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10점
정희진 지음/교양인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의 시발점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굳이 페미니즘의 ‘페’자가 나오지 않아도 여성에게 유리하거나 거꾸로 남성에게 불리하다 싶은 뉴스가 나오기가 무섭게 기사에는 수십 개의 답글이 달린다. 그 답글은 안타깝게도 본래의 목적인 상호간의 소통을 꾀하는 게 아닌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한 맺힌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남성들도 다 안다. 한국사회는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체제가 강고히 들어선 경직된 사회이며, 여성은 그 안에서 소수자이며 피해자라는 사실을. 하지만 아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끼치는, 아니 이익을 가져가는 순간 다수자는 마치 자신이 소수자가 된 양 입에 거품을 물며 자신들이 피해 입은 바를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한다. 깨놓고 말하면 자신들만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전에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어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는 사실은 과감히 휴지통에 넣어 버린 채.

여성학자 정희진은 그런 한국사회와 그 안에서 도사린 남성중심적 가부장체제를 지적하며 페미니즘이 이에 도전할 수밖에 없음을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도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자들을 못 잡아먹어 혈안이 된 ‘꼴페미’들의 한 맺힌 전투적인 자기방어가 아니다. 정희진은 이 책에서 이리 말한다.
나는 페미니즘은 저항이론․저항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여성운동은 남자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상대화시키자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차이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여성주의는 정치적 올바름, 통일성이나 단일성의 가치보다는 대화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럴 때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타자의 목소리들도 들리게 된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이제까지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존재, 특히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다양한 가치를 창조해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이를 통해 서로 성장하자는 거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그러기에 앞서 (남성들에게) 너무 익숙해져 육안이 돼 버린 색안경을 벗을 것을 주문한다. 그래야 비로소 남성들에 의해 타자他者화됐던 여성의 현실이 보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계급, 인종, 민족, 학벌, 외모, 출신지, 나이, 장애, 성정체성 같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을 자행하는 억압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 더 하면 인간은 누구나 어느 측면에서는 차별받는 소수자이며 누구도 모든 면에서 ‘성골’일 수 없다는 게다.

이쯤에서 남자들만 군대에 간다고 억울해하는 당신, 억울함을 토로하기 전에 이 사회가 얼마나 남성들에 의해 재단돼 있는지, 그 속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힘겹게 세상을 대하는지부터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바로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 여동생, 여자친구의 입장에서 말이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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