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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4 내가 생각하는 한국현대사의 핵심사건 1
이 글은 ‘역사철학의 이해’ 강좌 7주차 과제로 제출했습니다. 늘 그렇듯 업무시간에 후다닥 쓴 글인지라 엉망입니다. 다음주에는 이 글을 가지고 발표도 해야 한다는데 한숨부터 나오지만, 그만큼 좀 더 보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뭘 더 보충해야 할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근대적 산업국가의 시발점
―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66)
 
선정 이유
경제적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한국현대사의 핵심사건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97년 환란위기였다. 그 후 10년이 지났고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귀결되는 전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97년을 기점으로 했을 때 그 이전이나 이후나 실재했던 (경제)체제나 그것의 수권세력은 큰 변화가 없었다. =>경제체제의 변화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음. (반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충실한 논거가 필요.) 이는 현재 한국의 정치․경제를 좌우하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올해 치러질 대선에서 현재 가장 유력한 두 후보인 이명박과 박근혜만 봐도 알 수 있다. 박근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박정희체제의 직계 후계자이며, 이명박은 역시 박정희체제에서 쌓은 성공신화를 기반으로 정치권에 진입한 사례이다. 그런데 박정희체제가 언제부터 시작됐는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대부분 1961년 발발한 5.16군사쿠데타를 시점으로 잡겠지만, 여기서는 그 다음해 박정희가 군부 과도정권을 해체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 본격적으로 시행한 첫 사업인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점으로 잡으려 한다.
 
사건 규정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이전 제1, 2공화국의 외세의 원조로 유명하던 전前산업사회 내지는 산업화의 과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박정희의 군사정권 아래 시행된 정부 주도의 거시적 경제개발 프로젝트이다. 이후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5년마다 반복되면서 한국사회가 근대화, 개발, 수출, 성장 같은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국가단위로 총력전을 펼치도록 주도한 개발독재체제의 구체적이면서도 명시적인 ‘플랜’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 성과는 전지구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고도성장과 압축성장이며, 그 실체는 ▲미국과 일본의 외자를 발판으로, ▲정부 주도 아래 계획된, ▲중화학공업과 전자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수출 위주의 산업화과정이다. 박정희정권 이래 한국은 발전과 성장을 담론으로 하는 정치․사회체제를 수립했다. 문민정권 이후 특히 환란위기를 겪으며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기업으로 옮겨 가면서 관치경제의 틀은 어느 정도 탈각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정부가 경제정책을 좌지우지 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대통령을 위시한 수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한 국가의 경제가 세계 경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임. (역시 3개 정도의 논거를 제시해 관계를 고찰해야 함.)
 
사건 개요
1962년부터 66년까지 실행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주요 골자는 당시 가장 시급했던 전력과 석탄 같은 동력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한편, 주요 기간산업을 확충하고 사회간접자본을 충실히 갖춰 경제개발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농업생산력을 확대하여 농업소득을 증대시키며, 수출을 증대를 꾀해 국제수지를 균형화하고 기술을 진흥하는 일 등이었다. 이후 실시된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1971)에서는 식량자급화, 산림녹화, 화학․철강․기계공업 중심의 산업고도화, 7억 달러 수출목표 달성 등에 그 목표를 두었으며, 그 후에도 주로 중화학공업 육성에 주력하며 수출 주도, 중화학공업 주도의 산업화를 꾀했다. 한편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5차부터 ‘경제사회발전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박정희 사후 그 후계자인 전두환, 노태우은 물론 김영삼의 문민정부에서도 반복됐다.
 
=> 전체적으로 쓰다 말았음.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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