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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9 정녕 희망을 찾고자 한다면 2
양극화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상세보기
이병훈 지음 | 창비 펴냄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의 다섯번째권으로 출간된 이 책에서는 날로 심각해지는 노동양극화를 직시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환경미화원에서 변리사까지 28명의...

얼마 전 <우리시대 희망찾기>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을 펼쳐들었다가 놀랐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우리시대 희망찾기' 씨리즈는 희망제작소가 [삼성로고]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집필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리즈를 기획한 박원순/이회영이 쓴  발간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삼성은 '우리시대 희망찾기의 연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기금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어랍쇼? 민간 싱크탱크라는 데에서 민주주의, 교육개혁, 국가 재정, 시민사회, 양극화, 환경 갈등을 연구해 논한 책이 삼성의 돈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다른 것은 둘째치더라도 태안 앞바다를 기름으로 뒤덮어 놓고도 50억원 외에는 못 내놓겠다는 후안무치 삼성의 돈으로 환경 갈등을 다루는 책을 만든다... 이것을 뭐라 설명해야 하나? 자기를 까는 책에도 기꺼이 돈을 내놓는 삼성의 대인배스러움을 찬양해야 할까? 영혼을 팔아서라도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겠겠다는 희망제작소의 결연한 의지를 칭송해야 할까?

1월 29일자 한겨레에 김기원 교수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성 돈 안 받는다고 학회가 문 닫는 건 아니며, 삼성이 교수들에게 보내주는 해외여행 안 간다고 인생이 비참해지지도 않는다"
- <[삶과경제]나훈아를 본받자> 중에서
이 말을 거꾸로 하면 꽤 많은('무척 많은'이겠지만 --;) 학회는 삼성의 돈으로 운영되며, 꽤 많은(역시 '무척 많은'이겠지만 --;) 교수는 삼성의 돈으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일 게다. 그러고 보니 인문학 교육을 통한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인 '성 프랜시스 대학'도 삼성 돈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육기회 균등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고른기회 장학금'도 이건희가 사재 출연(사법 처리를 면하는 조건으로 출연한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좀 더 알아봐야겠다.)한 돈이 종잣돈이다. 아, 이놈의 세상에는 삼성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구나.

물론 삼성의 돈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크다. 노숙인들이 재활하고, 가난한 집 아이가 학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그런데 그것이 과연 삼성이 선한 뜻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내놓은 '눈먼' 돈일까? 악랄한 삼성에게서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 돈 마른 공공 영역에 투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설득력 있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라고 양잿물까지 마셔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김 교수의 말처럼 "삼성과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생존을 걸지 않아도 될 땐 최소한 자존심을 지키자"라는 그의 주문도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럼 점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현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개혁의 전망을 모색하는" 데 굳이 삼성의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연구 성과가 아무리 좋을지언정 판권에 박힌 삼성 로고가 있는 한 우리 시대에 희망은 폭풍우 앞에서 켠 촛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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