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두고 뒤를 돌아보면 책이 한가득 쌓여 있다. 얼추 오육백 권 정도? 그보다 더 될지도 모르고, 아직 ALURRE님이 친정집에 쌓여 있는 책을 아직 가져오지 않았기에 가뿐히 내 예상치를 넘을 게다. 120cm짜리 책장 세 개를 주루룩 이어붙여도, 그래서 80cm짜리 책장 두 개를 긴급히 주문했어도 아마 이 책들을 다 꽂아 넣기란 불가능할 듯싶다. 책 위에 쌓아 놓고 앞에도 꽂아 두고 하면서 아니면 박스에 넣어 구석에 쳐박아 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걸 언제다 정리해 두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분야별 크기별로 분류해 꽂아 두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책들을 묶어 놓은 노끈이나 과연 풀 수 있을까? 기획 때문에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필요해서, 책세상 문고판과 비슷한 사이즈라 함께 묶어 놓은 비디오테이프를 찾느냐 책더미를 뒤져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창 걸렸다. 이 마당에 읽을 책을 고르기란 서울 바닥에서 이 서방 찾은 일과 뭐가 다를까 싶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었느냐 하는 질문에 나도 ALURRE님도 답하지 못한다. 이래저래 사 모으고 선물받았던 책이 쌓이다 보니 어느덧 수백 권의 더미로 남았을 뿐이다. 그래도 신기한 건 생각보다 겹치는 책, 즉 둘 다 가지고 있는 책이 그닥 많지 않다는 게다. 대략 20권 정도. 이 정도 책 규모에 이 정도 권수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서재를 결혼시키지 않다는 입장 앞에서, 공부하는 데 관련된 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당에, 복수의 책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쉽게 자신의 책을 남에게 내놓지도 못할 듯싶다.

한편 더미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시디와 디비디... 과연 얘네들까지 정리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들을 모두 정리하다 보면 아마 올해 중에는 집들이는 꿈에도 못 꿀지 모른다. 문제라면 더 문제는 책, 시디, 디비디의 증식 속도는 전보다 더디긴 해도 절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는 것. 다음 이사 때는 100% 포장이사를 해야 할 판이다. 안 그래도 이번에 이사하면서 전체 짐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책을 4층집 두 곳에서 가지고 내려와야 하다 보니 사람을 한 명 더 써야 했다. 그리고 뭔 책이 이렇게 많아, 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그래도 한가득 쌓여 있는 책을 보면 희뭇한 웃음이 입가에 머금는다. 기획을 하고 글을 쓰고 할 때 어떻게든 도움이 될 테니, 정 할 것 없을 때 위로해 주고 벗이 되어 줄 테니. 십여 년을 떠돌고 더부살이 할 때는 책을 가지고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는데, 배따지가 불렀다 싶을 정도로 책을 쌓아 두고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짐을 풀고 분야와 크기에 맞도록 분류해 두지 않으면 종이뭉치에 불과할 테니 하루 속히 정리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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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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