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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5 묵자, 겸애설과 세 가지 판단기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복숭아를 훔치는 것보다 죄가 더 무겁다. 그래서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不義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크게 나라를 공격하면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칭송하면서 의로움이라고 한다. 이러고서도 의와 불의의 분별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 <묵자>
 
언론에서는 안성기와 유덕화 같은 동아시아 각국의 스타가 출연한 것으로 떠들지만, 영화 <묵공>은 적어도 내게는 묵가의 이야기를 담아 뇌리에 각인됐다. 묵가는 묵적이라 하는 장인壯人 출신의 한 제자諸子의 사상을 따르는 무리를 말한다. 흔히 겸애설이라고 하는 사해평등주의, 박애주의, 반전평화주의로 알려진 묵가는 유학이 국학으로 자리 잡히면서 거의 박멸됐지만, 맹자 스스로 "양주와 묵적의 말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라고 한탄했을 정도로 춘추시대 당시에는 주도적인 학풍이 아니었나 싶다.
 
묵가는 개인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동일하게 여겨야 한다는 다분히 종교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사는 무리로서, 하나의 수도자로서 자신들을 혹독히 수련하고, 또한 조직적으로 그들의 사상을 행동으로 옮긴 무리였다. <묵공>에서 양나라는 조나라가 침략해 오자 묵가에게 원병을 요청한다. 실제로 묵가는 약소국을 대신해 방어전을 펼치며 그들의 겸애설을 실천으로 옮겼던 이들이다. 조금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자연스레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켄 로치의 <랜드 앤드 프리덤>에 묘사된 국제여단을 비롯한 스페인전쟁에 참여한 유럽과 미국의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영화가 곧 개봉하면서 슬슬 묵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 묵가의 책을 읽으려 했더니, 논술문제로 출제되다 보니 대부분 청소년용으로 재단된 책들이다. 훑어 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게 있어 옮겨 본다.
우리는 어떻게 어떤 사람들의 이론이 올바른 대안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가? 반드시 판단기준을 세워야 한다. 판단기준이 없이 주장하는 것은 비유컨대 회전하는 물레 위에서 동쪽과 서쪽의 방향을 정하는 것과 같다. 옳고 그름, 이로움과 해로움은 분명하게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무엇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가지 표준三表’이 있어야 한다. ‘세 가지 표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근본, 증거, 유용성이 있어야 한다. 근본은 어디에서 발견하는가? 저 위의 고대 성왕의 실천에서 발견한다. 그 증거는 어디에서 발견하는가? 저 아래 백성들이 실제로 보고 듣는 것을 살핌으로써 발견한다. 어디에서 그 유용성을 발견하는가? 형벌과 정치에 적용하고, 그것이 국가 백성 인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살핀다. 이것이 이른바 주장이 가져야 하는 ‘세 가지 표준’이다. - <묵자>

묵가는 중국 고대에서 여느 사상가들과 다르게 합리적인 논증을 중시했다. 모름지기 주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필요한데, 묵자는 이 판단기준을 세 가지 표준三表, 즉 근본(本), 원인(原), 유용성(用)으로 정리했다. "고대 성왕의 실천"이라는 근본이, "백성들이 실제로 보고 듣는 것"이라는 원인이 반드시 맞다고 보기 힘들며 더욱이 "인민의 이익"이 타국 인민에게도 적용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근본, 원인, 유용성이라는 삼표는 실제 일국이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데 반드시 요구되는 말 그대로의 표준으로서 판단기준이 아닌가. 겸애설과 함께 이 삼표의 판단기준은 묵가를 좀 더 공부하게끔 이끌어 준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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