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선생은 스터디를 "좌장에 대한 절대 복종과 무한 성실을 맹세하고 그 실천을 수시로 점검받아야만 참여할 수 있는, 신체 단련을 겸한 학적 행위"라며 단호하게 정의내렸다. 무엇 좀 공부해 보겠다고 몇 사람 모여 책 한 권 끼적끼적 읽어 봤자 It seems to be...를 남발하기 십상이라 투여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얻는 소득이 별로 없기에, 좌장의 카리스마 있는 영도 아래 뇌가 근육질로 가득찰 정도로 빡새게 공부해야 애초에 스터디를 통해 각자 공부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허 나 내가 사실상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경제학 스터디 모임은 그렇지 못했다. 경제학사를 기반으로 하면서 주요 사상가의 원전을 함께 읽어 가기로 했던 스터디 모임은 반 년 조금 넘는 동안 툭 하면 바쁘다 해서  미루고, 아프다 해서 빼먹고, 어렵다 해 넘어가고를 반복하면서 실제로 내용도 It seems to be...를 남발했다. 그것도 격주마다 하기로 했던 초심은 어느덧 봄바람에 실려 가고 3-4주에 한 번 하기도 하고 통째로 한 달을 쉬기도 했다. 그렇게 해 반 년 동안 겨우 얻은 성과는 <국부론>의 1, 2권을 읽으며 고전학파 경제학과 자본주의의 시원을 대충 정리해 보는 데 그쳤다.

이래 선 안 된다 싶어 좌장으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위해 내가 꺼내든 특단의 수단은 고전학파 경제학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이다. 네 명의 모임원이 각자 고전학파 경제학과 관련해 주제를 설정하고 이에 대해 간단한 페이퍼를 쓰고 이를 발표하는 것. 실제 학부 전공과정에서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그냥 대학 졸업하고 경제학 좀 공부하려 하는 비전공자들에게 이것은 약간은 가혹한 일. 그래서 여지없이 튀어나오는 반발의 목소리. 하지만 나는 이쯤에서 그동안 공부한 내용 좀 정리해 보자는 마음에서, 그리고 이것을 발판 삼아 향후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야기되는 뇌의 근육질화에 대해 미리 대비하자며 세미나를 강요했다. 결국 모임원들은 마지못해 좌장에게 절대복종 하기로. 다만 무한성실 할지는 모르겠다.

다음 모임에서 각자 준비할 세미나 주제를 발표해야 하는데, 아직 나부터도 주제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 경제학-철학 수고 강의 때 읽어 가야 할 텍스트를 읽으며 뭔 말인지 헤매는 통에 학부 때 너무 놀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마당 - 수업시간에 아무래도 내가 타겟이 될 터인데 이러다 공만 떨구는 조재진 꼴이 될 듯 - 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그리고 보니 함께 읽어 가던 백승욱의 <자본주의 역사강의>도 읽다 멈춘 지도 꽤 됐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에어컨 바람 쐬면서 공부하는 게 가장 보람차게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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