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 때 뜬금없이 사학과 3학년 전공수업인 한국사회사상사를 들었다. 별로 사학과에서도 인기 없는 과목이었던 듯한데, 난데없이 나타난 경제학과 학생에게 그다지 관심도 무심도 없이 그냥 한 명의 학생으로 대해 줬다. 강사는 꽤나 술을 좋아하던(그래서 숙취로 강의하기를 힘들어했던) 88학번이었는데 대학 시절 배웠던 선생 중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세밀하게 강의했고, 심도 깊게 질문했다. 원고 때문에 율곡을 검색하다 문득 호락논쟁에 대해 텀페이퍼를 썼던 기억이 났다. 내 컴퓨터에는 보존돼 있지 않기에 혹시나 해 그냥 한번 올려 봤던 레포트 사이트를 조회해 보니 남아 있다. 게다가 평가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사용료도 지불돼 있었다. 으하하.

이 페이퍼는 기말고사 대체로 제출하도록 한 과제였는데, 수업 중에 호락논쟁이라는 게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남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한 주제였다고 생각해 페이퍼 주제로 선정했다. 막상 쓰는 데는 힘들었는지 안 그랬는지 별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학점은 잘 나온 편이라 비교적 괜찮은 평가를 받은 듯싶다. 하지만 당시는 절대평가와 학점폭격이 이루어지던 거의 마지막 시기였다. 하지만 수업을 두 번 빼먹지 않았으면 더 좋은 학점을 받았으리라. ^^;

사실 이 글은 쓸 때 당시 참고한 자료에 대해 명확히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이리저리 짜깁기해 만든 저작권법에 심히 위배되는 글이다. 게다가 지금 보면 심히 부끄러운 오자가 많지만 개인 자료 보존 차에 기본적인 것은 교정을 보고선 이곳에 그때 페이퍼를 올려 둔다. 이 글을 스크랩해 간 사람이 종종 있는데, 올려놓고선 스크랩해 가지 말라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으면 한다. 애초에 이 블로그의 글은 부분 인용이나 이미지 스크랩 이외에는 퍼 가는 것을 허용치 않기도 하거니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서이다. 이해와 양해를 구한다.
 


Posted by Enits
,
영양가 없는 회식 때문에 못 들은 강의를 오늘에서야 녹음파일로 듣는데, 통 뭔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동영상이라면 그나마 조금 낫겠지만, 그마저도 실제로 얼굴을 대면하고 강사와 수강생 사이에 밀접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실제 강의보다 훨씬 못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오프더레코드까지 종종 있는 듯하니 괜시리 궁금증만 불러일으킨다.


오전에 들은 부분은 실제 강의가 아니라 어찌 보면 잡담처럼 들리는 이야기이지만, 몹시 중요한 이야기이다.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골자이니 공부하겠다는 마음 있는 사람에게는 무척 중요한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그 이야기의 골자는 결국 한 놈만 패라는 것. 뭐 학부생 수준에서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그에 대해 서평을 써 보면서 내공을 높인다면, 대학원생 수준에서는 공부하고 싶은 주제 하나를 택해 목 뒤에 빨대를 꼽고 조력자의 도움 아래 한 주제만 들입다 파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일 년 동안 몇 번, 몇십 번을 다시 읽어 가며 도통하란다.


말이야 쉽지. 어떻게 한 놈만 팬담. 나처럼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잡스러운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직 학부생 수준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생각한 지 4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태 졸업증명서를 확인해 보지 않았으니 내가 학부(제적)생이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 정말 나는 대학을 졸업한 게 맞나? ^^; 실제로 책이라는 것을 내 스스로 뒤적이고 공부 좀 해 보겠다고 강의 좀 듣는 게 작년 가을부터이니 학부생 수준이라고 보는 게 맞다. 뭐 그렇다면 학부생 수준에 맞게 이것저것 다 섭렵해 보고 서평 써 보면서 내가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탐색해 나가는 게 지금 내 몫일 게다.


그런데... 조금 비참해진다. 아... 이런 위화감 정말 싫다. --;


이딴 식으로 스스로 한탄하기보다는 일단 계획이나 세워 보자.


2006년 가을학기 학부 입학 기준으로...
2006년 9월-2007년 8월 : 자유교양과정
2007년 9월-2008년 8월 : 자유교양 및 전공예비과정
2008년 9월-2009년 8월 : 전공기초과정
2009년 9월-2010년 8월 : 전공심화과정 & 논문 작성

이 정도로 학부과정을 마치고 그 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뭐 올 여름이나 겨울에 진학고사(?)를 통해 학부를 4년과정으로 할지 3년과정으로 할지
아니면 학석사 통합과정으로 할지 그때 판별해 보기로 하지.
그럴려면 그때까지 앞으로 무엇을 공부할지 확정을 지어야 할 텐데...

Posted by Enits
,
이 글은 ‘역사철학의 이해’ 강좌 7주차 과제로 제출했습니다. 늘 그렇듯 업무시간에 후다닥 쓴 글인지라 엉망입니다. 다음주에는 이 글을 가지고 발표도 해야 한다는데 한숨부터 나오지만, 그만큼 좀 더 보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뭘 더 보충해야 할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근대적 산업국가의 시발점
―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66)
 
선정 이유
경제적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한국현대사의 핵심사건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97년 환란위기였다. 그 후 10년이 지났고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귀결되는 전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97년을 기점으로 했을 때 그 이전이나 이후나 실재했던 (경제)체제나 그것의 수권세력은 큰 변화가 없었다. =>경제체제의 변화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음. (반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충실한 논거가 필요.) 이는 현재 한국의 정치․경제를 좌우하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올해 치러질 대선에서 현재 가장 유력한 두 후보인 이명박과 박근혜만 봐도 알 수 있다. 박근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박정희체제의 직계 후계자이며, 이명박은 역시 박정희체제에서 쌓은 성공신화를 기반으로 정치권에 진입한 사례이다. 그런데 박정희체제가 언제부터 시작됐는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대부분 1961년 발발한 5.16군사쿠데타를 시점으로 잡겠지만, 여기서는 그 다음해 박정희가 군부 과도정권을 해체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 본격적으로 시행한 첫 사업인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점으로 잡으려 한다.
 
사건 규정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이전 제1, 2공화국의 외세의 원조로 유명하던 전前산업사회 내지는 산업화의 과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박정희의 군사정권 아래 시행된 정부 주도의 거시적 경제개발 프로젝트이다. 이후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5년마다 반복되면서 한국사회가 근대화, 개발, 수출, 성장 같은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국가단위로 총력전을 펼치도록 주도한 개발독재체제의 구체적이면서도 명시적인 ‘플랜’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 성과는 전지구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고도성장과 압축성장이며, 그 실체는 ▲미국과 일본의 외자를 발판으로, ▲정부 주도 아래 계획된, ▲중화학공업과 전자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수출 위주의 산업화과정이다. 박정희정권 이래 한국은 발전과 성장을 담론으로 하는 정치․사회체제를 수립했다. 문민정권 이후 특히 환란위기를 겪으며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기업으로 옮겨 가면서 관치경제의 틀은 어느 정도 탈각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정부가 경제정책을 좌지우지 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대통령을 위시한 수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한 국가의 경제가 세계 경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임. (역시 3개 정도의 논거를 제시해 관계를 고찰해야 함.)
 
사건 개요
1962년부터 66년까지 실행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주요 골자는 당시 가장 시급했던 전력과 석탄 같은 동력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한편, 주요 기간산업을 확충하고 사회간접자본을 충실히 갖춰 경제개발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농업생산력을 확대하여 농업소득을 증대시키며, 수출을 증대를 꾀해 국제수지를 균형화하고 기술을 진흥하는 일 등이었다. 이후 실시된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1971)에서는 식량자급화, 산림녹화, 화학․철강․기계공업 중심의 산업고도화, 7억 달러 수출목표 달성 등에 그 목표를 두었으며, 그 후에도 주로 중화학공업 육성에 주력하며 수출 주도, 중화학공업 주도의 산업화를 꾀했다. 한편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5차부터 ‘경제사회발전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박정희 사후 그 후계자인 전두환, 노태우은 물론 김영삼의 문민정부에서도 반복됐다.
 
=> 전체적으로 쓰다 말았음.
Posted by Enits
,

요즘 들어 역사문제 중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왕을 죽이면서까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한 로마와 프랑스에서 어떻게 왕이나 다름없는, 아니 오히려 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이, 무력이 아닌 대중의 합의 아래 수립됐는지이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로마와 프랑스에서 제정이 수립됐다는 결과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까? 그러한 원인은 어떻게 도출할 수 있을까? 가설로 세운 원인은 어떤 식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

1. 한스-위르겐 괴르츠의 《역사학이란 무엇인가》(뿌리와 이파리) 9장 〈원인과 결과〉에서는 이러한 원인을 분석할 때 기본적으로 전제해야 할 9가지를 제시한다. 이점들을 명심하며 다음의 책들을 하나씩 읽어 나가야 할 듯.

2. 로마와 프랑스에서 일어난 제정 성립이라는 일종의 특수한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이것이 단지 우연적 사건의 일치인지 아니면 역사적 필연성인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영호의 《역사, 철학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책세상)가 도움이 될 듯싶다. 특히 2장 〈역사 인식 상의 몇 가지 범주〉에 실린 ‘지속과 변화’ ‘수동성과 능동성’ ‘우연성과 필연성’이라는 테마를 읽어 가며 역사에서 나타나는 우연성과 필연성에 대한 어떻게 먼저 이해를 해야 할지 다잡는 게 좋을 듯하다.

3. 제프 일리와 데이비드 블랙번의 쓴 《독일 역사학의 신화 깨뜨리기》(푸른역사) 2부 〈도대체 무엇이 없었다는 말인가〉는 나치의 등장 같은 독일현대사의 쟁점들에 대해 독일만의 특수한 상황이었다는 데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책이다. 거꾸로 말하면 역사에서 드러나는 사건들이 일반적인 것인지 특수한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지 않나 싶다.

4. 존 루이스 개디스의 《역사의 풍경 - 역사가는 과거를 어떻게 그리는가》(에코리브르)는 카오스이론 같은 복잡성이론을 통해 원인과 결과에 대한 절대성을 비판한다. 여기에 덧붙여 “역사는 설명하지 않으며 방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라고 말하는 폴 벤느의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새물결는 어떨까? 2부 〈이해〉에는 ‘줄거리를 이해하기’ ‘이론·유형·개념’ ‘인과성과 소급추정’ 같은 테마가 실려 있다. 특히 ‘인과성과 소급추정’에서는 앞서 언급한 비과학적․비계량적인 역사학방법론 입장에서 인과성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펼칠지 궁금하다.

5. 마지막으로 실제 제정 성립의 과정을 다룬 톰 홀랜드의 《공화국의 몰락》(웅진닷컴)이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5~7권(한길사) 같은 제정이 성립되어 가는 과정을 기술한 책을 읽으며 앞서 언급된 우연성과 필연성, 일반성과 특수성, 절대성과 상대성 등을 염두에 두면서 차근차근 읽으면 어떨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제는 이렇게 냈는데...
인터넷서점에서 역사학일반 분야를 주루룩 훑으며 기본설명과 목차만 가지고 정리한 거라
좋은 책인지는커녕 적당한 책인지조차 모른다. 쩝...
이 엉성함에 결국 말만 늘이고 말았다.
그냥 목록만 적어 놓을 걸 그랬나?
했다는 것에 만족을? 그러기엔 다음주가 너무 두렵다.
Posted by Enits
,
한 사회에서 생산양식을 형성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밝힘으로써사회구조의 형태와 그 사회를 지배하는 계급을 알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노동을 통해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집단과 이를 전유하는 집단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급과 전유계급이 서구사회사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며, 어떤 관계를 맺고, 시대와 사회가 바뀌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동시에 서구사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민’이라는 용어가 사회계급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는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다수 대중을 뜻하는 ‘시민’이라는 개념의 변천사를 통해 이들이 사회구조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파악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고대 그리스사회, 특히 아테네에서 시민은 노예와 비교되는 ‘자유민’을 의미했다. 전적으로 노예들이 노동하면서 사회 유지에 필요한 부를 생산했고, 시민으로서 자유민은 민회에 참여하고 추첨으로 직위를 맡아 국정을 담당했으며 전쟁시에는 보병으로서 국방을 담당했다. 당시 시민은 사회 전체적으로 소수에 불과했으나 노예계급이 노동으로 생산한 부를 전유할 수 있어 굳이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자유민인 시민 사이에서도 부의 소유 정도에 따라 점차 차별이 생겨 났고, 이는 솔론의 금권정치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배경이 됐다. 이들은 차츰 귀족, 엘리트의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정당화하며 사회지배계급을 형성해 갔다.
 
로마사회에서도 시민은 역시 자유민이었으나 동시에 자영농인 ‘평민’이었고, 귀족인 원로원 세력이 사회를 지배했다. 물론 노예계급은 여전히 존속하며 노동을 했으나, 시민들 역시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노동을 해야 했고 또한 국가의 요구에 따라 병역의무도 이행했다. 스스로의 신분적 한계를 거부하지 못했던 노예와 달리, 자유민이었던 평민들은 스스로 노동하며 병역까지 담당했기에 점차 시민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거세게 요구했다. 결국 평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호민관이 등장하면서 평민들은 국정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또한 병역과 노동을 통해 사회를 움직여 갔다. 노예들도 그리스와 달리 종종 해방되며 시민으로 편입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포에니전쟁을 비롯한 정복전쟁으로 인해 대량의 노예가 로마에 유입되면서 노예노동에 기반한 대농장인 라티푼디움이 생겨났다. 주로 원로원 세력이 농장주인 라티푼디움이 점차 커져 가자 경쟁에서 밀린 소규모 자영농인 평민은 몰락했고,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직업군인이 되거나 대농장의 소작농인 콜로누스로 편입됐다. 이런 체제를 콜로나투스라 하며 이들 콜로누스는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자유민이되 농지를 떠날 수 없는 예속된 존재로, 중세시대 등장하는 농노의 기원이 됐다.
 
중세사회에서 자유로운 시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와 로마와 달리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은 소수였으며, 대다수는 영주가 소유한 농지에 예속된 존재로 이들은 국정에 참여할 근거로 가능성도 없는 농노였다. 로마시대 콜로누스에서 기원한 농노는 농지에 얽매인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영주의 세속권력과 교회의 신성권력이라는 이중 지배계급 아래 그들의 농지에서 충실히 신의 자녀로서 충실히 노동에 종사하는 신민臣民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농노는 노동을 통해 부를 생산했고, 영주와 성직자는 전쟁과 기도라는 각각의 소임을 수행하며 부를 전유했다. 하지만 점차 왕과 교황으로 대표되는 영주와 성직자들은 수도원의 토지 소유 등을 두고 대립했으며, 이는 종교개혁에서 공식화됐다. 부의 축적을 종교적으로 엄금했던 가톨릭교회와 달리 프로테스턴트들은 부의 축적을 신의 은총으로 여기며 정당화했고, 이는 점차 사회 전체적으로 부의 축적을 가속화시켰다. 잇따른 전쟁과 신대륙의 발견 속에서 더욱더 가속화된 부의 축적은 자유롭게 고용하고 노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농노들을 토지로부터 분리시켰고, 갈 곳을 잃은 농노들은 도시로 유입돼 무산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가 됐다.
 
근대사회에서 시민은 성 안의 사람들을 뜻하는 부르주아계급이었다. 이들은 토지로부터 분리돼 도시로 편입돼 자신의 노동력 외에는 아무런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프롤레타리아와 달리 주로 상공업과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본을 소유한 신흥계층이었으며, 전통적인 지배계급인 지주계층과도 달랐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를 자신들의 자본이 투여된 공장에서 일하게 하며 부를 창출했고 전유했다. 부르주아계급은 부의 축적을 방해하는 지주계급에 기반한 왕과 귀족, 성직자 같은 일련의 구체제에 대해 프롤레타리아계급과 함께 저항했다. 혁명을 통해 구체제의 신분제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된 프롤레타리아는 정치적으로 부르주아와 동등한 시민이 됐으나, 여전히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에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여전히 부를 창출할 뿐 전유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존재였다. 반대로 부르주아계급은 이전보다 더욱 자유롭게 창출된 부를 전유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시민은 본디 국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계층을 말하는데 이들의 위상은 시대마다 달랐다. 그리스사회와 근대사회에서처럼 부를 전유하기도 하는 반면, 로마사회에서처럼 전유의 여부가 모호하기도 했으며, 중세사회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다. 이처럼 시대마다 달랐던 이유는 생산양식의 근간인 생산수단을 시민이 소유했는지, 그리고 노동으로 창출된 부를 전유할 수 있는지 여부에 근거한다.
------------------------------------------------------
옵션이기는 하나 숙제라고 하는 바람에 열나게 썼는데, 정작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안 하시는 바람에 그냥 갖고 돌아왔다가, 두 시간 동안 쓴 게 억울해(근무시간에 업무를 미루고 쓴 거라) 여기에 올려 본다. 메일로라도 보낼까 말까 고심중이다.
 
일주일 후 첨삭된 결과물을 받고 수정했다. 생각과 달리 내용에는 별 말이 없었다. 흠...
Posted by Enits
,
강유원이 말하는 공부법
① 1년 동안 읽을 책을 정한다.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저작 1권을 정한다.

② 3공 노트와 펜을 준비한다.

 
③ 책을 읽어 나가면서 모르는 개념이 있으면 표시해 둔다.

 
④ 표시해둔 부분에 대한 설명을 사전에서 찾아 3공 노트에 옮겨 적는다. 이렇게 하면 이 책을 읽기 위한 나만의 용어집이 만들어진다.

 
⑤ 이렇게 내용을 정리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책을 다시 읽어 본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책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깊어졌음을 깨달을 것이다.

 
⑥ 1번 더 읽어 본다. 그렇게 모두 3번을 읽으면 이 책에서 웬만한 것들은 모두 이해가 될 것이다.

 
⑦ 표준저작은 서브저작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서브저작은 1년에 10권 정도를 선정한다. 한 달에 한 권 읽을 정도의 분량이다. 책 선정은 표준저작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하는데, 표준저작의 각 챕터에 대응되는 책들로 한다.

 
⑧ 표준저작의 1챕터를 읽은 후에 서브저작을 같이 읽어 나간다. 이해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⑨ 서브저작 역시 노트정리를 한다.

 
⑩ 그렇게 공부하면 정리한 노트들이 쌓일 것이다. 그것이 내 재산이 된다.
 
마감 관계로 마지막 수업을 듣지 못해 포드캐스팅과 필사본으로 개인학습을 해야 하지만, 오독이 있다는 말에 절망 말고 받지도 않은 과제 첨삭에 기죽지 말고 7강에서 언급된 공부법에 의해 조만간 주제 하나를 잡아 찬찬히 파고들어야겠다.
Posted by Enits
,
얼마 전 블로그에 ‘호모아날리티쿠스Homo analyticus’, 즉 ‘분석하는 인간’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 말은 내가 뭐든지 혹은 누구든지 매번 분석하려 든다는 주위 사람들의 관찰을 토대로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본, 즉 나를 정의하는 개념이다. 내게 ‘왜?’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설사 그것이 불확정성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에 따라 사람, 사건, 사물, 사상 등을 알려 노력하는 ‘분석하는 사람’인, 내게 이 ‘왜?’라는 질문은 지적활동의 알파이자 그것으로부터 무언가 결과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오메가이기까지 하다. 나는 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앎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다.
 
이런 내게 정보의 습득은 몹시 중요하다. 이때 정보는 아마 분석의 도구이자 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량의 정보를 습득해 왔다. 그것이 책이든, 대화이든, 인터넷 검색이든 간에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금 이 순간도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아는 것만 많은 ‘잡학다식雜學多識’이라고 하지 현명하거나 깊이가 있는 ‘박학다식博學多識’이라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여러 방면에 걸쳐 체계가 서지 않은 잡다한 지식이나 학문”라는 ‘잡학’의 정의에서 드러난다. 즉 내가 습득하는 지식은 깊이가 얇고 체계가 서 있지 않다는 게다. ‘잡스럽다’는 말이 그리 유쾌하지 않게 들리는 사회통념에 비춰 볼 때 나는 주위 사람들의 이런 평가가 그리 반갑지는 않다. 결국 나는 변화의 욕구를 느낀다.
 
어떻게 하면 ‘잡학’이 ‘박학’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점에서 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습득하는 무수한 정보를 적어도 습득한 이후에는 나름 체계를 세워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단순히 여기에 그친다면 그것은 그저 체계화가 잘 된 지식의 총합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지식 내면에 자리 잡은 근본 원리라든지 그것들의 연관관계를 좀 더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잡학’의 단계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여기서 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박학’으로 보인다고 해서 다는 아닐 게다. 하지만 앎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부단한 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한 발자국 더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노둣돌이 되리라 생각한다.
Posted by Enits
,
오늘 숙제가 있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덕분에 저녁은 패스... --;
 
 
Q :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과 데카르트의 자연관을 간략히 비교 설명하라.
 
A :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라본 자연은 근본적으로 살아 있는 어떤 것으로서 존재하는 우주로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만물을 말한다. 이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 즉 운동에는 본질 자체가 변하는 본질적 변환Substantial Change과 본질은 변화하지 않고 표피나 현상만 변화하는 우연적 변환Accidental Change가 있다고 말했다.이런 부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계절의 변화도 하나의 운동이다.
반면 데카르트가 바라본 우주, 즉 자연의 변화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운동 중 우연적 변환만이 이루어지는, 위치만 이동하거나 양이 변하는, 지금으로 보면 물리학적인 변화만을 말한다. 그렇기에 데카르트에게 자연은 총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아닌 기계적인 운동/변화만 일어나는 공간이다.
 
이 정도 외어 가면 될까?
Posted by Enits
,
G선생은 스터디를 "좌장에 대한 절대 복종과 무한 성실을 맹세하고 그 실천을 수시로 점검받아야만 참여할 수 있는, 신체 단련을 겸한 학적 행위"라며 단호하게 정의내렸다. 무엇 좀 공부해 보겠다고 몇 사람 모여 책 한 권 끼적끼적 읽어 봤자 It seems to be...를 남발하기 십상이라 투여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얻는 소득이 별로 없기에, 좌장의 카리스마 있는 영도 아래 뇌가 근육질로 가득찰 정도로 빡새게 공부해야 애초에 스터디를 통해 각자 공부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허 나 내가 사실상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경제학 스터디 모임은 그렇지 못했다. 경제학사를 기반으로 하면서 주요 사상가의 원전을 함께 읽어 가기로 했던 스터디 모임은 반 년 조금 넘는 동안 툭 하면 바쁘다 해서  미루고, 아프다 해서 빼먹고, 어렵다 해 넘어가고를 반복하면서 실제로 내용도 It seems to be...를 남발했다. 그것도 격주마다 하기로 했던 초심은 어느덧 봄바람에 실려 가고 3-4주에 한 번 하기도 하고 통째로 한 달을 쉬기도 했다. 그렇게 해 반 년 동안 겨우 얻은 성과는 <국부론>의 1, 2권을 읽으며 고전학파 경제학과 자본주의의 시원을 대충 정리해 보는 데 그쳤다.

이래 선 안 된다 싶어 좌장으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위해 내가 꺼내든 특단의 수단은 고전학파 경제학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이다. 네 명의 모임원이 각자 고전학파 경제학과 관련해 주제를 설정하고 이에 대해 간단한 페이퍼를 쓰고 이를 발표하는 것. 실제 학부 전공과정에서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그냥 대학 졸업하고 경제학 좀 공부하려 하는 비전공자들에게 이것은 약간은 가혹한 일. 그래서 여지없이 튀어나오는 반발의 목소리. 하지만 나는 이쯤에서 그동안 공부한 내용 좀 정리해 보자는 마음에서, 그리고 이것을 발판 삼아 향후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야기되는 뇌의 근육질화에 대해 미리 대비하자며 세미나를 강요했다. 결국 모임원들은 마지못해 좌장에게 절대복종 하기로. 다만 무한성실 할지는 모르겠다.

다음 모임에서 각자 준비할 세미나 주제를 발표해야 하는데, 아직 나부터도 주제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 경제학-철학 수고 강의 때 읽어 가야 할 텍스트를 읽으며 뭔 말인지 헤매는 통에 학부 때 너무 놀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마당 - 수업시간에 아무래도 내가 타겟이 될 터인데 이러다 공만 떨구는 조재진 꼴이 될 듯 - 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그리고 보니 함께 읽어 가던 백승욱의 <자본주의 역사강의>도 읽다 멈춘 지도 꽤 됐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에어컨 바람 쐬면서 공부하는 게 가장 보람차게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Enits
,
어제부터 강유원 씨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처음 하는 말이 철학은 암기하는 학문이란다.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개뿔... 무조건 외어야 한단다. 비판적 창의적은 교사들이 학생들 가르치다 힘이 부치니 지어낸 거란다. 물론 정황상 교사들을 비하하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기본적인 개념과 핵심 텍스트 정도는 철학하는 데 외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듯. 아무튼 이 말로 강의를 시작하더니 매 강의마다 쪽지시험을 본단다. 어럽쇼 했는데, 쪽지시험은 아니고 지난 강의에서 핵심 문장을 외워 오고 문간에서 지키고 있다가 외우는 사람만 들여 보낸단다. 못 외우면? 바로 환불처리 해 준단다. 하하...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다. 사실은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지난 직장에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게 저지른 악행은 치를 떨게 했다. 뭐냐고? 사내 강의실이 있었고, 강유원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하러 왔었는데 문제는 강의실 맨 앞, 즉 강사가 떠드는 곳이 벽을 두고 내 옆이었고, 거기엔 벽만 있는 게 아니라 문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떠드는 소리는 문틈 사이로 숭숭 나왔고, 마감 스트레스로 가득했던 나는 그 소리가 몹시 짜증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금 회사에서 강의실은 위층이라 전혀 무관. 하하...
 
아무튼 어제 강의의 핵심은 철학의 의미를 찾으며, 철학의 어원 중 일부인 sophia의 개념을 설명하며 동시에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재정리하며 철학의 의미를 연관시키는 것. 그래서 다음 강의 때 외워 올 문장은 다음과 같다. 공장장님 외워 오세요. ^^;
 
지혜는 사실의 현상적인 분석과 기술이라기보다는 그 내면적 근거와 본질 및 전체적 의미연관을 통찰하여 보다 근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강유원 씨는 자신은 이렇게 바꿔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혜는 사실의 현상적인 분석과 기술에 바탕을 두고 그 내면적 근거와 본질 및 전체적 의미연관을 통찰하여 보다 근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분석과 기술은 철학하는 데 해서는 안 될 게 아니라 기초라는 것이다. 다만 그것만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나는 저 번역투의 문장을 다음처럼 바꿔 보려 한다.
 
지혜는 사실을 현상 그대로 분석하고 기술하는 데 바탕을 두고, 그 내면의 근거와 본질, 그리고 전체 의미 사이의 관계를 통찰해 좀 더 근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렇게 외어 가면 빠꾸당할까?
Posted by Enits
,
나는 왜 경제학을 공부하려 하는가

어 쨌듯 간에 나는 경제학과를 졸업한 나름 경제학도다. 물론 대학 5년 동안 수업은 빼먹기 바빴으며 시험지는 텅빈 채로 내거나 아예 보지 않은 적도 많다. 남들과 달리 교양과목이나 다른 학과과목을 주로 수강하고 전공과목은 최소학점만 이수한 채로 간신히 졸업했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졸업장 하나가 달랑이다. 졸업하기 전에도 졸업한 후에도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살면 전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무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졸 업한 지 3년 반 정도가 지났다. 시큰둥했던 대학 시절 전공수업 시간에 배웠던 이야기는 여전히 나와 관계가 있었다. 경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전에서 경제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물적 기초가 되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과 그것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관계의 총체’라고 설명한다. 이런 거창하고 추상적인 정의를 굳이 내리지 않다 해도 우리는 늘 부동산, 주가, 금리, 경제성장률, 국민소득 같은 숱한 경제용어를 들으며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자본주의경제학 따위는 관심 없다고 말할 처지가 못 된다. 그렇다고 마르크스경제학을 비롯한 사회주의경제학에 관심이 있냐 하면, 또 그것도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경제학이든 사회주의경제학이든 시큰둥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내가 두 경제학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 고작 아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라고 하는 자본주의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분석틀뿐이었다.
내 가 이렇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순순히 인정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거부하고 부인하고 변명을 일삼았다. 그런 것은 관심도 없고 별 필요 없다고. 하지만 무지를 창피하게 여기기 시작한 후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무지를 떨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자본주의경제학이든 사회주의경제학이든 가장 기초적인 이론부터 하나하나 공부해 가며, 최소한 그네들이 주장하는 핵심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비교 분석하고 이들을 지양止揚하며 내 스스로 현실 경제를 분석할 틀을 만들 필요성 말이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 경제학의 테두리 안에서 그나마 관심을 가졌던 칼 폴라니 식의 실재주의적 경제학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Posted by Eni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