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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30 High Hopes...
핑크 플로이드의 스튜디오 앨범은 다 가지고 있는데, 이중에서 굳이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The Dark Side Of The Moon>도 <The Wall>도 아닌, 아마도 가장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1994년작 <The Division Bell>을 고르지 않을까 싶다. 이 앨범은 실제로 가장 처음 들은, 그리고 가장 처음 산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이다. 물론 라디오에서 이전에도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 곡들을 몇 번 듣기는 했지만, 앨범을 온전히 통으로 들은 것은 <The Division Bell>이 최초였다. 무척 오랜만에 핑크 플로이드의 정규 앨범이 나온지라 앨범 발매 당시 팝 음악을 다루는 라디오 방송이나 잡지에서는 <The Division Bell>에 대해 전성기 시절의 핑크 플로이드를 재현했다느니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시일이 지나니 로저 워터스의 부재를 언급하거나 기대만 못하다, 전성기는 지난 지 오래됐다, 라는 혹평도 쏟아져 나왔지만, 모아이 석상을 차용한 앨범 커버 이미지와 Cluster One라는 첫 곡만으로도 나는 핑크 플로이드에 흠뻑 빠져들었고, 그 후 없는 돈을 털어 가며 십수 년 동안 그들의 앨범을 한 장 한 장 사 모았다.

연주곡인 첫 곡부터 앨범과 뮤지션에 빠져들게 했던 <The Division Bell>에서 내가 좋아하는 곡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곡이었다. 방송에서는 Take It Back이나 Keep Talking이 주로 흘러나왔지만 뉴트롤스의 Adagio나 킹크림슨의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처럼 단번에 나를 사로잡은 곡은 묘한 울림을 주는 종소리로 시작하는, 그리고 그것으로 끝을 맺는 High Hopes였다. 물론 우리네 종과 달리 중후한 멋도 없고, 대성당의 종처럼 묵직한 맛도 없는 고작 망치(?)로 때려 소리 내는 종소리였지만 빈 공간을 메우는 그 소리가 피아노 소리와 엮어질 때 들었던 그 느낌만으로 이미 게임은 끝났었다. 그다음 이어 나오는 핑크 플로이드의 연주와 특히 데이빗 길모어의 목소리는 실상 그 종소리를 거들 뿐. 비록 "거들 뿐'이라고 했지만 점점 고조되어 가는, 오케스트라를 가미한 핑크 플로이드의 연주는 듣는 내내 끝을 알 수 없는 스릴러 영화처럼 등골을 오싹하게 하며 내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했다. 그러다 끝나갈 때 다시 흘러나오는 종소리. 오호라 완벽한 수미쌍관이다.

유튜브에서 본, 2003년도에 발매된 <Meltdown Concert> DVD에 실린 데이빗 길모어의 연주. 샘 브라운을 위시한 무려 아홉 명의 코러스를 쓰긴 했지만, 오랜 친구들(릭 라이트, 밥 겔도프, 로버트 와이어트, 마이클 케이먼, 딕 페리)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주축된 9명의 세션과 벌인 실내악스러운 공연은 빈약(?)한 규모 탓에 허전한 듯하게 들리는 감도 있지만,  대체로 데이빗의 목소리와 첼로 연주는 그 허전한 규모가 주는 빈약함을 사사삭삭 메워 버린다. 아니 이 곡에는 당최 빈틈이라고는 없게 설계된 곡일지도 모른다. 설사 순간순간 조그마한 빈틈이라도 생길라 치면 그의 밴드가 그것마저 메워 버린다. 덕분에 중반부터 나오는 코러스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정도. 그네들이 없었어도 데이빗과 그의 친구들은 완벽한 무실점 경기를 펼쳤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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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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