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는 음악 중 아내가 좀체 이해 못하는 게 이른바 '이태리 프로그레시브'이다. 과도한 극적 구성 등을 이유로 아내는 좀체 마음을 열지 못하는데, 뭐 개인의 취향이니 제발 이해해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아내가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다 아직 아이가 어리다 보니 집에서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시디를 듣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에서 업무 시간에 이어폰 꼽고 듣는 것 또한 한계가 많다. 아무리 비싼 이어폰이라 하더라도 음악을 제대로 듣는 데엔 싸구려 스피커로 크게 틀어 놓고 듣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무 중에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근무 중, 주로 교정을 볼 때 이어폰 꼽고 울며 겨자 먹기로 듣는 수밖에 없지만, 항상 그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상황이 반복될수록 결국 시디 듣는 일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포스트락 같은 요즘 끌리는 뮤지션의 곡이나 60-70년대 레전드들의 음악도 좀 들어 줘야 하기에 프로그레시브를 듣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자연스레 관심도 떨어지는 법. 작년에 라떼에미엘레가 내한 공연 했을 때에도 바쁜 업무 탓을 하며 가지 못했다. 몇달 전부터 예매해 놓고 달달달 떨던 PFM이나 뉴트롤즈 공연 때에 비하면 프로그레시브에 대한 애정은 팍 식은...

그런데 뉴트롤즈가 다시 내한한단다. 그것도 백만년만에 이름을 내보이신 달콤님의 전언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아트록페스테벌이라는 카페도 알려 주셨다. 익숙하고 그래서 반가운 이름도 보인다. 읽을거리도 많다. 간만에 에니드의 음악을 듣고, 라떼에미엘레 동영상을 보니 술이 다 깬다. 그리고 순간 울컥. 한껏 새로 태어난 기분을 느끼는데 순간 기분이 잡쳤다. 정작 중요한 공연 날짜는 9월 12-13일, 날짜가 뷁이다. 11월 초에 대대적인 마감을 치르는 나로서는 사무실에서 손가락 빨며 눈물을 글썽이며 한탄만 해야 한다. 그래도 주말인데 째고 가? 업무 쨀 요량이면 주말인데 처자식부터 챙겨야 하지 않을까? 그냥 집에서 시디라도 들을까?

덧. 나는 개인적으로 '아트락'보다는 '프로그레시브'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이유는... 그게 더 있어 보인다. ^^; 하지만 다들 아트락 아트락 하다 보니 제목만은 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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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축구의 전술, 알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 - 8점
이형석 지음/싸커라인(Soccerline)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을 드나들다 <현대축구의 전술, 알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라는 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접했다. 평소 축구 전술에 관심이 많던지라 낼름 구매했다. 정가 1.3만원이라는데 배송료 포함해 1만원이면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서점과는 유통 계약을 맺지 않고 웹사이트 직판과 옥션에서만 판매하는 게 흠이라면 흠.

예정된 날짜에 받아 본 책은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조금 놀라게 했다. 한 명이 디자인, 일러스트, 편집을 도맡아했다는 이 책의 디자인은 HWP로 편집한 듯 무척이나 심심하고 또 심심했다. 애당초 올 컬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책에선 축구장의 녹색 그라운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마치 해외 전지훈련을 나갔다가 녹색 잔디의 전용 구장이 아니라 맨땅 공설 운동장을 보고 당황한 느낌. 게다가 도중에 문단 하나를 통째로 날려 먹은 페이지가 있는가 하면 가독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타이포그래피, 빡빡한 여백의 설정 등, 책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보지 않은 이가 며칠 밤을 캐고생하며 HWP로 낑낑 됐을 뻔한 장면이 눈에 선했다.

한국 축구계나 출판계나 그 빤하디빤한 좁고 열악한 환경을 고려하면 사실 이런 책이 팔려 받자 얼마나 팔릴 것이며, 이런 책을 과감히 펴낼 출판사가 어디 있겠나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태생 자체를 축복해 줘야 하는 소중한 결실일 게다. (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 않은가. 심히 아쉽다.) 사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봐도 축구에 관련된 책 자체가 별로 없는데다, 그마저도 선수 가이드북, 에세이집이나 칼럼집에 불과할 뿐 전술 등을 다룬 축구 전문 서적은 가뭄에 콩 나 듯하다.

열악한 디자인에 비하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좋은 편이다. 전반부의 '축구 전술의 역사'와 '현대 축구의 이해' 편은 축구 전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내용을 적절히 채웠다. 우리가 흔히 뉴스나 해설로만 접해 실제로는 관념적으로 안다고 믿는 '압박 축구'와 '카테나치오' 같은 개념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어지는 포메이션 시스템별 전술의 상세한 해설과 시스템 간 대결 구도에 대한 설명은 포메이션이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한다. 특히 관념적인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맨유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의 실제 사례를 거론하며 해설하는 점에서 좀 더 이해가 쉽다. (문제는 팀 간 구분이 잘 되지 않는 단도 일러스트.)

이런 축구 전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설명한 다음에는 홀딩-앵커맨으로 구성되는 중앙 미드필드진의 필수성, 로테이션 시스템, 유럽 3대 리그의 차이점 같은 축구팬이라면 가질 만한 질문 10가지를 두고 앞서 설명한 이론을 바탕으로 답해 준다. 특히나 해외 언론 등을 통해 유입되었다가 원개념이 이상스레 변해 버린 용어를 사용하면서 발생한 축구 전술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켜 준다.

제목도 제목인데다 마무리 글에서 밝히 듯 저자 스스로 '알고 봐야' 함을 강조한다. 그저 리모콘 들고 맥주캔 부여 잡고 편한 자세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숱한 경기의 연속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차츰 발전해 온 복잡한 전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볼 것을 주문한다. 그럴 때 비로소 박지성이 재계약을 한다 만다, 주전에서 밀렸나 안 밀렸나 같은 가십은 휴지통으로 밀어 넣고 축구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덧. 알라딘에 등록돼 TTB리뷰로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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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산 뒤로 거의 주말마다 이래저래 외유를 하는데 그때마다 저녁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다. 부부가 다소 취향은 다르지만(포스팅 거리인데 사례를 좀 더 모으고 있다.) 둘 다 팝 음악을 좋아하기에, 한국에 몇 없는 팝 전문 라디오 방송을 운전 중에 듣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좋아하는 취향 가지고 둘이 티격태격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아직 아들은 중재하지 못한다. ^^;

'배철수의 음악캠프' 방송 7000회 기념으로 컴필레이션 CD가 나온다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게 발매처가 워너, 소니, 유니버설이 각각 60~70년대, 80-~90년대, 2000년대를 나눠서 더블 앨범으로 낸다는 것. 이미 예약판매를 시작한지라 뭔 곡이 실리나 봤는데, 현재 소니만 리스트를 제공한다. 저작권이 음반사 단위로 찢어져 있기에 어디 한 군데만 택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뭔가 좀 어색하다. 가령 60~70년대를 풍미한 히트곡이라도 저작권이 소니에게 있으면 이 컴필레이션에는 실리지 못한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

그래도 배철수가 7천 회 방송을 바탕으로 골라낸 것이니 기대는 된다. 아내와 내 취향이 가장 첨예하게 다르기도 한, 공개된 80~90년대 분의 리스트를 보니 선곡이 대체로 마음에 든다. 아내는 아하의 Take on me가 실린 게 마음에 안 들겠지만. 그래도 듀란 듀란 따위가 1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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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예수전 - 10점
김규항 지음/돌베개
대학에서 일반 교양으로 들었던 '서양사의 이해' 과목의 기말고사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예수의 죽음을 (신학적, 종교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 사회적인 이유를 들어 논하라."

칠판에 적힌 문제를 확인하자마자 속으로 '아싸라비야'를 외쳤다. 그리고 그야말로 일필휘지(日筆揮之)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답안지 앞뒷면을 빼곡히 채워 가며 답을 썼다. 총 소요 시간은 약 20분. 다 쓰고 나서는 점검해 보고 그럴 일은 없었기에 바로 답안지를 제출하고 퇴실했다. 속했던 동아리가 해방신학의 영향 아래 예수 복음을 하나의 운동으로써 삶과 사회에서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동아리이다 보니, 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은 입회한 이후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공부하고 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하의 악필을 자인하는 나로서는 100명이 넘게 듣는 교양 수업에서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듯하다. 점수는 생각보다 안 좋았다. 결석으로 까먹은 점수도 좀 있었지만.

김규항의 <예수전>은 그런 동아리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아주 식상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는 2천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율법 지상의 유대교 사회를 밑바닥부터 뒤흔들었고, 그 때문에 당대 기득권 세력의 견제를 받아 그야말로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돼 죽었다는 것. 김규항은 이런 예수라는 한 사내의 삶, 언행, 죽음 따위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그의 본 모습을 전(傳)한다. <예수전>에 드러나는 예수의 대척점은 교리의 대상이 되면서 우리에게선 죽어 버린 신이다. 그 신은 부자들의 신이며, 율법의 신이며, 타협의 신이며, 피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신이다. 하지만 김규항은 가난한 이들의 신이며, 율법을 깨 버리는 신이며, 불의에는 비타협적으로 맞서는 신이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에 현재했던 신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또한 예수는 신 이전에 한 인간이라 말한다.

이렇듯 <예수전>에 나타나는 주요 내용은 해방신학 관련 책 좀 읽어 봤거나 하다못해 이현주 목사의 <예수와 만난 사람들> 같은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에게는 아주 식상하겠지만, 반대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되뇌이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여기는 대다수의 기독교인에게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게다. 하지만 무엇이 2천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참 모습일까?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예수에 대한 신앙 또한 그렇게 믿을 게다.

김규항은 이런 예수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대본으로 마르코 복음을 골랐다. 4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였기에 종교적 첨가가 가장 적어 예수의 본 모습을 좀 더 전하는 복음서, 마르코 복음 말이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저본으로는 가톨릭에서 나온 <200주년 신약성서>를 썼다. 이 번역본에서 예수는 반말을 하지 않는다. 반말도 존댓말도 없던 언어로 말했던 예수의 이야기를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엄격한 한국 사회에서 올곧게 전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개신교회에서 강변하는 유일신을 강조하는 '하나님'이 아닌 보편자의 모습을 한층 더 살리는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즉 어떻게 하면 2천년 동안 오해로 가득 찬 예수의 본 모습을 제대로 까발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말이다. 평소 김규항의 언행에 학을 띈 나로서도 그의 선택에는 십분 공감한다. 그가 전하는 예수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로 공감한다. 문제는 기득권화한 교회와 불화한 채 살다 보니 예수의 복음을 점차 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일 게다.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발견한 것은 북디자이너인 안상수 선생의 몇 가지 디자인 시도이다. 파란색 합지 양장 커버에 안상수체로 제목 '예수전'을 뚫은 노란색 커버의 조화는 책의 만듦새에 관심이 생긴 내게는 재미있는 시도였다. 또한 본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끝맞춤 정렬이 아닌 왼쪽 정렬로 일관해 텍스트의 흐름을 변화를 준 시도 또한 생각해 보게 하는 시도였다. 물론 그것이 가독성을 더 떯어트릴 수 있다. 하지만 당대의 율법에 맞섰던 예수를 생각하면 양끝 맞춤의 틀에 사로잡힌 우리네 시각에 변화를 주는 그러한 시도는 유의미한 것이다.
http://camelian.tistory.com2009-05-13T11:25:13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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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드라마신화드라마 - 6점
최복현 지음/풀로엮은집(숨비소리)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라는 시리즈 제목에서 드러나는 그리스 신화의 계보도 부록이다. 이 계보도에는 카오스를 시작으로 제우스에게서 만개되는 신들과 인간들의 복잡하게 꼬인 계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사실 그리스 신화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를 비롯한 여러 구전, 필전되는 여러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힌 집단 창작물이기에 신화에 드러나는 군상들은 굳이 그들의 기행이 아니더라도 복잡한 관계 덕에 좀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국전지 커다란 종이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신과 인간 들의 계보도는 그리스 신화를 좀 더 쉽게 접근하도록 이끌어 준다.

아쉽게도 이 책의 장점은 이 계보도 부록에서 끝난다. 본문은 평이한 서술로 그리스 신화의 주요 부분을 서술해 주고 있지만, 그것이 딱히 불핀치가 쓰고 이윤기가 번역한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쉽게 읽힌다고 보기 힘들며,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같은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작보다 권위가 있다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사실 다만 이 책처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다일 뿐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에도 부록으로 신들의 계보도를 꽤 상세하게 제공한다. 물론 그리스 신화를 개작된 문학 작품으로 볼 필요도, 머리 싸매 가며 원전을 파고들며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대중 저술가가 쓴 어중간한 서술은 장점이 없다.

실제 내용 측면에서도 저자는 그리스 신화는 펠라우고스 신화, 오르페우스 신화, 호메로스가 전하는 신화, 헤시오도스가 전하는 신화, 네 가지가 얽힌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저자의 서술은 우리가 익숙한 후자 두 신화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다고 그리스 신화를 다룬 다른 책과 차이점도 없다. 저자 스스로 좀체 다른 해석을 내린다거나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보지 못하고 그저 이야기를 전해 줄 뿐이다. 신화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명한다는 인문학의 본 목적을 이행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더군다나 기존 그리스 신화 관련 책자를 분명 참조해 가며 서술했을 텐데도 참고 문헌이라 밝힌 책이 한 권도 없다는 것은 글쎄... 수십 종의 관련 서적이 난무하는 강호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행위이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그럴듯한 부록만 남는 책이다. 평이하게 쓰인 탓에 대중교통 이동 중 같은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좋긴 하지만...
http://camelian.tistory.com2009-05-13T10:51:19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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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을 닮은 방 1 - 8점
김한민 지음/세미콜론

혜성을 닮은 방 2 - 8점
김한민 지음/세미콜론

혜성을 닮은 방 3 - 8점
김한민 지음/세미콜론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가 있다. 일반적으로 대개 대사의 비중이 높고 예술성을 추구한 '고급' 만화로 여긴다. 휙 보고 마는 종래의 만화와 달리 방대하고 굵직한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인물 간의 대사나 복잡한 상황 전개를 묵직하게 풀어낸 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세미콜론이나 시공사 같은 몇몇 출판사에서 펴냈는데 <300> <와치맨> 같은 영화화한 작품이 국내에도 출간되면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았으나, 기존 만화의 전달 방식과는 다르기에 국내에서는 대체로 시덥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일단 그래픽노블의 특징은 '코믹'하지 않다. DC코믹스나 마블코믹스 같은 'comic'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출판사에서 기획해 세상에 선보였지만, 이들은 만화답지 않게 전혀 웃기지 않는다. 이들은 대체로 어둡고 음습하고 우울하며 또한 잔인하고 마초적이다. 내러티브나 인물의 묘사도 앞서 말한 것처럼 복잡하기 그지없으며 방대하다. 게다가 대체역사라든지 (어딘가 있을 법하지만) 가상 현실을 다루면서 현실을 묘사하지도 현실을 초월하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만화의 테두리 안에서 출발했지만, 그래픽 노블은 사실상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구현한 소설, 즉 그림 소설로 보는 게 외려 적절하다. 사실 그래픽 노블도 직역하면 '그림 소설'이다. 하지만 문학 하는 사람들은 그래픽 노블을 장르 소설의 범주에 넣지 않고 그저 고급스러운 만화로만 여길 뿐이다. 물론 그래픽 노블과 만화의 경계는 상당히 모호하기에 소설로만 보는 것도 쉽지는 않다. <코르토 말테제> 같은 것은 그럭저럭 소설의 범주로 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지만 <땡땡>이나 <아스테릭스>는 어째야 하나? 답은 없다.


DC코믹스나 마블코믹스가 절대 다수이고 이따금 유럽 작품들이 번역돼 출간되긴 하지만 국내작은 손에 꼽을 만하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게 바로 김한민의 <혜성을 닮은 방>이다. 새만화책에서 나온 그의 데뷔작 <유리피데스에게>를 무척 감명 깊게 읽은데다 후속작인 어린이 그림책 <웅고와 분홍 돌고래> 역시 재미있게 본지라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혜성을 닮은 방>은 그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작품을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전작에서 드러나는 끊임없이 타자와 겪는 불통을 딛고 소통하려는 갖은 노력은 이 책에서 폭발해 버렸다. 게다가 '혜성'이라든지 '소우주', '에코', '그림자'처럼 우리가 일상에 쓰는 언어와 다르게 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작품 안 세계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작품 안 인물들의 묘사나 언행 패턴 역시 독자 따위는 무시할 정도로 복잡하고 생경하다. 그나마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면 독자로서는 그나마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었을 듯. 아니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기에 텍스트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것일까?


전 3권으로 구성된 <혜성을 닮은 방> 시리즈는 혼잣말을 누군가가 몰래 기록해 그것을 도서관에 집적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한 명의 관찰자는 주인공인 혼잣말의 대상을 몰래 뒤따르며 그의 혼잣말을 녹음한다. 혼잣말은 한 사람의 사유인 동시에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산이며 또한 세계를 가동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혼잣말은 기본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거나 거부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혼자만의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누군가 엿듣는다면? 그것은 소통을 역으로 거부하는 일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혼잣말 대신 대화할 것을 요구하거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다. 하지만 자폐증을 겪는 주인공은 쉽사리 소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역으로 타자가 그와 소통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일방적으로 소통하려 하면서 외려 불통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이는 그의 전작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고립된 자아와 불통하는 세계의 대립의 결정판이다.

전작의 고대 그리스의 한 폴리스, 정글 같은 단일하고 좁은 세계와 차원이 다른 작가가 새롭게 창조해 낸 복잡 모호한 가상 세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관찰자는 얼핏 그 밖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는 애당초 소통할 수 있을까? 그 역시 불통스러운 관계를 맺는다. 관찰자는 자꾸 개입하려 하지만 연구소라는 모종의 집단은 그것을 방해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소통과 불통, 자아와 타자, 그리고 세계의 대결을 전혀 흥미지진하지 않게 이야기한다. 알 듯 모를 듯한 모호한 개념 설정이 반복되는 가운데 적지 않은 인물들이 얽힌 창조된 세계 한가운데에서 독자는 갈피를 잃기 십상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앞서 말했듯 그래도 그림으로 이 모든 게 설명된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매력이 드러난다.

저자는 애당초 자신이 설정한 세계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 모른다. 말하자면 독자와 불통하려든다는 건데... 하지만 그림이라는 하나의 단초를 제시하면서 또한 소통의 장치를 마련하기도 한다. 텍스트로만 되어 있으면 독자 스스로도 제멋대로 작품을 이해하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왜곡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그림 소설'이라는 한국 출판계에서는 독특한 방식은 적절한 표현 방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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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아내인 ALLURE님과 블로그에서 논쟁을 벌였다. 찰리 채플린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유일한 경쟁자인 버스터 키튼을 거론한 게라면 죄지만, 채플린에 우호적인 편인 나와 달리 아내는 키튼빠인지라 내가 특별히 키튼을 폄하한 것도 아닌데도 시비를 걸어온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막상 논쟁을 벌이다 보니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른다. ^^;

2년 전 3월 중순, 지금의 아내에게 막 일주일 전에 꼬여 내어 대시하고선 슬슬 수작을 걸던 와중의 일요일 오후. 안경을 새로 맞추러 홍대쪽으로 나간 김에 또 다시 수작을 걸어 볼까 했지만 아직은 모호한 관계인지라 전화는 그렇고 문자를 날렸다.

"오늘 버스터 키튼 어때요?"

아내의 블로그에서 버스터 키튼으로 흥분했던 글을 본지라 괜찮은 미끼다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키튼빠가 된 애당초 ALLURE님은 그날도 키튼의 영화를 보러 가려고 마음먹었던지라 미끼에 덥썩 물렸다. 문제는 낚시꾼. 고기가 미끼를 물면 한 번에 낚아채던가 아니면 힘싸움을 하며 고기의 진을 한것 빼논 상태에서 촥 낚아채야 하는데 한마디로 미적미적 거렸다. 뭐 내가 선수도 아니고.

문자로만 주고받던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보자고 구체적으로 약속을 잡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변명하자면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의사소통을 너무 나이브하게 해 온 내 패착이었다. 한 시간가량 미적거렸더니 ALLURE님은 다른 사람과 약속을 먼저 잡아 버렸다. 김이 팍 새긴 했지만 키튼의 영화가 궁금했던지라 약속과 상관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혹시라도 만나면 또 수작을 걸어 보면 되니까.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를 패러디한 <세 가지 시대>를 보면서 키튼의 영화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구나 싶어서 다음 영화인 <항해자>까지 보기로 마음먹고 표를 끊었다. 다음 영화가 상영되기 전 휴식 시간에 로비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예상과 달리 ALLURE님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커다란 키가 왜 안 보인담 하고 투덜거리면서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는

바로 ALLURE님이었다. 하핫.

운명이니 뭐니 하는 지리한, 하지만 감격스러운 각종 수식어가 순식간에 다 스쳐 갔다. 매표소의 자리 배정 방식은 잘 모르지만, 의도하지 않고 이렇게 앞뒤로 좌석이 잡힐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생판 모르던 두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튼 당황반 환호반의 마음과 표정을 순식간에 다잡고선 살짝 무게를 잡고선 속으로 '아싸'를 남발했다.영화가 끝나고 사정을 들으니 먼저 영화를 함께 봤던 이는 먼저 가 버려 이번 영화는 혼자 본 것이라 한다. 옆자리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싶지만 그것은 욕심이 과한 것이고...

막상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영화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뒷자리에 앉은 ALLURE님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영화에 집중. 그래도 뒷자리에서 스며나오는 웃음소리 정도는 캐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막상 영화가 끝나고나선 정확히 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밥 먹고 술 또는 차 한 잔 하면서 키튼과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겠지. 아무튼 처음부터 약속 잡고 영화 2편을 내리 함께 봤으면 더 좋았으련만 멍청하게도 명확하게 약속을 잡지 않는 바람에 데이트가 아니었던 데이트는 그저 반쪽으로 끝나 버렸다.

시간이 지나 정식으로 사귀고 나니 그때의 내 실수를 걸고 넘어진다. 물론 아예 혹평. 졸지에 믿지 못할 남자의 대열에 섰는데 이게 처음이 아니란다. 일주일 동안 두 번의 실수를 더 저질렀다고 한다. 3월 중순 하면 떠오르는... 맞다. 화이트데이다. 내 딴에는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내가 관심 있다고 대시한 마당에 화이트데이를 챙기는 것은 성급하다, 내가 관찰해 온 ALLURE님은 상업 지향적인 화이트데이 따위에는 관심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상대방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어찌됐는 내가 마음이 있다면 챙겼어야 했단다. 그리고 챙기는 거 싫어하는 여자 없다는... 아뿔사. 가뜩이나 좋게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상을 뒤엎었군 싶었다. 그런데 세 가지 실수라 제목을 달았다시피 한 가지 실수가 더 있었다.

대시한 다음날, 저녁이 되자 또 꼬여 내 수작을 걸라고 했는데 ALLURE님은 급히 사야 할 책이 있다고 광화문에 가야 한다고 한다. 그때에는 광화문에 직장이 있었는데 연락을 주고받을 때에는 이미 퇴근해 집에 들어와 있던 상황. 광화문에 함께 가자고 하는 ALLURE님의 문자에 대한 나만의 걸작 답변.

"지금 막 광화문에서 퇴근한 사람에겐 너무 가혹한데요."

지금 생각해도 미쳤지 싶다. 전날 대시에 대한 대답으로 뭔소리인지 모를 딴소리를 들었던 마당에 환심을 사기는커녕 왕비호 되기 딱 좋은 망언을 저리 하다니. 물론 술 마시지 않는 한 퇴근 후에 회사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거 직장인으로서 참 할 짓 못 되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 멀지도 않은데 좀 가 주면 안 되나? 지금도 드는 이 생각이 그때에는 왜 안 났을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어찌어찌 해서 밤 늦게 만나 바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조금 점수를 땄다 하지만 이미 상당히 점수를 까먹은 상태에서 만회해 봤자 본전도 안 되었을 것이다.

여튼 딱 7일 종안 내가 저지른 세 가지 실수는 결혼하기 전까지 두고 두고 아내가 나를 갈구는 수단이 되었다. 결혼하고선 안 갈구냐고? 그것은 아니다. 또 다른 실수에 앞의 실수들이 묻혔을 뿐. 실수야 어찌 됐든 거듭된 수작질과 낚시질에 우리 둘은 사귀는 지경이 되었고, 길지 않은 연애 끝에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실수가 비단 저 세 가지뿐이야겠냐만 지금에서 저 사건들은 실수이기 이전에 하나의 매듭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두 사람을 엮는 매듭 말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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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만든 교과서에 '비료 지기'라는 시를 실었다. 이오덕 선생이 오래 전에 학생들이 쓴 시를 엮어 낸 책에 실린 시인데, 한동헌 씨가 곡을 붙여 메아리가 불렀다. 그리고 한돌 씨는 이 곡을 비롯해 자기 곡과 김민기 씨가 만든 몇 곡을 아예 아이들이 부르게 했는데, 그게 바로 <몽실이와 하늘 아이들>이다. 1992년에 LP로 나온 이 앨범은 희귀 앨범이다. CD로도 나오긴 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희귀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것을 득템했냐고?

그것은 아니고, 자료 확보 차 넷의 세계를 후배와 함께 뒤지다 겨우 LP를 발견했다. 가격은 5.5만 원. 찾아도 찾아도 없는 마당에 나쁘지 않은 가격. 그리고 LP를 복각하기로 했고, 몇 군데 알아본 결과 2만 원에 복각해 주는 곳을 찾아 복각을 의뢰해 CD를 넘겨 받았다. 그리고 이것을 분량상 표준 음질로 리핑했다. 이참에 인쇄로 쓸 만한 이미지 좀 구해 봐 아예 앞 뒤 커버도 만들어야겠다.

저작권법에 위반되는 행위이긴 하나 절판된 지 오래돼 희귀 아이템이 된 만큼 자료의 보존과 소개 차 일단 전 곡을 올려 둔다. 이런 음악을 불법으로라도 올려야 하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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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야후가 선정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편' 가운데 후반부 50편에 대한 리스트와 짤막한 코멘트를 올린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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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특별판 - 전10권 - 8점
김만중 외 지음/민음사

올초에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 200권 돌파 기념으로 10종 특별판을 내놓았다. 인터넷서점에서 제공하는 이미지를 보자니 들쭉날쭉한 판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끄럼틀 지붕 박스, 그리고 책을 고른 기준의 모호함 따위의 이유로 '얼씨구 씨잘데기 없는 데 돈 썼네'라고 넘어갔다. 그리고 후배가 그것을 살까 말까 물어봤을 때 이 같은 이유로 분명 후회할 거라 했다.

어제 민음사 대표인 장은수 씨의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저 특별판의 아주 일부만 흘겨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강의의 핵심은 책의 정의, 그리고 물성(物性)이었는데, 강사는 그러한 정의와 물성을 파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 특별판은 그러한 실험의 일환이라는 거다.

박스 세트라는 상품이 가져다주는 고정관념은 일단 들쭉날쭉한 판형에서 파괴된다. 컬렉터가 아무리 꽂아 두는 것을 좋아한다 해도 쫙 '가오'가 난다 해도 시리즈가 똑같은 판형으로 일률적으로 꽂아 두는 것은 인류가 수백 년째 고수해 오고 있는 '지난' 시대의 방식이다. 물론 나는 가오를 중시하기는 하지만, 발상이라는 것은 전환해 봐야 하는 거고 고정관념은 깨 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 밖에도 이 시리즈는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서모컬러 잉크를 사용한다든지, 잉크가 번지지 않는 초고가 용지를 쓴다든지, 고전의 전형적인 텍스트 배치 방식을 바꾼다든지, 자수 기법을 도입해 수제작 장정을 하는 등 다채로운 디자인 방식을 도입했단다. 자세한 것은 민음사에서 제공하는 동영상을 보면 된다.

동영상 내려받기(마우스 오른쪽 버튼 눌러 '링크를 다른 이름으로 저장' 누르기)

대체로 이 특별판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나처럼 들쭉날쭉한 판형부터 문제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싼 가격에 낱권 판매를 안 한다는 사람에 심지어 책에 쓸데없는 인테리어질한다는 사람도 있다. 책의 선정 기준이나 여전한 오탈자 문제야 출판사를 탓할 만하다. 하지만 책이 이러한 꼴로 나오게 된 맥락을 이해하지 않은 채 그저 돈질한다고 하는 비판은 당최 이 특별판, 나아가 이 출판사의 실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아주 당연하게도 이 책은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이 아니다. 북리펀드로 책을 되파는 사람이나 도서관에서만 빌려 읽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책을 소장할 만한 자산으로 보고, 수집 가치가 있다 싶으면 과감히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물론 척박한 한국의 출판 시장에 이러한 자는 아주 극소수이다. 하지만 애당초 2000세트 한정판이라 한 것은 그런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게 잡아도 2000명을 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특별판 발행을 최종 결재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인지 모르지만 이 책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다. 모든 컨텐츠가 디지털로 전환할 것을 강요받는 이 시기에, 오로지 책만이 가지는 여전한 가치를 지키고 높이는 이 시도의 결과는 앞서 말한 대중의 불평과 출판사의 적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실험이라는 점에서는 이것은 분명 자산이 될 것이다. 적어도 한국 땅에 이렇게 북디자인을 놓고 적극적으로 실험한 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칭찬은 했는데... 저 시리즈를 살 요량은 없다. 값도 비싸고 둘 데도 없고 문학에도 별 흥미가 없다. 산다 해도 다른 책 살 돈 2달치를 떼려 박아야 하는데 그러기도 쉽지 않다. 다음주에 구경이나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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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코리아 말고 야후닷컴에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편을 선정했다. 역사적 중요성과 문화적 영향력(historical importance and cultural impact)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명확한 선정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결과를 봐서도 <Once Upon A Time In America>나 <Gone with the Wind> 같은 영화가 빠져 있기도 하지만, 두 영화가 누구에게나 절대적 걸작이라고는 꼽힌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 누락작에 대한 언급은 일단 팻으. 일전에 엠블에서 포스팅했던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서 선정한 영화와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이글루스로 옮기면서 리스트가 사라져 버려 네온님의 포스트에서 그 리스트를 볼 수 있다. (젠장 다시 작업해야 하나?)

영화 리스트에 짤막한 코멘트를 덧붙였다. 물론 코멘트라고 하기에는 영화에 대한 한 줄 잡담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안 본 영화들이기에... ^^; 영화는 중요도나 선호도 순이 아니라 영문 알파벳 순으로 리스트업되었다. 100편에다 코멘트를 다는지라 일단 전반부 50작만 포스팅한다. 후반부 50작도 조만간 하겠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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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상세보기
피터 박스올 지음 | 마로니에북스 펴냄
최고의 고전과 문제작을 집대성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 . 다양한 분야의 책 중에서도 소설 문학의... 인류의 정신적 지도를 그려온 1001편의 작품들을 망라하였다. 이 책에서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

알라딘에서 사은품으로 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1권>.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을 국내 발간작 중심으로 추려 사은품으로 제작했다는데... 맨 뒤편에 나온 체크리스트를 보다가 문득 발견한 사실.

'이거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 아냐?'

아이작 아시모프의 <나는 로봇>(이 책에 이미지도 쓰인 우리교육에 나온 번역작은 <아이, 로봇>인데...)부터 존 밸빌의 <바다>에 이르는 101권의 책은 모두 소설이다.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만화로도 보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래픽 노블'이라는 소설의 한 유형으로도 보기에 소설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 사은품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이라 해야 옳다.

그런데 원작인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은 어떨까? 국내 비발간작도 꽤 되는 1001권의 목록을 일일히 확일할 수 없지만, 대충 훑어보니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01권>이라 해야 옳을 듯.

이쯤 되면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국어 교과서 편집자 맞나?) 나로서는 눈쌀이 찌뿌려진다. 젠장 문학만 책인가? 문학 가운데서도 소설만 책인가? 투덜투덜. 가뜩이나 작년에 만든 교과서 심사본에 문학 작품이 적다는 불평을 듣고 기분이 언짢은데(문학=국어는 아니잖소!) 뭐 이래?

책 소개에는 "소설 문학 작품 1001편을 담았다" "소설이 왜 주목받는지, 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는지에 대한 대답이 효과적으로 담겨 있다."라는 문장이 적혔지만, 글쎄... '책'이라 해 놓고 '소설'만 이야기하는 책은 한마디로 눈꼴시렵다. 원제 자체가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이라 하지만, 번역해 내놓으면서 출판사에서 '편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일단 소설과 책을 구분 못하는 피터 박스올이라는 '문학' 교수에게 육두문자를 퍼부어야겠지만...

사족: 내가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인문학의 한 축인 문학의 영향력과 위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소설(문학)=책으로 놓은 사고방식이 마음에 안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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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슈퍼스타 감사용>이 있다면, 미국에는 <내츄럴>이 있다.
물론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감사용>이 더 높지만,
엔딩의 극적인 부분은 <내츄럴>이 조금 더...

9회말 2아웃. 2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자가 2명 나가 있는 상황.
이대로 경기는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역전 스리런홈런?

타석에 선 이는 35살배기 신인 로이 홉스.
불운 사고로 16년 동안 야구를 하지 못하다 이제 막 진가를 발휘하는 비운의 강타자.
그러나 그는 최하위 구단을 망치려는 경영진의 음모로 간택(?)된 인물.

2스트라이크 노 볼 상황 복부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파울볼에 그의 분신인 배트 '원더보이'는 두 동강 났다.

몸 상태를 걱정하는 주심의 말에 대한 로이의 대답은
"It's baseball."
그리고 날라오는 몸쪽 빠른 공.



길다 싶으면 이 동영상을,
이것마저 길다 싶으면 이 페이지의 동영상을 보시라.

WBC 결승전 때문인지 야구 영화를 모은 포스트가 올라왔고,  이 영화가 거론되었다. 어렸을 적 TV에서 보고 감동받았던 영화. 하지만 이 영화는 나를 야빠로 만들지 못했다. 골든볼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축구에서는 한 방에 경기를 끝내 버리는 이런 극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하게 됐으니 좀 안타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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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 And Hell >(1975)
Vangelis: piano, Moog, Fender Rhodes, synthesizers, percussion, drums
Jon Anderson: vocal on So long ago, so clear)
Vana Veroutis:
vocal on 12 O'Clock)
English Chamber Choir: chorus

불구덩이 속에서 건반을 두드리는 날개 달린 손. 날개 달린 신발이야 헤르메스를 연상케 한다지만 날개 달린 손은 또 뭐람. 앨범에 수록된 곡은 LP 한 면을 가득 채우는 길이의 단 두 곡뿐. 앨범 뒷면에는 So long ago, so clear도 명기돼 있지만, 시디에는 Heaven And Hell Part I과 Heaven And Hell Part II 단 두 트랙만 있다. 실제로 이 앨범은 전반부 4곡, 후반부 5곡으로 이루어진, 앨범 통째로 토털 컨셉의 거대한 조곡이다. 시디가 나오기 전에 만들어지는 바람에 LP의 한계(면당 러닝타임 23분 정도)상 부득이 하게 두 트랙으로 나뉜 것. 그리고 So long ago, so clear는 워낙 인기가 좋은 파트인지라 후대에 따로 명기한 듯싶다.

사람들은 대개 제목 그대로 전반부를 천국, 후반부를 지옥에 비교하는데 글쎄... 듣기 나름이다. 외려 전반부가 지옥을, 후반부가 천국을 상징하는 듯하기도 하고, 내게는 대체로 천국과 지옥의 사이에서 양쪽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심판에 앞서 변론하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결론은 천국 행과 지옥 행을 가르는 최후의 심판.

전체 아홉 부분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파트는 4번째 파트인 예스 출신의 존 앤더슨이 부른 So long ago, so clear(이 곡은 TV시리즈 <Cosmos>에도 삽입됐단다), 가야금 소리를 신디사이저로 구현한 듯한 6번째 파트 Needles and Bones, 그리고 CF음악으로 자주 쓰여 반겔리스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즘 들어봤을 법한 음산한 스캣인 12 O'Clock이다.

전 곡을 통으로 듣고 싶으면 노발리스님의 포스트를,


재미있는 것은 앨범의 뒤 커버에는 얼어 버린 날개 달린 손이 등장한다.
무슨 뜻일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전면 커버에서 불구덩이만 제거하고 파란색 배경만 깐 이미지이다.
뒷면 커버 이미지 만들기, 참 쉽죠~ ^^;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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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vine Comedy를 보고 단테의 '신곡'을 떠올리는 이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수식어인 Divine의 뜻을 생각지 않고 그저 Comedy라는 단어 하나에 무슨 개그 밴드인 줄 아는 사람도 종종 있다.

개그 밴드는 아니지만 인류사의 위대한 고전이라 칭송받는다는 이 거창한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쓰는 이들이 있다.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현악 반주와 느끼한 보컬을 적절히 배합하고 뮤지컬스러움을 더한 챔버팝으로 분류되는 음악을 한다.

가사는 영어 듣기 평가라 생각하고 열심히 듣고 받아쓰기 해 보면 의외로 재미있는 결과를 접할지도...

from <Promenade>(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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