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이정익 지음/길찾기
 
암울함을 인지할 때 느끼는 먹먹함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갔을 때,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덮었을 때 순간 내게 던져진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먹먹함에 한참을 멍할 때가 있다. 이정익의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는 그러한 책이다.

이 책은 만화책이다. 그리고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인권사'라는 부제가 달렸다. 만화라는 형식이 손 쉽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 선뜻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전달하기 쉬운 까닭에 그동안 '인권'을 다룬 만화책은 적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용을 전달하는 책이라고 보기 힘들다. 다루는 내용인 한국현대사도 인권도 많다고는 할 수 없어도 비교적 다루어진 편이라 그닥 새롭지도 않다. 게다가 이 책에 그려진 만화 아니 그림은 온통 어둡고 칙칙하고 음울하다 못해 암울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러한 암울함이다. 70년대 광주대단지사건부터 동일방직분뇨사건, 인혁당재건위사건, 유신정권이 자행한 고문들, 그리고 극악에 달한 한국현대사의 가장 암점인 광주민주화항쟁. 시대가 암울했는데 그것을 묘사하는 그림이 암울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게다. 밝고 맑은 그림에 암울한 내용은 가당치 않을지도 모른다. 작가인 이정익은 그래서인지 철저하게 어둡고 칙칙하고 음울한 그림 속에서 자기 스스로가 그러한 사건들을 글로 접했을 때 가졌을 법한 먹먹함을 그림에 담아냈다. 그리고 이러한 과거의 일들이 보스니아와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잔혹한 권력에 대해 두려움을 표출해 낸다.
 
그렇다. 다시는 그러한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이 여전한 폭력 앞에 작가는 어두운 과거를 또한 어둡게 그림에 담아낸다. 그러나 에필로그에서 드러나듯 사람들은 그저 옛날일, 불가피했던 일, 자기와 관련 없는 일로만 치부하며 한 때의 이야기로만 치부한다. 저자는 그래서 더더욱 슬퍼한다. 그래서일까? 제목은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이다.
 
대학 신입생 때 선배들은 으레 80년 광주에 관한 사진을 보여 주곤 했다. 그리고 세미나 주제도 그러한 암울한 현대사였고, 종종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그것이 여전함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도록 했다. 참혹함을 알게 됐을 때 가졌던 그 먹먹함. 이 책은 그 먹먹함을 내게 되살려 줬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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