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
김응종 지음/살림


0.
내게 페르낭 브로델은 다소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대학 1학년 때 들었던 일반경제사 수업에서 선생은 둘씩 짝 지워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권을 읽고 요약해 오는 과제를 냈다. 물론 과제는 발표와 연계됐다. 말이 요약이지 그것은 한마디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도록 하는 선생의 폭거였다. 예나 지금이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일상의 이야기가 방대하게 망라된 한마디로 책을 붙잡으면 한숨부터 나오는 책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떻게 요약을 해 발표를 했는지 당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도무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정말 나와 친구,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머리를 싸매 가며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권(1권이라 하지만 상/하 두 권으로 돼 있으며 각 권은 꽤 두껍다)을 읽었다. 그리고 쓸데없이 양만 늘려 가오잡으려 한다며 브로델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후로도 브로델이나 아날학파는 그리 좋은 인상은 남지 못했다. 그네들이 말하는 주장은 일면 동감하면서도 요약할 때 느꼈던 그 지난함은 그들을 미워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브로델 이후 아날학파의 거두가 된 조르주 뒤비가 편집한 <지도로 보는 세계사>에 환장하기 전까지는.

그러다 십여 년이 지난 후 나는 <역사철학의 이해>라는 강좌를 들었고, 그 강좌의 한 챕터는 역사이론을 소개하는데, 아날학파는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20세기 역사학의 가장 굵직한 흐름이기에 역시나 수업시간 중 많은 부분을 할애해 소개됐다. 특히 아날학파 2세대이자 가장 큰 거목이라 할 수 있는 페르낭 브로델에. G선생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같은 거 읽다가 주화입마 당하지 말고 그냥 책 한 권만 읽으면 아날학파와 브로델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며 김응종의 <페르낭 브로델 | 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소개해 줬다. 그리고 나는 수업이 끝난 다음 주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었다. 책 읽은 소감은 한마디로 재미있네, 이제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도 읽어 봐야겠군, 이다.

1-1.
나는 본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관심이 많다. 시장은 태초부터 있었고 그 안에서 자본주의가 생겨났다고 믿는 주류경제학과 달리 나는 시장은 근대 초기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가정 아래 논의를 진행하는 실재주의적 경제학, 그리고 그 안에서 시장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다른 형태에 관심이 많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자기조정적 시장체계가 영국에서 형성되는 과정에 초점을 둔 칼 폴라니의 견해를 상당 부분 신뢰하는데, 브로델은 다른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조망한다. 브로델이 바라보는 그 관계의 핵심은 인간의 경제구조는 물질문명의 토대 위에 시장경제가,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 자본주의가 위치한다는 삼중구조이다. 이런 점에서 브로델은 인간의 경제생활이 발전하면서 시장이 만들어지고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또 그 안에서 상업자본주의-산업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 식으로 단선적으로 변한다는 일종의 진화론에 대해 강하게 부정한다. 그리고 그는 세 구조의 위계 속에서 그 존재방식에 따라 '복수의 자본주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행 자본주의는 경쟁을 모토로 삼는 시장경제와 달리 독점을 추구하며 "시장경제를 교란시키는 반시장경제"라고 말한다.

1-2.
브로델은 역사학과 경제학에 남긴 엄청난 영향력과 달리 저서가 그리 많지 않으며, 그의 사상체계는 <지중해>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집중돼 있기에 저자인 김응종은 두 권의 궤적을 따라가며 브로델 사상의 핵심을 설명한다. 먼저 브로델의 박사학위 청구 논문을 출판한 <지중해>는 앞으로 그가 말할 구조주의 역사학의 시원이다. 여기서 그는 구조-콩종튀르-사건이라는 삼중구조로 된 역사방법론을 제시하고, 여기서 콩종튀르의 중요성을 논파한다. 이전까지 역사학의 주된 관심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먼지'에 불과하다며 일부 정치적 사건을 제외하곤 사건 따위는 역사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폄하한다. 대표적인 게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지중해 패권이 이슬람에서 스페인에게 넘어갔다고 외우는 '레판토해전'이다. 하지만 브로델은 레판토해전 이전과 이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흔히 브로델의 역사관에 대해 듣는 개념은 '장기지속'이다. "가장 느린 변화가 가장 중요한 변화"라는 테제에서 알 수 있듯 아주 서서히 구조가 변하는 데 브로델은 초점을 두고, 인간은 그 구조의 감옥 안에 수형된 '죄수'라며 구조의 변화를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 물론 브로델의 이러한 인간을 자유롭지 않는 존재로 보며 구조의 꼭두각시 정도로 취급하는 방법론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논란이 일고 있으며 브로델의 견해는 철저히 소수의 견해로 존재한다. 하지만 브로델의 이러한 주장은 분명 당시로서는 신선한 것이었으며 그 신선함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브로델은 구조를 읽는 데 사건과 연결시키는 '콩종튀르'를 중요하게 여긴다. 브로델에게 거의 전가의 보도로 쓰이는 콩종튀르는 본디 '여러 상황circustums들이 만나 생겨난 '국면situation'으로 한 변화의 출발점'을 뜻하는 말로 "변하되 주기적으로 순환하면서 변화가 예측 가능하도록 경제활동이 일정하게 반복되는 주기"를 뜻한다. 대표적인 콩종튀르가 콘드라티에프가 이야기한 '50주년 주기' 같은 장기적 콩종튀르이다. 콩종튀르는 경제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인구변동, 국가의 크기, 전쟁 같은 다양한 콩종튀르가 존재하며, 주기의 폭도 세기 단위의 장기부터 수년의 단기까지 폭넓게 존재한다. 브로델은 이렇게 다양한 콩종튀르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설명이라고 말했다.

1-3.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세계-경제'와 '세계-제국'을 비교하며 현행 자본주의 발전을 이야기한다. 브로델이 말하는 세계-경제는 세계적인 경제를 말하는 세계경제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서 다른 세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제권을 의미하는데 정치제국과 상응하는 경제제국이라 할 수 있다. 세계-경제는 교환을 매개로 움직이며, 국가로부터 자유로웠던 도시는 세계-경제의 상층부에 위차하면서 이러한 세계-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에너지원이다. 브로델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 시골로부터 분리돼 형성된 (자유)도시는 원거리무역을 바탕으로 시골 또는 타 도시와 끊임없이 교환을 행하며 세계-경제를 움직여 왔다. 여기서 브로델은 수위가 같으면 물이 흐르지 않듯이 도시로 상징되는 교환체계의 위계가 위계적일수록 전압 차이가 발생해 교역이 활발해진다는 비유를 통해 세계-경제가 활기차게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는 교환이 이루어지며 이는 전적으로 불평등한 교환이다. 경제는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확대시키며 세계-경제의 구성원을 양극화시킨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개념은 세계-제국과 대비된다. 세계-제국은 본디 브로델의 충실한 동반자였던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창안한 개념으로 중국, 인도, 이란, 러시아 등에서 존재했던 정치적 강압에 의한 전제적인 제국을 의미하며, 마르크스가 언급한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기반한 정치 중심의 체제로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어떤 상인도 자본가도 자유롭게 활동할 여지가 없어 교육을 활성화시키지 못해 자본주의로의 발전이 저해된다. 물론 세계-경제는 세계-제국으로 변질된 가능성이 많으며, 그렇지 않고 지속적으로 팽창하면 16세기 유럽처럼 자본주의가 팽창적 발전을 꾀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브로델의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은 유럽 자체의 고유한 역동성 때문이라 읽히며, 이는 다분히 유럽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의심받으며, 다른 이들과 함께 프랑크 같은 반유럽중심주의자들로부터 공박당했다.

2.
브로델은 유럽 세계-경제의 발흥시점을 상파뉴 정기시(상설시장)가 열린 13세기로 잡는다. 이미 그때부터 유럽이 동일한 가격의 콩종튀르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세계무역과 세계시장이 형성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본래 영역은 생산이 아니라 '교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브로델의 교환우위론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천착하는 마르크스의 '생산양식론'과 크게 다르다. 이 지점에서 브로델은 교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면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분명히 이야기한다. 앞서 말했듯 경쟁을 원천으로 하는 시장경제는 독점을 원천으로 하는 자본주의 - 정확히 말하면 숫한 자본주의 중 지금의 자기조정적 시장을 가지는 근대적 자본주의 - 는 명확히 다르다는 것이다. 김응종은 브로델이 정의하는 자본주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 자리 잡고 그곳에서 변영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시장 경쟁의 '경쟁'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게ㅔ 유리하도록 교환을 왜곡시키며 질서를 교란시킨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서 나왔지만 시장경제와 대립한다. 시장경제가 합리성의 영역이라면, 자본주의의 영역은 계산과 투기의 영역이다. 시장경제는 투명한 데 반해 자본주의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토대로 삼는 것이기에 시장경제 없이는 생성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가장 높은 층에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 경제생활의 세 요소인 물질문명-시장경제-자본주의 가운데 자본주의만이 잘율적이다. 자본주의는 때에 따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리하여 교대로 또는 동시에 상업이익이나 산업이익, 지대, 국가에 대한 대부, 고리대금업 등 어는 것이든 추구한다. 자본주의는 진입해 들어갈 영역이아 포기할 영역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한다는 것,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비록 그 선택이 아주 제한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자본주의는 단 하나의 선택 속에 갇히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본주의는 하나의 영역에 전문화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익의 추구, 이익의 극대화는 자본주의의 무언의 법칙이다. 자본주의는 높은 이익이 나는 곳으 향해 수시로 변신한다. 자본주의는 이익을 좇아 자유롭게 선택하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165-116쪽)


브로델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본질을 규명하면서 흔히 알려진 것처럼 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시대에서야 시작된 게 아닌 전산업화시대, 즉 상업자본주의시대부터 존재했음을 이야기하고, 상업자본주의는 여러 자본주의주의 가운데 하나임을 이야기한다. 상업자본주의시대 대상인들은 이후의 자본가들과 달리 국가권력과 공모해 시장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원거리무역을 통해 오히려 거꾸로 시장을 조종한 이들이다. 하지만 19세기 초 이들을 대신해 산업 자본가가 등장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본주의의 시대를 연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과 새 시대의 도래를 인정하면서도 브로델은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심대한 위기가 닥쳤을 때 혹은 이윤율이 현자하게 떨어졌을 때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거의 순간적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능력이다"라면서 자본주의의 특징을 정의 내리며, 산업자본주의 또한 복수의 자본주의 중 하나임을 분명히 역설한다. 때문에 과다한 경쟁으로 인한 이윤율의 하락으로 붕괴될 거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을 부정하고, 본질적인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제거한 사회주의는 "자본의 독점을 국가의 독점으로 대체한 것이며, 하나의 해악 위에 다른 또 하나의 해악을 더한 것"에 불과하다며 현실성 없는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며 공박한다.

3.
앞서 말했듯 브로델은 인간의 경제생활을 물질문명-시장경제-자본주의라는 독창적인 삼중구조로 설명한다. 특히 이 부분에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 위에 존재하는 하나의 형태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경쟁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와 독점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대립시킨다. 이는 시장경제를 자본주의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보는 주류 경제학과 상당히 다르며, 산업이 아닌 교환을 시장경제의 중심에 두고 사회주의 역시 독점의 한 양식이라 주장하면서 마르크스 경제학과도 명백한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 현재의 자본주의는 무수한 자본주의와 경제양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서 경제와 시장의 실재성을 따져 묻는 칼 폴라니의 경제관과 어느 정도 맥을 함께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시장경제 위에 자본주의를 두면서 거대한 물질의 교환시스템으로서 시장을 이야기하면서 시장을 자본주의의 주요 메커니즘으로 보는 폴라니의 견해와 달리 경제구조를 이야기한다. 물론 주류/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칼 폴라니의 시장 개념과 브로델의 시장은 전적으로 같지 않다. 브로델의 시장 개념은 다른 경제학자들과 달리 좀 더 크고 광활한 개념인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이런 점에서 브로델이 말하는 시장의 개념이 다른 경제학의 개념과 비교해 명확하게 설명돼 있지 않다. '시장'이라는 말이 달리 쓰인다면 그것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정의와 쓰임새를 비교, 대조해 개념을 명확히 인식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브로델의 사상에 대해 어렵지 않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브로델과 아날학파에 대한 개론서로는 나무랄 데 없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는 데서는 개론에 그쳐 다소 아쉽다. 물론 이러한 아쉬움은 살림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가 갖는 전체적인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권을 더 읽어야겠다는 욕망이 생겨난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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