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날들의 철학 - 8점
베르트랑 베르줄리 지음, 성귀수 옮김/개마고원

이 리뷰는 알라딘 서평단으로 선정돼 작성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존재한다. 누구나 기쁨을 생각하는 것은 쉽게 편하게 여기지만, 슬픔은 절래 손을 젓기 일쑤다. 그런데 살다 보면 우리는 기쁨보다는 슬픔을 더 많이 접한다. 오늘 하루만 봐도 우리는 출근하기 싫어하며, 집안 살림하기를 힘들어하며, 재미없는 TV 프로그램에 짜증을 내며, 인터넷 답글에 격분한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슬픔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 즐거울 수 있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은 우리네 인생에서 잘 포장돼 진열장에 놓인 비싼 케이크 같은 것이다.

실제로 철학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고 겪는 부정적인 것을 들여다보는 데서 그 의미를 지녀 왔다. 인류 문명이 번영할 때보다 혼란과 파괴가 준동하는 데서 철학은 자신의 임무를 시작한다. 예컨대 ‘이놈의 세상은 왜 이리 각박하단 말인가’라는 질문에서 철학자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무관심과 탐욕을 논파해 왔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의 이면에 잠복해 있는 부정의 근원을 탐구하는 인간 정신의 파수대이다. 그런 철학은 당연히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슬픔 또한 들여다봐야 한다. 무엇이 인간을 이토록 괴롭히는가? 그런데 그것은 왜 인간을 괴롭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간은 즐겁고 기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바로 철학의 존재 목적 그 자체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슬픔의 요소 하나하나에 돋보기를 가져다 든다. 물론 메스를 들 목적은 아니다. 인간의 정신이란 게 그리 후딱 제거하거나 바로 잡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저자는 생각을 한다. 그 슬픔의 근원이 무엇이며, 무엇과 연관돼 있으며, 그것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섬섬히 들여다보면서 슬픔의 의미를 끄집어낸다. 저자가 다루는 슬픔의 주제는 다양하다. 시험, 시간, 질병, 부당함, 죽음, 절망, 비극, 악, 소외, 고통…. 하나같이 우리 인간들의 정신에 잠복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흔드는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섣불리 이것을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다 존재하는 이유가 따로 있으며, 인간은 그것이 품고 있는 나름의 의미를 이해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힘겨움에 쉽사리 굴복하기에 슬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철학함을 통해 우리를 괴롭히는 슬픔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고 하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면서도 병렬적이라 목차에서 읽고픈 마음이 든 주제라면 무엇이든 하나 펴 보고 읽어 나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슬픔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식으로 자리 매김을 다시 하느냐이다. 자, 책을 펴고서 마음이 동하는 것 하나를 읽어 보자. 가령 과거에 집착하느라 힘든 이는 150쪽의 〈후회에 관하여〉를 펴 보면 된다. 저자는 글 초반에서 ‘후회’와 ‘미련’을 구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전자는 가책이라는 방식으로 우리를 도덕과 대면시키는 반면, 후자는 회상이라는 방식으로 우리로 하여금 시간과 대면하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둘을 구분하기보다는 혼동한다. 그런데 그 혼동의 결과는 자못 심각하다. 어떤 일을 다시 행하기 원치 않는다는 미명 아래 우리는 과거의 행위 모두를 지워 버리려 한다. 그것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저자는 “우리는 우리가 경험해 온 것의 총체”라고 말한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미련과 후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경험해 온 것의 누적값인 자기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간다. 다시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만 다시 해 보면서,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을 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완성해 간다. 저자는 여기서 나아가 용서와 오만, 양심과 가책을 이야기하며 용서를 “참다운 후회와 회한을 이끌어 내는 자세”라며, 잘못에 대한 책임 회피가 아닌 일종의 투쟁에 동참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그 투쟁은 슬픔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 “명징한 의식과 단순 명료한 현존성의 차원”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저자가 다른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이와 대동소이하다. 저자는 말한다. “삶 속에는 슬픈 날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해명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런 날들의 존재를 가릴 수 있다. 반면 그것에 함몰돼 자신을 불행의 늪으로 내몰 수도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슬픈 날들이란 하나의 숙명이 아니다. 그것들은 미처 체험되지 못한 삶을 표현할 때 드러나는 우리의 무지와 한계의 결과일 뿐이다. 그 점을 이해하는 즉시 슬픈 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슬픔 그 자체조차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슬픔 속에는 아직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래의 삶을 향한 모색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저자의 말은 자못 높은 곳에서 삶을 관조하는 듯한 빤한 경구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 자체를 수동적으로 바라볼 때, 정확히는 체념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것이다. 삶의 한 부분으로서 슬픔은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저자가 이런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태도이며, 동시에 그것을 해명하는 일이다.

이 책은 ‘차 한 잔과 함께하는 철학 에세이’라는 제목을 단 ‘포즈필로’ 시리즈 중 하나이다. ‘차 한 잔과 함께한다’는 말에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접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철학하기를 시도한다는 말일 게다.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와인, 쇼핑, 걷기 같은 역시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한다. 시리즈의 다른 책보다는 자못 무거워 보이는 주제를 달았지만, 이 책은 앞서 말했듯 슬픔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조금은 무거워 보이지만, 우리가 하루에도 여러 번씩 내뱉는 일상의 개념 하나하나를 잡고 철학하기를 시도한다. 물론 이 책 한 권 읽는다고 철학하기가 일상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철학이라는 게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려운 개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게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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