기한다. 멜팅폿이라는 말처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이는 미국 땅에서 흑인들의 토속적인 블루스라는 종자가 전후 호황기와 베이비붐 세대라는 토양에서 변칙적으로 피어난 식물마냥 록이 생성되었다는 서술은 아주 보편적이지만, 그만의 독특한 만화적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앞서 재미없다고 했지만 그거야 웹툰의 서술 방식에 익숙해져서 느끼는 단편적인 감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악동 롤링스톤즈를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센타까서 돈 나오면 십 원에 한 대씩"이라고, 기타의 디스토션은 무조건 "좌우지 장지지" 하는 식으로 작자 마음대로 지껄이는 것은 지역적 해석이 주는 최대한의 창작성을 잘 이용했다 싶다. 게다가 송대관이나 장기하, 김병만 같은 한국 인물이나 백초토론, 분장실의 강선생님 같은 개그 소재를 슬쩍 밀어 넣는 패러디는 만화에 적절한 양념을 쳐 준다.

처음에는 <MM Jazz>의 발행인이자 재즈 만화인 <Jazz It Up>을 쓴 알아주는 재즈 매니아인지라 록을 얼마나 제대로 이야기할까 조금 노파심이 보였지만, 그 역시 재즈로 선회하기 전까지는 이른바 열혈 록키드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프로그레시브락에 심취했다고 한다. 허기사 사실 재즈나 록이나 결과적으로는 한 뿌리에서 태어난 사촌지간 아닌가? 무릇 한 분야의 전문가는 그 우물뿐만 아니라 다른 우물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진정한 전문가가 아니던가. 사실 록이라는 음악 자체가 태생은 블루스이지만, 컨트리, 포크, 재즈, 레게, 클래식, 아방가르드, 민속음악 같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음악을 잡아 삼키며 꾸준히 진화해 온 '괴물'이 아니던가. 아 책은 록이라는 이름의 괴물의 역사를 나름 잘 절묘하게 이쁘게 색칠했다 싶다. 다만 14쪽에 걸쳐 수 명의 추천사를 쓸데없이 받는다거나 명백한 인쇄 오류에 대해 하나 책임지지 않는 출판사 고려원북스의 심뽀는 참 고약하다 싶다. 그래도 곧 나온다는 2권이 기다려지고 작가의 전작
<Jazz It Up>이 땡기는 것을 보니 아이러니하다.

2009년 9월 2주 TTB리뷰 당선작
http://camelian.tistory.com2009-09-03T05:30:29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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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알라딘 중고샵에 <석양의 무법자 CE>가 나왔길래 적립금과 쿠폰을 탈탈 털어 구매했다. 180분짜리 풀 버전을 극장에서 본 마당에 142분짜리 일반 버전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현재 DVD가 유통되는 것은 풀 버전과 다양한 서플먼트가 담긴 CE(컬렉터스 에디션)이 아니라 헐값에, 심지어 다른 영화와 세트로 묶인 일반판이었다. 서플먼트는 전무하고 화질도 조악할 것이 뻔했다. 한국의 초열악한 DVD 시장을 보건대 재출시될 확률은 극히 적은데다, 곧 블루레이 버전이 출시되니 이때가 아니면 언제 구하나 싶어 반성 주간임에도 덜컥 구매해 버렸다. 그래도 현금 지출은 1000원 대이니.

무엇보다 이 영화를 굳이 구매한 이유는 내 인생의 영화 5편 중에 하나로 꼽을 만한 내가 인정하는 걸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의 DVD를 안 갖추고 있다는 것은 그 영화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물론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을 꼽으라면 내 스스로도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더 쳐 주지만, 거기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징글맞은 찡그린 표정을 볼 수 없다. 레오네의 연출과 이스트우드의 연기가 최고로 잘 배합된 영화는 아무래도 <석양의 무법자>, 즉 영화 '놈놈놈'의 이름을 제공했던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다. 이런 마당에 어찌 안 사고 배기겠는가. 게다가 좀체 구할 수 없는 레어템이 되어 가는데.


이쯤에서 '내 인생의 영화 5편'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듯하다. 후훗. 자뻑일까?

내가 고른 '내 인생의 영화 5편'은 다음과 같다. 선정의 기준은 딱히 없다. DVD로 소장해서 이따금 보고 싶어 해야 한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이다. 절대로 자주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국 영화는 따로 뽑으려 한다[각주:1].



무간도
감독 맥조휘, 유위강 (2002 / 홍콩)
출연 양조위, 유덕화, 여문락, 정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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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가 나온다기에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영화인데 막상 보고 나서 대박이다 싶었던 영화다. 사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1위로 삼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도중 황 국장의 죽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양조위의 표정[각주:2], 도저히 잊혀지지 않았다. 내게 이랬던 영화는 별로 없다. http://gile.egloos.com/3232325 참조


석양의 무법자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1966 / 스페인, 이탈리아)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엘리 월러치, 리 반 클리프, 알도 주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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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궁합이 최적화된 영화이다. 180분짜리 풀 버전은 자못 지루한 감이 없지 않으나 마지막 3인의 결투신은 그 지루함을 잊게 했다. http://camelian.tistory.com/50 참조


랜드 앤 프리덤
감독 켄 로치 (1995 / 스페인)
출연 이안 허트, 로잔나 파스터, 프레드릭 피에롯, 톰 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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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높았던 이상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짓이겨져 버렸을 때의 참담함. 켄 로치는 그것을 아주 낭만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http://gile.egloos.com/3231493 참조


천국의 나날들
감독 테렌스 맬릭 (1978 / 미국)
출연 리처드 기어, 브룩 아담스, 티모시 스콧, 밥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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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아워[각주:3] 대에만 골라 가며 찍은 환상적인 화면이 죽인다. 이전까지 탄탄한 내러티브나 세밀한 심리/감정 묘사에만 천착하던 영화 보는 기준을 송두리째 바꾼 영화. http://camelian.tistory.com/175 참조


타인의 삶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 독일)
출연 울리히 뮈헤, 마르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울리히 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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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면서도 가슴 찡한 엔딩 신은 잘 차려진 음식에 황금 소스를 살포시 얹은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http://gile.egloos.com/3232548 참조


사실 좋은 영화가 수십 편 수백 편 있는데 달랑 5편만 고르는 것은 어폐가 있다. 적어도 내가 본 영화 중에서 '내 인생의 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을 더 소개해 본다.






  1. 즉 한국 영화 관련 글을 따로 쓴다는 것. 물론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요새 일요일에도 출근할 정도로 좀 바쁘다. [본문으로]
  2. 이 장면의 스틸컷은 알라딘의 내 서재에서 쓰고 있다. [본문으로]
  3. 일출, 일몰 전후 30분을 말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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