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블로그에 ‘호모아날리티쿠스Homo analyticus’, 즉 ‘분석하는 인간’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 말은 내가 뭐든지 혹은 누구든지 매번 분석하려 든다는 주위 사람들의 관찰을 토대로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본, 즉 나를 정의하는 개념이다. 내게 ‘왜?’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설사 그것이 불확정성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에 따라 사람, 사건, 사물, 사상 등을 알려 노력하는 ‘분석하는 사람’인, 내게 이 ‘왜?’라는 질문은 지적활동의 알파이자 그것으로부터 무언가 결과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오메가이기까지 하다. 나는 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앎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다.
 
이런 내게 정보의 습득은 몹시 중요하다. 이때 정보는 아마 분석의 도구이자 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량의 정보를 습득해 왔다. 그것이 책이든, 대화이든, 인터넷 검색이든 간에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금 이 순간도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아는 것만 많은 ‘잡학다식雜學多識’이라고 하지 현명하거나 깊이가 있는 ‘박학다식博學多識’이라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여러 방면에 걸쳐 체계가 서지 않은 잡다한 지식이나 학문”라는 ‘잡학’의 정의에서 드러난다. 즉 내가 습득하는 지식은 깊이가 얇고 체계가 서 있지 않다는 게다. ‘잡스럽다’는 말이 그리 유쾌하지 않게 들리는 사회통념에 비춰 볼 때 나는 주위 사람들의 이런 평가가 그리 반갑지는 않다. 결국 나는 변화의 욕구를 느낀다.
 
어떻게 하면 ‘잡학’이 ‘박학’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점에서 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습득하는 무수한 정보를 적어도 습득한 이후에는 나름 체계를 세워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단순히 여기에 그친다면 그것은 그저 체계화가 잘 된 지식의 총합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지식 내면에 자리 잡은 근본 원리라든지 그것들의 연관관계를 좀 더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잡학’의 단계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여기서 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박학’으로 보인다고 해서 다는 아닐 게다. 하지만 앎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부단한 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한 발자국 더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노둣돌이 되리라 생각한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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