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5.28 POD로라도 자기 동네 통계를 볼 수 있기를 2
  2. 2010.04.22 지만지 고전 선집 14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 : 집약본
8점

손낙구의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 수도권편"의 출간 이야기에 책을 사려 했더니 정가 10만 원. 인터넷 서점에서 10% 할인받고 적립금을 고려해도 후덜덜. 그래도 자료 확보 차원과 출판사에 대한 애정을 생각해서 구매할까 했지만 아내의 반대로 끝내 구입하지 못했다. 그러다 몇달 지나 집약본이라는 이름으로 정가 1.7만원짜리 발췌본이 나왔다. 서문에 달린 출간 배경이 기가 막히다.

2010년 2월에 펴낸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 수도권 편>의 10만 원이라는 가격이 독자들이 돈을 주고 사서 읽기엔 너무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한 독자는 서민의 관점에서 쓴 책이 서민이 사서 읽기 어렵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요약본이라도 내달라는 주문을 했다. 한 번은 이 책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서 필자가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30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청중은 말할 것도 없고 토론자도 이 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한 사람은 언론에 소개된 내용과 필자의 발표문만 참조했고 다른 사람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고 했다.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은 서점에서 이 책을 손에 쥐고 살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결국 내려놓았다며 구매자의 고민을 말해 주었다. 책값 때문에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어, 언론에 실린 기사를 통해서만 이 책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문제라는 생각에 서민판을 내기로 했다.

학술회의 토론자들조차 사지 않는 책. 나처럼 도서구입지원비를 받는 사람조차 구입하지 못하는 책.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해도 가격이 후덜덜 해도 뜻 있는 사서가 아니면 한정된 예산 때문에 선뜻 구매하기 힘든 책. 그런 책을 낸 저자도 출판사도 오판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집약본이라는 이름으로 가격을 대폭 낮춘 책이 나왔지만 1660쪽에 B5 사이즈의 책을 440쪽에 A5로 축약하다 보니 책의 핵심 자료인 시군구별 자료는 강남구, 수원시, (인천)남구만 빼고 통째로 사라졌다. 정작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인 마포구나 곧 이사 갈 파주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볼 수 없는 것. 이게 어디 나만 그러겠는가.

저자가 수 년 동안 손품 팔아 생성한, 귀한 자료를 출판사에 내놓으라 할 수 없으니 결국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듯, 10만 원짜리 수도권편을 손 떨어가며 사든가 도서관에서 빌리든가 아니면 대형 서점에서 훑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든 생각은 POD이다. 이른바 주문자 제작 출력. 예시로 실린 강남구, 수원시, 남구 대신 자기가 사는, 또는 관심이 가는 시군구만 골라 책을 엮는 것이다. 조금 방식을 달리하면 기존의 집약본과 별개로 시군구별 예시만 자신이 골라 출력해 제본할 수도 있겠다. 적잖게 찍었을 수도권편이 안 팔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오로지 가격 때문에 자기가 사는 동네의 지표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손익 계산을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현재 POD는 문제가 있다. 가장 큰 것은 POD가 결코 싸지 않다는 것. 교과서를 제작하면서 여러번 POD를 이용해 봤는데, 출력의 질은 차치하고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4도 양면의 경우 쪽당 200원. 해 보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단도를 대략 100원이라 하면 440쪽의 경우 4.4만원이 나온다. 제본비야 1천 원 정도이니 별 의미 없다 쳐도 가격이 후덜덜해진다. 물론 마스터 인쇄도 가능하고 대략 쪽당 15원 정도니까 가격은 확 내려간다. 학위 논문으로 주로 취급하는 업체의 경우 10부 정도부터 가능하고 100부 이상부터는 어느 정도 할인이 되는 만큼 시도해 볼 만하다.

이렇게라도 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봤으면 하는데, 그저 집약본 나온 것에 감지덕지해야 할까? 기왕지사 실책을 인정하고 집약본을 낸 만큼 최소한 고려 정도는 해 봤으면 좋겠다.
Posted by Enits
,
지만지 고전 선집이라는 고전 번역 시리즈가 있다. 처음에는 '고전천줄'이라는 이름을 달았다가 언제인가부터 '선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천줄'이 가지는 상징성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었나 보다.[각주:1] 아무튼 이 시리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에 대하여 몇 가지 논란이 있다.

1. 3600종 시리즈 완간이 목표로 (세계 최대의 시리즈인 펭귄 클래식의 두 배 규모로) 다양한 언어권의 인문, 사회, 예술, 자연과학 등 인류사의 거의 모든 고전을 번역하고자 한다.

2. 완역이 아니라 약 천 줄 분량[각주:2](신국판 기준 160쪽 안팎)으로 고전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번역한다.

3. 중역이 아니라 해당 언어의 전공자, 관련 분야 연구자가 직역한다.

3번이야 당연 그래야 하는 것이고, 1번의 경우 다소 마케팅적인 수사이긴 하지만 영어권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언어권과 영역에서 책을 펴 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1년에 천 종씩 낸다는 엄청난 계획인데, 실제로 2년 2개월(군대냐~) 동안 한 편집자가 책 백 권 만들고 퇴사했다고도 한다. 출간 2년 전부터 원고를 생산해 왔다고 하지만 저 규모의 책을 펴 낸다는 것은 사람 참 혹사하기 좋은 수준이다. 뭐 이거야 편집자들 문제라 치고.

문제는 2번이다. 저 중 600권은 별도의 시리즈 명으로 완역을 목표로 책을 내고 있다고 하지만, 나머지 3000권은 발췌 번역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가득한데 나 역시 발췌 번역에 대해서는 일단 부정적이다. 3000권 중에는 두루마기나 팸플릿 수준의 짧은 고전도 있겠지만, 수십 권에 달하는 고전도 있고 서문부터 부록까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구조적으로 짜인 고전을 그저 천 줄 분량으로 덜컥 잘라 내 번역한다는 게 뭔 의미가 있겠나 싶은 것이다. 자칫하면 겉핥기만 하고 고전을 잘못 이해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럴 바에는 고전에 대한 해설서[각주:3]가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것에 대한 변명은 있다. 실제로 고전은 유명세와 달리 사람들 대부분이 안 읽는, 아니 못 읽는 책이다. 기껏 고전을 읽는 사람은 공부하는 사람뿐이다. 공부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야 완역된 책을 한 장 한 장 더듬으며 문장을 쪼개어 가며 책 전체를 아우르며 저자의 집필 의도, 당대의 시대/사회상, 오늘에 끼치는 의미 등을 하나하나 깨우쳐 가며 찬찬히 읽겠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차마 그런 것을 하지 못하거나 조금 해 보다 말고 지쳐서 고전은 공부하는 사람들의 것일 뿐이라며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 뿐이다. 뭐 사실 나도 완역된 고전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다 읽은 적은 별로 없다. 읽다가 내버려 둔 책도 꽤 된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교양을 쌓거나 영혼을 맑게 하려 공부하는 수준에 그런 고전 읽기는 자학에 가깝다.

이 시리즈는 그런 점에 포착한 듯싶다. 게다가 3000권이라는 방대한 양으로 기획된 시리즈인 만큼 균일된 볼륨과 레벨을 유지하는 것도 시리즈 기획의 한 일환일 것이다. 또한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게 아니라 이 정도쯤은 읽을 수 있잖습니까 하는 그 나름 배려의 방식일 수도 있다. 더 앞서 나가면 향후 나올 완역에 앞서 발췌역을 먼저 선보여 예수를 기다리던 세례자 요한의 역할을 맡길 수도 있다. 실제로 홍기빈은 칼 폴라니의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에 <거대한 변환>의 핵심 부분 두 장을 먼저 번역하여 내놓아 그동안 절판되어 갑갑해하던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고, 후일 완역본을 내놓기도 했다. 뭐 이 시리즈도 별도로 추진되는 완역 시리즈가 있는 만큼 그런 모양새가 엿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발췌역과 달리 완역은 출판사나 번역자나 엄청난 시간과 자금이 투입된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출간해 봤자 몇 권 팔리지 않는 빈약한 고전 시장을 생각하면 완역은 그저 보기 좋은 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판사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고, 편집자는 정리당한다.

이쯤 되면 발췌역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어 보인다. 발췌역 3000권 중에서 겨우 2할뿐인 600권만을 완역하려고 계획을 세운 것은 좀 아쉽지만, 번역 한 번 되지 않은 고전을 일부나마 소개한다는 것은 의미는 '쪼까' 있어 보인다. 물론 비번역작이나 절판작만 내놓은다면 모를까 삼국사기처럼 번역도 여러 차례 된데다가 무엇보다 방대한 분량을 달랑 천 줄로 번역해 소개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완역 시리즈가 600권에서 1200~1500권 정도로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책을 누가 사 준다고...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새는데, 고전 아무리 완역하고 감수해 내놓는다고 해도 몇 권 팔리지 않는다. 뭐 언론 좀 타고 명사가 추천해 개중 몇은 그나마 재쇄를 찍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 많은 고전은 거의 십 년 동안 초판을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러고는 초판이 겨우겨우 다 나가면 품절, 사실상 절판이다. 헌책방을 뒤지고 복사해 저작권법을 이용하고 심지어 도서관에게서 불법적 소유권 이탈을 해야 읽어야 하는 수도 발생한다. 한국처럼 인문학 도서 시장이 협소하고 빈약한 데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다 사 주면 좋겠건만 그러기도 힘들다. 이 시리즈도 그런 점에서 내놓은 마케팅 제작 전략이 재미있다.

초판은 달랑 300권만 찍는단다. 2000-3000권 돌려 줘야 채산이 맞는 일반적인 오프셋 인쇄는 애당초 포기하고 복사와 크게 다르지 않는 마스터 인쇄를 한단다. 허긴 컬러로 인쇄해야 하는 고전이 몇이나 된다고. 그리고 초판에 한해서만 양장으로 제본하고, 재쇄부터는 보급판이라는 이름으로 페이퍼백으로 내는데 이마저도 마스터가 아니라 POD[각주:4]로 책을 만든다고 한다. 이러니 고작 160쪽짜리 책이 양장은 1.2만 원, 페이퍼백은 9500원[각주:5] 하는 거다. 가격은 완역 수준, 내용은 발췌역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안 팔리는 종은 그저 시리즈의 이를 맞추는 데 만족한다는 극악의 디마케팅(Demarketing) 전략도 재미있다. 가령 아프리카 문학 같은 분야의 책은 읽을 사람이 워낙 없어 초판 300권 팔기도 힘들다. 그런 책을 애써 팔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3000권을 목표로 하는 시리즈인 만큼 그것의 일부로서 구색을 맞추는 데 의미를 둔다면, 번역자의 속은 탈지언정 시리즈 전체로 볼 때에는 으레 있는 일일 것이다.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만지 고전 선집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발췌역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시리즈를 기획하고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 기획은 시장을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데 보탬이 되었다. 특히 단행본도 마스터 인쇄와 POD로 책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다는 점, 안 팔고 만다는 디마케팅도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 될 수도 있음은 나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1. 천 줄 분량이 안 되는 책도 있었다고 한다. 책 만들다 보면 천백 줄이 될 수도 있고. [본문으로]
  2. 현대인이 하루 동안 읽는 데 적합한 양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3. http://camelian.tistory.com/55 참조 [본문으로]
  4. 행여나 모를 분도 있을 텐데 Print On Demand라고 해서 수요자 (소량) 주문 생산이라고 보면 된다. 주문을 받으면 책을 인쇄가 아닌 출력(print)한 뒤 제본해 책을 만드는 방식이다. [본문으로]
  5. 출판일 잘 모르는 사람들은 160쪽짜리가 이리 비싸다고 툴툴거리는데, 마스터든 오프셋이든 기계를 돌리는 기본 부수가 있는지라 300부 돌려서는 적정 가격을 맞출 수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Eni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