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프랜차이즈답게 아이돌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갑자기 Wham!의 Last Christmas가 나온다. '캐럴'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있는 만큼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수많은 곡이 생겨나고 그 이상으로 온갖 곳에서 흘러나오지만 그런 캐럴 중 가장 지분이 큰 게 아마 Last Christmas일 게다. 그냥 크리스마스 좀비라고 해도 될 정도.

작년 크리스마스에 여자에게 채여 징징거리는 몹시 시궁창스러운 가사는 사실 별로 인지되지 않고,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작년 크리스마스에 사랑을 고백했다는 첫 구절만 되뇌에게 하는 어쩌면 마성의 BGM이 바로 Wham!의 Last Christmas다.
노래를 들으며 아내와 나는 이 곡으로 벌어들이는 조지 마이클의 저작권 수입을 이야기했다. 1984년에 나왔으니 무려 32년 동안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전 세계에서 흘러나올 테니 저작권 수입은... 하하하. 그러면서 팀 해체 이후에도 잘 나간 조지 마이클과 달리 그냥 별볼일 없는 전 멤버가 되어 버린 앤드루 리즐리는 뭐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고등학교 때 음악 같이 듣던 친구 말로는 리즐리의 솔로 앨범은 꽤 괜찮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들어본 적 없다.)

듀오든 밴드든 한 명이 혼자 잘 나가면 그 팀은 깨지게 마련이고 왬 역시 똑같은 길을 걸었다. 솔로 데뷔 앨범 Faith를 시작으로 보이 그룹 이미지의 왬과 달리 남성성과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컨템포러리 R&B에 가까운 음악은 솔직히 왬 시절 음악보다는 잘 손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좀 인상적인 게 데뷔 앨범 끄트머리에 실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광고 음악으로 실리면서 끈적끈적한 분위기 내는 데 제격인 Kissing A Fool과 어쩌면 엘튼 존 빨일지도 모르지만 그와 동급 수준은 되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의 빈 자리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준 Somebody To Love 정도를 빼놓고는 내게는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솔직히 대학을 들어간 이후 조지 마이클은 그냥 잊혀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Last Christmas가 있었다. 일 년의 350일 정도는 잊고 살아도 크리스마스까지 대략 보름 정도에 Last Christmas를 안 들은 해는 한 해도 없었으니까.

아침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모 포탈을 들어가니 실검 1위가 조지 마이클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와이파이가 끊기는 바람에 내용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직감했다.
'아, 그가 갔구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법이듯 이내 조지 마이클의 부고 기사를 보았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망 시점은 크리스마스. 지난 크리스마스에 조지 마이클은 떠나갔다.

RIP George Michael(Georgios Kyriacos Panayiotou) 1963-2016

'Memento Mori' 카테고리의 다른 글

RIP John Kenneth Wetton 1949-2017  (0) 2017.02.01
RIP Carrie Frances Fisher 1956-2016  (0) 2016.12.28
부고 쓰기에 앞서  (0) 2016.12.21
Posted by Enits
,

1.

타인의 죽음을 말하며 문어로 '유명을 달리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이제껏 '남긴 수명'이라는 뜻의 遺命으로 알고 있던 유명은 '어둠과 밝음', '저승과 이승'을 뜻하는 幽明이었다. '달리하다'遺命에 얽매여 '다르게 가지다'라는 원 뜻이 아닌 '닳다'의 파생형으로만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무지했던 것.

 

2.

어제 우연히 키스 에머슨(3/10 사망)과 그렉 레이크(12/7 사망)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올해 참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떴구나 싶었다. 예년에 비해 좀 많다 싶어 한국어 위키와 영어 위키의 사망자 목록을 정리하니 대략 서른한 명 정도가 눈에 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아놀드 파머, 하퍼 리처럼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상은 잘 모르는 이부터 낸시 레이건과 시몬 페레스처럼 정치적으로 (내겐) 유명세만 있을 뿐인 사람도 있지만, 데이빗 보위라든지 신영복이라든지 이래저래 많이 접하고 적잖은 영향을 준 이도 들어 있다.

세상에 있는 생명만큼 죽음 또한 늘 곁에 있다. 어떠한 이유라든지 내게 영향을 준 이들이 대체로 50-70대인 것을 감안하면 이즈음이 그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특히 60-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음악인들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 수는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늘면 늘었지 수 년 간은 줄어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3.

영화 클로저를 볼 때 생경했던 게 부고 전문 기자의 존재였다. 신문 한 귀퉁이에서 누가 향년 몇 세로 죽었다, 어디에서 발인하며 유족으로는 누구 누구가 있다, 라는 식의 단신 부고 기사만 접해 본지라 고인의 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부고 전문 기자의 존재는 낯설었다. 공과 과를 평가할 만한 여유는 없다지만 고인에 대해 (뉴스답게) 늦지 않게 후루룩 정리해야 하고 언제 어디서 가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나 스탠바이 상태여야 하는 부고 전문 기자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도 그랬고 최근 몇 년 동안 유명을 달리하는 인물에 대해 나에 끼친 영향이 큰 사람은 페북 담벼락에 ‘RIP’을 달면서 추모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길어지기도 했고 간단히 추모만 하기도 했다. 이번 그렉 레이크의 부고를 접하면서 문득 좀 더 제대로 된 부고문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부고는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테고 점점 내게 끼친 영향이 큰 사람의 비중도 커질 테니까.

사실 고인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다. 과거 신해철의 죽음, 올해 백남기의 죽음처럼 충격에 뭘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불현듯 닥치는 죽음 앞에서 마냥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추모하는 것 이상의 글을 쓸 수 있는 깜냥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추모라는 본질을 넘어 글을 쓴다는 강박에 휩싸일 수도 있다. 부고의 본질은 추모다.

 

4.

그래도 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추모의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게다. 본말이 전도되지 않는 한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택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는 여전히 미생이지만 그래도 블로그질을 할 때부터 끼적끼적 글줄 날리는 게 그래도 가장 쉬웠다. 그런 맥락에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유효한 추모의 수단이 부고문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Memento Mori' 카테고리의 다른 글

RIP John Kenneth Wetton 1949-2017  (0) 2017.02.01
RIP Carrie Frances Fisher 1956-2016  (0) 2016.12.28
RIP George Michael 1963-2016  (0) 2016.12.26
Posted by Enits
,

남들 다 하는 분석 같은 것 말고 아무도 안 할 것 같은 것을 해 보자는 마음에 지난 2016년 테러방지법안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국회의원 38명의 이번 총선 결과를 점검해 보았다.

일단 결과는 다음과 같다.(발언 순서) 생각보다 컷오프와 경선 패배 등으로 불출마한 사람이 꽤 된다.

김광진(더)-불출마(낙천)
문병호(국)-낙선(부평갑)
은수미(더)-낙선(성남중원)
박원석(정)-낙선(수원정)
유승희(더)-당선(성북갑)
최민희(더)-낙선(남양주병)
김제남(정)-사퇴(은평을)
신경민(더)-당선(영등포을)
강기정(더)-불출마(컷오프)
김경협(더)-당선(원미갑)
서기호(정)-불출마(선언)
김  현(더)-불출마(컷오프)
김용익(더)-불출마(선언)
배재정(더)-낙선(사상)
전순옥(더)-불출마(낙천)
추미애(더)-당선(광진을)
정청래(더)-불출마(컷오프)
진선미(더)-당선(강동갑)
최규성(더)-불출마(컷오프)
오제세(더)-당선(서원)
박혜자(더)-불출마(낙천)
권은희(국)-당선(광산을)
이학영(더)-당선(군포을)
홍종학(더)-불출마(선언)
서영교(더)-당선(중랑갑)
최원식(국)-낙선(계양을)
홍익표(더)-당선(중성동갑)
이언주(더)-당선(광명을)
전정희(더/국)-불출마(컷오프)
임수경(더)-불출마(컷오프)
안민석(더)-당선(오산)
김기준(더)-불출마(낙천)
김관영(국)-당선(군산)
박영선(더)-당선(구로을)
주승용(국)-당선(여수을)
정진후(정)-낙선(동안을)
심상정(정)-당선(고양갑)
이종걸(더)-당선(만안)

종합하면 참여 의원 총 38명 가운데
당선 17명, 낙선 7명, 사퇴 1명, 불출마13명으로 당선율은 44.7%다.
불출마/사퇴 제외 시 당선율은 70.8%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도 많고,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것만으로 의정 평가를 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국회의원이 일한다는 것을 보여 준 이들인 만큼 20대 국회에서도 뭔가 보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

Posted by Enits
,