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기행 - 8점
박종만 지음/효형출판

부산 가는 고속전철 안에서 박종만의 <커피기행>을 꺼내들다가 문득 생각났다. '아차차 커피 안 사고 탔구나.' 모 시사주간지에서 믹스커피를 끊고 원두커피만 마시는 커피광으로 취재원이 될 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내게 약 세 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는 것은 형벌에 가깝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미 기차는 떠나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세 시간 동안 커피를 참는 것, 아니면 맛대가리 없는 커피를 3천 원이나 주고 사 마시는 것이다. 원두커피라고 해서 팔지만, 그 커피는 500원 넣고 먹는 사무실의 유사-에스프페소 자판기보다 맛이 떨어진다. 처음에는 좀 참다가 부산역에 내려 커피를 사 마시자 하고 책을 다시 펴들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커피 생각만 더 간절해졌다. 결국 나는 항복했다.

박종만의 이력이야 커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으니 더 이야기하는 것은 사족이다. 하지만 그가 커피의 발생지부터 전파 경로를 따라간다고 떠난 커피로드 기행은 제법 흥미로운 일이다. 커피가 처음 발견됐다는 에티오피아의 짐마에서 출발해(여행 경로상 케냐와 탄자니아를 먼저 들렀지만 애초 이 기행의 시발점은 에티오피아부터이다.) 아비시니아고원을 지나 지부티에서 홍해를 건넌 커피는 예멘의 모카항에서 터키의 이스탄불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됐다. 저자는 이 과정을 약탈당하거나 입국을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차를 빌리고 얻어타면서 갖은 고생을 다한다.

애초 이 기행은 험난함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단 돈 백 원부터 오육천 원 내면 편하게 또는 우아하게 그윽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커피라는 품이 아닌, 아프리카인들 삶 속에 뿌리 깊게 내린 부나(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부르는 말)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다시피 커피는 카파라고 불렸던 짐마에서 칼디라는 소년이 처음 발견한 뒤 이슬람을 거쳐 유럽의 유입됐다. 하지만 칼디가 발견한 커피와 유럽에서 음료로 만들어 준 커피는 분명 다르다. 이는 단순히 커피를 끓여 마시는 방식이나 첨가하는 재료가 달라서가 아니다. 커피는 그것을 마시는 곳마다 다른 문화양식을 만들어 냈다. 박종만은 그러한 모습을 제대로 포착해 냈다.

흔히 스타벅스 카페라테 한 잔을 팔 때 그것에 들어간 원두를 재배한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단돈 50원 정도라는 말이 있다. 박종만을 비롯한 커피탐험대는 바로 그 모습을 접한다.

"케냐 농부들은 아침 8시에 나와서 저녁 6시 반까지 일하지만, 대우는 썩 좋지 않다. 하루 100케냐실링의 돈을 받는데, 79케냐실링이 약 1달러이므로 우리 돈 1,000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 이마저 벌지 않으면 구걸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커피는 이들에게 삶의 버팀목이나 다름없다."(39쪽)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원두를 사거나, 생두를 사 로스팅을 한 뒤 추출하고 마시는 것만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파종, 재배, 수확, 제조, 집산/등급화, 수출/거래, 유통/제조, 굽기/섞기, 분쇄/추출, 음용의 10단계를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앞의 7단계는 생략돼 있다. 하지만 이 7단계는 커피로 먹고사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삶 그 자체이다.

커피나무는 기후나 토양에 민감하다. 일조량과 강우량에 따라, 가지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커피나무는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게다가 이런 재배는 일일이 사람 손을 타야 한다. 게다가 고도의 집중력과 기술이 요구된다. 커피열매의 과육 부분을 제거해 이른바 생두를 뽑아내는데는 그래도 기계화가 돼 있으나 모든 농장이 기계화되지는 않았다. 아프리카의 만성적인 물 부족은 함부로 기계를 돌릴 수 없어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말리고 벗겨내고 골라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그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아주 일부분이다. 그나마도 먹고살으려 아프리카인들은 오늘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저자가 또 하나 이 기행에서 천착하는 것은 커피를 음용하는 문화이다. 세계대전 와중에 만들어진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던 문화는 이제 이탈리아에서 발원한 에스프레소 방식으로 추출해 마시는 방식으로 다변화됐다. 하지만 이 모두는 서구의 문화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이 커피일 줄 안다. 신선한 원두를 스트레이트로 혹은 잘 블렌딩된 것을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추출해 여유롭게 마시는 것. 이것은 유럽식 커피 문화일 뿐이다. 아프리카, 정확히는 커피를 재배해 먹고사는 사람들에는 그런 커피는 없다.

아프리카인들은 커피를 어떻게 마시는지 궁금해한 탐험대는 한 농가에서 커피를 끓여달라고 주문한다. 농가의 한 아주머니는 어둡고 좁은 부엌에서 흙탕물을 아궁이에서 끓인 뒤 언제 사뒀는지도 모르는 곱게 갈린 커피가루를 물의 양보다 적은 분량을 한웅큼 넣는다. 거기에 정제되지 않은 설탕을 쏟아붓고는 잔이라고 할 수 없는 그릇에 담아 내놓는다. 하지만 이 커피를 마시려 동네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커피는 비록 손수 재배할지라도 쉬이 마실 수 없는 귀한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은 생강이나 약재를 듬뿍 넣어 커피를 기호식품이 아닌 약으로 마신다. 또한 에티오피아인들은 복잡하면서도 고단한 과정을 거치며 커피 세레모니를 진행한다. 이는 손님에게 음료를 대접하는 것을 넘어 손님을 맞는 하나의 의식이다. 이렇듯 아프리카인들의 커피 문화는 서구의 그것과 무척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원두의 신선도나 추출방식 등을 이야기하며 '틀리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설탕이  듬뿍 든 달짝지근한 다방커피는 서구와 다른 한국식 커피 문화일 게다. 커피의 맛과 향을 살리지 못했다고 말할지언정 그것이 잘못된 커피 음용 방식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또한 저자는 에티오피아의 분나에 초점을 맞춘다. 앞서 말했듯 분나 혹은 분나는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부르는 말이다. 짐마의 옛 이름 카파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지만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커피를 반드시 분나라고 부른다. 물론 이렇다 해서 전 세계에 통용되는 커피를 분나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김치와 기무치, 인삼과 진셍을 분나와 커피에 오버랩시킨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적어도 분나가 지니는 의미를 우리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저자와 커피탐험대는 커피 그 자체를 넘어 아프리카땅에서 커피의 기원과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문화를 탐방한다. 이 기행에는 일반적으로 커피가 가져다주는 낭만적인 면모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저 커피를 수입해 자기네들 방식으로 가공해 하나의 그들만의 문화로 만들어 낸 서구의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제 서구의 커피 문화는 전 세계에 펼쳐졌다.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는 서구식 커피하우스가 등장하고 처음으로 바리스타 경연대회가 열렸다. 커피농장의 고단한 삶 속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의 커피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들 또한 값싼 로부스타종으로 만들어진 인스턴트커피를 사 마실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들만의 소중한 커피 문화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불행한 변화를 세계화라고 부른다.
Posted by Eni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