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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3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8점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이제이북스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한국어의 사용자는 대략 7,500만 명으로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라는 사실을 들어봤는가? 프랑스어보다 사용자 수가 많다고 하니 가슴 한구석이 뿌듯해진다. 하지만 한국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 5,000여종 중에서 하나일 뿐이다. 한국어를 포함한 상위 15개 언어의 사용자 비중은 47.5% 정도이지만, 나머지 언어는 대부분 사용자 수가 만 명 이하이다. 그런데 전체 언어의 60%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으며, 지난 500년 동안 전 세계 언어의 절반이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죽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의 저자들은 언어를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닌 인식의 틀이며, 또한 생태계에서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 본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은 언어가 소멸하는 이유와 과정을 정치, 경제, 역사, 환경 등 그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따져 묻는다. 일반적으로 소수민족의 언어는 원시적이라 생각되지만, 애초에 우월한 언어 따위는 없었다. 그저 그 지역과 그 사회에 적합한 언어가 존재했을 뿐이다. 이누이트에게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수십 가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아득한 옛날부터 다양한 언어들은 서로 보완적 기능을 하며 공존해 왔다. 그런데 ‘지리상의 발견’시대와 제국주의시대 서구가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수많은 토착어를 붕괴시켰고, 그들의 언어만을 쓸 것을 강요했다. 이렇듯 서구가 언어를 지배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저자들은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한다. 그것은 생물학적 다양성과 언어의 다양성,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어가 소멸되는 곳에서는 생물도 그만큼 소멸돼 가고 있으며, 언어가 소멸되면서 하나의 문화 역시 사라지고 있다.

한국어는 사용자 수도 많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한국어는 이미 많은 고유어를 잃어 왔으며, 일상 언어에는 수많은 외래어가 뒤섞여 있다. 지역 고유의 색깔을 담은 사투리는 ‘표준어’라는 이름의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에 밀려 촌스럽다고 치부되며 코미디의 주된 소재로 전락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혀 아래 힘줄설소대을 찢기도 하며, 심심하면 영어공용화론이 흘러나온다. 이렇듯 한국의 다양한 언어‘들’은 표준어에 밀려 사라져 가고 있으며, 표준어로서의 한국어 역시 영어라는 ‘강력한’ 언어에 짓눌려 있다. 그런 와중에 지방의 다양한 토속문화는 사라져 버렸고, 한국의 독특한 문화는 ‘글로벌스탠다드’라는 허울 아래 더 이상 존속을 장담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언어 다양성은 문화적 다양성의 척도이며, 한 언어가 사멸하면 그 생활양식도 사라진다는 점에서, 언어의 소멸은 문화 소멸의 징후”라는 저자들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언어가 사멸하면 그 세계 자체가 사라진다. 그래서일까? 식민지시대 일제가 그토록 ‘조선어’를 쓰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이 글이 길다 싶으면(원래 12매로 썼던 글을 7매로 압축했는데 길까?) 다음 동영상을 봐도 된다.
EBS의 <지식채널e>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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