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 10점
김상봉 지음/한길사


우리에게는 한국사회의 교육문제를 비판한 《학벌사회》와 《도덕교육의 파시즘》으로 유명한 김상봉이 쓴 《그리스비극에 대한 편지》는 제목 그대로 그리스비극의 근본정신이 무엇이며, 어떠한 역사적 배경으로 형성됐는지에 대해 가상의 독자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책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리스로마신화’라는 이름으로 흔히 접하는 영웅들의 업적과 비극적 운명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신 왜 하필이면 고대 그리스시대에 인생과 운명의 쓰디쓴 아픔을 노래하는 《안티고네》나 《오이디푸스왕》이 지금으로 치면 〈이산〉이나 〈왕과 나〉처럼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는지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 비극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는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고도로 발전했던 기원전 5세기 무렵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같은 이전 시대에 쓰인 영웅서사시가 인륜적 보편성을 노래했고, 사포의 서정시는 개인적 주체성을 노래했다면, 그리스비극은 이 둘을 하나로 통합했다. 그렇다면 굳이 왜 이때 아테네에서 이런 비극이 융성했을까? 그리스비극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다.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퀼로스 같은 비극의 저자들은 그리스비극 안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보편적 고통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즉 민주정 아래 자유로운 존재인 아테네의 시민들은 그리스비극에 시련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이에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바로 그것은 남의 부림에 당하는 노예가 아닌 운명에 맞설지라도 행하는 자유인의 모습이다. 또한 모두가 동일하게 고통을 겪고 있음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아테네의 시민들은 비로소 저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닌 타자의 고통에 연민의 정서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폴리스라는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적극적인 존재, 즉 자유로운 시민이 된다.

《그리스비극에 대한 편지》에서 저자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리고 가장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철학하는 길이라 말한다. 이런 까닭에 저자는 그런 슬픔을 이야기하며 철학이 한가한 유희가 아닌 시대의 정신을 찾는 일임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시대의 정신은 무엇일까? 진정 자유로운 시민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그리스비극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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