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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4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를 돌려다오 8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 - 8점
김태권 지음/한겨레출판

<팝툰>에 김태권이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를 연재한다는 말에 덜컥 정기구독을 할까 했다. 아무래도 잡지를 매달 사 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다소 목돈이 들고 꽂아둘 데가 없어 처분할지언정 볼 만한 잡지는 정기구독을 유혹한다. 하지만 아내는 그 만화는 어짜피 단행본으로 나올 거라며 정기구독을 말렸고, 나는 군소리 없이 아내의 말에 수긍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렀고, 나는 그 만화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그러다 신간 뉴스레터에서 접한 김태권의 새 책 소식. <십자군 이야기> 3권의 발간을 오매불망하는지라 김태권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가져다주는 기대감도 있는데, 거기에 그동안 내가 잊고 있던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를 단행본으로 엮은 거라니. 구매를 도저히 튕길 수 없었다.

문제는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라는 아주 드라이한 제목. 도대체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라는 제목에서 풍기던 '포쓰'는 어데 가고, 저런 '로마법 대전' 같은 딱딱한 제목이 남았단 말인가.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를 통해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궤적을 좇아간다는 애초의 콘셉트는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라는 제목에 짓눌려 버렸다. 이러나 저러나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점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이것이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미술사 책도 아닌, 위트와 유머로 기존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만화인 마당에 저런 제목을 단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책을 팔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팝툰에 연재할 때 서점에 가도 잡지가 온통 래핑된 탓에 정작 만화를 보지 못했는데 막상 단행본을 구매해 만화를 보니 재미가 없었다. 아, 실망. 만약 미리 봤으면 구매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래 김태권의 만화는 재미없었다. '창비주간논평'에 연재하는 '20세기 연대기' 또한 매주 챙겨 보기는 하지만 재미없다고 투덜거린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나름 유머를 구사하려 하지만, 잘해야 피식 웃게 하는 데 그친다. 혼자 재미있어하고 혼자 즐거워한다고나 할까? 사실 그에 매료되게 했던 <십자군 이야기>도 그자지 재미있는 '만화책'은 아니었다. 그의 재능은 만화를 재미있게 구성하는, 시쳇말로 '빵 터지게' 하는 능력이 아니라 역사와 시사를 넘나들며 기득권층의 위악성이나 문제의 심각성을 밝혀 내고 그것을 사정 없이 비꼬는 데 있다. 다만 비꼬는 기법이 기존의 만화(특히 웹툰) 문법을 따르지 않는 데서 어색함을 유발하고, 이것이 그의 만화를 재미없게 만드는 원인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장기를 잘 살렸지만, 재미있는 만화책이 되려면 저자 스스로가 좀 더 유머를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그랬다간 그의 장기마저 사라지기 십상이다.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는 분명 만화책이다. 그런 점에서 재미없는 만화책은 사장되어야 할 것이나, 만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말 또한 사장되어야 한다. 만화는 텍스트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저자의 주요한 서술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빵 터지게 하는 재미가 아니라 연속적인 이미지에 텍스트를 담아 내는 행위이다.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는 '미술지식만화'라는 레테르를 붙이고 있다. 즉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지식을 만화라는 텍스트로 전달하는 책이라는 말이다. 널리고 널린 게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인지라 그림을 자체를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림만 본다고 그림의 맥락을 아는 것은 천재가 아닌 양 쉽지 않으며, 설사 안다 해도 일부만 보거나 오해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려 해서인지 그림을 설명한 책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런 책들의 대부분은 '어렵다'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미술사학자 또는 미학자가 자신이 배운, 자신이 가르치는 언어로 설명한 대부분의 책은 그림을, 미술사를 잘 모르는 이들이 읽기에는 여전히 어렵다. 그런 점에서 만화라는 친숙한 서술 방식으로 독자에게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이 책의 가치는 높은 편이다. 저자 스스로도 학부에서 미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서양 고전을 배우는지라 스스로도 욕심이 나고, 또한 그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만화라는 서술 방식을 적용했다 해도 단순히 미술가와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참 재미없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바사리라는 실존 인물이 시간 이동을 해 전대의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탐구/조사한다는 접근 방식은 매력적이다. 14세기의 세계를 책으로만 본 얼토당토 않는 20세기, 21세기의 인물이 섣불리 14세기로 가는 것보다는 실제로 르네상스 미술가들을 열전으로 펴낸 바사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은 탁월하다. 그런데 출판사는 왜 제목을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라는 밀전병 같은 제목으로 밀어 버렸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책 자체가 재미없는 만화라는 점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평범 속에 비범을 가둘 때 작자는 스스로의 창의성을 잃어 버리기 쉽다.

덧.
TTB리뷰에 링크된 다른 리뷰
를 보니 잡지 연재분과 단행본은 꽤 다르다 한다. 어쩐지 탐정이라 하기엔 어딘가 어정쩡해 보이더니. ^^: 내가 긍정적으로 보았던 애초의 콘셉트는 아마 실패였나 보다. 그렇다면 제목의 변경은 이해가 간다. 내용이 바뀌었으니 제목도 따라서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제목은 너무나 심심하다. 거기에 애초의 콘셉트가 실패한 것도 애석하도다.
http://camelian.tistory.com2009-07-14T00:04:560.3810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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