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강유원 씨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처음 하는 말이 철학은 암기하는 학문이란다.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개뿔... 무조건 외어야 한단다. 비판적 창의적은 교사들이 학생들 가르치다 힘이 부치니 지어낸 거란다. 물론 정황상 교사들을 비하하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기본적인 개념과 핵심 텍스트 정도는 철학하는 데 외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듯. 아무튼 이 말로 강의를 시작하더니 매 강의마다 쪽지시험을 본단다. 어럽쇼 했는데, 쪽지시험은 아니고 지난 강의에서 핵심 문장을 외워 오고 문간에서 지키고 있다가 외우는 사람만 들여 보낸단다. 못 외우면? 바로 환불처리 해 준단다. 하하...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다. 사실은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지난 직장에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게 저지른 악행은 치를 떨게 했다. 뭐냐고? 사내 강의실이 있었고, 강유원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하러 왔었는데 문제는 강의실 맨 앞, 즉 강사가 떠드는 곳이 벽을 두고 내 옆이었고, 거기엔 벽만 있는 게 아니라 문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떠드는 소리는 문틈 사이로 숭숭 나왔고, 마감 스트레스로 가득했던 나는 그 소리가 몹시 짜증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금 회사에서 강의실은 위층이라 전혀 무관. 하하...
 
아무튼 어제 강의의 핵심은 철학의 의미를 찾으며, 철학의 어원 중 일부인 sophia의 개념을 설명하며 동시에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재정리하며 철학의 의미를 연관시키는 것. 그래서 다음 강의 때 외워 올 문장은 다음과 같다. 공장장님 외워 오세요. ^^;
 
지혜는 사실의 현상적인 분석과 기술이라기보다는 그 내면적 근거와 본질 및 전체적 의미연관을 통찰하여 보다 근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강유원 씨는 자신은 이렇게 바꿔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혜는 사실의 현상적인 분석과 기술에 바탕을 두고 그 내면적 근거와 본질 및 전체적 의미연관을 통찰하여 보다 근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분석과 기술은 철학하는 데 해서는 안 될 게 아니라 기초라는 것이다. 다만 그것만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나는 저 번역투의 문장을 다음처럼 바꿔 보려 한다.
 
지혜는 사실을 현상 그대로 분석하고 기술하는 데 바탕을 두고, 그 내면의 근거와 본질, 그리고 전체 의미 사이의 관계를 통찰해 좀 더 근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렇게 외어 가면 빠꾸당할까?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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