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에서 생산양식을 형성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밝힘으로써사회구조의 형태와 그 사회를 지배하는 계급을 알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노동을 통해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집단과 이를 전유하는 집단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급과 전유계급이 서구사회사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며, 어떤 관계를 맺고, 시대와 사회가 바뀌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동시에 서구사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민’이라는 용어가 사회계급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는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다수 대중을 뜻하는 ‘시민’이라는 개념의 변천사를 통해 이들이 사회구조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파악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고대 그리스사회, 특히 아테네에서 시민은 노예와 비교되는 ‘자유민’을 의미했다. 전적으로 노예들이 노동하면서 사회 유지에 필요한 부를 생산했고, 시민으로서 자유민은 민회에 참여하고 추첨으로 직위를 맡아 국정을 담당했으며 전쟁시에는 보병으로서 국방을 담당했다. 당시 시민은 사회 전체적으로 소수에 불과했으나 노예계급이 노동으로 생산한 부를 전유할 수 있어 굳이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자유민인 시민 사이에서도 부의 소유 정도에 따라 점차 차별이 생겨 났고, 이는 솔론의 금권정치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배경이 됐다. 이들은 차츰 귀족, 엘리트의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정당화하며 사회지배계급을 형성해 갔다.
 
로마사회에서도 시민은 역시 자유민이었으나 동시에 자영농인 ‘평민’이었고, 귀족인 원로원 세력이 사회를 지배했다. 물론 노예계급은 여전히 존속하며 노동을 했으나, 시민들 역시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노동을 해야 했고 또한 국가의 요구에 따라 병역의무도 이행했다. 스스로의 신분적 한계를 거부하지 못했던 노예와 달리, 자유민이었던 평민들은 스스로 노동하며 병역까지 담당했기에 점차 시민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거세게 요구했다. 결국 평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호민관이 등장하면서 평민들은 국정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또한 병역과 노동을 통해 사회를 움직여 갔다. 노예들도 그리스와 달리 종종 해방되며 시민으로 편입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포에니전쟁을 비롯한 정복전쟁으로 인해 대량의 노예가 로마에 유입되면서 노예노동에 기반한 대농장인 라티푼디움이 생겨났다. 주로 원로원 세력이 농장주인 라티푼디움이 점차 커져 가자 경쟁에서 밀린 소규모 자영농인 평민은 몰락했고,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직업군인이 되거나 대농장의 소작농인 콜로누스로 편입됐다. 이런 체제를 콜로나투스라 하며 이들 콜로누스는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자유민이되 농지를 떠날 수 없는 예속된 존재로, 중세시대 등장하는 농노의 기원이 됐다.
 
중세사회에서 자유로운 시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와 로마와 달리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은 소수였으며, 대다수는 영주가 소유한 농지에 예속된 존재로 이들은 국정에 참여할 근거로 가능성도 없는 농노였다. 로마시대 콜로누스에서 기원한 농노는 농지에 얽매인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영주의 세속권력과 교회의 신성권력이라는 이중 지배계급 아래 그들의 농지에서 충실히 신의 자녀로서 충실히 노동에 종사하는 신민臣民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농노는 노동을 통해 부를 생산했고, 영주와 성직자는 전쟁과 기도라는 각각의 소임을 수행하며 부를 전유했다. 하지만 점차 왕과 교황으로 대표되는 영주와 성직자들은 수도원의 토지 소유 등을 두고 대립했으며, 이는 종교개혁에서 공식화됐다. 부의 축적을 종교적으로 엄금했던 가톨릭교회와 달리 프로테스턴트들은 부의 축적을 신의 은총으로 여기며 정당화했고, 이는 점차 사회 전체적으로 부의 축적을 가속화시켰다. 잇따른 전쟁과 신대륙의 발견 속에서 더욱더 가속화된 부의 축적은 자유롭게 고용하고 노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농노들을 토지로부터 분리시켰고, 갈 곳을 잃은 농노들은 도시로 유입돼 무산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가 됐다.
 
근대사회에서 시민은 성 안의 사람들을 뜻하는 부르주아계급이었다. 이들은 토지로부터 분리돼 도시로 편입돼 자신의 노동력 외에는 아무런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프롤레타리아와 달리 주로 상공업과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본을 소유한 신흥계층이었으며, 전통적인 지배계급인 지주계층과도 달랐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를 자신들의 자본이 투여된 공장에서 일하게 하며 부를 창출했고 전유했다. 부르주아계급은 부의 축적을 방해하는 지주계급에 기반한 왕과 귀족, 성직자 같은 일련의 구체제에 대해 프롤레타리아계급과 함께 저항했다. 혁명을 통해 구체제의 신분제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된 프롤레타리아는 정치적으로 부르주아와 동등한 시민이 됐으나, 여전히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에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여전히 부를 창출할 뿐 전유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존재였다. 반대로 부르주아계급은 이전보다 더욱 자유롭게 창출된 부를 전유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시민은 본디 국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계층을 말하는데 이들의 위상은 시대마다 달랐다. 그리스사회와 근대사회에서처럼 부를 전유하기도 하는 반면, 로마사회에서처럼 전유의 여부가 모호하기도 했으며, 중세사회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다. 이처럼 시대마다 달랐던 이유는 생산양식의 근간인 생산수단을 시민이 소유했는지, 그리고 노동으로 창출된 부를 전유할 수 있는지 여부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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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이기는 하나 숙제라고 하는 바람에 열나게 썼는데, 정작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안 하시는 바람에 그냥 갖고 돌아왔다가, 두 시간 동안 쓴 게 억울해(근무시간에 업무를 미루고 쓴 거라) 여기에 올려 본다. 메일로라도 보낼까 말까 고심중이다.
 
일주일 후 첨삭된 결과물을 받고 수정했다. 생각과 달리 내용에는 별 말이 없었다. 흠...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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